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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선배와 후배, 후배와 선배앱에서 작성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6 01:45:45
조회 484 추천 19 댓글 2
														

쓸쓸히 생을 마감할 거라면 끝까지 혼자가 좋을 것이다. 중간에 연애가 끼고, 실연이 생기는 순간부터는 죽을 때, 고독함이 고통으로 다가오니까. 하지만, 난 뭘하든 고독이라는 고통 속에서 죽을 운명이었나 보다.

고등학생 때,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상대는 나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 그것도 나와 같은 여자애였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다는 건 항상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언제까지나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으면 영원히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고백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 고백은 성공적이었다. 상대가 나를 받아준 것이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소리치고 싶었다. 그 사람과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기에 행복이 막대하게 다가오기만 했었다. 매번 같이 행동하고, 휴일에는 따로 만나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행복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행복은 졸업과 동시에 사라져버렸다. 정확히는 내가 그 사람한테 차인 것이었다. 왜 하필 내가 졸업하고 나서인가. 물었을 때에는, 실망시켜서 나의 학교 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는 것이었다.

이별 통보를 받았을 때의 나는 좌절했다. 심지어 선배의 마음은 떠나간지 이미 오래. 그런데도 나를 생각해서, 배려해서 기다려줬다. 그런 사실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졸업 전까지 가끔 만났던 그 사실들이 전부 나만의 허상이었다니.

결국 나는 이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그 실연은 씻어낼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 상처는 분명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겠지. 다시 생각해도 비참한 운명이었다.

그렇게 실연의 아픔을 잊으려고 열심히 살아가던 어느 날. 나도 어느덧 27살로 성인이 되어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 신입이 들어오고, 그 신입이 내 밑에 배정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그 신입이다. 너무 낯이 익은 모습에 계속해서 누군가가 연상되어 한 번 확인해본 결과. 세상에, 내가 좋아하고 사귀었던 선배의 동생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잠깐 당황했지만, 신입의 수속을 거치고 나서 당장에 중요한 일들만 알려주고서 신입과 잘 해보라는 뜻에서 같이 점심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 세린씨. 혹시 좋아하시는 거 있으세요? 전 어떤거든 괜찮거든요."

이세린. 이세라. 내가 좋아하던 선배가 세라, 그 동생이 세린. 실제로 이름을 들었을 때에 설마 싶었던 것이다. 근데 진짜였다니. 이럴 수가 있냐 말이다. 그래도 일단은 처음으로 받게된 내 직속 신입이니 잘 해주는 게 맞겠다 싶어 정중하게 물었다.

"저도 뭐든 괜찮아요."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딱딱한 말투. 나쁜 의도는 아닌 듯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북하거나 눈치를 보는 건 아니었다.

첫 인상이 그렇게 쉽진 않았던지라, 결국 점심은 평소에 가던 무난한 식당으로 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친해지려 노력을 해봤으나, 역시 딱딱함 그 자체였다. 선배는 살갑고 다정했었는데. 자매가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물론 생긴건 쌍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았지만. 차이점이라면 세린이 약간 더 어른스럽고 단발이라는 점일까.

그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곰곰히 신입인 세린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는데. 분명 대들거나 불쾌하게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괜히 날 찼던 선배가 조금은 원망스러워서일까.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잘해줘봤자 반응도 없고, 일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물어보거나 하지도 않고 잘해내서 괜히 열이 뻗치는 것 같았다. 마치 선배가 나 없이도 잘 사는 것 같이 말이다. 실제로 친구의 SNS를 통해 엿보면 잘만 사는 것 같았고.

...후, 갑자기 열받네.

귀염성이라곤 1도 없는 후배에, 아부 떠는척이라도 하지 않는 세린의 모습을 생각하다 보니 결국 아물었던 상처가 터지고 말았다.

그래. 잘해줘봤자 돌아오는 것도 없고. 일의 효율을 높이려면 채찍도 어느적도 있어야 한다고 들었으니까. 앞으로 각오하라지.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난 이후, 나는 다정하고 친근감 있던 모습을 지우고서 심하지 않은 정도로 가끔 실수가 나올 때마다 신입을 다그쳤고, 가끔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약간의 트집을 잡아서 신입을 혼내곤 했다.

