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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소백)[비봉]부끄러운 줄 모르는 렌코

장기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15 23:41:32
조회 483 추천 18 댓글 4
														

평소에 눈팅만 하다가 대회 있어서 예전 글 하나 한 번 올려봅니다. 동방 프로젝트(비봉)는 별로 안 올라오긴 하는데... 다른 글도 하나 써볼까 싶은데 시간 내에 쓸지 모르겠네요. 






 문을 열자마자 딸랑하는 방울 소리와 함께 차가운 밤공기가 렌코의 뺨을 간질였다. 기도를 타고 몸으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 덕에 어쩐지 술기운이 더욱 후끈 달아올랐다. 렌코는 문밖에 나서서 몇 걸음 걷지도 않고 건물 외벽에 등을 털썩 기댔다. 냉기가 등을 타고 퍼져나가는 감각에 술기운이 다시금 화끈하게 그녀를 자극했다. 렌코가 그렇게 혼자서 입김을 내뿜고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취기를 번갈아 즐길 때 딸랑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방금 렌코가 나온 그 문에서 울리는 방울 소리였다. 그리고 그 방울 소리와 함께 문밖으로 걸어 나온 건 렌코의 친구인 메리였다. 살짝 취기가 오른 메리의 눈매가 렌코의 눈과 마주쳤다.


 "잘 마시다가 혼자 뭐 하는 거야? 설마 렌코가 이 정도만 마실 리가 없는데."


 "메리, 사람을 주당으로 만들지 말아줬으면 해."


 "렌코는 주당 맞잖아."


 메리는 그렇게 가볍게 쏘아붙이고는 렌코의 옆자리에 나란히 어깨를 기댔다. 메리도 렌코처럼 냉기에 몸이 더욱 달아오르는지 뺨이 더욱 붉게 물들었다. 렌코는 그런 메리의 모습이 우스운지 키득거리면서 물었다.


 "그래서, 메리는 왜 나온 거야?"


 "글쎄. 그러는 렌코는 왜 나왔는데?"


 메리가 질문에 답하기는커녕 오히려 같은 질문을 하자 렌코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냐하면 메리가 바로 그 이유였으니까. 한참 다 같이 술을 마시다가 혼자 슬쩍 빠져나오면 메리도 바로 눈치채리란 걸 다른 누구도 아닌 렌코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메리도 바로 렌코를 따라 나오리라는 것도. 그러면 메리와 단둘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굳이 그런 꿍꿍이를 말하지는 않는다. 메리도 대충 다 알면서 묻는 것이리라. 그래서 메리는 질문을 하고서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렌코의 시선이 향하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메리, 뭔가 보여?"


 "아니."


 "아쉽네."


 "글쎄, 밤하늘은 내가 아니라 렌코 담당이니까."


 "그렇지. 현재 시각은 새벽 2시 11분입니다."


 렌코는 별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밤하늘을 보고 시간과 위치를 알 수 있는 렌코의 눈. 결코 평범한 눈이 아니었지만 메리는 개의치 않았다. 메리에 비하면 렌코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메리도 렌코의 눈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이젠 아니었다. 이제 메리의 눈은 전보다도 더욱 특별해져서, 렌코가 밤하늘에서 시간과 위치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메리는 이렇게 술기운이 올라오는 자리에서 종종 묻곤 했다.


 "렌코는 잘도 믿었네. 경계 같은걸."


 메리는 한껏 대수롭지 않게 던진 한마디지만 렌코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메리가 아닌 척해도 렌코는 메리가 진짜 묻고 싶은 걸 잘 알았다. 그래서 메리가 그럴 때마다 렌코는 평소보다도 훨씬 자신만만하게 답하곤 했다.


 "당연하지. 그런 재미있는 걸 믿지 않을 리 없잖아."


 "글쎄, 생각해보니 믿는 정도가 아니었네. 나보다도 더 극성으로 찾아다녔지. 렌코 같은 사람은 아마 또 없을 거야. 렌코는 대체 왜 그렇게 경계에 흥미를 느꼈던 거야?"


 메리는 그렇게 묻긴 했지만 진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렌코도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밤하늘을 바라보던 눈을 메리에게로 옮겼다. 그리고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적막한 밤의 분위기 때문인지, 즉흥적으로 떠올려버린 너무나 멋진 대답을 당당하게 읊조려버렸다.


