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였다.
좀처럼 눈을 맞추기 힘들고 심할 때는 숨조차 잘 쉬어지지 않게 된 건.

내가, 이 이재하가?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재하는 뭐라고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텅 비어있는 공책을 휘리릭 넘겼다
애꿎은 공책을 툭툭 짜증스럽게 두드리며 이 이상한 기분을 애써 떨치려고 했다
얼마나 집중해서 두드렸던지 재하의 서재 앞을 지나던 희원이 계속되는 소음에 이끌려 스윽 들어왔다

"잘 안 돼?"

갑작스러운 침범에 재하는 화들짝 놀라며 공책을 급히 가방에 쑤셔넣었다
희원의 눈도 못 맞추며 언제 들어왔냐 물으면서.

"오늘은 뭐야~ 뭐가 우리 배우님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을까"
"오랜만에 연습 상대.. 해줄까?
나 정도면 꽤 괜찮은 연습상대일텐데"

희원은 장난스럽게 미소지으며 재하의 목을 감쌌다
시선의 끝에 재하의 가방이 잠시 들어왔다

궁금하다....



얼마전 공연장을 찾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 날의 재하는 유독 집중하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이었다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는 자주 그랬다
처음 보는 표정과 행동을 했다
8년이라는 시간동안 이재하라는 사람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재하는 몰랐을지 모르지만 원호감독님과 김영우는 알았을것이다
관객석까지 여실히 느껴질 정도의 집중력 저하는 정말 평소 그답지 않았으니까.

"희원씨 와서 좋은가 봐. 붕뜨나보네 짜식"

원호감독의 짓궂은 목소리는 사실 그다지 희원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꽤 먼 거리였는데도 김영우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표정이, 미소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침이 저절로 삼켜졌다


\'연극이 재밌을까요?
재밌어질까봐요.
재밌어지면 되죠.\'






희원은 자주 재하를 살폈다
연극 외에는 도통 둔한 재하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자주 그러했다

무대에선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영우를 볼 땐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매어오는 감정에 허덕였다
지쳐서 집에 들어오면 공책이 들어있는 가방을 꽉 쥐고 서재에 틀어박혀 있기 일쑤였다
재하는 필사적으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아무것도 적을 수 없는 공책을 사수했다

웃기지 않은가

재하는 오른손을 들었으나 지끈거리는 게 머리인지 가슴인지 몰라서 제자리를 찾아주지 못했다
자리를 찾지 못한 손은 이재하처럼 축 늘어졌다
한심했다



날이 갈수록 희원의 관심과 비례해 재하의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영우 이 좆만아"


"월터가 먼저 유혹해야죠.
나는 지금 전혀 다가가고 싶지 않은데...!"


영우의 울먹이는 눈에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자신이 욕을 뱉었을때부터인가
그것도 아니면 원호형이 공책을 들춰보며 \'재하야 너 이거 잘못가져왔다\'고 했을때부터....?



자신도 설명 못 할 감정들이 마구 솟구쳤고 그것은 이내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영우의 손목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깜짝 놀라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현장 스태프와 매니저가 급히 영우를 일으켜 데리고 나갔다



원호의 호통이 장내를 가득 채웠다

"야 인마. 지 멋대로 하던 놈이 이제야 맘 잡고 열심히 하겠다는데 이젠 왜 니가 지랄이야!"

"무대에서 피나 보게 하면 퍽이나 다시 선다고 하겠다.
맘에 안 드는게 있으면 말로 해."

"요즘 진짜 왜 이러냐. 니 눈치 보겠다고 다들 얼마나 긴장하는지 몰라서 이래?!!
희원씨랑 다퉜냐 어? 그래?"

묵묵부답인 재하를 보며 원호는 나중엔 타이르듯이 말했다.

차라리 말을 하면 이렇게 답답하지나 않지


요즘 재하는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으려고 했다
체인이 입에 감긴 사람처럼 혹은 그렇게 마음먹은 사람처럼.


"....형"

반가운 형소리에 원호는 어어ㅡ 화색을 띄며 다음을 기다렸다



".....무대. 안 한다고 하진 않겠지?"



뜬금없는 질문에 질문을 제대로 이해 못한 원호가 안할거야? 하고 되물으니 재하가 낮게 한숨을 쉬며 \'미안해 형\' 하곤 뒤돌아섰다


재하가 출구쯤 다다랐을때야 질문을 제대로 이해한 원호가 걱정하지마. 그 녀석 연기하는거 재밌다더라. 하자 잠시 멈춰서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곤 또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사과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한테 하는 것 같지 않아서 재하가 완전히 나갈때까지 원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


너무 늦은 입덕에 현망진창 힘든데 ㅍㅅㅌㅇ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썰이 너무 부족해ㅜ......
그래서 자급자족 합니다......

러닝타임이 아쉬워서 살 좀 덧붙여 본 거야
생략된 부분들 메꿔가면서 거짓 기억 만들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