...조금 못된 사람같긴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어차피 세린도 혼날 때 받아들이는 눈치고, 별로 신경쓰지도 않는 것 같은데.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어느덧 세린과 함께하는 첫 회식 시간이 되었다. 회식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신입과 함께하는 회식인지라 위에서 되도록이면 참석해줬으면 좋겠다는 식의 압박을 넣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이런 때에도 피해를 끼친단 말이야.세린 본인은 알기나 할까. 아무튼, 회식은 평범하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랬는데.

"지현씨. 회식 끝나고 같이 2차, 어때요?"

싱글벙글 웃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 회식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건 맞지만, 역시 이 사람 때문에라도 참석하기가 싫었다.

상대는 나보다 한 계급 위의 선배였다. 처음엔 일을 잘 가르쳐줘서 좋은 사람인가 싶었지만, 결국에는 나에게 마음이 있어 다가온 것이었다. 주변 평가를 들어보면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기에 피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 회식 자리가 날 잡아버린 것이었다.

"뒤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려고요."

"에이. 그러지 말고. 내일 어차피 주말인데?"

아, 진짜 짜증나네. 싫다고 하면 좀 비키면 될 것이지. 이렇게 추적추적 달라붙을 필요가 있을까. 정말 싫다.

"지현 선배님이 이 뒤에 저한테 일을 마저 알려주시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때, 갑자기 난데없이 세린이 끼어들었다. 무표정으로 꺼낸 그 말에 나는 물론이고 선배 역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세린을 쳐다봤다.

"어, 음. 세린씨?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실수하는 부분이 많아서요. 죄송합니다. 선배님, 지금 가시는 거 아니었나요?"

"어? 어어...응. 그, 그래. 가자."

곧바로 받아들이기 쉬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직장 선배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세린의 말에 맞춰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회식 자리에서 좋은 핑계로 벗어나고서 세린은 내게 고개를 숙였다.

"괜한 참견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썩 좋아보이진 않으셔서. 그럼, 저도 이만."

역시나 도와준 게 맞았다. 근데, 왜? 내가 여태 괴롭힌 것도 많았고, 분명 좋은 선배라고 생각되진 않았을 텐데. 왜 날 도와준 걸까. 괜히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세린이라고 원해서 내 밑에 들어왔고, 세라 선배랑 자매일까. 그냥 운명이 그런 건데.

"아, 나도 잘 모르겠다! 세린씨...아니, 세린!"

"...네?"

어,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표정 변화다. 순간 당황했구나. 그래도 로봇은 아닌가 보네.

"나랑 2차가자! 까짓거 신나게 털어내지, 뭐!"

"네? 저는 괜찮..."

"나랑 볼 일 있었다면서. 거짓말이었던 거야? 그러지 말고, 자자!"

그렇게 나는 세린을 끌고서 강제로 회식 자리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2차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주량도 좋지 않은 주제에 시원하게 퍼마시고 취해서 멋대로 기분 좋아졌다가, 눈을 다시 떴을 때에는 내 집, 소파 위였다. 소파에서 잠든 걸까.

...앞으로 술은 적당히 마시도록 하자. 기억이 전혀 없다. 얼마나 마셨던 거야. 머리도 아프고. 그래도 세린이라는 좋은 후배를 둔 것 같아서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앞으로는 평범하게 좋은 후배 대접을 해주도록 하자.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니까.












"으흐히힉. 그애서 니 안니가 나르 퐉! 하그 차사~..."

왜 이렇게 된 걸까. 난 그저 시끄러운 회식 자리를 피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 직속 선배를 돕는 척 자리를 피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굴레에 빠져버렸다.

눈 앞에 술에 잔뜩 취해 말을 절고 있는 사람은 내 직장 선배인 남지현. 첫 날에는 다정했지만, 그 이후로는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이상하게 나를 엄하게 대하는 구석이 생기게 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려고 했는데. 괜히 도와주는척 하는 바람에 이렇게 끌려오기나 하고.

그런데 술에 취한 지현 선배의 말을 듣고서 알게된 사실. 실은 지현 선배는 학창 시절때, 내 언니랑 사귀는 사이였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헤어진 상태인 듯 했지만, 꽤나 내 언니를 좋아했었나 보다.

