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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소백) 세상에서 가장 추한 고백앱에서 작성

곰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19 19:27:19
조회 1407 추천 38 댓글 15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내가 15살이었을 때였다.

사람이 모여 사는 지역과 조금 떨어져 있는 큰 집에 살고 있던 나는, 널찍한 뒷마당에 사람이 묶여있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보통은 살려달라고 울부짖거나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땅에 박고 있었기 때문에 묶여있는 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나는 학교가 마친 뒤 집에 돌아와 방으로 가는 길에 그들이 보이면 꼭 멈춰서서 그들을 구경하곤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그날도 어김없이 뒷마당에 끌려온 이들을 구경하러 갔던 날이었다.


작은 삼촌들은 여느 때처럼 그들에게 나긋한 협박을 하고 있었다. 뒷마당에 묻히기 싫으면 빨리 갚아 오라거나, 여기에 도장을 찍으라거나. 살고 싶으면 뭐든 해야하지 않겠냐는 설교에 가까운 협박을 늘어놓았다. 각목을 들고 있긴 했지만 휘두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그것이 꽤 젠틀하다고 생각해 삼촌을 보고 지레 겁을 먹고는 살려달라고 울부짓는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도 똑같은 인간들 뿐이려나, 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삼촌 덩치에 가려져 있던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눈물을 흘리지도, 목숨을 갈구하지도 않는 아름다운 한 여인이.


반짝이는 눈빛이 되어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빛은 초점없이 멍한듯 하면서도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가지 생각만 골똘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는 읽지 못했다. 그런데 남들이 보기에는 그게 꼭 아름다운 외모에 걸맞는 품위를 지키겠다는 듯 입을 꾹 다문 모습처럼 보여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는지 설교를 늘어놓던 삼촌은, 그녀에게 종이를 내밀며 억지로라도 도장을 받아내려 하다가 내가 있는 쪽을 힐끔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그냥 가버렸다. 덕분에 방해꾼 없이 그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묶여 있는 사람을 보며 이런 생각하기엔 조금 미안하지만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얼굴과 몸매를 구석구석 훑어보았다. 그 뒤엔 그녀의 표정에 집중했다. 그녀의 슬픈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이 지긋지긋한 삶을 끝낼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음을.


그날 이후로 그녀는 우리집을 종종 드나들게 되었다. 삼촌은 내가 그때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게, 여자 어른이 그리워 그런 건 줄 안 듯했다. 그녀의 일과표는 거의 삼촌이 정해주었는데 그녀가 우리집에 오는 시간은 대부분 내가 집에 있는 시간대였다.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은 쪽에 가까웠다. 그런 미인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였으니 말이다.


" 시연, "


나의 부름에 네가 돌아보았다. 나와 그다지 말을 섞어본 것도, 내게 이름을 가르쳐준 적도 없었지만 그녀의 이름을 알아내는 건 쉬웠다. 삼촌들이 그녀를 보고 시연씨, 라고 불렀으니 말이다. 저를 부른 게 의외의 인물이었던지 그녀는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내 미소를 지으며 안녕, 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그녀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향한 그때 알 수 없는 기분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 속이 울렁, 하는 느낌.


" 내 이름을 아는구나. "

" 나도 네 이름을 아는데. "


그녀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들킨 것처럼 심장이 내려앉았다가, 이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반응이었다. 이런 느낌은 다이빙대 위에서 말고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녀에겐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뭐가 그리도 행복한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에 다시 한 번 가슴이 울렁였고,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

" 좋은 아침이야. "


그녀는 주말이면 늘 이른 아침부터 우리집에 와 있고는 했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방을 나서면,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며 아침인사를 건네었다. 아침의 햇살을 등진 그녀의 모습은 방금 일어난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눈부셔서 눈이 따끔할 정도였지만 기어이 눈물을 머금고 쳐다볼 만큼 예뻤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홀린 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주말 아침마다 꼬박꼬박 일어나 씻지도 않고 바로 그녀의 인사를 받으러 나갔다. 평소라면 한창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아침이 지나가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서 그렇게 필사적이었나보다.



