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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번역] 번역) 소설 수성의 마녀 #4 보이지 않는 지뢰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2.06 02: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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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번역) 소설 수성의 마녀 번역본 모음
· 번역) 소설 수성의 마녀 번역본 모음




5 미오리네의 방

제타크 기숙사 지하 격납고에서는, 다릴 바르데의 반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선명한 붉은 기체는 슬레타와의 치열한 싸움으로 이제 수리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다.

운반되어 가는 다릴 바르데를, 구엘과 라우더——형제가 로비의 창문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라우더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미안해. 형. '에이스 파일럿'의 지위 박탈만으로 끝내고 싶었는데, 다릴 바르데까지 회수되다니."

다릴 바르데가 제타크 사의 운송함에 수용되어 간다.

"신경 쓰지 마. 아버지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지."

구엘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감정을 애써 동생에게 숨기며 그 자리를 떠난다.

라우더가 형에게 목소리를 냈다.

"형. 이제 아버지를 더 화나게 하는 일은······"
"알고 있어."

——구엘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



학교 프론트는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재시험은 벌써 내일이다.

안뜰의 계단에서, 인공 석양에 비춰진 채로, 슬레타는 난감해하며 앉아 있었다. 아직 메카닉도 스포터도 찾지 못한 것이다.

"······어떡하지. 이대로면 실습, 합격 못 해······."

스포터는 지구 기숙사의 틸이 해줄 것 같았지만, 츄츄의 난입으로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또 뭔가 난처한거야?"
"앗."

갑자기 어디선가 상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슬레타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엘란이 느긋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완전히 불시에 당한 기분이었다.

"에에에, 에, 엘란 씨!? 어떻게 아신 건가요?"
"······너만큼 알기 쉬운 사람도 없을걸?"
"아······."

슬레타는 엘란의 쿨한——하지만 결코 불쾌하지 않은——시선을 피하듯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중얼거리듯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실습, 혼자선 할 수 없어서요.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그럼 우리 기숙사로 올래?"
"엣!"

슬레타는 그 말에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단지 고민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슬레타는 진심으로 기뻤다.

그래서 엘란의 제안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고, 게다가 슬레타의 고민을 전부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엘란은 페일 사가 운영하는 페일 기숙사의 필두(筆頭)였다.

슬레타는 거주 장소도——지금은 호텔에 임시로 머물고 있지만——결정되지 않았고, 기숙사에 소속되면, 기숙사생 중 누군가에게 스포터나 메카닉을 부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사자인 엘란은 그런 큰 제안을 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이, 여전히 단정한 표정으로 슬레타에게 다시 물었다.

"싫어?"
"전! 전혀요. 좋아요. 괜, 괜찮은 건가요······?"

슬레타는 흥분한 듯 일어섰다.

몇 초간 서로를 바라보았을까——슬레타와 엘란의 분위기를 깨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우왓,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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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는 슬레타 앞에 나타난 건 신부님——미오리네였다.

은발을 크게 흔들며, 성큼성큼 둘 사이에 끼어 들어왔다.

"미오리네 씨?"
"너, 무슨 생각이야? 그 녀석은 적이야!"
"적······!?"

미오리네가 슬레타의 어깨에 손을 둘러 힘껏 끌어당겼다.

"삼대가 놈들은 나를 손에 넣으려고 해. 이 녀석도 나를 노리고 친절한 척하는 거야!"

손가락으로 가리켜 ‘이 녀석’이라 불린 엘란이지만, 동요하는 일은 물론 없었다.

"난 너에게 관심 없어."
"뭣······! 나도 마네킹 왕자에게 관심 없어!" 미오리네가 외쳤다.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슬레타는 미오리네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막말을 하다니, 믿을 수 없었다.

"뭐?"

미오리네는 슬레타가 엘란을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눈총을 받은 슬레타는 더듬거리며,
"엘란 씨는, 기숙사에 초대해 주시고, 상, 상냥하고, 친절하고, 정말······"
슬레타는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하지만, 사정이 너무 많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미오리네는 엘란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야?"
"그녀, 실습 멤버를 모으고 있었어."

