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요리 대회 보고 딱 떠올랐던 음식이 김밥이었다

허나 자취생이라 김밥 속재료로 넣을 만한 애들이 없어서 포기하려고 했다

뭐 마늘이나 양파나 이런 애들은 있는데

시금치나 우엉이나 이런 풀떼기들이 없다

심지어 단무지도 없다

그런데 오늘 김밥이 땡겨서 김밥집을 찾아갔는데 망했는지 문 닫았더라

너무 먹고싶어서 집에 있는 재료들로라도 어떻게 만들어 봤다

재료

고추참치 - 좌우좌가 좋아하는 고추참치, 일반 참치캔은 1100원에 6개인데 저건 8000원에 3개다

김 - 짤려서 안 보이는데 파래김임. 자취생 집에는 김밥용 김이 없다

햄 - 속재료 1 긴 햄이 없어서 슬라이스 햄을 썼다

소시지 - 속재료 2

계란 - 속재료 3 지단을 만들자

참기름 - 밥에 넣음

그 외 다수의 비닐장갑

김밥 두 줄 분량임.

화면이 흔들렸네

뚜껑을 따면 저렇게 기름진 참치들을 만난다

안에 박힌 알갱이는 파인애플인데 웬만하면 빼라

하와이안 김밥을 먹고 싶은 사람만 넣어라

아무튼 두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이놈들의 물기를 쫙 빼서 버려라

그리고 밥 위에 올리면

형태와 색상, 습기를 머금은 모양이 영락없는 똥이다

눈을 감고 비벼주자

그럼 보리나 쳐먹을 개밥이 나타나는데

그래도 똥보다는 개밥이 낫잖아?

얘네는 일단 치워두고

팬에 기름을 두른 뒤 중약불에 올린다

사진에는 1이라 적혀 있지만 최대가 3단계라 저게 중약불이다

기름은 저것보다 조금 적게 넣어라

햄과 소시지를 적당히 잘라서 익히고

이제 계란인데

지단을 만드려면 노른자만 분리해야 한다

근데 탄생과 동시에 하나가 죽었다

그래서 버렸다

근데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중에 계란말이나 하면 되는데 왜 버렸지

2트는 깔끔하게 성공했다

나도 랄부가 저만큼 컸으면 좋겠다

이제 김을 깔고 고추참치참기름밥을 올려주자

파래김이라 태생부터 몸에 구녕이 있으니

꾹꾹 눌러 찐득한 밥으로 구녕을 채워주자

재료를 올리면 저렇게 된다

그런데 사진으로 봐도 지름지고 괴상하게 생겨가지고는

한 입 베어물자마자 식욕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어디 단무지를 대신할 피클이나 치킨무라도 없을까?

놀랍게도 단무지가 있었다

저 코딱지만해서 구석에 쳐박힌 놈이 단무지다

이틀 전에 회를 포장해와서 먹었는데

밑반찬류에 왜 단무지가 있나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횟집 사장님의 인심이었다

저 빈 통은 번데기가 있었는데

ㅈ같아서 저거 들고 집에 오자마자 버렸음

국물에서도 ㅈ같은 냄새가 난다

대체 왜 회랑 번데기를 함께 먹으라는 걸까?

단무지를 올리니 전보다 산뜻해졌다

발키리같은 녀석

이제 김밥을 말아보자

시작과 동시에 파래김의 한계를 드러내고 힘없이 터진 등딱지가 눈에 들어오지만

이럴 줄 알고 둘레에 비해 긴 김을 준비했기에 두 바퀴 돌려 커버가 된다

썰어두면 이런 모양이 나온다

파래김은 요리를 망치겠다는 미련을 아직도 못 버리고 조금씩 풀리고 있다

완식.

장점.

- 맛있다.

솔직히 고참+햄+소시지+계란이라 맛없게 만들 수가 없다.

쟤네들 한 통에 넣고 손으로 비벼 먹어도 맛있을 것이다

- 쉽다

준비와 과정이 귀찮을 뿐 쉽긴 쉽다

단점.

- 기름지다

저 김밥 두 줄 + 라면 해서 친구랑 먹었는데

친구가 라면만 먹고 김밥을 남기는 바람에 내가 두 줄을 다 먹었다

한 줄은 맛있는데 둘째 줄 먹을 때부터 내가 김밥을 먹는 건지

아이클레이를 식용유로 튀겨 먹는 건지 모르겠더라

해볼 사람 있으면 팬에 기름 좀 적게 둘러라

아니면 참기름을 빼던가

- 뻑뻑하다

기름진데 뻑뻑하다

기름 뺀 참치의 식감이 원인이었고

때문에 기름진 입과 뻑뻑함을 달래기 위해 끈임없이 우유를 마셔야 했다

사실 이건 예상한 부분이며 때문에 라면을 끓였으나

친구놈이 검정고무신 거지형제마냥 한 방울도 나눠주지 않았다

다시 봐도 거지같네

그래도 워낙 김밥이 땡기는 날이라 맛있게 먹었다

참 재미썼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