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지낼 때 여성이 힘드니까" 정도의 이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군대 박탈감" 운운이나 하는 겁니다.
"여성할당제"가 요구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지금까지도 남성에 비해 여성을 뽑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고위직 임원 여성 비율 정도로도 증명하기 충분합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사노동 임금 지급"등도 마찬가지구요.
무엇이 원인일까요? "여성이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아닙니다. "남성이 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아니오. "여성을 고용하는 것은 남성을 고용하는 것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인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여성을 고용한다는 것"의 출발을 알아야 합니다.
농경의 정착 이래, 모권 사회는 점차 지양되고 땅과 노예에 근거한 문명이 성립됩니다. 전쟁이나 농업에 투입하기에 남성이 더욱 적합하였고, 재산 상속 등의 분야에서 점차 부계 승계가 보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엥겔스는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양상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것입니다.
여성의 지위는 마치 노예와도 같았고, 지참금에 팔려가는 일은 여전합니다. 재생산의 역할 역시 지금까지도 떠안고 있는데, 가사 노동과 양육, 때로는 실직한 배우자의 연명 수단으로도 활용된 바 있습니다.
농삿일을 거들거나 삯바느질을 하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공업에 종사한다든가 하는 "임금노동"의 장으로 여성이 투입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산업혁명과 함께 불변자본이 활용되며 자본주의가 태동하였고, 자본가들은 불안정 상태로 내몰린 노동자로부터 최대한의 이윤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선사시대에서는 오히려 여성이 근소한 우위에 있었고, 농경 사회에선 남성이 능률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상당한 우위에 있었으나, 기계만 돌아가면 되는 상황에서 "가정을 부양해야만 하는 (성 역할을 부여받았던)" 남성 노동자는 되려 임금만 높았을 뿐이었죠. 그러므로 최대 이윤의 달성을 위해 남성을 실업 상태로 만들고, 가정에서 여성과 아이들을 끄집어 내어 성인 남성도 견디기 힘든 작업장에 투입한 것입니다.
현대 대한민국에서의 여성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도 저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남성 배우자의 임금으로 생활이 어려우니, 보험 설계사나 미화원, 마트 캐셔와 같은 직종으로 '주부'들이 뛰어든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허들이 낮은 만큼 저임금이고, 고되죠. ("오히려 남성이 더 열악한 경우도 있지 않느냐? 맞벌이라고 여성이 무조건 저임금이냐?"하고 물으신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고도화로 인한 실업과 가치 저하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니면 그 여성이 자본으로 하여금 대체하기 힘든 위치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 가능한 것은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가치가 내려갑니다. 그래서 문과가 취업을 못해요.)
그러나 이건 '경제적'이지 못합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여성을 통제하는 것이 유리했지만, 자본의 이익에는 오히려 여성이 그 억압에서 '어느정도만' 풀려나는 것이 더욱 적합합니다. '완전히' 풀려난다면 재생산 과정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죠.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란 곧 노동자 예비군의 증가입니다. 여성이 노동한다는 것은 남성의 노동을 특별대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 일 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대우를 유지하거나 더 줄일 수 있고, 그만큼 자본이 얻는 잉여가치는 늘어납니다.
여권 운동은 물론 그들의 노력도 주요하지만, 자본주의의 전개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부르주아 페미니즘'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사회 진출"과 "부르주아 여성의 사회 진출"은 너무나도 다르니까요. 삼성가 이부진의 사장 취임과 50대 이선자씨의 경산 압량읍 육가공공장 취직은 다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교차성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등이 나왔으며 자세한 사항은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을 사서 읽어보십쇼.)
아무튼, '여성할당제'는 명백히 부르주아 페미니즘의 산물이며, 부르주아 여성에 의해 착취당하건 부르주아 남성에 의해 착취당하건 차이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시리아의 민간인이 여성 파일럿에게 폭격당하건 남성 미 공군 파일럿에게 폭격당하건 그것이 온당하지 않은 건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맥락을 보아야 합니다. 여성 투표권이 얻어진다고 해서 그 선거가 '민주주의적'인 것은 아니나, 최소한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을 때보다는 '민주적'이고 긍정적입니다. 서프러제트는 차티스트와 마찬가지로, 권력에서 배제되던 이들에게 형식상으로나마 권리를 "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물론 이것으로는 택도 없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존재 가치는 충분합니다. 말씀하신 여성가족부가 이에 부합합니다. 기만적인 "복지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기구라고는 하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도 지원 사업을 하구요.
한편 남한에서 적령기의 남성을 징병하는 것은 남한이 전선(戦線)에 있기 때문입니다. 미 제국주의의 초병으로써, 남한에 매여있는 전략적·경제적·지정학적 가치를 위해 경계 근무를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렇게 단순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북에 대한 적대적 행동은 이미 너무나도 남한 사회에 체화되어, 때로는 부르주아 정치인의 구원자이자 '정통성 증명'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 역시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기 위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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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젠더 갈등"은 이러한 맥락에서, 즉 자본주의의 고도화로 인한 모순이 격화되는 과정 도중, 그 피해의 원인이 아닌 다른 피해자를 지목하는 것으로써 일시적으로 무마하려는 것으로써, 배타적 집단에 대한 폭압적 약탈을 통해 내부적 갈등을 묻어버리려던 파시즘과도 그 결이 유사합니다. 그 유사성은 결국 이 둘이 동일하게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기인하였기 때문에 나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그 근본적 모순인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해소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대화와 타협"은 상황을 고착화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회 문제에 대해서, 그 책임을 체제가 아닌 다른 모든 것에 돌리는 작태를 비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방법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답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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