-

" 시연. 내일도 우리집에 올 거야? "


시연이 매일 우리 집에 오는 건 아니었다. 이틀 걸러 하루 정도 안 오는데, 오늘이 마침 이틀째였다. 내일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시연에게 물었다. 모른척 뻔뻔하게 물었지만 그녀는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네가 원한다면. "


" ...그래. "


" 그나저나 너는 참 다정한 것 같아. "


" 내가 뭘. "


갑작스러운 그녀의 칭찬에 몸이 굳어버렸다. 설마 나 지금 부끄러워 하는 건가. 칭찬에 약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하는데 나도 모르게 쭈뼛거리며 되물었다. 멋지고 똑부러진 모습만 보이고 싶었는데. 괜히 속이 상해 미간을 살짝 구겼다.


" 항상 나를 부를 때 시연이라고 부르잖아. "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시연을 시연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른단 말인가. 잠시 동안 곰곰히 생각했다. 시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다정하다. 다정하지 않은 것은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인가? 아. 혹시 이름만 부르는 것이 다정하다는 건가? 성을 몰라서 이름을 불러온 것이 다정하게 보였을 줄이야. 피식 웃으며 별 거 아니라고 생색을 내려던 찰나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 혹시 내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거니? "


" .... "


" 모르는구나. "



갑작스레 정곡을 찔려 당황해서 대답을 못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는 시연이 보였다. 으, 이게 뭐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 쯤 제대로 모르면 뭐 어때서.


" 이시연이야. 스물 세 살이고. "


" 이시연. "


작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스물 세 살, 이시연.


" 이시연. 그게 네 이름이구나. "


내 말에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계속해서 보고 싶은 저 미소는,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똑같이 반응하는 그녀만의 표정이었다. 너는 정말 행복해서 웃는 것일까, 그냥 저 미소가 습관인 것일까. 누구에게나 물어도 내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습관이라 하겠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

그녀가 우리집을 드나든 지 한달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가던 길에 거실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게 보여 거실로 향하니 시연이 삼촌 몇 명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잘 지내고 있느냐, 네가 옆에서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으냐, 내 안정이 제일 중요하니 알아서 잘 행동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대가가 엄청나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등등. 삼촌은 나를 아직도 여리고 상처 많은 작은 아이로 생각하고 있나 보다. 저렇게까지 신경쓰는 걸 보면 극성이다 싶기도 한데 왠지 잘 이용하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재워줘. "


베개를 들고 시연의 앞으로 가서 다짜고짜 말했다. 밤에 혼자 잠 못자는 어린애로 보여서 그녀의 동정심을 유발한다는 작전이었다. 당황하던 그녀는 삼촌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삼촌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내 모습에 감명이라도 받은 듯 빨리 가서 자라고 나와 시연을 방으로 보냈다. 작전 성공이다.




" ..내가 잠들면 바로 가도 돼. "

" 누가 옆에 있으면 잘 자니까, 늦게까지 안자면 어떡하나 뭐 이런 걱정은 말고. "


널찍한 침대 위 이불 속으로 들어가 먼저 누우니, 쭈뼛거리던 시연이 이불 위에 조심스레 누웠다. 옆으로 누운 채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 거리가 꽤 가까웠다. 그녀의 포근한 향기가 오롯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 기분이 좋아 싱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약간 우울한 듯한 표정의 그녀가 보였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니 그녀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 ... 항상 이렇게 잠을 설치니? "


" 어? 뭐.. 그렇지? "

" 잘은 모르겠는데 옆에 누가 있으면 잠이 잘 오더라고. "


" 그 전에는 누구랑 잤는데? "


" 그런 사람이 있던 건 아니고.. 수련회나 친구네 집에서 잘 때 말이야. "

" 남들은 잠자리가 바뀌면 잠이 안온다는데 난 옆에 누가 있으니까 오히려 잘 오더라구. "


" ...근데 왜 혼자 자? "


" 아빠는 늘 바빴고 이 집엔 삼촌들 뿐이니까. "