미오리네는 그 말을 듣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 녀석이 아니라 나한테 부탁해야지."

슬레타와 미오리네는 엘란과 헤어지고, 학원의 지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미오리네가 자동문에서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조명이 켜졌다.

"들어와."

서류나 자재, 그리고 쓰레기봉투가 여기저기에 놓여 있어서, 슬레타는 처음에는 창고와 비슷한 곳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수경재배로 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생활용품도 있어서, 이곳이 미오리네의 방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미오리네 씨, 학교에 살고 계셨어요?"
"원래는 이사장실이야. 아버지의 공간을 뺏었어."
"그럼, 기숙사에는?"
"안 들어갔어."
"그런······. 메카닉과 스포터가 필요한데······."

이대로 멤버가 모이지 않으면, 실습에 합격할 수 없다. 미오리네에게는 미안하지만, 엘란의 권유를 받아들였어야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슬레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오리네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로, 수경재배 공간의 잎사귀를 살짝 만지면서, 태연하게 슬레타에게 말한다.

"그 정도는 나 혼자 할 수 있어."
"네? 미오리네 씨, 경영전략과 아니에요?"

조금, 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혀진——슬레타는 몇 번이나 지저분하다고 말하려다 말았다——방에서, 미오리네는 태블릿에 표시된 <실습 서포트 매뉴얼>을 읽어 나가며,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스와이프하고 있었다.

"다 외웠어."
"벌써요!?"
"실습 서포트 정도는, 매뉴얼만 암기하면 문제없어."

매뉴얼이라고 해도, 파일럿과 스포터, 메카닉——각 실습의 중요 항목이 빼곡히 적혀 있어서, 슬레타는 파일럿 항목만으로도 이해가 됐는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입학 이래 줄곧 학원 톱의 성적을 유지해 온 미오리네에게는,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슬레타는 솔직히 감탄한다.

"대······대단해요. 그, 그럼, 여기,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모빌 중기(重機) 이론>? 기초적인 부분이잖아. 불안 요소는 나보다 너인 것 같네."

모빌 중기란, 모빌슈트와 모빌 크래프트를 합친 호칭이다. 군 관련으로 진출하지 않는 학생들도, 이 부분은 이해해야 한다.

미오리네의 ‘격려’에, 슬레타는 고개를 떨구며,
"노, 노력, 할게요."


***


그 시각, 지구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상 공장 앞에는 도로 봉쇄용 장애물 <거마(拒馬)>와 바리케이드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앞에는 피켓과 현수막을 든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보도용 카메라 드론이 슬로건을 촬영한다. ——Render unto Earthians the things that are Earthians! (어시언의 것은 어시언에게!)

스페시언의 경제적 지배에 대한 항의 활동이다.

시위대의 리더가 스피커로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 지구 거주민은, 우주 사업을 위해 거의 한 세기 동안, 세금을, 노동력을, 바쳐왔습니다. 하지만 스페시언으로부터의 경제적 대가는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았고, 남은 것은 빈곤과 식량 위기뿐입니다. 거기다가, 우주의 기업은 우리의 땅마저도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때, 경비대가 시위대에 접근하고 있었다.

지상 스태프가 라이트를 흔들며, 모빌슈트를 유도한다.

——AR 유닛은 피켓 라인까지 후퇴. 모빌슈트 각 소대에, 가스탄의 사용을 허가한다.

인간에 비해 압도적으로 거대한 모빌슈트의 기체 앞에서, 시위대는 동요하여 어쩔 수 없이 후퇴해 간다.

하지만 모빌슈트는 무자비하게 대인 가스탄을 발사했다.

거리에 비명이 들리고, 가스의 풍압으로 인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날아가 버렸다. 최루탄의 연기에 고통스러워하며 도망간다.

모빌슈트는 차량을 순식간에 짓밟고, 발 밑에서 일어나는 폭발 등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무선의 목소리는, 담담하게 경비대에 알린다.

——돌입 개시. 제압, 검거하라.

대부분의 프론트에 방송하는 언론사 <INN (Interplanetary News Network)>도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를 전하고 있었다.

