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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냥보대회] '사랑'해보고 싶다 - 上

모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21 01: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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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中)



스물여덟, 배주연. 현재 절찬 연애중. 절찬이라는 단어가 어울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주연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자친구와 목하 열애중이다. 언니, 언니 하다가도 금방 토라져서 '선생님'이라 부르는 미운 일곱 살 못지않은 아기 고양이랑. 암만 미워도 어미에겐 제 새끼라고, 주연도 제 '야옹이'에게서 눈을 못 뗐다. 무슨 바라만 봐도 감염되는 전염병처럼 마구 가슴 속을 어지럽혀도 덮어놓고 타이르기만 한 것이다. 이것은 현재도 그랬고, 그칠 듯 말 듯 가랑눈이 흩날리던 2월의 어느 날에도 그랬다.


"언니라고 부르면 안 돼요?"


더 이상 찾아올 이유도 없는 학원의 건물 앞에서 예지는 주연에게 그렇게 말했다. 교복을 입은 양 어깨가 다 들썩이도록 미처 고르지 못한 숨을 몰아쉬면서. 과장하면 2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부대껴온 졸업생에게 주연이 그날 건넬 말은 한 가지뿐이었다.


"졸업 축하해, 예지야."


눈앞에 있는 스승의 노고도 잊지 말아 줘. 감히 저와 맞먹겠다는 제자를 보며 어느 수학 강사는 너스레를 떨었다.


"저 지금 고백하는 건데..."


그녀에겐 조금도 통하지 않았지마는. 아마, 그때부터 예지가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귀엽기만 하던 주연의 제자는 얄미운 고양이로 변해버렸다. '야옹아' 하고 부르면 화를 내면서 저 좋을 땐 언니, 언니 잘도 떠드니까.



"지금 딴 생각해요?"


분위기 좋은 카페의 테라스에서 주연은 느닷없이 별 소리를 다 들었다. 그녀가 한 거라곤 눈앞에 있는 연인의 생각 밖에 없었는데.


"데이트할 때는 나한테만 집중하랬죠. 누가 언니 애인이다?"


너.


"누구겠어."


주연의 대답에 예지는 뾰로통하면서도 볼을 붉혔다. 본인이 직접 물어봐놓고, 접시 위의 케이크를 잘라내며 미소지었다. 왜 연상의 애인이 딴전을 피우는지 쌀 한 톨만큼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거 맛있다."


예지는 짜증나도록 귀엽게 말했다. 적어도 주연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마치 아기 고양이가 가르릉대는 그런 소리랄까. 뭐 주연에게 고양이를 키운 경험은 없었지마는. 목소리에 흩어진 집중력 때문에 주연의 시야에 다시 예지의 얼굴이 들어왔다. 붉은 혀를 쏘옥 빼내 입가를 핥는, 시선을 거둘 수 없는 모습까지도. 입술 사이로 자취를 감추는 그것을 보면서 주연은 기어이 짜증이 났다. 그런 거, 티슈로 좀 닦아도 되잖아.


"왜요? 먹고 싶어요?"


너무 빤히 바라본 게 잘못이었다. 주연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예지까지 신경쓰게 만들었으니. 연인의 얼굴을 살피던 예지는 포크를 꾸욱 눌러 새로운 빵조각을 떠 올렸다. 당연히 그것의 행선지는 한때의 스승이자, 제 애인인 주연의 입가였다.


"언니니까 특별히 딱 한 입만이에요?"


이걸 어떻게 거절해.


주연은 긴장한 얼굴로 내밀어진 포크를 입에 물었다. 아까까지 고 작은 쇠붙이가 누구의 입속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뻔히 알면서도. 금속이 사라지고 입안에서 허물어지는 케이크 조각은 주연에게 소름끼치도록 달콤하게 느껴졌다. 단맛에 약한 연유도 있겠지만 분명 그것은 일부일 뿐이다.


"맛있죠? 빨리 내가 줘서 맛있다고 말해요."


사랑하니까. 제가 내킬 때만 이토록 애교가 넘치는 연인을 좋아하니까. 대답 대신 테이블에 있던 손등 위로 손을 옮기자 고양이 같았던 눈매가 둥글게 휘어졌다. 당장 이 보드라운 손목을 잡고 어디로 이끌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마른 목을 커피로 축이던 주연을 향해 예지는 또 빨간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렇게 내 손이 좋아요?"


