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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가장 '인간적인' 판타지 - <슈뢰딩거의 고양희>

Beatrix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27 09:07:56
조회 1293 추천 26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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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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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 <슈뢰딩거의 고양희>, 나무야미안해, 2018)


<슈뢰딩거의 고양희>는 반-바지 작가의 SF 단편집이다. 제목에서 정체성이 드러난다. 작가는 스스로를 ‘SF 비슷한’ 만화를 그린다고 소개한다. 읽어 보니 이해된다. 과학적 원칙을 엄격히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헛웃음이 나온다. 소재를 편견 없이 선택하고 ‘실험’에 나서기 때문이다. 한두 페이지 정도 되는 엽편이 대부분인지라 플롯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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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요원의 조기은퇴 후 생활>)


제약에서 벗어나서인지 이야기는 정갈하다. 초기 영화처럼 ‘광경(Vue)’을 컷으로 나타낸 듯하다. 찰나에 담긴 특별함이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comics&no=332240&search_head=70&page=1

<슈뢰딩거의 고양희>와 ‘다세계 해석’


광경은 모여서 어떤 의미를 만들고 있을까. 윗글에서는 ‘다세계 해석’을 알아보았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 관심이 있다면 참고하기 바란다. 설명에서 수학은 덜어냈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흔한 주인공과는 다르다. 후자는 ‘보통 그러기로 되어있는’ 조건들이 있지 않나. 여러 갈등에 휘말려야 하고, 억압에 대항할 수 있도록 의지도 가지고 있고… (사실,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이야기를 장기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을 작은 오류 정도로 넘긴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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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물이지만 주인공은 안 할래>)


<슈뢰딩거의 고양희>에서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다. 비범한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절대다수는 아니다. 우리가 <블레이드 러너> 같은 디스토피아에서 태어난다면 어떨까. 비밀을 밝히려고 분투할까?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려 고뇌할까?


그럴 리가. 열의 아홉, 솔직히 거진 열은 받아들이고 살 거다. 그래서일까, 평범한 삶에서 울림이 다가온다. 물론 ‘뻗댈’ 용기를 가졌으니 주인공을 좋아하는 것이지만… 가끔은 스포트라이트 바깥쪽을 봐도 상관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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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의 딸들 2>)


<절대자의 딸들> 속 소녀들을 돌이켜보고 싶다. 둘은 ‘절대자’ 아버지의 자녀다. 아버지는 ‘논리적으로 자살’했다. 여전히 딸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다. 먼 우주를 보고, 마음을 읽을 수 있어도 ‘이상한 애’로 낙인 찍히거나 뻔한 수에도 마지못해 당하기 일쑤다. 절대자의 딸은 소시민으로 전락한다.


시점은 추락한 이들을 표현한다. <절대자의 딸들> 연작에서 화면은 대부분 단편과 다르게 구성된다. 세 컷은 결합해 하나의 프레임을 이룬다. 카메라는 (있다 치면) 측면에서 피사체를 바라보며 자연스러운 인상을 준다. 얼굴은 컷을 크게 차지하고 사물은 프레임 안팎에 널브러져 있다.


앞에서 나열한 장치들은 모두 ‘열린’ 프레이밍(Open Framing)을 형성한다. 독자는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절대자의 딸도 우리랑 별반 다를 바 없구나,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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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절대자의 딸들>은 ‘타블로’(Tableau)와 대조해 볼 만 하다. 영화에서 타블로 쇼트는 정면성을 강조하고 경직된 느낌도 준다. 예시에서 웨스 앤더슨은 대칭을 활용하며 인물을 정중앙에 놓았다.(부담 없이 할만한 선택은 아니다.) 과감한 구성은 작위성을 강화한다. 인상도 강렬하게 남긴다. 화면 안에서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타블로는 감독이 컨트롤한다. 시점은 단 하나다.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그것과 같다. 어떤 행위를 생동감 있게 관찰하기엔 정적이다. 전시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구도이기도 하다. 타블로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굳이 20세기 초에 재현한 이유와도 무관치 않다.


‘절대자의 아들’과 ‘절대자의 딸들’은 시점에서부터 꽤 차이가 있다. 타블로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우상이 되지만, 내밀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나면 우리도 가진 면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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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공간의 님프> 중에서)


‘아이러니’도 <슈뢰딩거의 고양희>에서 나타난다. <아공간의 님프>는 SF가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린 자학도 있었다. ‘그럴듯한 학자 이름 두 개 대쉬로 이어 붙여 놓은 전문용어’라니.


그럴듯한 용어를 만들고, 이론을 빌려 논리를 신빙성 있어 보이게 짜맞추고.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SF(비슷한) 단편집’에 마법, 이세계 등이 (이것도 SF라고 주장하면 사문난적이 될 수 있음에도) 들어간 이유도 비슷한 생각이리라. 변명을 어떻게 정당화하는 지만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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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주문도 아닌데>)


하지만, 진짜 그것만 다를까? 아니다. SF는 인간에서 시작해 인간으로 끝난다. 과학의 이름으로. 어떤 마법사가 금단의 마법을 만들었다고 해보자. 어떤 과학자가 윤리적으로 문제시 되는 유전공학 기술을 개발했다고도 생각해 보자. 우리는 후자를 보며 깊이 생각할 것이다. ‘하지 말라는 데 굳이 꼭 하는 애가 있어요’에서 감상이 머무를 리 없다.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벌어진다면? 내가 모르거나 신경쓰지 않았을 뿐, 이미 그렇다면? SF의 알레고리는 더 날카롭다.



과학적 논리는 단순히 ‘그럴듯한’ 이야기를 직조하는 도구가 아니다. 저 먼 세상과 지구를 잇는 나들목이다. 그 덕에,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로 귀결된다. 주제는 오롯이 인류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용이 됐든, 님프가 됐든, 다른 누구에게도 인과를 돌리지 못한다. 바로 그게 SF가 매력적인 이유라 믿는다.


가장 ‘인간적인 판타지’니까.


<슈뢰딩거의 고양희>도 마찬가지다. 한참 떨어진 세상과도 공감할 수 있다. 과학은 변치않기 때문이다. 낯선 부분을 치우고 나면 크게 다를 바 없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중심에서 벗어났기에 우리와는 더 가깝기도 하다. 빛나지 않아도, 특별한 순간을 함께 만끽할 수 있다. 비범해 보여도 달라지진 않는다. '절대자의 딸들'도 고민 따윈 없어 보이지 않았나. 주의 깊게 바라보기 전에는 몰랐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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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말투는 자동응답기도 따라할 수 있어>)


어떤 판타지는 영웅을 내세운다. 누군가는 거기서 위안을 얻는다. 한편, <슈뢰딩거의 고양희>의 순간들은 말을 건넨다.


“뭐 어때. 주인공이 아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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