——어제, 기업 행정법에 근거한 불법 점거에 대한 집행이 이루어져, 선동을 주도한 8명이 검거되고, 다수의 무기들이 압수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아나운서의 말에 이어, 화면에서는 연행되어 가는 지도자와 쇠파이프나 화염병이 보여졌다. 마치 어시언의 만행을 과장하는 것처럼.

지구 기숙사의 거실에서는, 마틴, 오제로 그리고 누노가 실내복 차림으로 그 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근에는, 어시언의 경제적 독립을 주장하는 그룹이 부상하고, 이를 단속하는 법에 대한 정비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에 오제로가 반박한다.

"어시언의 공장을 어시언이 쓴다는데, 뭐가 나쁜 거야!"
"어쩔 수 없어. 대형 언론사는 어디든 스페시언의 자본 산하니까."

마틴은 완전히 포기한 듯이 말한다. 우주 자본의 미디어가, 친 스페시언 성향의 보도를 하는——언제나 그랬듯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옆에 있는 누노도 지친 듯 눈을 감는다.

"보상은 없고, 어시언은 잠자코 일해라——그런거지."

그때 마틴이 주위를 둘러보며, 비로소 깨닫는다.

"어라, 츄츄는?"


***


그 무렵, 츄츄는 지구 기숙사의 외부 계단에서 화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

——츄츄!
——잘 지내?
——밥은 잘 먹고 다니지!

화면에는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보였다. 채굴장 근처에 지어진 주거 공간인 것 같았다.

"한 명씩 말해."

츄츄는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리더로 보이는 인물이 따뜻한 눈빛으로 말을 건넨다.

——추아츄리, 학교는 어때?
——스페이시한테 괴롭힘당하진 않았어?

차례로 츄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페이시는 스페시언을 조금 나쁘게 이르는 말이다.

"전혀 문제없어. 어제도 말야, 시비 걸어오는 녀석들, 모조리 손봐줬다고."

——오오!
——역시 츄츄.

어둠 속에서 화면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츄츄는 화면 너머로 들뜬 동료들을 계속 바라보았다. 지구의, 츄츄를 학원으로 보내준, 소중한 동료들이었다.

"그보다, 뉴스 봤는데······"

——우리 걱정은 하지 마. 넌 네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돼.

리더가 힘차게 대답했다.

동료들도 모두 웃고 있다.

——<크래프트 선원>을 얕보지 마.

"고마워, 모두."

츄츄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6 슬레타의 꿈

"······응?"

미오리네가 침대에서 눈을 떴다.

방안에는 몇 개의 작은 불빛이 켜져 있었다.

수경재배 수조 옆에서, 슬레타가 아직 공부하고 있는 것 같다. 미오리네를 배려해서 천장의 불을 켜지 않았을 것이다. 수조의 푸른 빛과 슬레타의 태블릿의 빛만이 방을 약간 밝히고 있다.

슬레타는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프릴이 달린——미오리네가 빌려준——잠옷을 입고 있어, 평소보다 어른스럽게 보인다.

"아직 안 자?"
"아, 죄, 죄송해요. 진도, 따라가야 해서."

이렇게 조용한 밤은 오랜만인 것 같다.

미오리네는 슬레타 옆에 앉았다.

"······너 말이야,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슬레타는 생각하며,
"꿈······이거든요. 수성에, 학교를, 만드는 거."
"학교? 수성에는 없어?"
"옛날에는 있었, 대요······. 근데, 점점 사람이, 줄어들어서······."
"아아. <퍼멧>은 이제 달에서도 채굴되니까."

일찍이 인류가 태양계의 각 행성을 탐사해 간 결과, 미지의 입자 <퍼멧>이 발견되었고, 그 연구와 채굴이 진행되었다.

