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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란유키란) 하나하키병

여치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30 13:27:46
조회 342 추천 19 댓글 4
														

https://marriedyukiran.postype.com/post/669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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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케 란의 병이 시작된 것은, 유키나가 고교를 졸업했을 때부터였다. 더는 만날 수 없다는 불안감에. 졸업식에 축하조차 하지도 못하면서 가만히 서서 울먹였던 그 순간. 유키나가 부드럽게 다가오면서 그녀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나를 따라올 길을, 먼저 밝혀두고 있을게. 그 말에 란은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몰랐었다. 눈이 부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아버지의 물음에도 아무 일 아니라며 방으로 올라갔고, 그대로 기운이 빠진 채 잠들었었다. 불을 켜놓은 채 잠들어서인지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하였고, 그 덕에 꿈을 꾸었었다. 당신이 나오는 꿈. 당신은 마지막까지 나를 아프게 해요. 그 꿈에 자신은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았었다. 그 말을 들은 너는 무슨 표정이었을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을까, 일 년 늦게 태어난 네가 밉다고 말하였을까.

콜록.

올라오는 기침에 눈을 떴다. 목이 아프다. 겨울이니까, 건조한 탓에 자는 도중에도 기침을 계속 한글지도 몰랐었다. 그래, 당신도 겨울철, 건조할 때는 목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었지. 그런 기억에 제습기라도 틀까 싶어 침대를 손으로 짚었다. 푹신한 쿠션의 감촉이 아닌. 한없이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꽃잎, 아니야, 설마. 스스로 중얼거리면서 방의 불을 켤 틈도 없이 휴대폰의 라이트를 들어서 침대를 내리쬐었다.

푸른 장미. 

머릿속은 이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그녀를 그렇게 사랑했던가, 그 마음은 결국 꽃잎으로 나타나 표현하지 못할 말들을 뱉어내는 것과 같이 꽃잎을 뱉어내는 걸까. 다시 올라오는 기침에 입을 손으로 막았다. 공기와 타액으로만 차있어야 할 기침이, 막았던 손에 꽃잎이 보였다. 난 이제 어떡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중얼거리고는 힘없이 침대에 다시 누웠다. 그래, 마음을 포기한다면 나아질 거야. 스스로 위로하며 눈을 다시 감았다.

당신은, 정말로 마지막까지 나를 아프게 만드네요.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을까. 겨울 방학이 끝나고, 상점가에서 리사 씨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확실히 고등학생 때보다 더 화려한 것 같았었다. 옷도, 두껍게 하지 않았음에도 꽤 화려한 외모였으니까.

미나토 씨는, 잘 지내요?

아하하, 유키나? 글쎄, 유학을 준비할 것 같기도 말하더라고.

유학이라,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배울 수 있는 음악은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그 사람이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순서였을지도 몰랐었다. 라이벌이 앞으로 나아가는 건 질투가 있을지라도, 좋아할 수 있는 일인데. 그 사람이 유학을 준비하는 걸 축하해주지는 못 할 망정, 자신은 아릿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별, 더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픔.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을 본지도 꽤 되었구나.

란, 너. 지금….

격한 구토감. 어지러운 느낌. 가끔 기침이 나오면 흩날리는 꽃잎이겠구나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고 반사적으로 감았던 눈을 뜨자. 땅이 너무나 가까웠다. 다리가 풀렸던 걸까. 다시 올라오는 구토감에 몸을 맡겼다.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푸른 장미. 꽃잎이 아닌 꽃이었다. 고통과 역한 느낌은 더더욱 커졌고. 기침하면서 초췌해진 얼굴로 일어나 꽃을 주워서 짓밟았다. 푸른 장미, 그것을 뜻하는 건 짝사랑 상대가 유키나라는건 이미 리사는 알고 있었겠지.

말하지 마세요, 그 사람이 가는 길을 도와주지 못할망정. 막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도.

부탁할게요. 오늘은. 고마웠어요.

딱히 한 것도 없었지만, 도망치듯이 그녀의 앞에서 뛰어간다. 그 와중에도 유키나를 더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망가져 가는 자신의 몸보다, 더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유키나가 더 소중했다. 당신이 무엇인데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느냐는 원망도 자리 잡을 법했건만, 자신은 바보같이도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저, 그녀를 보고 이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아프다고. 제발 이 아픔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말하고 싶었었다. 그런 게 가능할 수는 없었지만.



여보세요. 

응, 나야. 그러니까, 유키나가 유학을…. 얼마 안 남았다고 했어.

..그런가요, 고마워요.