으음, 이건 잘하면 약점으로도 써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이 사람 그런쪽이었어? 언니도? 근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언니가 찬 것 같고, 언니는 장난이었던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진심인가 보네. 우와...

"선배. 정신좀 차려봐요. 집 어딘지 아시겠어요?"

"으흥? 집? 우음..."

지금은 취한 선배를 받친 상태로 무작정 걷고 있긴 하다만, 어떻게든 집에 돌려보내는게 우선이라 일단 집을 알아야 했다. 다행히 말은 잘 알아듣는 건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나에게 건네준다.

근데 잠금도 안 해놓는구나. 진짜 허점 투성이인 사람이네. 골 때리는구만.

아무튼, 어찌저찌해서 휴대폰을 통해 알게된 지현 선배의 집. 그렇게 멀지도 않았던터라 힘들지만 버려두고 갈 수도 없었기에 겨우 선배를 메고서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은 비밀번호식으로 겨우 뭉개진 발음으로 말하는 선배의 말을 듣고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름 정돈 잘 되고 깨끗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자주 정리하는 듯 해서 본질은 성실한 사람인 듯 했다. 취하고 하는 짓을 보면 좀 엉뚱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게 겨우 선배를 소파에 앉히고, 최소한의 조치를 취해 복장을 정돈해준 다음에 조금이나마 술이 깨라는 선에서 물을 대충 컵에 받아서 선배에게 돌아왔다.

"선배. 정신 차리고 물좀 마셔봐요."

고개를 위태하게 이리저리 기울이고 있던 선배는 내 목소리를 듣고선 고개를 들더니 나를 한참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걸까 싶어 대충 듣고 넘기려는 순간.

선배가 몸을 약간 앞으로 내밀더니 팔을 뻗어 내 목을 감싸고선.

키스를 했다.

순간 사고가 정지되었지만, 제빠르게 정신을 차리고서 선배를 떨어뜨리고서 컵을 내려놨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

"선배..."

아무리 취했어도 선을 넘는 행동에 주의를 주려 했는데, 갑자기 눈에 눈물을 머금으며 내 옷깃을 잡는 선배의 행동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들이 다시 들어가버렸다.

"나...좋아하는데...엄청...세상 제일로...그러...니까...버리지...말아...줘요..."

흐느끼며 눈물을 흘려내는 선배. 만취인 상태인데도 지금 한 말만큼은 뚜렷하게 발음하는 선배. 그런 지현 선배가 하는 말은 나를 향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했다. 아무래도 나를 언니로 착각한 듯 했다.

그러니 단순히 사고로 넘어가면 될 것이었다.

어쩌면 만취인 상태여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럴 텐데.

선배의 약해진 모습과 하는 행동들을 보고, 괜히 선배가 조금 전에 한 키스가 생각나 얼굴이 화끈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왜?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거지?

"선배..."

강요하진 않지만, 마치 희망한다는 듯 옷깃을 약하게나마 당기는 선배. 그런 선배의 작고 나약한 행동들에 나도 모르게 소파 옆에 앉아 선배를 받아줘버렸다. 선배는 그것조차 기뻤는지 울음을 그치며 미소를 짓더니 몸을 완전 붙이고선 내 어깨에 머리를 툭 하고 기대왔다.

"에헤헤...선배..."

그런 희미한 웃음 소리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끝으로 선배는 잠에 들었다.

...............

나는 조심스럽게 선배를 소파에 눕히고선 찾아낸 이불로 선배를 덮어주고서 집을 나섰다. 처음엔 귀찮아서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하나 싶어서 짜증이 날 뿐이었다. 물론 지금도 짜증은 난다.

하지만, 그 짜증은 어느새 지현 선배가 아닌 누군가를 향하고 있었다. 믿고 싶진 않지만, 마치 언니를 향하고 있는 이 짜증 섞인 기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갑자기 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배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미칠 것만 같았다. 헤어진지 몇 분 채도 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럴리가 없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 믿음과 함께 깊은 고뇌에 빠진 채, 나는 힘없이 집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

부서진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는 그런 단편을 쓰고 싶었어...

잘 자 백붕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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