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퍼옴)
이 책은 아나키즘 스펙트럼의 두 끝을 ‘공산주의(코뮌주의)적 아나키즘’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본다. 아나키즘 안에 코뮌주의와 개인주의가 두 개의 본질처럼 들어 있는 까닭에 두 이념의 방향에 따라 아나키즘의 색깔이 확연히 나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더욱 의외인 것은 지은이가 두 극단의 사상적 뿌리를 보여주는 인물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니체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는 1870년대에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아나키즘의 대부 바쿠닌을 탄핵했으며, 니체는 당시의 사회주의 조류를 ‘해로운 환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도 지은이가 두 사람을 아나키즘의 원류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들이 아나키즘의 철학적·사상적 기초를 놓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년 마르크스의 인간과 세계 이해, 곧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변화할 수밖에 없으며, 특히 인간이 세계를 바꿔나감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아나키즘의 철학적 바탕을 이룬다. 니체의 ‘권력의지’, 곧 자기실현 충동은 “아나키즘 중에서도 개인주의적 흐름에 철학적 표현을 풍부히 제공했다.” 그가 <차라투스트라>에서 한 말은 암시적이다. “삶이 제 스스로 나에게 이런 비밀을 고백했다. ‘보라, 나는 거듭해서 삶 자체를 극복해야 하는 존재다.’” 니체에게 개인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고 극복하는 존재다. 지은이에 따르면, 마르크스와 니체가 서로 대립하는 면이 있지만 동시에 공유하는 면도 있으며, 둘 사이의 긴장은 “서로 강조점을 달리하는 아나키즘 내부의 노선들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아나키즘은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고 있지만, 아나키스트들은 이 번역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나키즘이 모든 형태의 정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이 거부하는 것은 중앙집권적 정부,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억압하는 권위이다. 그런 점에서, 아나키즘은 레닌주의적 마르크스주의, 곧 국가라는 권력기구를 당연시하고 반자본주의 혁명투쟁의 무기로 중앙집권적 당을 앞세우는 데에 반대한다.
지은이는 아나키즘이 지닌 미덕으로 ‘긴장’을 강조한다. “아나키즘은 하나의 긴장이다. …존재와 생성 사이에, 절망과 희망 사이에, 고독과 연대 사이에, 코뮌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에, 마르크스와 니체 사이에, 폭력을 거부하는 것과 평화주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이다. …아나키스트들은 그런 긴장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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