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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승지영원 키잡물 조금길게 쪄왔음앱에서 작성

ㅇㅇ(110.70) 2020.04.11 17:45:55
조회 1446 추천 57 댓글 13
														


권승현. 단정한 인상에 웃는 게 예쁘고, 조용히 지내다가도 한 번씩 큰 사고를 치곤했던, 눈동자 색이 유달리 옅었던 동생. 연락이 끊긴 지도 어언 10여 년이 넘게 지난 제 하나뿐인 혈육의 이름이었다. 아니, 이젠 하나가 아닌가. 죄를 지은 것마냥 고개를 들 줄 모르는 작은 몸을 내려다보며 승지는 뻐근해져오는 뒷목을 풀었다. 작게 두둑거리는 소리에 제 몫의 코코아가 든 머그잔을 쥔 채 미동도 없던 아이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니까..."
"네?" 
"그 애가... 사고로 죽었..다고 그랬죠. 아까. 애도 하나, 있었고. 근데 결혼은 안 했고."
"네, 네..."
 
그리고 그 애가 너구나. 승지의 입으로 저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흘렀다. 성년이 되기도 전에 한바탕 싸우고 집을 뛰쳐나간 이후로 소식도 한 자락 없던 애의 부고에, 홀로 남은 그 애의 딸아이까지. 솔직히 현실로 와닿기보다는, 먼 남의 얘기처럼 들렸다. 승현과 꼭 닮은 옅은 자연갈색 머리칼을 멍하니 보던 승지가 마른 세수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흠칫 놀라며 아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 애를 쏙 빼닮은 옅은 갈색 눈동자에 빨려가듯 시선을 고정한 승지가 미간을 좁혔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알려드리려고..."
"...잠깐만요. 울어?"
"근데 진짜 괜찮아요... 그냥 전해드리러 온 거고, 신경쓰지 마세요. 앞으로... 저, 정말 귀찮게도 안 할 거고, 절대 찾아오는 일 없,"
 
정신없는 몸짓으로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키다 균형을 잃고 주저앉은 아이의 앞에 놓인 머그잔에 파문이 일었다. 승지는 겨우내 휘청거리며 일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연신 무엇에 대한 것인지도 모를 사과를 흘리며 위태로운 몸짓으로 돌아서는 애를 다소 급하게 잡아챘다. 후드득 눈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자신이 울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어린 얼굴이 엉망으로 울고 있었다. 잠깐 얼어있던 승지가 다급하게 영원에게 다가섰다.
 
"왜 울어... 괜찮아. 울지 마. 괜찮아요. 뚝."
 
한 번도 이만한 애를 달래본 적이 없는 권승지는 서툴게 아이를 품에 넣고 등을 툭툭 두드렸다가, 부드러운 머리칼을 어색하게 몇번 건드렸다. 조그만 몸은 타인의 온기가 낯선 듯 굳어있다가 승지에게로 서서히 기울었다. 서럽게 소리를 먹어가며 우는 애를 한참 들어주던 그녀의 귀로 엄마, 우는 아이들이 늘상 습관처럼 흘리곤 하는 말이 축축하게 와닿았다. 순간 건조하던 눈가가 뜨겁게 달궈지는 감각에 승지는 입술을 세게 물며 부서질 듯 여린 몸을 꽉 끌어안았다. 울지 마. 영원아. 처음으로 아까 들은 이름을 속삭이자 울음소리가 순간 멎어들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애의 아직 울고 있는 눈을 마주 보면서, 권승지는 최대한 다정하게 소리를 냈다. 영원아, 너만 괜찮으면 말인데.
 
"나랑 같이 살자."
 
 
 
 




 
 "왜 그렇게 빤히 봐."
 
뭐 묻었냐고 장난스럽게 들이미는 얼굴에 영원이 다급히 뒤로 고개를 뺐다. 또 얼굴 빨개졌다. 재밌다는 듯 볼을 쓰다듬는 손길에 옅은 소름이 일었다. 이 감각이 타인의 접촉이 낯설어서인지, 권승지가 불편해서인지 영원은 도무지 알기 힘들었다. 그래도 싫은 건 아니었다. 그건 확실했다.
 
"뭐 할 말 있어? 또 문제집 사야되나?"
 
가만 고개를 젓는 영원의 입에서 홀린 듯 저도 모르게 소리가 흘러나왔다.
 
"예뻐요." 
"...응?"
"세상에서 제일... 아-"
 
제 풀에 놀라 입을 가린 영원이 너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승지는 반응하기가 굉장히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말실수라도 한 것 같이 왜.
 