질문이 잘못됐다. 손이 아니라 전부니까.


"그럼... 그렇게 내가 좋아요?"


"그럼."


예지의 말을 따라 하듯 주연이 대답했다. 예지는 희미하게 붉어진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나돈데."


멋대로 빨라지는 맥박을 억누르며 주연은 깨달았다. 말을 안 듣는 건 얄미운 고양이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걸. 귀여운 제자의 애교가 아니라 제 마음이 잘못됐다는 걸.


"예지야."


"응?"


"...아니야."


사랑해서 기다리기에는, 주연은 예지를 너무 많이 사랑했다.



******



인생에 사랑 없는 연애란 없던 주연에게 뜻밖의 고민이 찾아왔다. 예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학생들을 등지고서 칠판에 수식을 적어나갈 때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대로 휙 몸을 돌려 물어라도 보고 싶을 정도로.


대체 요즘 애들은 어떤 속도로 진도를 나가는 걸까.


주연은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고팠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기 때문에 '사랑'이 하고 싶었다. 척 보기엔 다를 바 없는 이 둘은 사실은 어마어마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 '사랑'은 두 사람이 해야 하니까.


나날이 예뻐지는 주연의 연인은 스승의 뜻에 참으로 비협조적이었다. 사랑하는 제자의 생애 첫단추를 예쁘게 꿰어주고 싶은 선생님의 신중한 마음을 조금도 모른다. 어디 스물여덟 해를 살면서 연애 한번 안 해봤겠는가. 그럼에도 저를 따르는 예지만 보면 주연은 한없이 신중해졌다.


"선생님이 내 첫사랑인 거 알아요?"


탐스러운 입술로도 그런 말을 내뱉는 제자가 주연에게 너무 소중했으니까. 단둘뿐인 공간에서 충동적으로 입술을 훔쳐놓고 고대로 집까지 바래다줄 만큼 사랑했으니까.



"웬 비가 이렇게 쏟아지냐..."


우산을 펼쳐 퇴근길에 오를 때까지 주연은 하루 종일 예지를 생각했다. 기특한 제자들에게 미안하게도 강사가 솔선해 한눈을 팔아버렸다. 그런대로 안락한 제 집에 들어서 주연은 우선 샤워로 머리를 비웠다. 떨어지는 물줄기에 몸을 맡기고 저만의 작은 '반성'회를 개최했다.


뽀송해진 얼굴의 주연이 욕실을 나왔을 때 휴대폰의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발신인은 요즘 주연을 계속 괴롭히는 불성실한 학원 강사의 '전' 제자. 이 불성실함의 원흉. 그래도 주연은 예지가 기다리지 않도록 전화를 받았다.


'언니...'


"응, 야옹아."


'아, 그렇게 부르지 말랬죠! 닭살 돋는다고.'


농담도 못하나.


"그래서, 왜. 무슨 일이야?"


'혼자 있는데 천둥이 치니까 무서워서요...'


"괜찮아. 지붕 아래 있는데 뭐."


주연이 작게 키득거렸다. 전화 너머의 예지는 남의 위로에 오히려 짜증을 냈다. 애인이 겁에 질린 게 웃기냐며. 제 걱정이 하나도 되지 않느냐며.


걱정을 하니까 이러는 건데.


한참만에 본래의 용건을 꺼내는 주연의 연인은 어지간히도 천둥이 무서웠나 보다.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앳된 목소리가 아직도 조금씩 떨렸으니까.


'언니가... 지금 와주면 안 돼요?'


빨리 와서 내 곁에 있어주세요.


주연이 밤중에 난데없는 연락을 받은 것은 첫키스로부터 6개월이 지나서였다.



******



두어 번 정도 방문한 적이 있는 예지의 집은 그녀의 말대로 오늘도 부모님이 안 계셨다. 주연이 그동안 얼굴 한번을 못 뵌 걸 보면 예지가 나름대로 배려해준 것이다. 덕분에 수월하게 연인의 방에 입성하면서 주연은 괜히 제 발이 저렸다. 순진한 제자를 까맣게 물들여버린 어른으로서의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지방에 가셨어요."


