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그건가?" 펄그림이 말했다. "그대는 나를 죽이려고 여기로 끌어낸 건가?"
   "너는 우리를 배신했다." 라일라너가 외쳤다. "네 아들들을! 너는 우리를 여기에서 죽게끔 내몰았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절대로! 너는 내 손에 죽어야만 한다! 황제 폐하의 심판이 네게 임하리라! 설령 빛나는 펄그림이라 할지라도 생명포식자에게서 달아날 수는 없겠지!"
   펄그림이 라일라너에게로 몸을 굽히고는 머리를 저었다.
   "그대는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건가?" 그가 한 마디 한 마디에 꾸며낸 연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말했다. "어째서지? 내가 그대를 배신했다고 생각해서인가? 군단을 배신했다고 생각해서? 아, 라일라너. 그대는 어찌 그렇게 마음이 좁은가. 그대가 우리가 지금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워졌는지를 말일세. 우리는 너무도 밝게 빛나고 있네. 우리 한 명 한명이 밝디밝은 태양처럼 말이야."
   펄그림이 드레드노트의 갑주에 난 틈새 안으로 맨손을 쑤셔박았다. 웃으면서, 그가 눈을 살며시 감고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그는 손을 더 깊숙히 찔러넣었다.
   "아, 여기 있었군!" 펄그림이 라일라너의 분노에 찬 노성을 뒤로 한채 말했다. "축축하고 꿈틀대는게, 그대의 공황이 그대로 느껴지네. 아주 달콤해!"
   "하. 지. 마. 라!" 드레드노트가 내뱉었다.
   "왜 그러지? 나는 그대의 주인일세. 즉 나는 내 마음 가는 대로 그대를 가지고 놀 수 있다는 뜻이지. 나는 그대를 짓뭉갤 수도 있고, 나는 그대를 일으켜 세워줄 수도 있네. 군단으로 돌아오게. 암흑의 군주(Dark Prince)의 선물을 받아들여 다시 한번 육신을 입고 내 곁에 서게. 옛 친구여, 그대는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네! 내 그대를 아름답게 꾸며 주겠네. 이 필멸자들에게 있어 신처럼 보일 정도로!"
   "절대 거부한다! 너와 나 사이에 남은 것은 이제 함께 죽는 일밖에 없다!" 드레드노트가 포효했다. 그의 상반신이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엠퍼러스 칠드런 군단의 라일라너, 고대의 전례관이자, 팰러타인 군세(Palatine Host)의 노병이며, 모두에게 사랑받으실 인류제국의 황제 폐하의 자랑스러운 종복이다. 나는 너를 거부한다. 지금껏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펄그림이 비웃으며 말했다. "미안하네. 내가 그대에게 거부할 여지를 주는 것처럼 들렸나?"
   프라이마크가 라일라너의 철관(sarcophagus)에서 손을 비틀어 빼냈다. 축축하게 젖은 고깃덩어리가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그 손에 잡혀 끌려나왔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끈쩍이는 풀 같은 것이 거미줄처럼 늘어졌다. 그는 마치 갸냘프게 우는 갓난아기를 받아든 산파처럼 보였다. 끊긴 케이블에서는 거의 썩은 것처럼 보이는 양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라일라너는 필시 매분 매초마다 그 액체에 중독되어 고통받고 있었을 터였다.
   "내가 그대를 새롭게 빚어내 주겠네, 형제여." 펄그림이 말했다. "그대는 내 최고의 걸작이 될게야."
   라일라너의 육신은 고작해봐야 축축하게 젖은 누더기 살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비스타리오는 라일라너에게서 이 최후의 능욕, 그 스스로가 가장 혐오하는 것으로 변하고 말 것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경악과 공포를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어쩌면 좋지?+
   무르쉬드(Murshid)의 물음이었다. 사우전드 선즈간의 연결이 너무도 강했기에, 아타나에안(Athanaean)의 사이커가 읽어낸 감정이 그들 셋 모두에게로 번져나갔다.
   비스타리오는 펄그림의 무한한 악의를, 라일라너의 고통을 즐기는 그의 잔인성을, 그리고 그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우전드 선즈의 무력감을 느꼈다. 엠퍼러스 칠드런의 프라이마크는 끝없는 자만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심지어 펄그림의 독기보다도, 강한 라일라너의 자부심과 명예를 비스타리오는 느낄 수 있었다. 그를 자신의 형제들과 갈라놓고 이 죽은 행성의 아래에서 편집적인 광기 속으로 내몰기까지 한, 결코 굽히지 않는 고귀한 가치를.
   비스타리오는 펄그림에게서 그 어떤 가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결단을 내린 순간, 그의 동료들 모두가 그를 느꼈다.
   +프라이마크 펄그림!+ 비스타리오가 닐렀다. +라일라너께서는 당신보다 더 나은 분입니다.+
   프라이마크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때 총명한 빛으로 충만하던 그의 두 눈은 이제 가장 어두운 독으로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우리 모두보다도 더 나은 분입니다.+
   그는 볼터를 들어올려 아크타르(Akhtar)의 뒤통수에 탄환을 쏘았다. 랩토라(Raptora)의 머리가 터졌다. 그의 죽음과 함께, 탄두의 기폭을 막고 있던 사이킥 방어막 또한 겆혔다.
   비스타리오는 불꽃을 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이 행성의 모든 생명이 불타없어졌다.
   생명포식자(Life Eater)가 행성을 휩쓸며 이스트반 III(Isstvan III)을 두 번째로 죽음으로 뒤덮는 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이 걸렸다. 행성이 첫 번째로 멸망하던 때, 호루스가 벤지풀 스피릿(Vengeful Spirit)에서 폭격을 쏟아부었던 그 때에는 고작 몇 시간만에 80억 명의 생명이 사그라들었다. 그 때, 죽어가는 자들이 내지른 사이킥적인 비명은 아스트로미칸조차도 압도했었다고 전해진다.
   지하로부터 그림자 하나가 몸을 드러냈다. 새까맣게 그을린 뱀과도 같은 형체가 태어난 적 없는 것(neverborn)의 에너지로 엮여 있는 채였다. 고대의 과학이 만들어낸 바이러스성 맹독이라 할지라도 워프의 가장 어두운 권세가 빚어낸 것을 멸할 수는 없었다.
   불사조(the Phoenician)의 형체는 벌써 다시금 꿰어맞추어지고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부서진 채였다. 이런 존재에게는 그 어떤 고통보다도, 부상보다도, 그리고 상심보다도 그 자신의 고귀함을 부정당하는 것이 더 깊은 상처가 되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라일라너가 마지막으로 거둔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