 "왜냐하면 나, 우사미 렌코는 언제나 미지에 흥미를 느끼니까 말이지. 우주에는 아직도 미지가 가득 차 있으니까. 거기에 경계라는 미지까지 더해지니 흥미를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가 없지. 그리고 무엇보다 메리, 너도 그래. 메리 같은 미지가 눈앞에 있으면 끌릴 수밖에 없는 거라고. 나, 렌코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메리에게 끌릴 수밖에 없는 거야."


 메리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렌코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술기운이 또 올라왔는지 메리의 뺨에는 홍조가 더욱 짙어졌다. 그런 메리를 쳐다보던 렌코는 잠시 후 자신이 내뱉은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더니, 갑자기 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건 술기운이 아니었다. 술을 마셔도 절대 붉어지지 않던 렌코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하고 렌코는 무심코 입밖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후.....후어.....후아아...."


 렌코는 자신이 말해놓고도 어떻게 수습을 못 해서 두 손으로 뺨을 연신 비벼보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신음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렌코는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간신히 찾아내서 외쳤다.




 "부끄러워! 그런 낯간지러운 대사 하지 말라고!"


 그리고 렌코는 칠칠치 맞지 못하게 침을 흘리면서 잠에서 깼다. 마침 기차는 교토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렌코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같은 칸에 있던 승객들은 다들 내렸는지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 이게 뭐람. 왜 하필 그런 말을... 닭살 돋아!."


 렌코는 마음만 같아서는 붉게 물든 얼굴을 모자에 파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하필 오늘 그녀는 모자를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가 혼자였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나 함께했던 친구인 메리는 이 자리에 없었다. 메리에게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어쩌면 메리가 없어서 잠이 들어 부끄러운 꿈을 꿔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나 렌코에게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아, 진짜 이게 뭐야. 메리가 없다고... 하필 이런 꿈을 꾸다니."


 렌코는 손으로 화끈거리는 얼굴에 부채질을 하면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꿈에서 렌코가 내뱉은 대사 자체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렌코가 지금 더없이 부끄러운 건 그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렌코는 정말로 그런 말을, 부끄럽지도 않게 메리 앞에서 해버렸던 것이다.


 "그래! 사람이 분위기에 취하면 그럴 수도 있지!"


 렌코는 듣는 사람도 없는 변명을 외치면서 터벅터벅 출구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행동이 사실 더 부끄럽다는 사실도 잊은 채.




 카페테라스는 점심의 나른함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에는 독특한 언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렌코와 메리였지만 그 시각, 그 자리에서만은 다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카페의 나른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기만 그럴 뿐이었다. 그 둘은 커피를 마시는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경계와 꿈에 대해 수다를 쉬지 않고 떨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메리가 꿈속에서 가져온, 현실에선 분명 사라진 지 오래일 자연의 죽순이 책상 카페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메리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죽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렌코는... 내가 꿈에서 이걸 가져온 것처럼 내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고?"


 "그래! 이 죽순처럼 메리에겐 꿈이 현실인 거니까."


 렌코는 메리와는 달리 다소 흥분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렌코는 언제나 메리보다 더 메리의 이야기에 흥분하고 흥미를 보였다. 정작 당사자인 메리는 그런 렌코의 분석에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글쎄, 아무리 그래도 내가 꿈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걸. 이번에도 영문도 모르고 도망치기만 했고. 가끔 자기가 원하는 대로 꿈을 설계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도통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아냐! 메리의 꿈은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런 꿈은 마음대로 설계해봐야 의미가 없어. 현실과는 결국 분리되어 있어서 영향을 끼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메리의 꿈은 현실인 거고, 당연히 현실은 마음대로 설계할 수 없지. 그렇지만 꿈이 현실이라면 적어도 꿈에 들어가는 건 충분히 할 수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지!"


 "내가 꿈 이야기한다고 뭐라 했던 건 렌코였거든? 이젠 꿈이 현실이라는 거야? 그렇다면 삭막하네. 어차피 그런 현실에 가봐야 즐길 것도 없고 도망치기만 했는걸. 혼자라면 그런 꿈을 현실로 만드는 거 절대 사절이야."


 잔뜩 신이 난 렌코와 달리 메리는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왼손으로는 죽순만 콕콕 지르면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메리를 빤히 쳐다보던 렌코는 갑자기 몸을 날리다시피 앞으로 내밀면서 외쳤다.


 "나랑 같이 가면 돼!"


 렌코는 두 손으로 메리의 왼손을 꼭 붙잡으면서 외쳤다.


 "...어?"