그녀가 더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꾹 다문 입술이 귀여우면서도 심각한 표정에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뭐가 널 그렇게 화나게 만든 건지. 시연은 한동안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다,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 앞으로는, "

" 앞으로는 내가 옆에 있어줄게. "

" 시간 되는 날마다 꼭 찾아올게.. "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가슴이 저릿했다. 내가 왜 이러지. 살면서 들었던 말들 중 가장 가슴 떨리는 말이 있다면 그건 방금 그녀가 한 말이고, 가장 가슴 떨리는 순간이 있다면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있는 이 순간이었다. 힘에 겨울 정도로 심장이 자꾸만 두근거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분명 잠이 와야 하는데. 내가 잠들어야만 네가 갈 수 있는데. 한동안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녀는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내곁을 밤새 지켜주었다.




" 부스럭 "


새벽 늦게 잠이 들어 꽤나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이른 아침. 분명 자고 있는 것 같은데 품 안에서 무언가가 자꾸만 몸을 부스럭거린다. 이불이 왜 움직이지. 아니, 베개를 안고 있으니까 베개가 움직이는 건가- 몽롱 하면서도 감촉은 꽤나 생생한 게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분이 들었다.


" 가만히 좀 있어.. "

" 어? "


베개를 더 끌어안으려는데 묵직하게 끌려오는 느낌에 감고 있던 눈을 슬쩍 떴다. 잠결에 계속 눈이 감겨서 이게 뜬 건지 감은 건지 모르겠다. 품안을 내려다 보니 시연이 내 품속에서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꿈이었구나. 피식 웃고는 그녀를 더 끌어안으며 말했다.


" 예쁘다. "

" 매일매일 보고 싶어. "

" 멀리 가면 안돼. "


그리고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 피곤하다. 한번 꿈을 꾼 뒤로는 깨지도 않고 다른 꿈도 꾸지 않았다. 따듯하고, 포근해서 계속 잠들고 싶었다.

눈을 떴을 땐 아침 시간을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원래 오래 자면 오히려 몸이 찌뿌둥해지는 편인데 오늘은 몸이 개운했다. 기지개를 펴며 침대에서 내려가려는데 이불 속에 뭔가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무엇인가, 하고 이불을 걷어내니 주먹을 꼬옥 쥐고 잠이 든 시연이 보였다. 뭐지? 내내 같이 잔 건가?


" ... 시연? "


" 으으음... "


" 시연. 너 여기서 잔 거야? "


내 물음에 비몽사몽하던 그녀가 눈을 번쩍 뜨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째 나보다 더 놀란 표정이다. 난 네가 옆에서 계속 있었던 줄도 몰랐는데. 아까 시연이 내 품속에 있던 게 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시연이 왜 이렇게 놀란건가, 하고 생각해보니 그것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근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있는 사실을 말한 것 뿐인데. 지금이라도 당장 말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 안색이 안 좋아. 잠 설쳤어? "

" 내 옆에서 억지로 자느라 그런 거야? "


" 아니, 그건 아니야. "

" 그냥... 꿈 때문에... "


이쪽도 꿈인 줄 아나보다. 저렇게 당황해 하는데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겠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는데 시연이 조심스레 물어온다.


" 혹시 아까... "


" 아까 뭐? "


" ..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


" 너 예쁘다고 한 거? "


" !!! "


애써 침착하려던 그녀가 깜짝 놀라 움찔하는 게 보였다. 놀랄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놀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냥 대놓고 말해주기로 했다.


" 너 예뻐. 그래서 매일 보고 싶어. "

" 이런 말 해주면 안되는 거야? "


내 말을 들은 시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못하는 시연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한동안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눈을 피하던 그녀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 ... 아니... "

" 해도 괜찮아. "


그녀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나보다 훨씬 어른이면서 한번씩 보면 정말 어린애 같다. 물론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

" 이렇게 해서 너는 빚을 얼마씩 탕감받고 있는 거지. "


