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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발매된 지 20년이 훌쩍 넘은 고전에로게임 <마법의 왕국 세즈렉스>. 게임사에서는 고전게임 리마스터라는 시류에 편승해 <마법의 왕국 세즈렉스>를 재출시했다. 다만, 이번에는 플레이어들이 원작의 최종보스인 마왕이 되어 평화로운 세즈렉스 왕국을 유린하고, 여성들을 겁탈하여 서비스 컷을 획득하도록 플레이 시점을 변경하였다. 지금의 <마법의 왕국 세즈렉스>를 테스트중인 1대 마왕은 이번 리마스터 기획의 담당자이자 전작의 열렬한 팬이었다.

“곧 해가 집니다, 마왕님. 이번 총공세로 반드시 세즈렉스 왕국을 무너뜨리겠습니다.”

“그래, 전 병력을 출격시켜라! 적들은 마력도, 싸울 힘도 남아있지 않은 잔챙이들이다. 모두 파괴하고 겁탈하라!”

테스트 중인 마왕은 만족스럽게 명령을 내렸다. 오랜만에 돌아온 <마법의 왕국 세즈렉스>는 자신이 흠뻑 빠졌던 만큼, 지금 봐도 배경음이나 그래픽이 세련되었고, 서비스 신 역시 매력적인 게임이다. 무엇보다 과거에 이 게임을 플레이 했던 남자라면 소중한 동료였던 여전사와 여마법사, 여성직자가 끝까지 마왕군에게 저항하고, 결국 사로잡혀 자신의 취향대로 조교된다는 배덕감 넘치는 스토리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흐흐흐... 누굴 먼저 조교해볼까? 여왕? 아니면 전작에선 공략 불가능 캐릭터였던 여전사? 아니, 아니지. 역시 여마법사가 최고지. 사실은 여전사를 짝사랑한다는 숨겨진 설정, 그럼에도 마력 회복을 위해 용사에게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고, 자신을 용사와 이어주려고 애쓰는 여전사를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애처로운 설정이 최고야! 하긴, 어차피 모두들 곧 내 손에 들어오겠지만!”

7.

... 그럴 것인데.

“파이어 필러...!” “마왕은 어디냐!!”

전 용사파티의 여마법사와 여전사 콤비를 앞세운 왕국군에게 마왕군은 잡몹처럼 녹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너희들은 더 이상 마력회복 수단이 없을 것인데?”

“...우린 이제, 마력의 힘이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싸워...”

“뭣이, 그런 시스템은 없을 텐데...??”

“알아들었으면, 이제... 우리를 방해하지 말아줘...! 여전사, 필살기야...!”

“아아 그래... “러브 스트라이크!!!””

겹쳐진 두 사람의 입술로부터 발산된 정체불명의 광선은 어두운 마물들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크...아악... 이건... 버그인가...? 아니면...”

그렇게 마왕은 퇴치되었고, 세즈렉스 왕국은 평화를 되찾았다.

8.

개발상의 오류로 인해, <마법의 왕국 세즈렉스>의 리마스터 버전은 예상보다 1년이나 연기되었다. 내부에서의 양심선언에 의하면 추억의 동료들을 조교, 타락시킨다는 정신 나간 스토리를 파기하고 현재의 스토리로 수정했기 때문이라는데, 이 부분은 오히려 유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지금의 마법의 왕국 세즈렉스>의 스토리는 플레이어가 공주인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였지만 쫓아가기 힘든 상황의 변화, 황폐화된 왕국의 재건이라는 과제, 그리고 갑자기 없던 것으로 할 수 없는 신분제도 등 다양한 장애물로 인해 맺어지지 못하고 있는 커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주된 과제이다. 소문에 따르면 숨겨진 마지막 퀘스트는 공주와 여왕 또는 여성직자와의 커플링이라고 하는데, 어느 쪽이든 격렬한 논쟁(?)이 예상되지만 이것은 아직까지 올 클리어한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에 확인이 불가하다.

9.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세즈렉스 왕국. 비탄과 죽음이 국토를 한차례 휩쓸었지만, 용사에 대한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로 인해 왕국 재건 사업은 순항하고 있다. 여왕이고 공주고 할 것 없이 나서서 벽돌 하나라도 더 날랐지만, 이번 전쟁의 수훈갑인 여전사와 여마법사는 왕국 1호 여성커플로서 소박하지만 전국민이 축복하는 결혼식을 올리고, 왕성 꼭대기탑으로의 짧은 신혼여행을 갈 수 있었다.

“뭐랄까,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

단 둘만의 침대에서 여전사가 한 팔로는 팔베개를, 한 팔로는 여마법사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오지도 않는 용사를 기다리며 수련하다가, 마왕은 쳐들어왔는데 제대로 힘도 못써보고 끝장날 뻔하고, 그리고, 그리고... 네가... 고, 고백하고... 키스하고...”

“...나도... 이런 미래가 올 줄은 몰랐어... 너무... 행복해...”

“!!... 그건 그렇고, 너도 참 부끄러운 짓을 다 하네. 사랑의 힘이니, 뭐니...”

“...여전사는... 싫었어?...”

“아, 아뇨! 그럴리가! 그, 그건 그렇고, 너에게 사과해야 할 게 있어. 나에 대한 너의 마음을 모르고 용사와 이어주려고 계속 노력해왔으니까... 나는, 그저 네가 행복했으면 했던 건데, 정말... 흡!”

주절주절 말이 길어질 것을 예상한 여마법사가 여전사의 입을 입술로 막았다. 열렬한 타액 교환 끝에 근육질이 무색하게도 온몸의 힘이 풀린 여전사는 지긋이 응시해오는 여마법사의 눈동자를 부끄러운 듯이 피할 수밖에 없었다.

“...후후... 이제 부부니까... 키스보다 더... 더한 걸 할 거라구?... 나 처음이니까... 언니가 제대로 리드해줘야 해...”

‘아, 역시 이건 하는 분위기인가!’

“그, 그런데 처음이라니? 한 번도 용사에게 선택받은 적 없는 나보다는 네가 더 경험이 많은 거 아니야?”

“... 그거, 분신이니까.”

“...아?”

“분신으로 마력만 공급받았고...진짜로는, 처음이니까... 부드럽게 해줘야해...?”

그날 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 부부는 사랑의 만족감과 기분 좋은 피로로 대낮까지 푹 잤다고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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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