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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소백) 길 잃은 천사와 눈 먼 소녀의 이야기

고요한새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24 00:28:45
조회 567 추천 15 댓글 3
														


“주무님, 아까 아동보호센터에서 연락 왔었어요. 오늘도 야근하실 거 아니죠?”
“아, 그래? 어쩔 수 없지. 민주씨는 먼저 퇴근해.”
“은성이 데리러 가셔야 하는 거 아녜요?”


 진경은 황급히 손목에 찬 시계를 본다. 6시 25분, 창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의자에 대충 걸쳐있는 코트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뚜르르- 뚜르르-. 응답이 없는 연결음은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탈칵-. 진경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목을 가다듬었다.


“경감님~ 저 지금 거의 다 왔어요!”
[아니, 진경씨. 우리 공무원이야.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나도 퇴근 좀 하자. 어?]
“에이, 경감님도 참. 그러면서 저 기다리고 있으셨죠?”
[안 그러면 나 또 한참 시달려야 하잖아.]
“저….”


 진경이 말끝을 흐렸다.


[안 돼.]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런 현장, 애한테 하나도 좋을 거 없다는 거 잘 알잖아. 데려오지 마. 특히 이번엔 더 심각해. 좋지 않아.]


 전화를 끊는 진경의 표정이 어둡다.




-----




“은성아, 있지. 오늘도 엄마가….”
“알아. 도와줘야 되는 친구가 있는 거잖아.”


 진경은 운전대를 잡지 않은 손으로 은성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뽀스락-. 은성은 과자봉지 안에서 별사탕을 찾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손끝에 잡힌 별사탕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향을 맡고, 다시 한 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굴린다. 그리고 입 안에 쏙 집어넣어 맛을 음미했다.
 두 사람을 태운 회색 승용차는 한참을 달려 병원 앞에 멈춰 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면에 [한빛아동병원-아동정신심리학과]라고 적혀있다. 그 아래로 나열된 여러 이름들 중에서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미 저만치서 하얀 가운을 입은 혜정이 다가오고 있다. 혜정은 손을 흔들고 있는 진경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은성에게 다가가서 양 볼을 마구 꼬집는다. 은성이 인상을 찡그리자 혜정은 실없이 웃었다.


“오늘은 뭘 하고 놀까, 예쁜이?”
“엄마, 나 따라가면 안 돼?”
“카드 보면서 이야기 만들기 해보는 거 어떨까, 재밌겠지?”
“선생님은 자꾸 나한테 뭐 시킨단 말이야. 응?”
“아니면 오늘도 은성이가 좋아하는 그림그리기 할까?”


 듣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서로 하고 싶은 말만 내뱉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런 둘을 중재하며 진정시키는 것은 진경의 몫이다. 은성을 타일러 혜정의 손에 넘겨주고는 진경은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갔다.

 진료실 안, 은성은 탁자 위에 놓인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혜정은 잔에 따른 커피 향을 맡으며 은성의 맞은편에 앉는다. 탁자 아래로 은성의 다리가 까딱이는 게 보인다.


“다리 떨지 마, 그러면 복이 달아나는 거야.”
“잔소리쟁이 할머니.”
“뭐? 아니, 이모도 아니고 할머니라니. 언니라고 부르랬잖아.”
“머리가 하얗게 되면 할머니야.”
“얘, 이건 새치야, 새치!”


 은성은 혜정의 반응을 즐기며 그림그리기에 집중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 갈색의 긴 머리가 구불거리고, 검은 치마에 빨간색 뾰족구두를 신고 있다.


“왜 가슴이 없어? 여기 봐봐. 이렇게 큰데?”


 혜정은 탁자 앞으로 가슴을 들이밀었다. 은성은 귀찮다는 듯이 아무색이나 집어서 커다란 동그라미 두 개를 그린다. 혜정은 그제야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분홍색 연기 같은 건 뭐야?
“선생님 냄새.”
“그럼, 여기 갈색 연기는?”
“커피 냄새.”


 혜정은 색을 칠해나가는 은성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정말이지 섬세한 아이야.’




 서너 시간쯤 흘렀을까. 문 밖에서 혜정의 통화 소리가 들린다. 소파 위에 잠들어있던 은성이 깨어나,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창밖으로는 짙은 어둠이 깔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은성은 덮고 있던 담요를 옆으로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나 화장실.”


 은성이 문을 열고 나와, 가운 끝을 잡아당기자 혜정은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허리를 낮춰 은성과 눈을 맞춘다.


“잘 잤어? 엄마 곧 오실 것 같아. 우리 마중 갈까?”


 그 말에 은성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소등시간이라 병원 내부는 어두웠다. 간간히 있는 조명과 비상등만 약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은성은 혜정의 손을 잡고 계단을 타박타박 내려갔다. ‘엄마를 만나면 선생님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게 해줬다는 얘기를 해줘야지. 그리고 또 내가 카드 게임에서 이겼다는 거랑….’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로비에 도착해있었다.
 진경은 정문이 아닌, 응급실 쪽에서 걸어 나왔다. 진경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 같은 형체가 어른거렸다. 은성은 걸음을 멈추고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어쩐지 서로가 대치하는 형태가 되었다.
 진경의 등 뒤로 작은 어깨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검은 머리칼이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은성은 뭔가를 기다리듯이 그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은 거야?”
“어쩐지 떨어지질 않으려 해서 말이야.”
“상태는?”
“일단 간단한 치료는 했어. 하지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
“그럼 어떻게 할지는 정했어?”


 진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 너한테 딱 붙어있는 거 보면, 그 편이 그 아이한테도 안심일 테고.”


 진경은 몸을 낮춰 은성과 눈높이를 맞춘다. 그러자 진경의 어깨너머로 아이가 살짝 드러났다. 속이 비칠 듯이 얇은 원피스 아래 보이는 새하얀 다리와 얼룩진 상처들. 위에 걸친 진경의 코트가 무거워 보일 정도로 작고 가녀린 몸. 옷깃을 꽉 쥔 아이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길게 내린 검은 머리칼, 그리고….


“은성아, 울어? 왜 울어?”


 진경의 말에 은성의 흐느낌이 더 격해졌다. 눈물이 방울져 뚝뚝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은성의 반응에 진경은 당황하며 혜정을 쳐다봤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은성은 혜정의 손을 놓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간다. 어쩐지 소매로 닦아내도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은성은 아주 천천히 그 아이 앞에 멈춰 섰다. 그 아이가 겁먹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은성은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평소처럼 활짝 웃었다. 아니, 더 밝게 웃었다.


“너 정말 예쁘구나.”


 은성은 그제야 알았다. 알 수 있었다. 왜 ‘예쁘다’라는 표현이 있는 건지. ‘예쁘다’는 게 어떤 것인지. 사람의 눈은, 코와 입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것을 보는 게 어떤 느낌인지. 그 순간이 처음이었다. 은성은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웃고 있는 중에도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그래도 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림으로만 보았던 것들이 실제로 눈앞에 있었다. 눈도, 코도, 입도. ‘이게 얼굴이야. 이게 표정이구나.’ 이제껏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은성은 천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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