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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사린백) 히카와 사요의 잃어버린 주도권을 찾아서 1

식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26 00:06:18
조회 1180 추천 37 댓글 16
														

잃어버린 주도권을 찾아서


언제나 그렇듯 밝은 낮이 지나면 어두운 밤이 찾아온다. 이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상의 진리일 것이다. 오늘따라 유독 짙은 밤하늘 덕에 노란 빛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뽐내는 달과 그 주위를 은은한 빛을 가진 별들이 장식하고 있었다.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구름 한 점 없이 날이 맑게 개여 볼 수 있는, 도시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절경이었지만 지금 로젤리아의 피아니스트 시로카네 린코는 그보다 더 한 절경을 눈에 담느라 한가로이 밤하늘을 볼 시간은 없었다.


시로카, 흐윽,”


깊은 어둠 속에서 몸 속을 맴도는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야릇한 숨을 내뱉는 같은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선사하는 절경을 눈에 담으며 린코는 손을 더 거세게 움직였다.


하읍!”


입술을 꽉 깨문 것도 모자라 행여 소리가 새어나갈까 손으로 이중보안을 해버린 사요에게선 억눌린 신음만이 새어나왔다.


히카와 씨.”


사귄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몸을 섞었으면서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는게 부끄러운지 항상 조금 소리가 크게 날 것 같으면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는 사요를 내려다 보던 린코는 막힘 없는 연인의 달콤한 신음 소리를 듣고 싶기도 하지만 언제나 딱딱하게 행동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볼 땐 차가운 사람이라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로젤리아 기타리스트의 아무나 보지 못하는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작게 미소 지으며 땀으로 젖어 축축한 그녀의 앞머리를 넘겨주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한 차례 절정이 지나가고 거칠어진 숨을 고르는 자신의 앞머리를 넘겨 드러난 이마에 입을 맞추는 린코의 애정을 받아들이며 사요는 지난 날들을 회상했다. 분명 고백도 내가 먼저하고 손도, 입맞춤도, 전부 내가 먼저 했었는데..


히카와 씨.”


아직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았건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사요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연인의 모습에 옷이 반쯤 벗겨진 자신이 창피해진 사요가 모든 단추가 풀어져 거의 벗겨지기 직전인 와이셔츠로 몸을 가리며 대답했다.


?”


아직 더 할 수 있으시죠?”


단추를 구멍에 끼우려는 사요를 손에 깍지를 끼는 것으로 제지한 린코의 물음에 사요는 규칙적으로 적당한 운동을 하는 자신보다 훨씬 집에 있는 시간이 길면서 지치지도 않는 연인을 단념시킬 핑계거리를 찾아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히카와 씨?”


하지만 22, 일평생 정직과 성실을 모토로 살아온 사요에게서 이렇게 금방 좋은 거짓말이 생각날 리가 없었다.


, 잠시만요.”


기본 온화하고 수동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밤만 되면 적극적으로 변하는 린코의 손을 다급하게 막은 사요는 어차피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좋은 변명거리를 생각해내지 못할 스스로를 너무도 잘 알기에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 내일 실습에,”


알아요. 저도 내일부터 실습이니까요.”


그걸 아는 사람이 이렇게 밤 늦게까지 잠도 자지 않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잔소리를 간신히 꿀꺽 삼킨 사요가 남들이 보기엔 어색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엔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 이제 그만,”


한 번만 더 해요.”


아니,”


사요. 한 번만 더, 안돼?”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겨우 이름 한 번 불렸다고 목까지 붉어진 사요가 졌다는 듯 허락의 의미로 린코의 목에 팔을 둘렀다.


내일 무리 가지 않게, !”


부드럽게 해달라 부탁하려던 사요는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에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냈다. 난데 없이 목덜미에 이를 박은 연인에게 화를 내는 것보다 무심코 뱉어낸 자신의 큰 목소리에 놀라진 않았을까 걱정되는 얼굴로 린코를 살피던 사요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야살스럽게 미소 짓는 연인의 얼굴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은, 사요는 독백 하나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중요한 실습을 앞 둔 바로 전날 밤을 뜨거운 열락과 함께 보냈다.



* * *



여러분과 한달 동안 같이 수업을 하실 교생 선생님이예요.”


그래도 한 번만 더 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준 연인 덕에 어느 정도 잠은 잤지만 뻐근한 허리 때문에 죽을 맛인 사요가 자기소개를 하라는 듯한 지도 교사의 눈치에 입을 열었다.


한 달 동안 여러분과 함께 수업을 하게 된 히카와 사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딱딱 인사임에도 다행히 학생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설령 그 박수가 기계적일지라도 말주변이 없는 사요로써는 오히려 다행인 일이었다.


2주차까지는 수업 참관을 한다는 일정에 맞춰 사요는 열심히 자신의 담당 과목 교사를 따라다니며 4시간을 버텨냈다.