"...세상이 그렇게 좁진 않은데."
 
니가 아직 세상을 다 못 봐서 그래. 픽 웃으며 대수롭지않게 흘리는 승지의 옷깃을 꾹 쥔 영원이 입을 달싹이다 고개를 떨궜다. 내 세상은 여기서 더 커질 것 같지 않은데. 그러고 싶지도 않다는 말은, 제가 생각해도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잘 다녀오셨어요."
"응."
 
여느 날과 같이 무뚝뚝한 대꾸와 함께 방에 들어가려던 승지가 갑자기 훅 다가와 두 손목을 쥐자 깜짝 놀란 영원이 흡, 이상한 소릴 흘리며 숨을 참았다. 향수도 뿌리지 않고 담배도 늘 입에 물려있곤 하는 그녀에게서는 이상하게 늘 좋은 냄새가 났다. 발간 얼굴을 푹 숙이는 영원을 본체만체하며 승지가 영원의 팔과 등허리 여기저기를 서슴없이 더듬었다. 뭐, 뭐하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아무 일 없었단 듯 떨어져나간 손길이 아쉬웠다. 순간 제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지레 놀란 영원이 마른 침을 삼키며 겨우 고개를 들어 휘둥그런 눈으로 승지를 마주보았다.
 
"왜 이렇게 살이 안 붙지."
"네, 네...?"
"아니. 너무 말라서. 키도 이렇게 막- 커야되는 나이 아닌가?"
 
권승현이랑 나는 그랬는데. 심각하게 눈매를 좁히던 승지가 영원의 키를 가늠하듯 손을 공중에 휘적댔다. 할 말이 있는 듯 조금 비장한 얼굴을 한 영원이 머뭇대며 그녀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쳐왔다.
 
"저, 키... 안 작아요. 평균보다 커요."
 
평균이 그렇게 작아? 요즘 애들 클 텐데. 무신경하게 내뱉는 그녀의 말에 할 말이 남은 듯 입을 달싹이다 꾹 다문 영원의 얼굴이 드물게 부루퉁해서 승지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지영원, 뭘 삐지고 그래. 가볍게 툭 건드는데도 마른 몸이 크게 반동했다. 이거 봐. 맥아리 없는 거.
 
"아, 안 삐졌어요..."
 
그래. 삐지지 말고.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는 대수롭지 않은 손길에도 가슴이 쿵쿵거렸다. 나 진짜 뭐 잘못된 거 아니야. 조금 울상이 되어가는 영원의 얼굴을 빤히 보던 승지가 부슬한 영원의 머리를 조금 문지르듯이 쓰다듬었다. 마치 개에게나 할 법한 손짓이었지만, 영원은 꼭 안아주는 것 다음으로 그 손길을 가장 좋아했다. 오랜만에 외식이나 하자. 옷 단단히 챙겨입고 나와. 오늘 춥더라. 차키를 챙겨들고 나서며 승지는 이 참에 살을 좀 붙여야겠다고 중얼댔다.
 
 
 
 
 
 
 
 
 
회식 때문에 늦을 것 같으니 먼저 자라는 문자에도 꿋꿋이 책을 넘기며 승지를 기다리던 영원은 도어락소리에 아까부터 한 장도 넘어가지 않던 책을 휙 덮으며 몸을 일으켰다. 
 
"다녀오셨-"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밝아졌던 영원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니가 영원이구나. 승지를 부축한 여자가 소파에 대충 승지를 앉힌 채 말을 걸었다. 네에.. 출처를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당혹감에 영원이 어색하게 쭈뼛대며 여자의 눈을 피했다. 여자의 새빨간 입술과 권승지에게 아무렇지 않게 닿아오는 손길에 자꾸만 시선을 빼앗겼다. 눈을 질끈 감자 여자의 지독한 향수냄새가 술냄새에 섞여 머리가 어지러웠다. 

"얘 진짜 꼴아서, 미안하지만 뒷처리 좀 부탁할게. 다음에 또 봐요."

진짜 그냥 동료겠지. 조금 원망스럽게 소파에 찌그러져 있는 승지를 내려다보고 있자, 비척대며 몸을 일으킨 승지가 영원의 팔을 세게 당겼다. 승지에게서는 평소의 편안하고 좋은 냄새가 아니라 지독한 술냄새가 났다. 자칫하다 저까지 정신을 놓을 정도로 짙은. 아찔한 정신에 입술을 세게 깨물며 주먹을 말아쥔 영원이 숨을 조금씩 짧게 끊어 내뱉었다.
 