이제는 모빌슈트나 함선을 포함한 많은 기계에 퍼멧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달에서 퍼멧을 대량으로 함유한 지층이 발견되었다. 채굴과 운송에 드는 비용 때문에, 수성의 퍼멧은——달의 퍼멧에 비해——비싸지고, 점차 팔리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냈어요. 젊은 사람들이, 수성에 오도록, 하고 싶어서요."
"······"

미오리네는 조용히 슬레타를 바라본다. 슬레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수성 사람들, 정말 기뻐해 줬어요. 부탁한다고. 기다린다고. 부적도 주고, 다들 편지도."

슬레타는 돌아보며 미오리네에게 미소를 보인다.

하지만 미오리네는 미오리네다.

"부담스러워······."

슬레타는 미오리네의 그 솔직한 말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

"······에?"
"왜 네가 다 짊어져야 해? 너 자신을 위해서만 살면 되잖아."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에——아스티카시아에 있다.

"흠. 대단하네, 너."
"아뇨, 저는······."

하지만 미오리네는 이미 잠옷의 리본을 휘날리며, 침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안녕히······주무세요."

슬레타는 미오리네의 뒷모습에 작게 인사를 하고, 다시 태블릿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 무렵, 학원 내에 있는 격납고에 두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데미 트레이너에 접근하여 카메라 아이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빠르게 현장을 떠났다.


***



날이 밝고 방과 후가 되었을 때——드디어 재시험이 시작될 참이었다. 실습용 격납고의 트랩에 슬레타와 미오리네가 뛰어 들어갔다.

슬레타는 흰색 홀더 전용 파일럿복을, 미오리네는 메카닉복을 입고 있었다.

"명심해. 나는 초심자에다, 일인이역이야. 과제를 클리어하는 건, 너한테 달렸어."
"으으으······. 네."

매우 불안한 슬레타였지만, 협력해주는 미오리네에게 불만을 표할 수는 없었다.

집합 장소에는 이미 지구 기숙사 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츄츄가 파일럿, 니카가 메카닉, 누노가 스포터였다.

"아······ 으와아."

슬레타는 츄츄를 알아보고, 곧바로 미오리네의 등 뒤에 숨었다.

츄츄는 키가 커서 완전히 숨지 못한 슬레타를 노려보며,
"공주님한테 도움을 받을 거면, 우리 기숙사에 오지 말라고. 망할 스페시언."

니카가 당황해서 말을 이어갔다.

"츄츄. 그러니까 그건."

미오리네는 츄츄들과 이야기한 적이 없다. 하지만 곧바로 짐작하며,
"지구 기숙사 애들이지?"
"불만 있어?"

츄츄는 날카롭게 미오리네를 노려본다.

"스페시언이라는 이유만으로 싸잡아서 욕하는 거야? 너도 어시언을 차별하는 놈들과 다를 바 없네."

미오리네는 정색하며 츄츄를 도발했다.

"······너."

둘은 곧 몸싸움을 시작할 것만 같다.

"츄츄"
"그만, 그만하세요."

니카와 슬레타가 각각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미오리네와 츄츄가 말을 들을 리 없고, 계속해서 싸우려는 분위기였다.

이때 교사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슬레타와 니카는 안도했다.

——이제부터 재시험을 시작한다. 학생들은 데미 트레이너에 탑승하여 지정된 장소에 집합하도록.

이 모습을 멀리서 씩 웃으며 지켜보는 학생들의 모습이 있었다.

얼마 전에도 누노의 뒤에서 츄츄의 실패를 조롱하던 두 명의 학생이다.

관제탑에서 교사의 지시가 내려온다.

——LP041, 슬레타 머큐리. 스타트.

"네."

버저 소리와 함께, 슬레타가 조종하는 실습용 모빌슈트 <데미 트레이너>가 전진한다.

미오리네는 누노와 함께 서포트 에어리어에 있었다.

"토양 상태를 계산할게!"

미오리네는 암기한 매뉴얼대로 데이터에서 노이즈를 제거하며 빠르게 계산을 진행했다. 몇 초 후, 스포터용 모니터에 지뢰의 예측 포인트가 떠올랐다.

"전방 오른쪽으로 5도, 30m 앞에 지뢰로 추정되는 반응!"
"네!"

슬레타가 암벽 경사면을 내려가며 왼쪽으로 피해, 첫 번째 지뢰를 클리어하자 'NO DETECTION'불검출이라는 표시가 나타난다.

