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리뷰 - 추리소설 마니아를 위한 책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뻔한 소재가 많다. 눈이 오는 산장에 갇힌 날에 살인이 발생한다든가, 피해자 외에는 아무도 침입이 불가능한 방이라든가, 피해자가 죽기 전 암호로 유언을 남겨 놓는 등 추리소설에서는 이런 소재가 지겹도록 나온다. 그중에 항상 나오는 장면은 특히 명탐정인 주인공을 제외한 들러리들은 항상 헛다리를 짚는 것이다. 《명탐정의 규칙》은 추리소설의 이런 요소를 자학하는 추리소설이다.

진범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않아도 되고, 사건 해결의 열쇠를 놓쳐도 아무 문제 없으며, 그저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적당히 의심하기만 하면 되니 이보다 편한 역할이 어디 있냐고들 할 것이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알고 보면 이렇게 힘든 배역도 없다. 사실은 명탐정보다 훨씬 고생스럽다. 그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선 범인을 알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나는 절대로 범인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자학적인 요소는 프롤로그부터 시작한다. 명탐정 덴카이치의 들러리인 오가와라 반조 경감은 헛다리 짚는 일이 더 어렵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그는 진범을 의심하면 안 되니 탐정보다 앞서서 진범을 눈치채야 하는 것이다. 명탐정도 명탐정이지만, 들러리도 쉽지 않다.

“알리바이 허점 찾기 식 탐정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 역시 시간표 따윈 안 읽어.”

“정말요? 그러면 어떻게 추리하는 건가요?”

“추리 따윈 하지 않아. 주인공이 추리해 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지. 그래서 지치지 않는 거야. 마지막 단계에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이해하고 만족하는 거야.”

<《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메타픽션적인 주인공들이 재미있었다. 작가가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자신을 까내리는 장면들을 읽으며 웃음이 나왔다. 추리소설 독자들도 진득하게 추리하는 일은 없다라든가, 독자들도 밀실을 지겨워한다든가, 노선도나 평면도를 유심히 보는 독자는 없다는 독자인 나의 마음을 찌르는 내용이 많았다. 1996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이 2024년인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명탐정의 규칙>은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다. 특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독소 소설》, 《흑소 소설》 등 유머 소설 시리즈를 재밌게 읽었다면, 이 책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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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기능 썼는데 다 안 먹힘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