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스릴러는 흥미로운 초반, 중독적인 중반, 시시한 결말을 자랑하는 작품들이 많은데 이런 거 되게 좋아한다. 결말 부분만 조금 좆같더라도! 결말 전까진 재밌었으니까!

근데 리사 엉거의 7시 45분 열차에서의 고백은 중반부터 벌써 위태롭고 결말은 너무 하찮아서 실소가 나온다. 이토록 개멍청하지 않았다면 나 리뷰 안 썼다.

여성 작가의 도메스틱 스릴러의 경우 남자를 개좆병신으로, 여자를 그런 병신한테 속아서 자신의 가능성을 다 펼치지 못하고 빌빌대다가 어느 날 이건 사랑이 아니야! 난 날 망치고 이써! 하고 깨달으며 통쾌한 역전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거 가끔씩 읽으면 되게 재밌다. 장르적 쾌감에 아주 충실해서 즐겁다.

리사 엉거도 이 소설에서 그런 장르적 쾌감을 각잡고 쓰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게 보인다. 문제는 이게 너무 과해서 오히려 여성 주역들이 전부 다 남자 이상으로 모자란 등신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주역인 셀레나, 앤, 제네바 모두 너무나 뛰어난 여성들인데(특히 셀레나) 남자에 속고 사랑에 눈이 멀어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진실에서 눈을 돌리는 걸로 나온다. 이게 한명쯤 그렇고 나머지는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독립적이고 진취적이라 서로를 끌어주고 지탱하면 말이 되는데 셋 다 결과적으로 똑같아서 각자가 나의 걸크러시함을 봐줘! 하고 외칠 때마다 되게 하찮게 느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주역 셋 다 이 ㅈㄹ이니 뛰어난 여성의 상징은 병신같은 남자에게 속아야 하는 것처럼 되어 동정심이나 공감이 안 된다. 성장형 캐릭터 하나가 그래야 정도 가고 그럴 건데 셋이서 돌아가며 ㅈㄹ이니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고 오히려 작가가 여자를 돌려 까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이야기라도 재밌었다면 다 극복할 수 있고 좋은 게 좋은 거였다고 할 수도 있었을 건데 앞서 말했듯 결말이 너무 심하게 하찮다. 이야기 내의 가장 큰 갈등을 여성의 동지애, 자매애 후후후 정도로 넘어가고 숨겨진 복선 같은 것도 중의적인 묘사 같은 것도 다 걍 내가 사람을 잘못봤네 ㅎㅎㅎ로 끝내서 욕도 안 나온다.

읽을수록 지능이 낮아지는 소설 간만에 읽었다. 이 정도로 멍청하니 사실 살짝 유쾌한 감도 있다. 바보라서 즐거운 것도 분명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