"우리 애기, 아직 안 잤어?"
 
승지의 입에서 처음 듣는 낯간지러운 호칭에 영원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 
 
"이리 와봐."

취한 사람 특유의 제멋대로인 태도로 두 볼을 꾹 눌러대는 표정이 진지했다. 이와중에도 쓸데없이 선이 고운 얼굴이 가까워지자 반사적으로 또 얼굴이 달아올랐다. 놔, 놔주세요. 시선을 피하며 약하게 밀어내자 승지가 맘에 안 드는 듯 도리질치며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만한 거리에 영원이 습관적으로 숨을 참았다.

"영원아아. 나랑 사는 거, 힘들어?"

얼어붙어있던 와중에도 영원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너무 좋아서, 행복해서, 내 주제에 이래도 되나 싶고 한순간 사라질 꿈일까봐 불안하다고. 취한 권승지지만 뭐라도 말해주고 싶은데, 바보같이 눈을 보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늘 그랬듯. 이러다 은혜도 모르는 애라고 미움받으면 어떡하지. 

괜찮아? 좋아? 나도. 나도 좋아.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접어 예쁘게도 웃는 권승지를 보는데 마음이 울렁거렸다. 울 것 같이. 뭐라도, 울음을 대신해서 내뱉어야 했다.

"저, 저도 좋-"

아. 황급히 입술을 손등으로 막으며 눈이 빠질 듯 크게 뜬 채로 올려다보는 저를 빤히 응시하던 새카만 눈동자가 서서히 감겨들었다. 아까처럼 빠르게 가까워지는 얼굴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려버린 영원이 무색하게, 작은 어깨에 고개를 묻은 승지에게선 미동도 없었다. 하아.. 영원은 무심결에 큰 숨을 내뱉다 승지에게 조심스럽게 머리를 맞댔다. 첫키스를 하면 종소리가 들린다던데, 싸늘한 거실에 남은 건 자신의 부서질 듯한 심장소리가 전부였다. 


 



 
 
"조카님, 인기 좋으시네요?"
 
교문 가까이에 차를 대놓고 기다리던 승지가 피식 웃으며 차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남자애가 와서 꽃을 내밀어도 무덤덤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지영원 청춘인데? 손사래를 치는 영원을 무시하며 옆자리에 밀어넣은 승지가 키득 웃었다.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
"뭐 어때. 예쁘니까 그럴 만해."
"네?"
"우리 영원이 예쁘게 생겼잖아. 피부도 뽀얀 거 봐. 애기다, 애기."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볼을 쓰다듬는 손길에 또 심장이 부서질 듯 뛰어댔다. 들리는 거 아닐까. 불안한 눈을 하며 영원이 슬쩍 손길을 피했다. 
 
"누가 데려갈지 궁금하네. 이렇게 순진해서."
"저는 언니..만큼 예쁜 사람이 좋아요. 아니면 다 싫어요."
 
목소리는 늘 그렇듯 기어들어가면서, 묘하게 고집스러운 말투로 영원이 말했다. 막히는 신호에 핸들에다 손가락을 두드리면서 승지가 의아한 눈으로 영원을 넘겨보았다. 밖에선 언니라고 부른다고 답지않게 늘 억지니까 호칭은 그렇다 치고, 예쁜 사람? 그런 취향이었던가. 그런 건 또 요즘 애들답네. 뭐가 초조한지 손을 꼼지락거리는 영원이 귀여워서, 소심하게 마주쳐오는 눈길에 승지가 빙긋 웃었다.
 
"그래도 얼굴값하는 놈은 만나면 안 돼?"
"...그런 것 같아요."
 
지난밤 술에 취해 다른 여자의 품에 안겨온 승지를 떠올리며 영원이 작게 삐죽댔다. 나한테 뽀뽀한 것도 다 기억도 못하면서. 한 번도 미워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권승지가 처음으로 조금 미웠다. 그렇지만 감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반대도, 그랬다. 감히 좋아해서도 안 될 사람인데. 자꾸 좋아져서. 이 다정한 품만은 절대 잃고 싶지 않은데, 괜히 욕심내면 다 사라져버릴까봐. 영원은 습관처럼 마음을 눌렀다. 
 
 





012 고통받는 첫사랑 좋아.. 애기영원이 대하는 권승지  완전다정해야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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