내게 무릎베개를 해주며 머리를 어루만지던 시연에게 물었다. 그녀가 우리집에 드나든지도 벌써 몇 개월 째였다. 시연을 만났던 가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 왔다. 그동안 그녀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함께 있는 때가 늘었으며, 서로를 만지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가벼운 스킨십 정도는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이. 난 시연의 손을 잡고, 시연이 나를 어루만질 때 기분이 좋아서 계속 그렇게 있고 싶었지만 시연은 나를 그냥 어린 애나 챙겨주고 싶은 친한 동생 쯤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나도 그녀를 그런 눈으로 봐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심술이 났다. 정말 왜인지 모르게. 그래서 그녀가 싫어할 줄 알면서도 못된 말을 하곤 했다. 나의 물음에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 .... 빚 때문에 오게된 건 맞지만, "

" 빚 때문에 계속 있는 건 아니야. "


그녀의 대답에 반쯤 감고 있던 눈을 바르게 뜨고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정작 의미심장한 말을 한 그녀가 당황한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지.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당황해서 얼굴까지 붉어졌다니.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잘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 그럼 뭐 때문에 계속 있는 건데? "


" ... "

" 아니야. 내가 잘못 말했어. 빚 때문 맞아. "

" 꽤 많이.. 줄어들고 있으니까... "


그렇다면 뭐. 당황해 하는 시연을 더 놀려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계속 캐묻다간 갈 시간이 되었다며 가버릴지도 모르니까. 아직은 조심스러운 사이였다. 지금도 충분히 가까운 사이지만 지금보다 더 가까이 발을 들이면 두 걸음 물러서는 그녀였기에,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도 나름 적응하며 지내는 중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올 거란 기대는 한 적도 없지만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녀를 올려다 보던 눈에 힘을 풀고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 그렇구나. 조금 아쉽네. "

" 그나저나 나 벌써 3학년이야. 내년엔 고등학생이 될 텐데. "

"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는 것 같아. "


" ... 나는 너무 더디게 가는 것 같은데. "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그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 빨갛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겨우 내뱉은 것 같아 보였으니 말이다. 어린 나는 그녀의 표정이나, 행동들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모두 이해할 날이 오겠지, 하고 생각하며 오늘보다 내일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길 바랐다.




-


" 아까 뒷마당에 있던 거 봤는데. "


잘 시간이 조금 넘은 시각, 집안을 조심스레 돌아다니며 시연을 찾았다. 원래 내가 침대에 눕는 시간에 딱 맞춰서 오곤 했는데 오늘은 20분을 넘게 기다려도 그녀가 방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시연이 말도 없이 가버릴 일은 없었다. 딱히 바쁜 일도 없었다. 우리집에서 나 돌보는 일 말고 뭐 할 게 있다고. 어디 화장실에라도 갇힌 건가 싶어 걱정이 되어 그녀를 찾아나섰다. 뒷마당도 찾아볼 생각으로 가디건을 걸치고 시연의 것도 준비했지만 방을 나선지 3분도 채 되지 않아 시연을 찾을 수 있었다. 반쯤 닫힌 거실 유리문 사이로 작은 불빛이 새어나와 조심스레 다가가니 작은 등을 켜놓은 채 홀로 앉아 있는 시연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왜 여기 있냐고 물으려다 왠지 모르게 다가가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방금 전까지는 못 보았던 것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녀가 흐느껴 우는 뒷모습이나, 힘없이 떨군 고개 같은 것들. 나를 안아줄 땐 정말 한없이 넓어 보이고 따듯했는데 지금 보는 그녀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작고, 쓸쓸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가슴 안쪽이 저릿했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힘없고 작은 등을 안아주고 싶다고. 주종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싶다고. 왜 항상 네가 오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설레일까. 너를 보면 왜 가슴이 떨릴까. 너와 있으면 왜 이렇게 행복하고, 자꾸 보고 싶고, 헤어지기 싫은 걸까. 변화를 인지하는 데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변화의 이유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널 사랑해서 그런 거구나.