 메리는 렌코의 돌발행동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자신의 왼손과 렌코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렌코는 렌코대로 그런 메리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내가 같이 갈게! 메리의 꿈까지! 위험한 게 나와도 같이 있으면 괜찮아! 분명! 삭막하지도 않고 재밌을 거야! 항상 하던 경계 탐험처럼! 그러니까!"


 "어, 저기. 렌코..."


 난데없이 손이 붙잡힌 채로 이상한 권유를 당하기 시작한 메리는 얼굴이 당혹감으로 붉어지기 시작했다. 렌코는 홍당무가 되어버린 메리의 얼굴도 깨닫지 못하고 더 부끄러운 대사를 더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랑 가면 괜찮아! 모르는 곳에 떨어져도 내 눈만 있으면 어딘지 알 수 있으니까! 평생 그렇게 함께 해도 좋아! 둘이서 함께면 되니까! 분명 엄청 재밌을 거야!"


 "렌코? 저기..."


 결국 메리는 부끄러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렌코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귀까지 붉게 달아오른 모습은 숨길 수가 없었다. 메리의 노란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붉은 빛에 렌코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어? 아?"


 렌코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카페테라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걸. 메리는 단순히 렌코가 손을 잡아서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었다. 그 모습을 카페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모두 보고 있어서 그랬을 뿐이었다.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깨달은 렌코의 얼굴도 덩달아 붉어지기 시작했다. 렌코는 거의 울상을 지으면서 메리에게 전혀 의미 없는 변명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어.... 그러니까... 나도 함께면... 괜찮다고... 그런 의미...였는데..."


 "...지금은 렌코와 함께라 전혀 괜찮지 않아..."


 렌코에게는 주변의 시선보다도 메리의 그 한마디가 견딜 수가 없었다.




 "당연히 안 괜찮지! 카페에서 큰 소리로 부끄러운 소릴 하면!"


 렌코는 그렇게 꿈속의 자신에게 화를 내면서 또 잠에서 깨어났다. 이번에도 그녀를 맞이한 건 카페를 이용하는 다른 손님들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그래도 꿈속의 자신보다 성숙해진 렌코는 고개를 연신 굽신거리면서 주위에 사과한 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시키고 한 모금밖에 마시지 못한 캔커피는 이미 식은 지 오래였다. 기차에서 내리고 잠시 쉬려고 카페에 잠시 들렀건만, 함께 즐길 상대가 없으니 결국 단잠이 든 모양이었다.


 "....으."


 렌코는 갑자기 다시 찾아온 치욕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또 부끄러운 과거를 꿈으로 떠올려버린 자신을 어쩌지 못하고 몰래 테이블 밑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마음만 같았다면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더 부끄러운 과거를 만들어버릴 상황이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사실 카페에서 혼잣말을 외치면서 잠에서 깬 것부터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이래서야 내가 중독자 같잖아..."


 렌코는 손가락 사이로 흘끔 테이블의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헛된 희망을 품은 채 그 빈 자리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메리가 그 자리에 갑자기 나타나서, 부끄러운 자신을 타박하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고.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그걸 잘 알면서도 렌코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손가락을 쥐었다 펴보았지만 허사였다. 결국 렌코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제 익숙해져야 하는데... 보고 싶다... 메리..."


 렌코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렇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어쨌거나 그만큼 간절했으니까.




 복도는 칠흑같이 어두워 우주처럼 공허하게 느껴졌다. 이내 렌코는 그게 우주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진짜 우주임을 알 수 있었다. 멀리서 반짝이는 별들의 희미한 빛만이 렌코의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이유에선진 몰라도 그녀는 우주 한복판에서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었다. 남들이라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야 할 상황이었지만 렌코에겐 아니었다. 렌코에겐 어떤 의미에선 너무나 익숙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렌코가 어떤 의미에선 언제나 원하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렌코가 원하던 상황이기도 했고. 렌코는 망설이지 않고 방향을 정하고 똑바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마음을 잡고 걸어 나가기 시작한 렌코였지만, 그렇다고 우주가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분명 거대해야 할 행성들마저 작은 별빛으로만 보이는 우주에선 누구나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렌코가 우주에서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몇 번이고 이런 공허한 우주도 걸어보고, 이보다 더 낯선 세계를 경험해보기도 했지만 외롭다거나 공허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 이유는 다른 누구보다 렌코가 잘 알고 있었다. 렌코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렌코는 혼자였다. 언제나 함께였던 메리가 없었다. 이제 이런 감정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렌코는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렌코는 마침내 찾아냈다. 본래 이런 우주에서 찾을 수 있을 리 없는 광경을. 그건 렌코에게 너무나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렌코가 그렇게나 애타게 원하던 메리의 뒷모습이었다.


