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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백웅교 41화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9 20:59:05
조회 409 추천 28 댓글 11
														

십이율주의 거절에 나는 침묵했다. 왜냐하면 십이율주라면 저렇게 대답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십이율주는 백련교주, 제갈유룡과도 달라.'


백련교, 황궁, 십이율 세 명의 수장.

이 셋은 종말을 알고 대비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십이율주만은 다른 둘과는 사정이 달랐다. 왜냐하면 종말에 미리 대비하고 있는 둘과는 다르게 십이율주는 말 그대로 말세의 시대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마도사가 인신공양을 해서 이족이나 마왕, 옛 지배자를 불러내는 것이 아니다. 말세의 시대에는 그런 존재가 인신공양을 하지 않아도 지상에 우글우글 거리는 것이다. 나는 외우주로 넘어가며 진정한 의미로 말세의 뜻을 알 수 있었다. 500년 후의 대웅제국과도 비교할 수 없다. 대웅제국의 경우에는 내 기억을 받은 동료들이 대기하고 있었기에 어찌 최악까지는 아니었지만, 외우주의 말세는 그런 것조차도 없으니 참혹한 수준인 것이다.

백련교주는 사대신기, 제갈유룡은 나와 동맹을 맺고 본인의 계획을 실천했기에 깔끔하게 나한테 합류할 수 있었지만, 십이율주는 아직 동맹의 조건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어서 저럴 것 같았다. 설령 내가 전생자라는 것을 알린다고 해도.

하지만 약간 한탄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교를 설립하고 엉망이 된 현재의 인간계의 맥을 잇게 만들고 있어. 이 정도로도 내 동료가 되기에는 미덥지 못하다는 소리냐?"

"그딴 건 나일라토프가 우리 세계에서도 했던 거야."

"나는 그와 달라."

"그럴지도 모르지. 아닐지도 모르고."


어느샌가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십이율주가 말했다.


"동맹이라면 받겠다, 백웅. 하지만 네 동료는 될 수 없다."

"뭔 차이야?"

"나는 전생자와 얽혀서 이것저것 손해만 보는 건 사양이라는 소리다. 서로 이해의 협력까지는 받겠지만, 그 이상은 이쪽에서 거절이다."

"똥고집하고는, 이 정도면 솔직히 어떤 식으로든 아군으로 들어오는게 이득 아니냐?"

"큭큭, 알고 있을 텐데? 그런 말 한두 마디로 끝날 거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해. 나랑 그렇게 얽혔다면 이 정도는 알 텐데?"

"·····그렇기는 하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직도 십이율주는 여전히 내 동료가 될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내 제안을 머리에 남겨둬라, 이환웅."

"하은천이다. 그 이름은 버렸어."

"···그래, 하은천."


내가 말을 이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인간들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나는 전생을 하면서 그걸 몇 번이나 재확인할 수 있었어."


맨 처음에 그렇게 치고박고 황궁과 백련교였지만, 내 전생 동료가 되면서 우리들의 세력은 한참이나 월등해졌다. 대웅제국 시절에 그것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었고, 이렇게 서로 못 믿어서 싸우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주, 주군!"

"갑자기 왜 그래?"

"큰일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이 미묘한 공기로 대치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 있던 삼사가 십이율주를 강하게 불렀다.


"천사들이 습격했습니다."

"그 정도는 늘 있었잖아. 전생자와 비교하면 하찮은 일이야."

"····본래라면 그렇겠지만 이번에는 수준이 다릅니다. 낮게 잡아도 상위 신격으로 보입니다."

"하?"


십이율주가 인상을 찌푸렸고, 나 또한 얼굴을 찌푸렸다. 갑자기 동방에 상위 신격이 습격했다고? 아무리 지금 인계가 개판이라지만 상위 신격 정도의 존재가 쳐들어 오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그것을 십이율주도 잘 아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군."

"돕도록 하지."