"전방 10도, 18m 앞에 반응. 오른쪽으로!"
"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그대로 직진해! 지형 변화에 주의해."
"네."

순조롭게 세 번째를 클리어할 무렵, 슬레타의 눈 앞의 메인 사이트에 노이즈가 일고, 곧 전면이 검게 변했다.

데미 트레이너의 카메라 아이가——얼마 전 츄츄의 기체처럼——검게 변색된 것이다.

"어라?"

슬레타는 데미 트레이너를 급히 정지시켰다. 츄츄처럼 그대로 지뢰를 밟지는 않았다.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부주의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슬레타는 에어리얼과 함께, 츄츄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아온 것이었다.

미오리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잠깐, 왜 멈춰?"
"그게, 메인 사이트가 새까맣게 되어버렸어요."
"새까맣게?"

미오리네의 말에, 뒤에 있던 누노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전의 츄츄 때처럼 지효성 도료인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난 시험 때 비웃던 두 시람이 보였다.

"예~이!"

실습장 근처 계단에서, 그 두 명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데미 트레이너 내에서 시험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츄츄도 알아차리고,
"저 놈들······."

미오리네는 그런 사정을 모르고, 즉시 관제탑과의 연결을 시도한다.

"교관님, 기체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시험 중단을 요청합니다"

——안 된다. 사전 점검도 과제 중 하나다.

확실히, 매뉴얼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미오리네는 작게 혀를 차고 나서, 차분하게 슬레타에게 말했다.

"······슬레타, 계기판의 수치로 방향을 파악해. 환장 에어리어까지는 내가 지시할게."
"앗, 네."

슬레타의 주위는 캄캄하다. 미오리네의 지시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동 방향, 좌측 20m 앞에 지뢰. 오른쪽으로 가."
"오른쪽, 이요."

데미 트레이너의 양팔을 앞으로 뻗으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탐색하면서 조심조심 전진한다.

그러나 그때 버저가 울렸다.

——시간 초과다. 슬레타 머큐리, 불합격.

츄츄는 멈춰 선 슬레타의 기체를 고요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빛 하나 없는 콕피트 안에서, 슬레타는 동요하며 고개를 떨구려 한다.

그러나 미오리네가 곧바로 교사에게 말했다.

"재도전 신청합니다."
"아······, 미오리네, 씨?"
"재시험은 계속 도전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아, 네!"

미오리네의 격려에 슬레타의 의욕도 솟구친다.

두 번째 스탠바이——

부저 소리와 함께 슬레타의 기체가 나아간다.

"아까와 지뢰의 위치가 달라. 오른쪽으로 경로를 잡아."
"네."
"기체는 <자율 자세 제어 시스템>이 균형을 잡아줄 거야.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하지 마."
"네!"

슬레타를 걱정하던 니카는 쌍안경으로 확인하면서 통신을 건다.

"누노, 어떻게 할 수 없어?"
"저 지효성 도료는 쉽게 지워지지 않아. 츄츄 때도 그랬잖아."

슬레타는 조종기술이 뛰어나지만, 센서류도 카메라 아이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게다가 에어리얼이 아닌 기체로, 그 어느 때보다도 초조해 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조작 실수도 하고 만다. 지시보다 조금 더 나아갔다.

"안 돼! 너무 갔어!"

미오리네가 외친 순간, 실습장에 폭발음이 울리고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또 지뢰를 밟은 것이다.

——슬레타 머큐리, 불합격.

실습장 옆 계단에서 웃음을 나누던 학생 두 명은 또 다시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재도전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슬레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슬레타와 미오리네는 몇 번이고 도전한다. 구엘과의 결투에서도 이겼다. 보이지 않는 길. 울리는 지뢰 소리. 버저. 다시 스타트 라인. 버저 소리가 몇 번이고 울려도 포기하지 않는다.


7 리트라이

미오리네는 쌍안경으로 지표를 확인하며 지시를 내리고, 슬레타는 그에 따라 데미 트레이너를 조종한다.

