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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스포) 소메이 다메히토의 '정체'를 읽고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06.101) 2024.03.11 15:34:40
조회 109 추천 1 댓글 1
														
							
스포일러 주의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스크롤 해주세요.
만두이미지

나는 이 책을 읽기에 앞서 같은 작가의 '나쁜 여름'을 먼저 접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나쁜 여름'의 결말부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려서 악평도 많다.
악평을 남긴 사람들은 대부분 작가의 전작을 언급했다.
'정체'를 읽고 기대했는데 '나쁜 여름'은 실망스러웠다는 얘기다.
나는 '나쁜 여름'의 결말부 또한 좋아했기에
이 책을 펼치면서, 그래? 얼마나 좋은 소설인지 두고 보자!
그런 심정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쁜 여름'도 충분히 좋은 소설이지만 '정체'가 훨씬 더 좋았다.

'정체'는 탈옥한 사형수의 행적을 타인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야기다.
으레 그렇듯 누명을 벗기 위해 진범을 찾는,
수사와 추리 과정에 추격을 곁들인 미스터리가 떠오르지만
'정체'는 전통적인 의미의 미스터리 소설은 아닌 것 같다.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고 할지, 작가는 사건보다 사람에 집중한다.
각 장의 화자는 과거 또는 현재진행형의 상처가 있고
탈옥한 사형수인 '가부라기'를 만나 상처를 극복하거나 성장한다.
기연이라고 할지, 화자의 시선에 비친 '가부라기'는
어딘가 비밀스러운, 그렇지만 지혜롭고 사려 깊은 인물이다.
본인이 탈옥한 사형수라는 것에 대한 화제를 제외하면
어디까지나 담담하고 진솔하기까지 하다.
비밀이 있는데 진솔하다니 뭔 소린가 싶지만
타인을 대할 때 삐딱한 저의가 없다는 얘기다.
결은 좀 다르지만 데미안, 조르바, 개츠비 등등이 떠오르기도 한다.
각 장을 끝마칠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화자들이 그렇게 여기듯, '가부라기'는 이미 우리의 친구다.
화자들은 그의 정체를 깨닫고도 신고를 망설이고
우리는 그가 정말 살인범일까, 의심을 품게 된다.


'가부라기'는 누명을 썼다.
이 원죄 사건을 대주제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각 장마다 또 다른 사회 문제들을 툭툭 건드린다.
고령화, 산업 재해, 불륜, 사이비 종교 등을
소주제로 하여금 독자들을 환기시킨다.
그중에도 작가는 특히 다수에 의한 폭력,
여론, 시선에 의한 폭력에 민감한 것 같다.
미디어(유튜브)의 선동에 의해 무고한 자가 고통받는다.
다수결(자필 서명)도 때때로 폭력이 된다.
모두가 동조하는 이야기(강연회)에는 현혹되기 쉽다.
소주제는 자연스럽게 대주제로 이어진다.
'가부라기'는 이미 내려진 결론(표적 수사)에 의한 피해자이며,
여론을 의식한 경찰에 의해 끝내 사살된다.

재미있는 점은 '가부라기'를 구하려는 인물들이
자신을 찔렀던 칼을 도로 무기로 삼는다는 점이다.
당해 본 만큼 그 영향력을 잘 안다며
그들은 유튜브, 자필 서명, 강연회를 이용한다.
타인을 속이거나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힘으로 뒤바뀐다.

특정 매체나 수단의 역기능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도 그런 의미를 지닌 속어가 있다.
다수가 목소리를 내면 '떼법'이며,
자극적인 이야기를 퍼다 나르면 '렉카'다.
때때로 단어 앞에 '악질'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무슨 정치적인 이야기를 꺼내려는 게 아니라,
특정 용어가 생길 만큼 언급이 많다는 얘기다.

'정체'는 그 역기능을 뒤집어 순기능을 드러나게 한다.
나는 이런 종류의 역전이 유쾌하다.
더러운 것을 보며 욕하는 것은 쉽지만
깨끗하게 닦아 실체를 드러나게 하는 건 어려우니까.

나쁜 여름도 그렇고, 이 작가 작품을 읽으면
내 스스로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타인을 대하는 태도 같은 걸 반추하게 된다.
'가부라기'의 재심을 이끌어 낸 건 자력 구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맺은 인연의 힘이었다.
타인과 관계 맺을 때 나는 어떤 인간이었나?
내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다면
몇 놈 정도는 그 새끼 그럴 줄 알았다고 하겠지.
친구가 용의자가 된다면 나는 또 뭐라고 말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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