"그래주면 이쪽이야 고맙지."


능청스럽게 내 도움을 받기로 정한 십이율주.

나는 삼사가 연 차원문을 통해서 곧바로 사건의 중심으로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동방의 고수들과 천계의 투선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도륙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있었군요, 데미우르고스여.>


그리고 그들은 도륙한 것으로 보이는 한 천사가 나를 내려다 보며 그렇게 말했다. 천사의 모습에 내가 재차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라파엘."

<오랜만, 이라고 해야할까요?>


나타난 것은 라파엘! 과거 내가 세피로트의 시련에서 만난 대천사 중 하나였다. 당시에도 보통 신격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예감이 맞다는 듯 녀석들은 동방의 고수들과 투선들을 가볍게 도륙낸 것이다. 십이율주가 이런 내 중얼거림에 물었다.


"아는 사이야?"

"지나가듯 만난 사이야. 수련 도중이랄까."


내 시선이 라파엘한테 쏘아졌다.


"이건 도대체 무슨 개짓이냐. 너희들은 왜 외우주를 건너면서 여기에 온 거야. 그리고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우문이군요.>

"뭐?"


라파엘이 말했다.


<아이온에 도달하고자 하는 건 누구나 같은 것. 본래 저희들은 그 자격을 최초부터 박탈당했지만, 지금은 무슨 영문인지 외신 주시자가 자리를 비우며 최초로 그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온에 가기 위한 도전을 하겠다는 것이 뭐가 문제죠?>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천사왕께서 당신한테 전언이 있습니다.>

"메타트론이?"

<예.>


그 녀석이 나한테 무슨 전언?


<데미우르고스여. 당신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종말, 혼돈의 신격이 존재하지 않는 저희들의 세상을 드리죠. 그 대신에 천사왕한테 데미우르고스의 자리를 양보해 주셨으면 합니다.>

"뭐야?"

<나쁜 거래는 아닐 텐데요? 당신은 최초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여을 시작했을 터, 저희들의 제안을 받는다면 굳이 그런 귀찮은 짓을 할 필요도 없이 만가 해결됩니다. 그리고 천사왕께서는 아이온에 도전할 자격을 얻게 되고요. 서로한테 좋은 거래 아닙니까?>

"·····."

<당신은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터. 어설픈 기만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예전에 해봤다.

메타트론이 자신들의 창조주를 죽인다면 자신의 세계를 주겠다고, 세피로트의 세상은 어떤 의미에서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세계였으니까. 종말이 존재하지 않고, 혼돈의 신격들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세상. 내가 딱히 별다른 말은 하지 않자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듯 십이율주가 놀랐다.


"그런 우주가 존재한다고?"

<그렇습니다. 저희들의 우주는 그대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죠. 데미우르고스여. 그대가 정말로 인간종을 가엽게 여긴다면 이 거래를 받아들여주시죠.>

"·····."


그리고 십이율주와 내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말했다.


"사기꾼의 냄새가 나는데."

"꺼져."

""······?""


우리들은 서로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를 쳐다봤고, 뭔가 기묘한 공기가 흘렀다. 하지만 이내 그 공기를 무시하며 내가 말했다.


<어째서죠?>

"사실 메타트론한테 너희의 창조주를 죽여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쭉 고민했어.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죽이는 건 내키지 않지만, 너희들의 세계는 그만큼 나한테 매력적으로 느껴졌으니까."

<그렇다면····.>

"그런데 말이지."


내가 팔짱을 끼고 이어서 말했다.


"왜 너희들은 그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데미우르고스, 그러니까 전생자가 되려는 건데? 이상하잖아. 우리들이 이 자리에 얽매이는 건 근본적으로 종말과 혼돈의 신격 때문이야. 그런데 너희는 종말도 존재하지 않고 혼돈의 신격도 없는 이상적인 세계잖아. 그 모든 것을 버리면서 전생자의 자리를 원하다니, 완전히 주객이 전도됐어. 말도 안 된다고."