-


시연 향한 마음을 깨달은 뒤엔 조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원래 자존심도 세고, 제멋대로인 사람인데 시연에게만큼은 그게 안되었다. 나도 모르게 배려하고, 부드럽게 속삭이고, 자주 웃어주었다. 누가 봐도 차별 대우가 심한데 내가 시연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시연이나 다른사람이 못 알아챌 리가 없었다. 전에는 몰랐는데 그게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게 느껴졌다. 시연의 눈엔 내가 꼬맹이로밖에 안 보일 텐데. 귀여운 짓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계속 어린애로만 보이는 건 싫은데.. 시연을 향한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하면서도 조금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 변덕스럽고 철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난 원래 제멋대로에 이런 게 서툰 사람인걸. 그래도 뒤에서 지켜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 괜찮니? 무슨 일이야. 약은 먹었어? "


시연이 다급한 얼굴로 나를 찾았다. 뒤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무슨, 감기몸살 하나 때문에 바로 앓아 누웠는데. 내가 아파서 간호를 봐달라는 연락을 받은 시연은 오늘 우리집에 오는 날이 아닌데도 곧바로 찾아왔다.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급하게 뛰어와서 숨을 가쁘게 내쉬며 나를 바라보는 시연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유치한 이유로 걱정 시키기 싫었는데.


" .... 괜찮아. 약은 먹었어. "


" 좀 괜찮아진 것 같아? 푹 쉬고 있어. 계속 옆에 있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말하고.. "


아파서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좁은 시야 사이로 시연이 보여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나도 많이 어리긴 한가 보다. 너를 보니까 다 낫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연을 보니 확실히 덜 아픈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는 죽을 것 같다, 했는데 지금은 살만 하다 정도?




" 으으... "


시연 버프는 밤에 통하지 않나보다. 낮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뜨거워서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고 몸은 너무 무거워서 손가락 마저도 까딱할 수 없었다. 기절해서 꿈속을 헤매는 건지 살아는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 병원.. 응급실이라도 가야 하는데- "


불덩이 같이 뜨거운 내 이마를 만져보고 당황한 시연이 허둥거렸다. 더 걱정시켰다간 정말 구급차를 부르던 뭔 일이 날 것 같다. 겨우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시연에게 괜찮다는 말을 건네었다. 진정이 된 걸 보니 조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시연이 다가와 내 손을 잡고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있으면 불편할 텐데. 걱정이 되는 와중에 그녀가 잡아 준 손이 따듯해서 곧바로 잠이 들고 말았다.




"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이런 모습 보여주면 안되는데... "


자다깨다 하며 헛소리를 내뱉다, 몸에 힘이 풀려 더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손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따듯하고 부드럽다. 밤새 이렇게 계속 손을 잡아주면 내일 아침엔 다 나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고등학교 생활은 어떻니. "

" 벌써 2학년인데 한 번도 말해주지 않으니 너무 궁금한걸. "


시연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무슨 재미난 일이 있었다면 바로 말해주었겠지만 내 관심사는 온통 시연이라 딱히 해줄 만한 얘기가 없었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너에게 고백할 날만 목 빠지게 기다리느라 학교 생활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어,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냥 그럴듯하게 지어내면 그만이었다.


" 음... 그냥 뭐, 별 거 없어. "


" 정말? 아무것도? "


" 딱히. "


내 대답에 시연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할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분명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보이는 눈치인데. 알고 싶은 게 있으니까 물어본 것 같은데.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는 건 내 타입이 아니라 그냥 대놓고 물어보았다.


" 궁금한 거 있어? "


" 아니? 없는데.. "


" 좋아하는 사람이라던가 뭐 그런 거? "


" 아니! 아니야, 안 궁금해. "


" .... "


" ..... "

" 사실 궁금해.. "


시연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럼 그렇지. 피식 웃으며 어떻게 말해줄까, 하고 생각했다. 있다고 하는 게 좋으려나.



" 좋아하는 사람 있지. "


" 정말?? "


" 응. 엄청 어릴 때부터. "


" .... "

" 지금도 어린데 무슨.. "


시연이 조용히 혼잣말했지만 제대로 들었다. 순간 기분이 상해 얼굴이 구겨졌다. 내가 지금 누구를 생각하면서 하는 말인데. 심술이 나서 아무렇게나 막 말을 내뱉었다.


