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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방도리] 발푸르기스의 밤모바일에서 작성

ㅇㅇ(31.3) 2020.04.24 00:59:36
조회 1598 추천 28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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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아야 사요히나 카오치사 etc...



0. 발푸르기스의 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잠깐 사라지고 마는 직업이 있다. 이야기꾼들은 역사의 흐름을 읽는데 남들보다 조금 더 뛰어났지만, 역사를 전승하는 자신들의 직업이 내몰릴거라고는 그들 자신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꾼의 존재는 분명 천박한 농담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시기, 한 젊어 보이는 여성이 이야기꾼의 성지를 향하고 있었다.

바싹 마른 야생 갈대로 우거진 산길을 한 인영이 올라간다. 바다에서 부는 눅눅한 바람에 핑크빛 머리칼과 얼굴을 덮은 푹신푹신한 재질의 핑크 가면이 작게 흔들린다. 여성이 쓴 가면은 이야기꾼의 증표. 생업이 불안정한 이야기꾼은 자신의 직업을 증명하기 위해 늘 눈에 띄는 가면을 쓰고 다녔다. 특히 그녀의 조금 우스꽝스러운 가면은 이야기꾼들의 가면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편이었다.

"우으... 벌레가 너무 많아."

핑크가 우는 소리를 하던 어느 때. 마침내 성지가 앞에 나타났다. 천장이 없어진 채 기둥 두 개만이 아직도 곧추 서있는 반쯤 무너진 건물. 비록 본래의 형태는 남아있지 않지만 원래는 상당히 웅장한 건물이었다는 걸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핑크가 돌계단을 올라 복도에 서니 문득 전방에 불빛이 보였다. 멀리서도 보이는 불제단 위에서 불길이 춤추고 있다. 축제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증거다. 그 광경을 보고 핑크는 몸을 살짝 떨었다.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사실에 너무 긴장한 탓이다. 도중에 한 번도 혀를 깨물지 않고, 중간에 하던 말을 잊어버리지 않고, 이야기에 정서를 제대로 담아내는 것은 항상 해왔지만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었다. 핑크가면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와서 멈춰설 순 없었다. 핑크에게는 세상에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시 만나야 하는 자가 있었다. 떨리는 다리에 질책하는 듯 살짝 주먹을 내려치고, 풋내기 티를 벗지 못한 이야기꾼은 빛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확인하듯 조심스럽게.
이야기꾼들의 축제, '발푸르기스의 밤'의 시작이었다.



*


두 이야기꾼이 불제단 아래, 서로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은 상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나 말고는 한 명밖에 안 왔잖아?!"
"요즘 시대에 이런 오래된 축제에 사람이 많이 모인다면 그게 신기한 일이지 않아?"

먼저 온 이야기꾼, 고양이처럼 보이는 가면을 쓴 사람(여성처럼 보인다)이 능청스레 대답했다.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면, 소설을 쓰는 편이 나을테고."
"으윽..."

고양이(?)가면의 말마따나였다. 산업혁명과 고속 인쇄기의 보급으로,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많은 이야기들이 종이 위로 그 거처를 옮겼다. 그에 따라 많은 이야기꾼들이 돗자리를 펼 자리를 잃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아직 많기에 소수의 이야기꾼들은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얼마 안 가서는 그것도 불가능하게 될 터였다.

"남말하듯이 말하네... 너도 이야기꾼이면서!"
"음... 나는 글 읽고 쓸 줄 알고, 다른 것도 할 줄 아는게 많으니 별로 상관없는걸? 돈 벌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고."

고양이가면이 약올리는 듯이 그렇게 말하자, "끄응..." 분한 듯 핑크는 뭐라 말하려다가 말다가 신음하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나, 돌아갈거야!"
"기다려봐, 지금 어둡고 밖도 춥잖아? 나가면 길을 잃거나 짐승한테 잡아먹힐걸? 미안, 미안, 내가 잘못했어. 그러지 말고, 자리에 앉아서 서로 이야기나 나누자고. 우리는 이야기꾼이잖아?"

"흥!" 그 말을 듣더니 핑크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다시 앉았다. 사실 핑크는 삐졌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을 뿐, 처음부터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 증거로 핑크가 앉자마자 대화는 다시 재개되었다.
"그래서... 너는"
"응?"
"뭐라고 부르면 돼? 고양이라고 부르면 돼?"

핑크가 물었다. 이야기꾼은 방랑자. 이름도 고향이 없는 것이 숙명이다. 그런 연유로 자기가 쓴 가면의 모양을 그대로 자신의 이름으로 하는게 보통이었다.

"그냥 고양이는 시시한데... 음... 좋아, '룽캣'이라고 불러줄래?"
"룽캣? 룽캣..."
"응."
"낯설지 않은 이름이야."
"그래?"
"응."
"흐응, 그렇구나~"

핑크는 왠지 룽캣의 기분이 살짝 좋아진 것을 느꼈다. 왜지?

"거기 흐물흐물한 가면을 입은 너는 뭐라고 부르면 돼?"
"흐물흐물이 아니라 푹신푹신이야! 나는 '핑크'라고 불러."
"그래. 너한테는 '핑크'가 어울리는 것 같아."
"그거... 욕하는 거 아니지?"

룽캣은 대답대신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그 반응에 살짝 화가 난 핑크는 눈을 부릅뜨고 룽캣을 째려봤지만, 몇초 후 가면을 쓴 상태로는 의미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그만두었다.

"이전에 발푸르기스의 밤에 참가한 적은 있어?"

핑크가 물었다.

"아니. 사실 이야기꾼이 된지 정말 얼마 안 됐거든, 그래서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래...? 그럼 내가 설명해줄게!"

자신의 후배뻘인 이야기꾼을 여태 본 적 없었던 핑크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라고 해도 사실, 발푸르기스의 밤에 거창한 규칙은 없어. 이야기꾼 선배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서로 공유할 뿐인 축제야. 모여있는 인원이 한 번씩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이야기를 처음 시작했던 사람부터 다시 다른 이야기를 밤이 끝날 때까지 반복하는 거야. 우리는 지금 두 명 밖에 없으니 서로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그렇구나."

그리고 말이 뚝 끊겼다. 서로가 상대방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
"..."

타앗, 하고 스타카토 효과를 준 둔탁한 소리가 멍한 풍경에 울려 퍼졌다. 처음에 불쏘시개를 잘못 세워뒀는지, 한 순간에 우르르 무너졌다.

"저기, 이야기, 시작 안하는 거야?"

결국 참다못한 룽캣이 이야기를 재촉했다.

"저.. 그게..."

그러자 핑크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 지 미리 생각을 다 하고 왔는데, 도입부를 까먹었어. 잠시만 기다려줘...!"



한 때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었던 합중국 로제리아 멸망 후, 사람 가는 곳은 모두 피로 얼룩졌던 전국시대. 중립을 취하며 안전지대에 있었다는 이유로 박해의 대상이 된 이야기꾼들은 한 때 마녀가 살았었다는 무인도에 모여 피난했다. 시간이 지나 박해는 거의 사라졌지만, 본 섬은 이야기꾼의 성지가 되어 이후로도 이야기꾼들은 종종 그 섬에 모여 서로가 가진 이야기를 나누고 술판으로 축제를 벌였다. 그것이 발푸르기스의 밤의 기원이 되었다.




1.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너무 오글거리면 솔직히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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