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들의 술자리는 일종의 캐릭터 역할극이다.

'E'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한편 본인PR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술자리에서는 각자에 대한 정보가 넘쳐 흐르게 된다.

그들은 넘쳐흐르는 이 정보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인간관계는 어땠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말투는 어떤지, 인상착의는 어떤지..

각 종 정보를 토대로 일종의 캐릭터성을 부여한다.

그 캐릭터를 누가 부여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캐릭터성은 유머소재로 적합하게 가공이 되어서

과장되거나, 허무맹랑하거나, 어이없거나, 우스꽝스럽다.

아이엠그라운드 게임의 "나는 @@"처럼 보이지 않는 꼬리표를 다는 것이다.

이 캐릭터성은 그 사람이 가진 개성에 따라 여러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캐릭터성를 가지고 노는 법은 다양하다.

완전히 다른 대화주제에 갑자기 캐릭터와 연결짓거나,

사소한 행동에 캐릭터 의미를 부여하거나,

캐릭터의 컨셉에 맞게 과장되게 행동하거나..

재미있는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

캐릭터성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사람이

이 술자리의 주인공인 것이다.

이것이 'E'들의 즐거움이다.

3)

이 술자리라는 이름을 가진 역할놀이는 규칙이 있으며 반드시 준수해야한다.

그 규칙이란 "캐릭터의 설정을 깨트리지 않는 것"이다.

잘 가지고 놀고 있는 캐릭터 설정을 무시하거나, 잘못이해하거나, 멋대로 해석해서

적절하지 않은(공감대에서 벗어난) 발언을 하게 된다면 규칙위반이다.

규칙을 어긴 벌칙으로는 침묵(갑분싸), 어색한 웃음, 직·간접적인 공격적 발언 등이 있다.

이 벌칙을 받으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부끄러움은 사회적으로 배척당할 위험이 있을 때 느끼도록 진화된 감정이라고 한다.)

이 벌칙을 받기 싫다면 필요한 행동은 단 한가지다.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것.

즉, 'E'처럼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I'가 'E'들과 함께하는 술자리가 어려운 건 당연한 것이다.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담)

술자리가 끝나면 이 캐릭터성은 모두 휘발되고 그들에겐 '즐거웠던 감정'과 '약간의 숙취'만이 남는다.

이미 재미를 다 봐서 썩어버린 캐릭터를 다시 꺼내는 것도 썩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