" 난 딱 20살 되면 그사람한테 고백할 거야. "

"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누굴 좋아해 본 적도 없었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와중에도 다른 사람이 좋아져본 적도 없어. "


사랑이라는 말에 그녀가 멈칫했다. 사춘기 소녀의 철없는 감정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오산이었다. 크게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표정이 조금 굳어진 게 보였다. 내가 얼마나 진심인지 조금은 알겠지.


" ... 그렇구나. 좋은 사람인가봐. "


" 응. 다정하고 사랑스러워. 가끔 어른처럼 굴 땐 조금 미운데 예쁘니까 얼굴 보면 미운 마음이 다 사라져. "


" ... 예쁘다고? "


" 그냥 예쁜 게 아니라 엄청 예쁘- "


아차. 말실수를 한 건가. 시연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녀의 반응에 머쓱해하며 눈치를 보니,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 그녀였다.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 시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조금 화가 난 듯해 보였다.


" 그 사람은 안될 것 같아. "


" 왜? "


" 미성년자에게 그런 마음을 품었다니. 불건전해. 나쁜 어른이야. "


" 아니. 내가 반한 건데? "


" 반하게 만든 것도 마찬가지야. "


진지한 시연의 얼굴을 보니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금 누구 얘길 하는 건데, 이 여자야. 미성년자는 안된다는 걸 보니 고백은 한참 미뤄야지 싶었다. 지금껏 참아왔던 것처럼, 1년 정도는 얼마든지 더 기다릴 수 있었다.



-

" 모두들 수고했고, 졸업식 때 보자- "


집으로 향하는 길이 소풍을 가는 것처럼 들떴다. 한 달만 있으면 이제 성인이다. 이제 나이 때문에 시연에게 들이대지 못할 일은 없다. 어엿한 성인으로서, 그녀에게 구애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나를 보는 네 눈빛이 조금 달라지겠지. 마냥 어린 애가 아니라 이젠 어른이니까. 마음을 전할 땐 어떤 선물이 좋으려나. 꽃? 데이트 신청? 그냥 좋아한다고 사실대로 말해버릴까?


들뜬 마음으로 시연을 찾았다. 오늘은 밖에 나가서 놀다 오자고 해야지. 맛있는 것도 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행복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던져버리고 시연을 데리고 나올 생각으로 가득했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활짝 웃는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집안 분위기가 어두웠다.


" 아, 아가씨 오셨습니까. "


" 어.. 근데 집 분위기가 왜 이래? "


다들 심각한 얼굴이 되어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는 삼촌도 있었다.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데 뒤늦게 나타난 큰삼촌이 어색하게 인사하며 나를 방으로 이끌었다.


" 어, 어. 왔구나. 분위기가 좀 그렇지. 방에 가 있어. 이따 저녁 먹을 때 쯤에 부를게. "


" 아니 나 나갈거라 그럴 필요 없어. "

" 시연언니 어딨어? "


내 물음에 눈을 피하며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는 그였다. 뭐야. 뭔데. 그들의 눈이 향하는 곳에 시연이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짜고짜 삼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삼촌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막으려던 손을 내렸다.


" ... 이게 뭐야? "


삼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곳에서, 예상했던 것처럼 시연을 만날 수 있었다. 한 가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있다면 그녀 옆에 앉아 있는 한 아이였다. 시연은 제 옆에 앉은 그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그녀의 눈물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니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몇년 전 그때처럼, 혼자 외롭게 울고 있던 그때처럼 흐느끼는 너를 보니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네 눈물의 이유는 이 아이구나. 그때도 이 아이 때문에 울고 있었던 거구나.