 "메리!"


 렌코는 또 생각보다도 말이 앞섰다. 우주에서 목소리가 전해질 리 없었지만 그런 당연한 상식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메리의 이름을 외쳤다. 어차피 우주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숨을 쉬고 걷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메리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메리를 부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던 참이었다. 그 간절함이 전달되어선지, 아니면 자신의 이름이 불리리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메리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렌코? 어떻게?"


 메리는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렌코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렌코는 메리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달리기 시작해 이미 메리의 코앞까지 다가온 뒤였다. 메리가 허둥지둥대는 사이 렌코는 아무 말도 없이 렌코를 와락 껴안아 버렸다. 메리는 그런 렌코를 떼놓지도 못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묻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렌코? 저기? 나 지금 이해가 안 되는데... 벌써? 갑자기 왜...?"


 "메리가 보고 싶어서..."


 "어... 그래서? 그게 이유야? 갑자기 이렇게...?"


 메리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던 렌코는 메리의 그런 미적지근한 반응에 바로 얼굴을 들어 올리고 메리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외쳤다.


 "당연히 그게 이유지! 다른 이유가 어딨어!"


 그저 당황하기만 하는 메리와 달리, 렌코의 두 눈에는 간신히 흘러내리지 않고 맺혀있는 눈물이 가득했다. 메리는 그런 렌코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윽고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 뭐야 그게!"


 "윽! 왜...왜?!"


 "아니.... 그야... 렌코도 알잖아!"


 메리는 제대로 답도 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웃어대는지 렌코와 마찬가지로 메리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버릴 정도였다. 렌코는 이내 메리가 그렇게 웃음을 터트리는 이유를 개달았다. 메리는 렌코가 했던 말이 너무 부끄러웠던 것이다. 렌코가 그렇게나 메리를 간절히 원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낯간지러워서, 메리 입장에선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렌코도 자신이 또 부끄럽지도 않고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뒤늦게 얼굴을 붉혀버렸다.


 "렌코는 진짜 여전하다니까!"


 "그...그렇게 웃을 건 없잖아!"


 렌코는 간신히 웃음을 그친 메리에게 얼굴을 붉힌 채로 쏘아붙였다. 메리는 그런 렌코의 반응에 오히려 다시 웃음을 터트려버려 렌코 입장에선 더욱 부끄러워질 따름이었다. 결국 얼굴이 계속해서 뜨겁게 달아오른 렌코는 이윽고 폭탄처럼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럼 어떡해! 메리가 보고 싶었단 말야! 꿈에서라도 당장!"


 "뭐어? 하....하하! 뭐야 그게!"


 메리는 렌코의 그 외침을 듣고 웃음을 참아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렌코와 마찬가지로 메리도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게 폭소라는 점이 달랐지만. 이미 터져버린 메리의 웃음보를 되돌릴 수 없게 된 렌코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외쳤다.


 "아아아아 진짜! 왜 항상 이런 식인 건데!"


 그리고 렌코는 또 꿈에서 깨버렸다.




 "으아아아아! 그만! 그만!"


 렌코는 이번에도 요란하게 잠에서 깨버렸다. 다행히도 이번엔 기차나 카페 안이 아니라, 침대 위였다. 하지만 렌코 입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얼굴이 붉어져있었다. 침실이 어두컴컴해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렌코 본인은 얼굴에서 화끈하게 느껴지는 열기 덕에 알 수 있었다. 렌코는 왼손으로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냈다. 마치 악몽이라도 꾼 기분이었지만, 렌코 입장에서는 차라리 악몽을 꾼 거였으면 했다. 악몽은 어디까지나 꿈으로만 끝나니까. 렌코는 흘끔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렌코?"


 그리고 렌코가 그렇게나 듣고 싶어 하던 메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멍한 목소리였지만 렌코의 어깨가 그것만으로도 크게 들썩였다. 온종일 그리워하던 메리의 목소리였지만 정작 지금 렌코는 그 목소리 덕분에 얼굴이 더욱 뜨거워질 뿐이었다. 얼굴을 가려보려고 오른손을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억센 힘에 의해 바로 제지당했다. 렌코가 잠들기 전에 붙잡았던 메리의 손이 이번엔 역으로 렌코의 손을 꽉 붙들었다. 렌코는 당황해서 어떻게든 깍지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메리의 손가락이 더 얽혀 들어왔다. 방금 잠에서 깼다고 믿을 수 없는 악력이었다.


 "저... 저기, 메리?"