달려가는 슬레타의 기체를 지켜보듯, 하로 탑재 드론이 따라간다.

누노가 냉담한 어조로 미오리네에게 말한다.

"보이지 않으면 할 수 없어."
"하지만 시간은 줄어들고 있어! ——그대로 직진! 부딪힐 때까지 달려! 너도 도와줘."

미오리네가 슬레타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린 후, 헤드기어를 벗어 누노에게 던지듯이 넘기고, 하로 탑재 전동 바이크를 급발진 시켰다.

"에엣!?"

누노의 대답도 듣지 않고, 미오리네는 바이크의 액셀을 최대로 밟아 환장 에어리어로 향했다.

거의 동시에, 슬레타가 탄 데미 트레이너도 비틀거리며 환장 에어리어에 도착했다. 환장 설비에 부딪혀 넘어질 뻔하지만, 간신히 버텨냈다.

미오리네를 태운 리프트가 올라간다.

"무장을 변경할 거야. 서서 오른팔 들어."

미오리네는 콘솔을 빠르게 조작하며 지시를 내렸다.

후크가 데미 트레이너의 오른팔 부분을 고정하고, 그대로 퍼지하여, 팔 끝의 매니퓰레이터를 총기로 교체한다.

"자동 수정, 문제없음! 가!"

슬레타기가 걸음을 옮기지만, 여기서 다시 버저가 울리고, 어쩔 수 없이 멈춘다.

——시간 초과다. 슬레타 머큐리, 불합격.

"아······"

모처럼 환장 에어리어까지 도달했는데——슬레타는 망연자실해졌다.

"슬레타, 한 번 더 갈게. 스타트 위치로 돌아가."

미오리네가 격려하지만, 그때 외부에서 통신이 들어온다.

"야, 공주님. 몇 번이나 재도전하는 거야. 난 시작도 못하고 있잖아."

성질을 참지 못한 츄츄가 데미 트레이너의 콕피트에서 회선을 연 것이다.

"재도전은 허락된 거잖아. 차분히 순서를 기다려."

미오리네는 아직도 할 생각이다.

하지만, 슬레타의 기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돌아가고, 싶어요."

작은 목소리로, 힘이 빠진 말이 새어 나온다. 콕피트 안에서 슬레타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슬레타?"

미오리네는 이렇게 약한 슬레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혼자서 학교에 오는 거, 사실은, 엄청 무서웠, 어요. 결투도 하고 싶지 않아요. 눈에 띄고 싶지 않아요······."

헬멧의 바이저에 눈물 방울이 흘러내려 어른거린다. 마치 슬레타의 감정처럼.

"이러면 저, 졸업 못, 해요······!"

슬레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울음소리가 회선을 통해 미오리네에게 전해진다.

"일어서! 슬레타."

미오리네가 강하게 외쳤다.

"학교 만들 거잖아. 기대받고 있잖아! 수성 사람들이 배웅해주고, 부적도 받았다며. 여기서 포기해도 되는 거야!?"

회선은 계속 연결된 채, 츄츄는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슬레타도 미오리네도 망할 스페시언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하지만——

한편 슬레타는 더욱 감정이 격해져서, 울음을 그치려 해도 그치지 못한다. 헬멧의 바이저를 열고 넘치는 눈물을 닦아낸다.

"그치만 저한텐, 무리예요······."
"네가 결정한 일이잖아! 돌아가서 스타트 지점에 서!"
"으흑, 어흑, 어흐으윽······"

미오리네의 엄격함에 밀려, 슬레타는 울면서 데미 트레이너를 조종해 스타트 지점으로 돌아간다.

"아하하하!"

터벅터벅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가는 데미 트레이너를 보며, 스프레이를 뿌린 두 사람이 서로 웃었다.

"홀더님이 꼴사납게."
"촌뜨기는 조용히 구석에 찌그러져·····"

라고 말하고 있는 학생의 얼굴에, 다가가던 츄츄의 주먹이 내려쳐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신음 소리——맞은 학생은 그대로 기절해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의 마음도 짊어지지 않은 놈들이 방해하지 말라고!"