" 이거 뭐냐고. "


아이를 거의 노려보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꽤나 날카로운 말투에, 시연이 힘없이 고개를 들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 빨갛게 번진 눈가가 가슴을 미친듯이 헤집어 놓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반짝이며 눈물이 차오르는 시연의 눈을, 어떻게든 달래주고 싶었다. 눈앞의 아이를 만난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아이가 너무 미웠다. 이유는 모르지만 왠지 알 것 같았다. 최악의 이유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게 몹시 기분 더러웠지만 직접 듣는 건 더 거지같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여자를 울린 시점에서 이미 아이는 내게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 넌 왜 울고 있는 거고 얜 또 뭐냐고! "

" 내 말 안 들려? "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시연을 보며 소리쳤지만 그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서있는 것도 버거웠다. 아니, 대체..


" 너... "


" 방으로 가자. 삼촌들이랑 먼저 잘 얘기 나누고 시연이도 진정되면 올려 보낼테니까 먼저 가 있어. "


삼촌의 말에 덩치 큰 삼촌이 번쩍 나를 들어 안았다. 버둥거릴 힘도 없었다. 말없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 앉았다. 멍하니 앉아 있으니 눈물이 차올랐다. 분명 집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망친 하루가 된 거지. 이렇게까지 엉망인 하루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 똑똑 "


시간이 얼마나 흐른 뒤였을까. 노크 소리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한참 전부터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무릎에 처박고 있었더니 주위가 어두워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노크 소리가 들리고 조심스레 방문이 열렸다. 캄캄한 방에 밝은 빛이 잠시 새어들어왔다가,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다시 어두워졌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들어온 사람이 시연이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 .... "


시연이 말없이 손을 잡았다. 그쳤던 눈물이 다시 차오를 정도로 따듯하고 고운 손이었다. 시연의 손을 꼭 잡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애는 누구고, 넌 왜 울고 있던 거고, 삼촌들은 왜 심각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시연이 먼저 무슨 말이든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슬픈 표정을 한 그녀의 얼굴이었다.


" 있잖아... "

" 나 이제.. 여기 더 못 올 것 같아.. "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네가 떠난다는 결말은 내 예상에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갑자기? 대체 왜?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에 놀라서 잠시 동안 말문이 막혔다. 거짓말이지. 나 놀리는 거지-


" 옆에 있던 그 애 때문에 그런 거야? 걔가 대체 누군데 그래. "


내 질문에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시연이 입을 열었다. 자기 애란다. 애 아빠가 키우고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죽어서 자신이 키워야 한단다. 어이가 없었다. 그 나이에 저렇게 큰 애가 있었다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애를 맡게 된 이유도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걸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 다음에, 다음에 꼭 찾아올 테니까.. "


" 다음이라니. 안 떠나면 되잖아. 그냥 나랑 있으면 되잖아. "

" 이런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마. "


시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떨리는 그녀의 손이, 그녀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네가 나를 떠난다는 사실에 순간 어이가 없다가도, 서러움과 함께 화가 치밀었다. 애원해보고, 화도 내봤지만 그녀의 슬픈 얼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내가 언제 너 말 안 들은 적 있어? 가지 마. 이렇게 부탁할게. 제발, 응? "

" 너 이렇게 가버리면 너 진짜 미워할 거야. 절대 안봐줄 거니까 알아서 해- "


그녀의 침묵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아니라고 말하면 되잖아. 안 떠날 거라고 말하면 다 괜찮아지는 거잖아. 네가 없는 내 삶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내 곁에 없는 널 잠깐 상상하는 것도 이렇게나 미칠 것 같은데 현실로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심장을 도려내도 지금보단 덜 아플 것 같았다. 뜨거운 숨이 차서 숨쉬는 것마저 고통스러웠다. 제발. 어떤 말을 해야 너를 잡아둘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네가 나를 봐줄 수 있는 건데. 지금 난 그 누구보다 간절하고 처절했다. 내 마음을 이런 식으로 전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무슨 수를 쓰더라도 너를 잡아두고 싶었다.


" 가지마... "

" 나 너 좋아한단 말이야... "


시연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너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으로 빠뜨렸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시연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나를 안아주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자꾸 눈이 가려던 걸 겨우 참으며 눈물을 닦았다. 우리의 첫번째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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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하느라 더 애먹었네.. 사실 아직도 마음에 안 듬

여기까지 읽어준 백붕 너무 고맙다 클스마스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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