이미 일상생활은 불가능해졌었다. 그 날 이후로 구토감이 올라오는 주기는 더 잦아졌고, 숨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누군가가 이 꽃을 만지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을 방 안에 가두었다. 이미 몸은 초췌해질 대로 초췌해졌고, 음식을 밀어 넣다가도 꽃이 올라올 때도 있었었다. 이대로 가면 쓰러지는 게 아닐까.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 때문에 발병한 병이라면, 고치지도 못할 텐데. 더는 나빠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 부디 더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랐다. 이 사랑이 이대로 끝나고, 뱉어내는 꽃이 말라 시들어지기를 바랐다.

아, 아.

꽃잎이 부드럽게 목구멍을 쓸어올리며 역류하는 느낌이 아닌. 따가운 무언가가 목을 긁으며 뱉어지는 게 느껴진다. 거칠고 마른기침을 수없이 해내어서 뱉어낸다. 푸른 장미, 장미를 살짝 뒤집어서 바라본다. 가시가 있나. 그런 걸 확인하려고 뒤집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장미가 너무나 원망스러워 손으로 꽉 쥐었다. 가시가 어디에라도 숨겨져 있으면 아프기라도 하겠건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부드러운 푸른 장미만이 사그라졌으니. 하지만 피는 나는 걸까, 이제는 마냥 푸른 장미가 아니었다. 약간의 피가 묻어져, 푸른 장미에 선혈이 묻어져 나왔으니까.

제발, 왜 나한테 그래요. 

그 이후로 나오는 장미는 똑같은 고통을 주었다. 그녀가 곧 떠나는데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벌하듯이 나 있는 무형의 가시는 목구멍을 계속 긁었다. 장미에는 점점 선혈로 물들어지는 비율이 커졌고.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자신을 계속 감싸고 있었다. 힘들어, 그렇지만. 고백 또한 할 수 없어. 그런 고통과 딜레마를 가지고 나온 장미를 쓰레기봉투에 거칠게 담았다. 누구도 만지게 하면 안 되니. 이중 삼중으로 싸서 버려야 했다. 겨우 그 봉투를 들고는 대문 밖으로 나섰다.

미타케 씨.

..미나토, 씨.

이제는 환각과 환청마저 느껴지는 걸까. 너무 가득 담아서 눌려있는 장미 한 송이가 삐져나온다. 가장 피가 많이 묻은, 거의 붉은 장미. 그걸 보고 그녀는 다가가 그 꽃송이를 만진다. 만지지, 마요. 그런 말조차 더는 나오지 않았다. 유키나가 기침한다. 꽃잎이 휘날린다. 그 꽃이 무엇인지는 상관없었다. 자신으로 인해 그녀도 이런 고통을 받을 것이란 걸 느꼈고.

그 고통의 원인이 자신이었지만. 그 꽃잎이 향한 마음은 자신이 아니라는 고통에 미칠 것만 같았다. 더는 말을 주저할 수 없었다. 고통스럽게 쭉 있을 거라면, 차라리 마음에 배신당하겠다. 그걸로 고통을 끝맺거나. 더 심해지는 게 나을 것만 같았다. 적어도 네가 나를 체념하게 하여주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이 꽃잎, 당신 때문이었어요. 처음엔 꽃잎이더니, 다음에는 꽃이 나오고, 이제는 보이지 않는 가시까지 돋아나요.

..당신.

푸른 장미예요, 볼 수 없는 장미. 피 때문에 지금은 붉게 보이지만요. 일 년을 참았어요, 근데…. 내가 준비도 되기 전에, 당신은 떠나가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나는 못 참겠어요. 내가 그냥 체념하게 해줘요. 당신을 좋아해요, 일 년 전부터, 아니. 당신의 무대를 처음 봤을 때부터 당신에게 빠져있었어요.

입술이 맞대어진다. 무슨 일이지, 내가 너무나도 불쌍해서 입술을 맞추어준 걸까. 밀려져 오는 혀와, 다른 이질적인 감촉의 무언가가 느껴진다. 모란. 자신이 뱉는 꽃이 아니었다. 그래, 아까 미나토 씨는 꽃을 만졌었지.

미타케 씨, 내가 그 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만졌던 것은 나도 전부터 걸렸기 때문이야. 그 병에. 다른 누구의 꽃잎도 아냐. 모란, 그 무엇보다 당신을 의미하는 꽃이라고 생각하는데.

고통받게 해서 미안해. 너무나도. 하지만 이제 그보다 행복하게 해줄게. 나랑 같이 가자. 당신을 두고 지내는 삶은 지난 일 년간 사는 것 같지 않았어.

천천히 다가가 서로를 끌어안았다.

일 년간 서로를 고통받게 했던 구토감은, 더는 서로에게 찾아오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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