 "렌코, 일찍 왔네? 내일은 되야 올 것 같다면서?"


 렌코의 바로 옆자리에 누워있던 메리는 슬며시 몸을 일으키면서 물었다. 그 와중에도 메리의 손은 렌코의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어, 아니, 그게...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진짜?"


 메리는 살짝 불만스럽게 되물었다. 렌코가 살짝 오른쪽으로 돌리자 잠옷 차림의 메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탁자등의 희미한 불빛으로 아직 잠이 덜 깬 표정의 메리는 렌코에게 더없이 부담스러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아니, 그... 그냥 출장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일찍? 왜?"


 "아니... 그니까..."


 "내가 보고 싶어서?"


 "윽!"


 렌코는 기어코 그 말을 꺼낸 메리 때문에 다시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간신히 조금 식었던 얼굴도 다시금 확 달아올랐다. 렌코의 손까지 그 열기가 전해져 땀이 새어 나올 정도였지만 메리는 오히려 더욱 손을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슬며시 렌코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면서 속삭였다.


 "렌코, 방금 꿈에서 그랬으면서... 나 보고 싶어서 왔다고..."


 "아, 아니. 그게 조금 분위기에 취해서..."


 "그래서 정작 이젠 아니라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 진짜! 몰라!"


 렌코는 결국 꿈에서처럼 다시 울상을 지으면서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메리는 짓궂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렌코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하하! 렌코는 진짜 여전하다니까! 맨날 멋진 말만 해놓고 감당을 못해서!"


 "으..."


 "그래서. 진짜로 나 보고 싶어서 일찍 온 거야?"


 "그...그럼 다른 이유가 어딨어..."


 "고작 사흘 못 보는 게 그렇게 슬펐어? 렌코도 참..."


 메리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렌코를 이젠 볼까지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더 짓궂게 괴롭혔다. 그럴 만도 했다. 대학을 마치고 같이 살게 된 참에 고작해야 렌코가 사흘간 출장을 갈 뿐이었으니까. 렌코는 그것도 견디지 못하고 출장을 허겁지겁 끝내고 돌아와서는 집에서 혼자 자고 있는 메리의 꿈까지 찾아갔던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낯부끄러웠던 렌코는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려다가 오히려 더 좋은 놀림거리를 던져버리기까지 했다.


 "그...그럼 어떡해... 메리 꿈까지 꿨단 말야..."


 "뭐어? 진짜? 하하! 무슨 꿈? 무슨 꿈 꿨는데?"


 "으... 그... 예전에 술집에서랑... 카페에서... 있었던 일인데..."


 "잠깐, 그럼 두 번이나 꾼 거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렌코는 진짜 못 말린다니까!"


 메리는 아예 얼굴을 렌코의 어깨에 파묻고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렌코는 괜히 사실대로 말했다가 더 놀림 받게 된 자신을 책망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리고 놀림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것보다는 이렇게 놀림을 받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메리는 그런 렌코를 보고 히죽 웃으면서 다시 자기 자리에 누웠다.


 "그래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 꿈을 꾼 렌코 씨는 이제 뭘 할 건가요?"


 메리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짓궂게 웃고 있었다. 렌코의 대답은 이미 뻔히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렇지 않으면 렌코의 손을 아직도 꼭 붙잡고 있을 리가 없었다. 어느새 부턴가 메리의 손을 붙잡으면 렌코도 메리의 꿈을 함께할 수 있었다. 카페에서 외친대로 메리의 꿈까지 함께 갈 방법을 렌코는 찾아버리고 만 것이다. 렌코는 메리가 꼭 붙잡은 자신의 오른손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메리는 못 됐어."


 "렌코가 부끄러운 줄도 몰라서 그런 거야."


 "아니, 진짜 부끄럽거든."


 "렌코는 또 무슨 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할까 기대되네."


 "아, 진짜 몰라."


 렌코는 자포자기한 채로 침대에 덩달아 누웠다. 애초에 이러기 위해 출장에서 서둘러 돌아온 것이었으니 부끄러운 건 아무래도 좋았다. 메리도 렌코의 그런 마음을 사실 잘 알고 있었다. 메리도 부끄러워서 짓궂게 놀릴 뿐이었지. 렌코는 메리의 그런 속마음도 모르고 잠에 빠져들기 전에 변명하듯이 중얼거렸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메리가 혼자 있으면 영 불안하니까, 내가 없으면 큰일 날지도 모르니까!"


 물론 렌코는 이내 꿈에서 메리에게 짓궂게 놀림을 받아버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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