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유신이 이화를 불렀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돌아와야할 무뚝뚝한 '영감.'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화?"

대답이없자 그는 휠체어를 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저녁준비는 아직이...?"

그는 말을 다 끝마치지 못했다. 주방에는 아무도 없던 것이다. 텅 빈 주방을 보고나서야 유신은 생각해냈다, 이화는 이제 여기 없다는 사실을.
  
단지 시기가 되면 어린것들이 부모를 떠나듯이 이화도 그렇게 떠난 것이다.

이화를 네임리스에 맡긴지 어느덧  3일. 아직 유신에게는 이화가 없는 삶이 낮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의 인생에서 혼자 지낸 시간이  매우 길었음에도, 혼자인 것이 처음이 아님에도 고독한 현재가 매우 낮설게 느껴졌다.
  

유신은 대충 식사를 준비하고 말없이 밥을 먹었다. 아니, 밥을 먹었다는 표현보다는 기계적으로 허기를 달랜다고 말하는 편이 옳으리라. 맛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눈 앞의 식사를 씹어 삼키고 있었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그의 손이 어느샌가 멈추었다.
  
' 그 친화력없는  녀석이 잘지내고 있을까?'



그의 머리속에는 빈말로도 붙임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제자에 대한 걱정들이 스멀스멀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 무뚝뚝하고 엉뚱한 녀석이 엔젠 네 식구들과 매일같이 싸우고 있다면? 텃세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엔젠 그 녀석이 인정 많은 녀석이 아니니까 중재해  줄리도 없을텐데...

유신의 눈이 초점을 잃고, 그의 눈에는 이화가 엔젠 네 식구들에게 구박당하는  모습이 영화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수눈앞의 환영과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들어와 머리를 괴롭히자, 유신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잡생각들을 떨쳐냈다.

'...나도 나이가 먹었나.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만 맴도는군.'

식사를 마친 유신은 검으로 손에 살짝 상처를 냈다. 이윽고 피로 만든 인형을 만들어  식탁 정리를 시켰다.

품에서 상처에 바를 연고를 찾아 뒤적이다가,  '그것'이 손에 잡혀 끼내보는 그.

품에서 나온 것은 오래되어 너덜너덜해진 연고 하나. 이미 내용물은 다 쓰고 없는 빈 껍데기다.

유신은 그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손에 놓인 빈 연고 껍데기가 유신을 과거의 그날로 끌고갔다.


이화를 거두고 몇 개월이었을 때였지. 용돈을  쥐어주니 한가득 사온 먹을거 중에 유일하게 못 먹던것이  바로 이 연고 하나 였어.

"영감. 이거 받아."

배려라곤 쌀톨만큼도 없이 휙 던져주는 그 이화 꼬맹이  녀석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 뭐냐? 평소 같으면 너 먹을  것만  사오더니?"

다리에 떨어진 상처 연고에 뭐신긴가 싶었었지.
  
"영감이 기프트 쓰다가 과다출혈로 쓰러지면, 난 누구에게 배우라고?"
걱정하는건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녀석다운 답변이었다.
  
"이 녀석이, 누굴 뭘로 보고?  내가 쓰러질 정도로 약해보이더냐?"
이화의 머리를 강하게 쥐어 박으며 그땐 그렇게 말했지. 순간 녀석이 배려심이라도 생길줄  알았는데  실망했던것이 아직도 기억나는군.

그래도 이화가 처음으로 사준 것이기에, 내용물을 다 썼을때 유신은 차마 그걸 버리지 못했다.  이화가 버리려고 했던것도 막고.
이 너덜너덜한 것을 지금은 반쯤 부적 삼아서 매일 같이 품에 넣고 다니는 것이었다.

다시 그날의 연고를  품에 조심히 넣으며 유신은 그때가 그리워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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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에서  유신과 어릴적 이화의 일상물 에피소드 나오면 좋겠다.   싶어서  써봄
오타좀 많은건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