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세계 최고의 밴드 보컬이 되겠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아마추어 클럽 보컬

술에 찌들어 살아서 이제 목소리도 잘 안나오고 걸핏하면 리사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만

리사는 열심히 네일 숍 일을 하며 웃는 얼굴로 살아가는 데,

어느 날 잘나가는 대기업 임원이 된 사요가 그런 리사를 보고 만거임.

처음엔 그냥 네일 숍 운영하면서 잘 지내는 줄 알았는 데

리사 어깨에 난 멍자국 보고 리사 집에 몰래 찾아가 봄.

그리고 거기서

"향수 냄새가 나잖아! 오늘 누구 만났어!"

"유키나, 그런 게 아니라......"

"시끄러! 내가 이런 꼴이 됐다고 날 버릴거지! 바람 피는 거잖아! 너도 내가 우스워?"

"유키나! 제발 그만해! 아악!"

리사를 발로 걷어차며 괴성을 지르는 걸 본 사요가 방에 들이닥쳐서 리사와 유키나 사이에 끼어드는 거임.

그걸 보고 유키나는 더 화내면서 리사에게 지조없다느니, 이런 짓을 하다니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느니 폭언을 내뱉음.

"그만하세요 미나토 씨."

그리고, 사요가 그런 유키나를 말리는 데 그 순간 둘의 눈이 마주침. 예전에 밴드활동할 때 보였던 존경심이나 친밀함은 조금도 없는, 경멸이 가득한 눈동자를 보고

유키나는 갑자기 냉정을 되찾음. 허탈한 숨을 뱉으며 자리에 주저앉고, 리사는 몸을 떨면서 사요에게 말함.

"괜찮아 사요. 응? 그냥 우리 모두 화 낼때가 있잖아? 돌아가 줘."

"나가죠. 이마이 씨."

"아니, 잠깐만.... 손 좀 놔봐... 괜찮다니까?"

사요는 무턱대고 리사를 억지로 끌고나가려고 하고, 리사는 저항하지만 옛날 고등학생 시절보다 훨씬 힘이 없어서 사요한테 질질 끌려감.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차에

유키나가 말함.

"가지마."

"사요가 그 말에 멈추고, 리사가 그 틈에 사요의 손을 풀고 다시 유키나에게 다가감.

"유키나. 괜찮아? 응?"

유키나는 우울하게 축 처져서 멍하니 앉아있었음. 리사가 그런 유키나 옆에서 머리카락도 다듬어 주고, 옷매무새도 정리해줌.

"이마이 씨."

사요가 그런 리사가 기가막혀 부르지만, 리사는 유키나에게 집중함.

"괜찮아, 유키나. 응. 나 어디에도 안가."

"이마이 씨 정신 차리세요. 저 사람은 이제 그 옛날 미나토 씨가 아니에요."

".......네가 뭔데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해?"

그리고 그 말에 어그로가 끌린 유키나가 일어나는 거임. 그리고 사요랑 드잡이질을 하려고 하지만, 술에 찌든 몸으론 사요를 이기기는 커녕 밀어내지도 못했고

허무하게 바닥에 내팽개쳐짐. 그리고 다시 한 번 유키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사요는 리사의 손을 붙잡고 끌고나가버림.

"리사, 가지마! 가지말라고!"

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하염없이 리사 이름을 부르던 유키나는 그대로 울다가 잠들고

.

.

.

.

.

다음 날 아침, 유키나가 일어났을 때 집 안은 깨끗하게 치워져있었고 리사가 아침밥을 만들고 있었음. 창문엔 햇살이 비치고,

여느 때보다 한결 더 포근한 분위기에 유키나는 생경한 기분이 들어 눈만 끔뻑이며 주방을 쳐다보고 있었음.

"리사?"

리사는 그 말에 돌아보곤 한 번 씩 웃곤 아침밥을 식탁 위에 차려둠. 유키나는 고개를 저음.