본래 츄츄에게 슬레타는 스페시언으로, 아군은 커녕 적일 뿐이다. 하지만, 슬레타와 미오리네의 대화에서 츄츄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 아군도 적도, 스페시언도 어시언도 상관없다.

"저 바보!"

소란을 본 누노가 서포트 에어리어에서 뛰쳐나왔다.

미오리네도 곧 알아차리고, 슬레타에게 회선을 연결했다.

"멈춰, 슬레타. 아까 그 지구 기숙사 애가 싸우고 있어."
"에?"

슬레타가 퉁퉁 부은 눈으로 바라보니, 츄츄가 상대의 머리채를 잡고 안면을 가격하는 대난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비겁한 짓이나 해대고!"
"어시언은 하층민답게 땅바닥이나 기어다니라고! "
"망할 스페시언이!"
"눈에 거슬린다고!"

서로 때리면서 말다툼하고 있는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누노였다.

"그만해, 츄츄!"
"그, 그만! 그만하세·····아앗!"

이어 데미 트레이너에서 내려온 슬레타가, 주먹다짐하는 둘을 말리려고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나빠, 슬레타가 고개를 돌린 곳에 츄츄와 싸우고 있던 상대에게 맞아버렸다.

"앗······"

슬레타를 때린 학생도 실수한 걸 깨닫고 순간 망설였다.

츄츄는 그 틈을 타서 기합과 함께 일격을 가했다.

"다앗!"



8 입사(入寮)

관제탑에서 슬레타와 츄츄가 드디어 나왔다. 교사들에게 설교를 들으며 치료도 받은 모양인지, 슬레타의 볼에는 보냉(保冷)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미오리네, 니카, 누노는 안뜰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는?"

완전히 질려버린 듯한 미오리네가 물었다.

"아, 그러니까······"

슬레타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불만가득한 츄츄가 대답했다.

"재시험. 참나, 왜 나까지."

츄츄는 그대로 슬레타에게 짜증을 냈다.

"네 탓이잖아!"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니카는 한껏 기지개를 켜며,
"그래도, 오랜만에 속 시원했어~"
"에?"

누노는 니카의 위험한 발언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니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저기, 슬레타. 괜찮다면 지구 기숙사에 오지 않을래?"

니카가 활짝 웃었다.

"니······니카?"
"니카 언니!"

누노와 츄츄는 니카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지구 기숙사는 지구 출신만 있는 특수한 기숙사다. 지구 기숙사생 전원이, 지구 기숙사에 스페시언이 살게 될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구 기숙사에 들어오려고 하는 스페시언이 한 명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그그그그, 그치만······"

슬레타는 츄츄를 바라봤다. 재시험 전 지구 기숙사에 갔을 때, 츄츄는 특히, 슬레타에게——스페시언인 슬레타에게——적대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츄츄는 ——어느새 스페시언과 싸움을 벌인 지금——슬레타의 태도에 오히려 당황해 했다.

"뭐어!?"

츄츄는 도움을 청하는 듯 니카를 보았다. 니카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스페시언을 지구 기숙사에 들이는 것은 츄츄에게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확실히 니카가 특별히 여기는 것처럼, 슬레타는 다른 스페시언과는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니카의 그 웃는 얼굴에 계속 저항하기는 어려웠다.

츄츄는 슬레타 쪽을 보려 하지 않고,
"······흥! 나는 1학년이지만, 기숙사에서는 선배야."

슬레타가 기숙사의 후배가 되려면, 입사해야 한다는 것을 ——츄츄 나름의 방식으로 슬레타를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 아, 네. 저기······"

슬레타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선 큰 핑크 머리의 ‘선배’의 이름을 아직 모르는 것이다.

니카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이름, 츄츄야."

슬레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호명한다.

"잘, 잘 부탁드려요. ······츄츄, 선배."

떠나려던 츄츄가 돌아봤다.

"목소리가 작다."

츄츄의 말은 퉁명스러웠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어딘가 친근감도 묻어있어, 적어도 슬레타를 지구 기숙사의 일원으로 인정해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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