히카와 씨.”


?”


지도 교사가 두 팔 가득 안고 있던 수업 자료의 반절을 들어주던 사요가 교무실에 수업 교재들을 내려놓자 지도 교사는 수고했다며 그녀에게 점심을 권했지만 20분 전부터 도착해 있던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진 메시지를 상기시킨 사요는 헤실 풀어질 뻔한 입가에 힘을 주고 정중히 거절했다. 너무 무겁지도 않지만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


다행히 담당 교사는 일정을 안 물어본 자신의 잘못이라 말하며 사요를 보내주었고 사요는 또 다시 풀어지려는 입가에 힘을 주어 일자로 만들고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걸음을 재촉했다.


어디 있을까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사요가 잘 꾸며진 화단 근처의 벤치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는 린코를 발견하기 무섭게 싱긋 미소를 지으며 린코에게 달려갔다.


시로카네 씨, 많이 기다리셨나요?”


아니요.”


린코가 달려온 사요의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정리해주고 자신의 도움으로 다시 단정한 모습이 된 사요에게 도시락을 건냈다.


도시락 안 챙겨가셔서 제가 대신 챙겨왔어요.”


, 감사합니다.”


자신도 피곤할 텐데 아침 일찍부터 음식을 하고 있던 린코의 정성에 감동한 사요는 아무리 아침에 바빴더라도 도시락을 놓고 온 자신을 구박하며 자신의 몫까지 챙겨준 린코에게 감사함을 담아 두 손으로 도시락을 받았다.


괜찮아요. 히카와 씨 저 때문에 바빴잖아요.”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점점 풀리다 못해 더워지는 5월에도 조금 큰 하얀 셔츠 안에서 사요의 목을 철저히 가려주고 있는 검은 목폴라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는 린코 때문에 사요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숨기려 홱 고개를 돌리고 도시락을 열었다.


실습은 어땠어요?”


이렇게 티나게 말을 돌리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린코는 사요의 어리숙한 점을 보며 작게 웃음 짓고 벌써 귀까지 빨개진 사요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적당히 넘어가주기로 했다.


고등학교에 음악 수업은 많이 없어서 2시간만 참관하고 나머지는 자습이었어요.”


자기 소개 같은 건 괜찮았어요?”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많이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타인과 이야기 할 때 긴장하는 린코를 알기에 사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 전부 착한 아이들이라서 볼품 없는 자기소개도 무시하지 않고 수업 참관 하고 있는 저한테 먼저 다가와주기도 했어요. 긴장해서 대답은 제대로 못했지만요.. 이런 성격으로 나중에 수업,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의 단순한 물음에도 대답하지 못하던 자신을 떠올리는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구는 린코에게 사요는 젓가락을 놓고 조금 망설이다 린코의 비어있는 손을 잡았다.


괜찮아요. 4주 동안이나 있으니까 기회는 많이 남아있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데 4주가 지났다고 해서,”


시로카네 씨, 당신은 많이 달라졌어요. 스스로의 의지로 로젤리아에 들어오고 우다가와 씨 이외의 멤버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죠. 다른 밴드의 멤버들과도 친해졌고 수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의 라이브도 몇 번이나 훌륭히 성공시켰잖아요.”


그건 많은 분들이 이끌어주셔서 할 수 있었던 일이예요.”


잡고 있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간 것을 느낀 린코가 사요를 쳐다보았다. 자신감 없는 불안정한 보랏빛 눈동자가 당당한 녹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어젯밤과는 사뭇 다른 둘의 모습이었다.


아니요. 그건 당신의 노력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시로카네 씨, 당신의 노력을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사요의 말을 듣고 고개를 푹 숙인 린코는 이내 살며시 고개를 들어 자상하게 미소 짓는 사요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정말 치사한 사람. 스스로도 불공평한 투정임을 알면서 린코는 모른 척 당황한 사요에게 방금 전 그녀가 지었던 것과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 시로카네 씨. 여긴 학교,”


당황해 어버버 말을 더듬는 사요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댄 린코가 입을 열었다.


알아요. 그러니 수업에 늦기 전에 어서 도시락을 먹는게 좋을 거예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도시락을 먹는 린코를 붉어진 얼굴로 쳐다보던 사요는 뒤늦게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외진 곳이라 학생들도 교사들도 잘 다니지 않는 것 같았다. 음식을 입에 넣고 열심히 오물거리는 붉은 입술을 쳐다보던 사요는 홱 고개를 돌려 도시락에 코를 박을 듯 숙이고 묵묵히 도시락을 비워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자신만 휘둘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요가 풀리지 않는 의문을 생각하다 예전 린코가 자주 만나던 인물을 생각해냈다. 분명, 그 자가 첫 번째 열쇠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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