"배고프지 않아."

"그럼 나중에라도 챙겨먹어."

"리사, 어디가?"

"응?"

그제서야 유키나 눈에는 현관 앞에 놓인 가방들이 들어왔음. 옷가지며 짐들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들은, 처음 리사랑 여기서 동거하기로 했을 때

리사가 중고 시장에서 싸게 샀다며 좋아하던 그 가방이엇음. 리사는 말을 돌리려다 한 번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염.

"어제 사요랑 이야기를 해봤는 데....."

지금 이대로 유키나랑 같이 사는 건 둘 다에게 도움이 안된다. 유키나가 재활할 수 있게 자기도 도울테니 리사도 협력하라 이런 이야기였음.

유키나는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할 말이 없었음. 문득 리사 손을 내려다보니, 리사한테 끼워줬던 반지가 없었음. 그리고 어제 사요랑 이야기를 해봤다,

이 이야기가 갑자기 머리 속을 맴돔. 사요랑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만 했나? 날 버리고 도망치려는 게 아니라? 머리에 불이 붙는 기분이었음.

리사가 잠깐 방에 뭣 좀 가지고 온다고 들어가자, 유키나는 저도 모르게 그 뒤를 따라 들어감.

"유, 유키나?"

"날 버리려는 거지?"

"유키나 잠깐만....."

"날 버리려는 거잖아!"

리사의 멱살을 틀어쥐고 바닥에 밀어붙임. 바닥에 부딪힌 리사가 켁켁대며 유키나의 손을 잡아 말리려고 하지만, 흥분한 유키나를 막을 수 없었음.

"너도 똑같아! 날 버리고! 날버리고 도망가려는 거잖아! 아코도! 사요도! 린코도! 다 똑같아!"

"유, 유키나...지, 진정...."

"너도 필요없어! 다 필요없다고!"

"케흑...컥...."

목을 조인 손에 힘이 들어가고, 리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가 하얗게 질리며, 유키나의 팔을 붙잡던 손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가 툭 떨궈짐.

몇번이나 유키나를 부르며 달싹이던 입술이 멈추고, 기분나쁠 정도로 조용해진 방 안에서 유키나는 겨우 진정함. 그리고 숨을 쉬지 않는 리사를 보고

제 풀에 놀라 방 구석으로 도망치며 소리지름

"으, 으아아!"

방 안에서 난동을 피운 탓에 어지러진 방 침대 바로 아래에는 싸구려 플라스틱 반지 두 개와 편지 한 장이 떨어져 있었음.

유키나는 쓰러진 리사 옆에 떨어진 그 편지를 조심스럽게 읽어 봄.

- 미안해 유키나. 재활 센터 비용이 비싸서 반지를 팔아야 했어. 내일부터 여기 재활 센터로 가서 치료받으면 될거래.

사요가 대신 내준다곤 했지만, 그래도 그런 것까진 부탁할 수 없었어. 유키나. 나는 유키나가 최고의 보컬이라고 생각해.

지금은 그냥 살짝 슬럼프가 온 것 뿐이잖아? 힘든 일을 이겨내고나면 빛이 올거라고 그랬어. 다 낫고 나면 네일 숍으로 와줘.

난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추신 : 반지는 나중에 유키나가 멋진 보컬이 되면 다시 좋은 걸로 바꿔줘?

"리사?"

하지만 리사는 대답하지 못했음. 이미 죽어버린 리사는 싸늘하게 식은 채, 눈 감고 있을 뿐.

"계십니까. 사요에요. 히카와 사요. 데리러 왔어요 이마이 씨. 미나토 씨에겐 설명드렸나요?"

그리고 현관문을 사요가 두드리고, 편지와 리사를 번갈아보던 유키나는 베란다 창문을 바라봄. 집은 맨션 5층이었음.

창문이 열리고, 기다리다 못한 사요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유키나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