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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정보] 강스포, 장문) <흑뢰성> 읽었습니다

카즈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10.24 00:01:37
조회 584 추천 8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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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본 리뷰에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다른 소설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흑뢰성>, <왕과 서커스>, <개는 어디에>, <빙과>를 읽지 않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쪼들리는 주머니를 털어 예약구매까지 했던 흑뢰성을 드디어 펼쳐서 읽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오래 걸렸는가 하면 학기 중이라 책 펼치기가 어려웠다는 변명도 있고, 시대물이라 도입부의 전국 지도를 보고 망설여진 이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그런 걱정은 정말 바보같은 기우였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네팔을 잘 모른다고 해서 <왕과 서커스>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건 아니니까요. 요네자와 호노부는 그런 작가입니다.




<흑뢰성>은 정말, 정말 재밌는 책입니다. 가히 요네자와 호노부의 정수라고 불러도 될 듯 합니다.


재미있는 것에 재미있는 이유를 굳이 찾아내야 하나 싶지만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1.매력적인 주인공


주인공인 아라키 무라시게는 듬직한 리더입니다. 용맹하면서도 과시하지 않고, 신중하게 성의 안과 밖을 살피어 최선의 답을 찾아냅니다.


노부나가와 반대 노선을 타는 불살주의, 수많은 가신들을 거느리는 카리스마는 독자들을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기 충분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무라시게는 물 샐 틈 하나 없는 완벽한 인물은 결코 아닙니다. 군주인 그는 때때로 예상치 못한 문제에 골치를 썩이기도 하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차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며 파멸에 이릅니다.


작중 무라시게의 약점, 혹은 인간적인 면모를 상징하는 요소로 다도가 등장합니다.


장수들을 불러내 개인적인 면담을 하는 장면, 무라시게는 다도만큼은 전쟁에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무라시게가 전쟁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하게 되는 첫 단추가 됩니다.


승려를 통해 선물로 보내려던 소중한 다기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의 수중에 돌아왔을 때, 무라시게는 자신의 보물을 두 번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결국 항복할 시기를 놓쳐 이리오카 성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지요호는 무라시게가 소중한 다기들을 늘어놓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소중한 다기를 잃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을 헤아려주는 지요호에게 그는 마음의 위로를 얻습니다. 작품 종반, 지요호가 그를 그토록 심란케 했던 사건들의 주모자라는 것을 깨달은 무라시게는 마침내 마음이 무너져 지하의 간베에를 찾아갑니다.


그는 가까스로 간베에의 진의를 알아채지만, 결국 마음이 전장을 향해 떠나버렸습니다. 소중한 보물인 다기를 싸들고 성을 빠져나가, 이리오카 성은 멸망합니다.


야망, 인망, 실력이라는 완벽한 요새를 삼면에 갖춘 무라시게. 그에게 독자가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샛길은 아마 다도라는 메타포를 통한 인간성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 시선의 반전


<흑뢰성>은 무사의 이야기입니다. 책의 첫 장부터 이야기가 95퍼센트 끝나갈 쯤까지 철저하게 피와 배신으로 점철된 무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무사는 필요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고, 명예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합니다. 약자나 아녀자 따위가 그 이야기에 낄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5퍼센트에서 <흑뢰성>은 약자와 백성의 이야기로 돌변합니다.


작가는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꾸준히 내세우다가, 최후에 이르러 지요호의 입을 빌려 그것을 부정합니다.


전진하지 않더라도, 후퇴하더라도 누구나 극락에 갈 수 있다.


일종의 흑막 포지션을 맡은 지요호라는 인물을 통해 주제와 소재에 극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반전을 이끌어낸 셈입니다.


비록 지요호는 처형당해 죽지만 에필로그의 간베에가 바톤을 넘겨받아, 악인과 악과로 가득찬 세상에서 희생을 통해 선을 실천한다는 아름다운 메시지를 완성합니다.


<왕과 서커스>에서 가벼운 저널리즘에 희생되는 약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빙과>에서는 다수에게 희생을 강요당한 총대의 절규를 담고,


<개는 어디에>에서는 직접 무기를 들고 싸우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던,


실로 요네자와 호노부다운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3.그외


호노부의 고증에 대한 집착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번엔 정말로 놀랐습니다.


무슨 논문도 아니고, 소설에 참고 문헌이 앞뒤로 한 장 빼곡히....


전국시대에 툭 떨어진 것 같은 치밀하고 광기어린 묘사에 흐트러진 적 없는 깔끔한 필력이 소설의 기본 체급을 빵빵하게 채워줍니다.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 지루하다고 느낀 순간은 한 줄도 없었습니다. 사실 <부러진 용골>이나 <왕과 서커스>를 읽을 때는 초반부에서 몇 번 고비가 있었는데, <흑뢰성>은 일단은 연작 단편을 엮은 형태라 지루함이 덜했습니다.


연작이라고는 해도 단편들 사이에 연결성이 굉장해서, 그냥 챕터를 나눈 하나의 장편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4.미스터리


위의 모든 장점들을 제쳐두고, 추리소설적 면모만을 따져봤을 때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읽는 내내 호노부의 다른 책들과 비교해봐도 톱을 겨룰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지만, <흑뢰성>에서 소름이 돋은 부분이 있었나?하면... 저는 없었습니다.


첫 번째 사건. 지넨의 죽음. 정말 무난한 밀실 트릭입니다.


두 번째 사건. 잘린 머리의 신원. 뭐 그렇겠거니 했습니다.


세 번째 사건. 밀정의 죽음. 본편에 등장한 미스터리 중에서는 가장 흥미진진했습니다. 승려가 스파이 노릇을 겸하고 있었다는 반전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봤자 범행의 용의자가 너무 한정적이여서, 역시 만족도가 떨어졌습니다.


이 사건들의 조금 아쉬운 2%를 채워주기 위한 원기옥이 위에서도 언급한 지요호의 반전인데,


지요호라는 인물이 이끌어내는 주제의식은 좋았지만, 솔직히.... 읽으면서 지요호를 의심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특히 첫 번째 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요호가 사주하거나 주모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어려워서, 가신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넘어갈 때 어색함을 느낀 독자가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요호라는 인물을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로 설정한 것이 오히려 반전을 뻔하게 만든 건 아닐까요.


<왕과 서커스>에서 마치와 일본어로 사이좋게 대화하던 네팔인 아이가 뒤통수를 쎄게 때리던 것과는 상당히 비교됩니다.




5.마치며


<흑뢰성>은 정말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호노부의 팬으로서, 이 작가의 끝은 어디인가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흑뢰성> 같은 책만 쓴다면 고전부 10년이고 20년이고 유기해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도서위원 시리즈는 좀 내다 버리세요


미스터리 요소는 다소 약하다고 느꼈지만, 불평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각 단편에서 해결해야 하는 미스터리를 꽤 선명하게 던져준 편이라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평점은 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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