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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사린백) 린코가 힘을 숨김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29 22:50:46
조회 1976 추천 86 댓글 15
														


린코가 힘을 숨김



로젤리아가 회사라면, 분명히 악덕 기업일 것이다. 린코는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젤리아엔 휴일이란 개념이 없었다. 합주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이제 신곡에 익숙해졌다 하면 어김없이 다음 신곡이 나타났다. 숨 돌릴 틈이 조금 생겼다 싶으면 어디선가 공연 스케줄이 날아왔다. 가만히 앉아 쉬고 있으면 어쩐지 새로운 의상을 디자인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린코, 다음 공연에는 새 의상 어때?"

"린코, 여기 피아노 솔로 여덟 마디 추가하는 걸로 하자."

"린코……(깊은 한숨). 거기는 하프시코드 소리로 연주해야지."

악덕 기업 특징 첫번째. 죄다 사장님 마음대로다.

로젤리아 역시 악덕 기업답게 유키나 마음대로였다. 의상이든 피아노 솔로든 뭐든 까라면 까야 했다. 그러니 시험 기간이나 학생회 업무, NFO 레이드 일정 같은 것은 죄다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유키나는 그런 쪽으로는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십아싸에 수포자인 데다가 겜알못이기까지 한 유키나에게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주 52시간 근무 X, 휴일 보장 X,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 O……. 이런 개 형편없는 조건에서도 로젤리아를 계속했던 이유는 그래도 음악이 즐겁기 때문이었다. 평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할 정도로 잘 맞는 멤버들과, 신기할 정도로 취향에 딱 들어맞는 노래. 공연을 마치고 나면 뒤늦게 밀려오는 행복감…….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린코로 하여금 로젤리아를 계속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힘든 만큼 더 보람을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린코로 하여금 로젤리아를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시로카네 씨, 이번 이벤트 던전 말인데요. 탱커 혼자서 깨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이따 같이 파티로 해도 괜찮을까요?"

그건 바로 히카와 사요의 존재였다.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잘한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린코는 망설임없이 히카와 사요와 만난 것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잘한 일은 뭐냐고 묻는다면 히카와 사요에게 NFO를 전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NFO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공통된 취미에 대해 즐거운 얘기를 나눌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다 마주쳐서 얘기를 나누게 된다고 해도 금방 당황해서 별 말도 못 꺼낼 게 분명했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아니었다. 린코는 서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딜러 중 하나였다. 돈도 엄청 많아 사요가 원하는 템은 다 구해줄 수 있었다. 타자 속도도 800타는 거뜬히 넘겨 말도 잘 했다.

유키나와 린코의 차이가 바로 거기서 나왔다.

* 현실 찐따인가? 유키나: O. 린코: O.

* 넷상에서도 찐따인가? 유키나: O. 린코: X.

아무튼, NFO 안에서라면 린코는 사요를 위해 뭐든지 다 해줄 수 있었다. 비록 로젤리아 스케줄이 빡빡해서 하루에 많아야 한두 시간 정도밖에 즐기지 못했지만, 시간만 허락해 준다면 하루 온종일 사요를 데리고 이 던전 저 던전 다 돌아줄 수 있었다.

시간만 허락해 준다면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을 해 줬다.

로젤리아 결성 5년만에 처음으로 휴가라는 게 생겼다. 유키나가 직원 복지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건 아니다. 단지 리사와의 신혼여행 일정 때문에 선심 쓰듯 휴가를 선언했을 뿐.

그래도 그게 어디야!

린코는 이른 아침부터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발가락으로 전원 버튼을 누르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 히카와 씨. 오랜만에 같이 일퀘할래요? (´▽`)


아직 7시밖에 안 됐지만 부지런한 사요라면 분명 일어나 있을 시각이었다. 그리고…….

부우웅!

진동 소리에 호다닥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칼답장?!


- 린린! 아코 지금 일어났는데 오늘 같이 일퀘할까?


칼답장이 아니라 방해꾼이었다. 린코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짚으며 답장했다.


- 아코 짱, 미안……. 오늘은 히카와 씨랑 하기로 해서……. 아! 그러고 보니 TV에서 프리파라 애니메이션 특별편 방영한다고 했는데, 아코 짱은 그거 보는 거 어때?


아코는 스물 몇 살 먹고도 응애 시절 버릇 못 버려서 여아 애니라면 사족을 못 썼다. 눈치도 응애 시절 그대로였다.


- 앗, 그래? 알았어. 아코는 프리파라 보고 있을게! 린린은 사요 씨랑 게임 재밌게 해!


무사히 방해꾼을 물리쳤다. 쯧, 알아서 빠져 주면 얼마나 좋아! 그렇게 린코는 사요를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 * *



트라우룽이 숨을 깊게 들이쉽니다.

사요가 트라우룽을 도발합니다.


"히카와 씨, 지금이요……! 피해욧…… 브레스…… 구석으로……!"


RinRin이 죽었습니다.


"앗……."


트라우룽이 분노로 울부짖습니다.

사요가 죽었습니다.

파티가 전멸했습니다.


"오늘도 실패했네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뇨, 시로카네 씨. 도전하는 데에 의미가 있는걸요."

