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데뷔작 월광게임을 읽고 코웃음을 쳤었다. 장르적 재미를 살린 전반부를 모두 헛수고로 만들어 버리는 아쉬운 후반부 때문에 실망이 컸던 것이다.

그런데 월광게임은 긴 집의 살인에 비하면 선녀였다.

어처구니없는 트릭과 논리, 끼워 맞춘듯한 동기, 주객전도 된 듯한 탐정 나가노 조지의 마리화나에 대한 장광설, 매력없는 캐릭터 등 무엇 하나 탁월한 것이 없었다. 특히 범인의 은밀한 고백으로 마무리되는 에필로그는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작품이 어떻게 출판됐는지 의문일 정도. 역시 80년대의 일본은 돈이 넘쳐나서 이런 아마추어적인 작품도 그냥 출판해주는 여유가 있었나 보다.

밀실살인게임 시리즈로 이 작가를 처음 접하고 데뷔작까지 읽고 나니 드는 생각은, 이 작가는 아이디어에 따라 기복을 타는 스타일이라는 거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럭저럭 읽을만한 걸 내놓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처구니 없는 졸작을 써내는,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의 도박같은 작가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