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저자인 우라가 가즈히로의 한글 번역서는 현재로서는 이 작품밖에 출간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을 더 읽고 싶은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성대로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200쪽이라는 짧은 분량을 속도감 있는 알찬 전개와 다양한 트릭들로 채워 넣었습니다.

트릭은 크게 분류하면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교환살해와 관련된 트릭, 자살 위장 트릭, 그리고 대망의 서술 트릭입니다.

책을 읽고 난 직후에 든 생각은 교환 살해의 스토리가 다른 두 사건(트릭)과 너무 단절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환살해의 스토리는 주인공 일행이 방공호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제공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거기에 쓰인 자살 위장 트릭)과는 어떤 관계도 없죠. 또한 서술 트릭과도 큰 연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교환 살해 속 1인3역(기타자와/히로시/사라코)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여성적인 경험을 공유하던 익명의 '사라코'가 남성인 기타자와로 드러나는 장면은, 결말에서의 서술 트릭을 은은하게 암시하는 작가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소설은 우타노 쇼고의 유명 작품과 유사하게, 서술 트릭 하나를 기조로 전개가 짜이고, 작중 분리된 이야기에 철저히 장치적인 본격 문제가 엑스트라로 준비되어 있는 구조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생각이지만, 그렇게 작품이 깔끔하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술 트릭은 여러 부분에서 교묘하게 단어와 표현을 고르고 있는 것만으로 훌륭하지만, 제 마음에 가장 들었던 부분은 역시 작가 본인의 이름을 직접 주인공의 이름으로 사용한 장치입니다. 이후에 다른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며 현실 지인들의 이름을 등장인물로서 쓰고 싶지만, 이미지에 맞는 캐릭터가 소설 내에 등장하지 않아 사용하지 못한다며 푸념하는 부분이 얼마나 능청스러우면서 깜찍한지... 다른 서술 장치들도 좋았지만, 이 부분이 제일 세련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결말 부분에서의 수미상관적 연출도 소소하게 여운을 남겼습니다.

다만 성관계와 식인에 대한 극단적 묘사가 너무 노골적으로 묘사된 것은 저에게는 꽤나 읽기 괴로웠습니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단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