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키워드 : 오해, 후회, 집착

여주가 이세계로 끌려갔는데 말도 안 통하고, 만나는 남자마다 자길 범하려 하고,
노역장에서 자기랑 탈출하려던 여자는 자기 대신 죽고, 아주 개판인 환경에 처했어
보통 이세계물은 말도 통하고 좋은 사람도 거의 전이하자마자 만나는데 말이지

그렇게 고초를 겪다 간살 당하기 직전에 20살 동정 성기사 남주를 만나서 몸도 주고 필사적으로 매달림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이 작품의 1권은 주로 남주랑 여주가 서로 오해하고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얘길 그리고 있어
일단 여주는 이세계 말을 못 알아듣고 또 정신적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렸거든

남주는 여주가 첫 여잔데 자기한테 몸을 자꾸 주려는 거 보고 여주를 매춘부로 오해함
그런데도 성기사인 자신이 여주를 사랑하게 돼서 엄청 자괴감을 느끼지

여주는 여주대로 남주가 자길 팔아넘기려고 한다고, 몸만을 원한다고 오해함
그래도 남주가 자기한테 잘 대해줄 때는 워낙 사근사근해서 흔들리고...

그러던 중에 남주가 여주에 대해 결정적인, 심각한, 자기 출생에 대한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오해를 해버려
그래서 여주한테 아주 가혹하게 대하고, 남주는 곧 후회하지만
(오해를 풀어서가 아니라 여주가 그런 악인(오해)임에도 그녀를 떠날 수 없어서)
이때 겪은 충격으로 인해 여주의 남주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죽어버리지...

그래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러쿵저러쿵 있는데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오해로 빚어진 둘 사이의 관계성이 진짜 잘 묘사된 것 같아

여주가 자신에게 아무것도 안 내주더라도 여주가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고 싶은 남주와
더는 애완견처럼 남주한테 끌려다니며 기생충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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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까지가 1권까지 읽고 쓴 감상이고, 이 아래로는 끝까지 읽고 쓴 감상이야

리디 리뷰를 보면 이 작품이 1권은 진짜 좋은데 그 뒤로는 힘이 빠진다는 얘기가 좀 있는데,

나는 이 말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 안 해. 관점차라고 해야 하나?

우선 이 작품이 1권에서 작품 대부분의 갈등-오해-고조-서스펜스가 나오는 건 맞아.

1권이 지나서 2권 초반을 거쳐 서로에 대한 오해를 푼 뒤로는, 중간중간 소소한 갈등은 있을지언정 더는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거든

피폐피폐한 분위기가 상당히 많이 걷히고, 이 뒤로는 애도 낳고 부부싸움(?)도 하고 순풍만범

근데 갠적으로 나는 이게 로판에서 문제라고까지 할 만한 구성인가? 싶어

이게 5, 6권짜리 장편이거나 일반 소설이었으면 모르겠지만, 그리 길지 않은 3권짜리 로맨스 이야기에서 초반에 큰 역경을 거쳤으면

그 뒤로는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만 나와도 족하다고 생각함

물론 1권에서 보여주었던 밀도가 워낙 높았던지라, 그러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하고...

또 리디 리뷰에 나오는 말 중 하나는, 시월드 어쩌고 하는 얘기가 있길래 나도 좀 걱정하긴 했거든. 시집살이 고구마라도 먹이나? 하고

근데 위의 얘기는 이해가 되지만 이 작품의 뒤가 시월드라는 얘기는 좀... 이건 대놓고 곡해를 하는 얘기라고 생각해

남주가 귀족 가문의 유일한 서자인지라 결국 가문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거기 무려 시어머니+7명의 시누이가 기다리고 있는 건 맞아

근데 저 여덟 다 딱히 여주를 구박하는 것도 없고 오히려 여주를 되게 좋아하고 아끼는 편이야

단지 저 귀족 여자들은 현대 지구에서 온 여주와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전혀 다르니까,

문득문득 여주가 아 이곳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게 만들지

사리나 법이나 도덕보다도,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문제 되지 않는 선에서 사람의 목숨도 빼앗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겉과 속이 다르고 앞에서는 하하호호 하지만 돌려 말하며 상대를 비난하는 모습에 한 번씩 여주가 섬뜩해하곤 하거든

엥? 쓰다 보니까 이 부분은 일부에 한해서는 현대도 별다를 게 없네? ...

아무튼 시어머니나 시누이들은 곁다리고 남주와의 관계가 철저하게 메인이니까 이 점은 걱정 안 해도 좋을 듯

아무튼 남주가 진짜 여주 없으면 못 사는 여주 바라기고 집착 쩔고 남들에겐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여주 한정으로 약한 면도 있어서 여주가 자기를 버리려 한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이 떠났다고 생각하면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는데 이 갭이 좋더라.

여주도 물론 남주를 사랑하긴 하지만 아마 남주가 자기한테 그러는 것만큼 상대를 사랑하진 않을 거야.

남주는 여주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돌려보낸 뒤 자살할 생각이었는데,

여주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길 포기한 건 남주의 사랑도 있지만 원래 세계로 안전히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든

물론 그 뒤로 계속 함께 살아가면서 자기가 정말로 남주를 사랑한다는 걸 확신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남주는 여주한테 약해. 엄청... 이 구도가 코믹한 상황도 만들고 애절한 상황도 만들고 그래

흠, 사실 그냥 몇 줄 적고 말 생각이었는데 어떤 갤러가 이 작품의 1권 뒤가 어떤지 궁금해해서 좀 길게 쓰게 됐네

이쯤에서 요약 들어갈게

1. 1권은 엄청 이야기의 밀도도 높고, 감정의 교류도 격하고, 오해도 막 난무해. 몰입감이 상당하고 피폐물스런 분위기

2. 2권 초반에서 오해를 푼 뒤로는, 갈등이나 위기도 있긴 하지만, 이 뒤의 이야기 전체가 긴긴 에필로그나 외전처럼 느껴지기도 할 정도로 안온해져.

　 여기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니, 혹시 살 사람은 이 점 꼭 염두에 둘 것

3. 남주랑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가 대부분인 2, 3권도 나는 그냥 만족스럽게 읽었어

그럼 다들 설 연휴 잘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