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일정한 요구 속에서 2022년 12월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직회부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그다음 해 3월 윤석열 정권의 최초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고, 그 이후부터 민주당 주도로 개정안이 다시 한번 통과, 또다시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개정안이 법률적으로 여러 차례 검토되고, 여론적으로 검증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가 축적되면서 양곡관리법에 관한 수많은 논의가 재생산되고 있다.
최초 의결 후 국회 통과와 거부권 행사, 그리고 다시 단독 의결 후 같은 양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개정안이 여러 번 수정되면서 농민의 개정안과 농민의 이해 일반 간 대립이 심화하였다. 첫 번째 중재안과 관련하여 한국농정신문 2023년 3월 24일자 기사 「농민의길 “현행법보다 후퇴한 개정안 절대 반대” …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촉구」에 따르면, 8개 농민단체 연합인 농민의길은 여의도 기자회견을 통해 “협치 운운하며 퇴행적 수정안 종용하는 김진표 국회의장”, “누더기 법안 처리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의무 조항 있는 한 합의 없다는 국민의힘”, 그리고 “거부권 운운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했다. 국민의힘과 이 정당이 배출한 자에 관해서는 굳이 새삼스럽게 다룰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개정안의 내용이 농민의 이해와 어떻게 하여 충돌되고 있는가일 것이다. 문제가 되는 개정안은 1차 중재안과 2차 중재안으로, 1차 중재안은 의무 매입 조건이 하락(쌀 초과 생산량 3~5%, 쌀 가격 5~8% 하락 시)하였고, 2차 중재안은 그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개정안과 농민 이해의 일치 문제는 향후 제 민주-진보 세력 내부의 역관계와 농업 문제가 국내 민족경제의 발전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개정안 논의가 시작된 2022년 중순 이후부터 개정안을 둘러싼 여러 ‘경제’ 기자들의 사설과 정치적 견해가 담겨 있는 극우적 기사문이 게재되기 시작하였다. 한 기사를 검토함으로써 개정안의 ‘비판’의 대략적인 ‘취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매일경제 2022년 9월 24일자 사설 「양곡관리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유」에서 정혁훈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전체 농가 중 쌀농사를 짓는 농가가 여전히 50%, 농업소득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도 34%에 달합니다. 생산액도 쌀이 8조4000억원으로 굳건한 1위입니다. [...] 그런데 쌀은 결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심각한 공급과잉입니다. 1998년부터 2020년까지 23년간 쌀 공급과잉이 없었던 해는 딱 두 차례뿐입니다. 공급과잉에 따른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는 '시장격리' 제도를 이용합니다. 남아도는 쌀을 시중에서 사들여 창고에 보관했다가 나중에 처분하는 방식입니다. [...] 올해만 해도 정부는 8500억원을 들여 37만t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했습니다. [...] 쌀시장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적정한 수요에 맞게 공급을 조절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러자면 쌀 생산 면적을 줄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최근 2년간 예산당국의 비협조와 농정당국의 안일함으로 실시되지 않았던 생산조정제를 다시 도입해 쌀 대신 다른 작물 재배를 늘리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이 중요합니다.”
쌀은 이미 과잉 생산되고 있으므로 애당초 수익성이 없고, 따라서 생산조정제를 통한 다른 작물의 재배로 유인하지 않는 한 예산은 무의미하게 소모되고 농업 경쟁력은 지속 약화하여 오히려 농업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이다. 수급제와 농업 사업비 사이의 연관성, 그리고 국내 농업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에 관한 인식을 제쳐두면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쌀 수급 비축 규모가 계속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쌀 소비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만 천착하면 이러한 견해를 제출하기 십상이다.
생산조정제에서 근본 문제는 재투자를 위한 농업 사업비의 규모, 재배 작물 전환에서 지원 사업비의 규모, 전환된 작물에 대한 판로 확보 정도에 있다. 생산조정제를 둘러싼 대립은 이미 농업계 내부에서 화두가 되었던 문제였으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요구되는 그 구체적인 사정은 바로 이러한 갈등의 내부에서 힘을 키워왔다. 한국농정신문 2020년 5월 9일자 기사 「20년 전 제기했던 ‘쌀 생산조정제’, 지금과 판박이」는 생산조정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허겁지겁 채운 생산조절 면적들은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재배 환경의 문제로 수확조차 하지 못하거나 판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고스란히 농민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농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수급조절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반강제적’ 쌀 생산조정제는 그 2019년에도 똑같은 면적을 목표로 고스란히 시행됐는데, 이번에는 전국 평균 60%의 신청률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긴 했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업의 신청자격에 생산조정제 참여를 조건으로 건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는 농민들이 많았다. 갑작스레 식량위기론이 급부상한 올해 역시 생산조정제가 시행되는데, 그나마 목표 면적은 2만ha로 줄어든 상황이다.”
이것이 바로 “예산당국의 비협조와 농정당국의 안일함”이라는 현상에 내재해 있던 본질적 관계였다. 특정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그 재배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특수한 노동 수단이 필요하며, 대체로 사업 시작 전에 예상되는 작물에 대한 상대적 우등지의 선별이 이루어지는 관계로 작물 전환은 재배 환경의 문제를 제할 수 없다. 특정 작물로의 전환 비용이 결정되는 법칙과 그 비용의 증감은 사업 진행에 있어 이 영역 내부에서 머무는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사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게다가 생산조정제에서 지원하는 작물 전환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논 티작물을 재배할 경우 정부가 논 1㏊당 한 해 평균 340만 원의 보조금을 2년 간 한시적으로 지급)하며, 인상률도 저조(2002년과 비교했을 때 평균 40만 원 차이)한데,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농림 예산의 비율적 감소 속에서 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10년 이상 제자리걸음인 농가 순소득의 실태와 맞물린 결과 생산조정제의 시행에서 농민의 자발적인 참여는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되었으며, 실적과 관련하여 작물 전환 규모를 늘리고자 하는 농정당국의 강압적인 시행 조치는 농민의 경제적 이해에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전히 농가는 쌀농사에 매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쌀 격리는 농업 사업비의 보전에 직결되며, 격리를 위한 수급제의 규모가 축소되거나 폐지된다면, 그렇게 하여 농민이 자기 사업의 비용를 ‘충분히’ 내올 수 없다면 결국 농사업체는 파산할 것이고 이로 인해 국내 농업 기반은 더욱 황폐화할 것이다.
극우들의 선전과 달리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생산량 조정을 위한 논 타작물 재배 및 전략작물 전환 지원사업의 관련 내용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농림 예산의 규모이다. 1999년 농림 예산은 전체 예산 대비 약 8.998%였으며, 2022년에 이르러서는 약 2.473%, 3분의 1 규모 이하로 축소하였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수많은 농민 조직은 전체 예산에서 농림 예산의 비중을 10%까지 회복해야 함을 요구하였으나, 예산의 편성에서 이러한 요구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 꾸준히 감소해 왔다. 만약 일국적인 경제 영역에서 한 해를 넘길 때마다 증가하는 인플레이션율, 더 구체적으로는 한 해에 인플레이션에 의해 증가하는 농업 사업비의 증가를 상쇄할 수 있을 정도의 농민 사업 지원 예산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개개 농민에게 사회적 비용을 크게 전가하는 농업 시장 개방 정책을 철폐하지 않는다면, 국내 농업의 황폐화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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