상냥한 사요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도전하는 데에 의미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린코와 사요가 벌써 일주일째 매달려서 도전하고 있는 '트라우룽의 둥지'는 이미 출시된 지 반년은 된 좁밥 던전이었다. 린코는 이 던전이 출시되는 날 바로 클리어를 했다. 그리고 나서도 먹고싶은 템이 하나 있어서 그거 먹으려고 백 번은 더 돌았다. 눈감고도 깰 수 있는, 졸면서도 깰 수 있는 좁밥 오브 좁밥 던전이었다.

그런 좁밥을 가지고 일주일째 트라이를 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히카와 씨랑 계속 게임하고 싶어…….'

유키리사 커플이 허니문을 떠난 지도 벌써 세 달째. 그동안 린코와 사요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같이 게임했다. 아코를 떼어놓기 위해 프리파라 블루레이 세트를 사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함께하는 동안 린코는 사요를 위해 아낌없이 자본을 쏟아부었고, 던전을 돌았으며, 업적을 깼다.

……그렇게 세 달간을 열심히 달리고 나니, 이제 깰 만한 던전은 트라우룽의 둥지밖에 남지 않았다. 그제서야 린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거마저 깨고 나면 같이 즐길 컨텐츠가 없다. 토끼겅듀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요와 함께하는 시간도 자연스레 줄어들을 게 뻔했다. 린코의 머릿속에서 그 이후의 장면들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제 할 게 없으니 NFO에 흥미가 떨어졌다며 접속이 뜸해지는 사요의 모습. 가끔 같이 접속해도 30분 정도 일퀘만 깨고 나면 땡 하는 사이. 게임 친구가 아니라 밴드 동료로 돌아가 합주 때에나 만나게 되는 그런…….

그래서였다. 마지막 남은 좁밥 던전을 눈앞에 두고 린코는 힘숨찐이 되기로 했다.

잘 모르겠지만 힘숨찐에도 등급이 있다. 힘을 숨긴다고 다 같은 힘숨찐이 아니다. 린코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아코에게 젖 먹이던 힘까지 다해 힘을 숨겼다.

트라이 첫 날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마우스로만 컨트롤했다. 커서가 스킬창과 트라우룽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동안 트라우룽은 광폭화를 해서 사요와 린코를 찢어발겼다.

둘째 날엔 사요 몰래 저렙용 무기를 바꿔 꼈다. 사요는 탱킹하느라 바빠서 린코의 딜량이 심상치 않게 낮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셋째 날도, 넷째 날도 그런 식이었다. 실수인 척 용암에 빠지기도 하고, 택배가 온 척 방을 나갔다가 10분 뒤에 들어오기도 하고……. 1주일째인 오늘은 유키나도 피할 수 있을 만한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아 줬다.

'너무 추한 거 아니야?'

마음의 소리가 가끔씩 양심에 호소했지만 싹 무시했다. 조금 추하면 어떤가. 사요 씨와 함께 게임할 수 있으면 추해도 좋았다.

사랑의 힘은 이토록 위대했다.


린코가 그렇게 힘을 열심히 숨기는 동안, 사요는 나름대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시로카네 씨, 하루도 빠짐없이 게임하더니. 너무 지친 거 아닐까?'

그도 그럴 게, 요즘 들어 평생 하지도 않던 잔실수가 부쩍 늘었다. 게임하면서 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갑자기 뒷걸음질치다가 용암에 빠지질 않나, 유키나 씨도 피할 정도로 뻔한 브레스를 맞지를 않나……. 혹시, 어쩌면.

'나랑 게임하는 게 질려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지난 3개월간 린코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사요와 함께 NFO를 했다. 그것도, 같이 즐기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사요의 무기와 방어구 파밍을 도와준다거나 사요가 깨고 싶어하는 던전을 함께 돌아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사요는 그런 린코가 무척이나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날 도와준다고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음씨 여린 린코라면 그럴 만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코와 함께 최상위 레이드 트라이를 하고 있어야 정상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코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린코만 접속해 사요를 도와주느라 바빴다. 사요는 이제야 그 까닭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유키나와 리사가 여행을 떠났다.

모처럼 찾아온 자유시간에 아코와 린코는 신이 나서 최상위 레이드를 공략하기로 한다.

바로 그 때, 때마침 게임에 접속한 사요의 허름한 모습이 린코의 눈에 들어온다.

녹이 슬고 날이 상해 몽둥이나 다를 바 없는 무기, 내구도가 다 떨어져 너덜너덜해진 방어구, 돈을 주고 팔아도 안 팔릴 것 같은 칭호……. 총체적 난국이다.

착한 린코는 차마 그 모습을 못 본 척 하지 못하고 사요를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아코는 그런 린코에게 레이드에 가기로 선약을 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고…… 린코는 우정과 동정 사이에서 잠시 갈등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사요를 도와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세상에 이런 천사가 또 어디 있을까! 사요는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 그런 시로카네 씨를 더 귀찮게 만들 수는 없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린코 스스로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린코의 선행에도 한계가 찾아온 것일지도 몰랐다.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던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찾아온 깨달음이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우며 사요는 다짐했다.

'내일은 내가 더 잘 해서 꼭 트라우룽을 잡아야지!'

동시에 린코도 잠자리에 누운 채 생각했다.

'내일은 또 어떻게 힘을 숨길까…….'


아무래도 유키나와 리사가 돌아올 때까지, 혹은 아코가 프리파라 시리즈를 독파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될 풍경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요린코 둘이서 같이 께임하는거 써보고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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