예지는 커다란 티셔츠를 팔랑거리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경직된 표정의 주연을 제 방에다 덩그러니 버려둔 것이다. 첫 야간 방문으로 긴장한 인간에게도 달큰한 향기가 몰려와 후각을 자극했다. 그러니까, 연인의 향기가. 화생방 훈련이나 다름없는 예지의 방에서 주연은 참지 못하고 조그만 창문을 열어젖혔다.


"비 들이치니까 열지 말아요."


건방지게 날아오는 분부에 얌전히 닫았지마는. 만의 하나의 '경우의 수'까지 고려했다고는 도저히 순진한 연인 앞에서 밝힐 수 없었다.


"귀찮았을 텐데 그냥 있지."


"그래놓고 잘만 먹으면서."


예지는 가지런하게 과일이 담긴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경박스런 현재의 차림새와는 다르게 참 손놀림은 야무지다. 주연이 별말 없이 앉아 포크를 들자 예지가 먼저 딸기를 골라 베어 물었다.


"아, 이거 엄청 달다."


꼭 그렇게 입술을 오물거리며 먹어야 하나?


주연은 그냥 접시 위로 시선을 돌렸다. 오른편에는 딸기향이 날 듯한 입술이 있고, 고개를 숙이면 뽀얀 맨다리가 들어왔으니까. 가끔 한번씩 힐끔대며 곁눈질하는 것은 단지 스승으로서의 걱정이었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가을 날씨에 하의도 없이 다녔다가는 큰일 아닌가. 쓸데없는 오지랖인 걸 알면서도 주연은 기다란 티셔츠 자락 밑이 궁금했다.


바지를 입었을까, 안....입었을까.


"또 딴생각!"


멀뚱히 테이블만 바라보는 주연에게 참다 못한 예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무슨 죄라도 저지르다 들킨 사람처럼 주연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나랑 있을 땐 나만 봐달라고 했잖아요..."


주연의 고양이는 또, 애교를 부렸다. 남의 마음이 제 털로 범벅이 되도록 비비적거렸다. '야옹아' 하고 부르면 성을 낼 거면서. 오늘보다 훨씬 근사한 첫날밤이 어울리면서. 거리를 좁히는 토라진 얼굴의 연인에게 주연은 솔직하게 사과했다.


"미안해, 예지야."


"맨날 말로만."


이게 다 너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


주연은 다시 허공을 향해 있던 포크를 고쳐 잡았다. 귀여운 애인이 예쁘게도 준비해온 성의가 있으니까. 딸기가 그렇게도 달다고 했었나. 스승은 작은 반항심으로 방울토마토를 선택했다.


끼익


"아."


그렇게나 집히지 않을 줄 알았다면은, 절대로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연의 포크를 벗어난 붉은 과실은 뽀얀 허벅지 위를 데굴데굴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해요?"


'전' 제자는 아마도 그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다음 순간 주연의 머릿속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언니는, 줘도 못 먹어요?"


뭐?


주연은 스무 살의 연인을 바닥에 쓰러뜨렸다. 제 체구가 더 좋다는 치사한 이유로 간단하게 손목을 붙잡아 제압했다. 헐떡이며 주연을 바라보는 예지의 숨결에선 소름끼치게 달큰한 딸기향이 났다.


아, 이걸 도대체 어떻게 참아.


주연의 입술이 탐스러운 입술을 덮었다. 꼭 붙은 살점을 살살 간질여 방심하게 만들고 벌어진 틈으로 파고들어 예지를 탐미했다. 몰캉한 살덩이를 제 혀로 맛보면서 주연은 딸기를 먼저 먹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예지의 입술이 너무 향기롭고 부드러웠으며, 그 안은 이성이 녹아내리도록 달콤했으니까.


"예지야."


연인의 이름을 속삭이는 주연의 입술에선 그녀와 똑같은 과일향이 났다. 예상보다 살짝 이르고 무드도 없었지만, 그 부름은 솔직한 욕구의 표현이며 '사랑'의 시작 선언이었다. 제 목소리에 빨갛게 볼을 붉히는 '전' 제자에게 주연은 더 이상의 고민은 버리고 깊게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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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근페가 쏟아지는 백갤에서 리얼 순애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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