<······그것까지 말해줄 의리는 없습니다만?>

"그래, 맞아. 그럴 의리도 필요도 없지. 그런데 내가 전생자 자리를 노리는 녀석들이랑 하도 많이 협상을 해봐서 아는 게 있어."


싸늘하게 라파엘을 보며 말을 이었다.


"보통 이런 이쪽의 사정에 맞춰주거나 주객이 전도된 거래는 다 씹새끼들의 뻥이나 거짓말이더라고. 아니면 내가 모르는 내막이 있어서 손해만 보는 거래던가."

"그 말이 맞네."


십이율주가 큭큭 웃었다.


"그 아이온이라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생자의 자리를 원하는 것을 본다면 승천이라고 보면 되려나? 아니면 그에 준하는 뭔가? 그런데 단순히 더 위를 노리기 위해서 그 험난한 길을 고르는 건 말도 안 되지. 스릴를 즐겨도 정도가 있는 거니까. 쓰레기를 적당히 화려하게 만들어 다이아몬드랑 바꾸자는 거랑 뭐가 달라?"

<그렇군요. 거절입니까?>

"내가 너희들의 감언이설에 속을 정도로 어설퍼 보이냐? 꺼져!"

<···이렇게 되는 건 본의가 아닙니다만.>


이내 라파엘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면서 신력을 전개했다.


<그렇다면 데미우르고스여. 어디 그 힘을 천사왕을 만나기 전에 저한테 보여보십시요!>

"오냐! 그렇게 보여주고 싶으면 보여주마!"


뇌혼

뇌신권


나는 뇌혼을 전개하면서 곧바로 뇌신권을 갈겼다. 이미 내 속도는 뇌신지혼조차도 넘어선 초월의 속도. 인식조차도 불가능한 속도로 라파엘한테 접근해서 녀석의 안면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그러자 라파엘의 방어막이 펼쳐지며 뇌신권을 막는다. 물론, 라파엘의 방어막도 순식간에 박살났지만, 나는 손 끝의 감각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뭐야. 왜 신력이 무효화가 안 돼."


나는 그것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세계수의 신력 무효화가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격들을 상대하며 처음 있는 일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라파엘이 나를 비웃었다.


<얕보였군요. 당신은 그 힘으로 이 우주의 신격들한테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한 모양인데, 잊었습니까? 그 힘은 본디 저희 우주의 것. 저희한테까지 그 힘이 절대적으로 통용될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까?>

"그러면 설마···."

<저희들한테 세계수의 신력 무효화는 통하지 않습니다.>

"·····."


저만한 신격이 어떻게 동방까지 왔는지 의아했는데, 그런 이유였나.

기본적으로 동방은 세계수 덕분에 어설픈 지배자들도 나서기 힘들다. 하물며 이 행성에는 현재 나를 포함한 세계수가 세 개나 존재하지 않는가. 일반적인 혼돈의 신격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만약 그것이 당신의 전력이라면 당신은 천사왕은 물론, 저조차도 이길 수 없을 겁니다, 데미우르고스여.>


라파엘이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좀 오만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태까지 신력 무효화로 어떤 신격이든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으니까. 심지어는 삼황오제조차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고 내가 세계수의 신력 무효화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라파엘의 말대로 내가 세계수의 능력에만 의존했다면 라파엘 정도의 신격한테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뇌혼으로 만든 뇌검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딱 좋네."
<무슨 뜻이죠.>

"안 그래도 뇌혼을 쓸만한 적당한 상대가 없었는데."

나는 씨익 웃었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뇌혼이 너무 강력해서 제대로 전개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못 썼다가 행성이라도 날아가면 그만한 민폐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뇌혼을 쓰기 매우 적당한 상대가 눈 앞에 있다.


"내 연습 상대가 되어줘야겠다, 라파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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