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단편] 대화하는 두 사람. - 추리소설 마이너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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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2

[일반] [자작 단편] 대화하는 두 사람.앱에서 작성

USER01

2024.04.13 21:34:59

조회 280 추천 7 댓글 10

충전기가 없어. A군이 말했다. 맞은 편의 B양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자 A군이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말야. 카페에서 노트북을 쓰면서 충전을 안 하다니 이상하잖아. 배터리가 충분해서 굳이 충전을 안 하나 보지. B양이 말했다. 아닐걸. 배터리가 백 퍼센트라도 일단 꽂고 보는게 충전기잖아. 배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족해질 수도 있으니까 꽂는 거라고. A군이 심드렁하게 반박했다.

어쩌면. A군이 갑자기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범죄가 일어났을지도. 충전을 안 하는게 범죄야? B양은 황당했다.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 거지. 충전기는 훔치지 못 했으니까. A군이 명탐정이라도 되는듯 당당히 말했다. 잘 생각해 봐. A군이 뭔가 말 하려는 B양을 막으며 말을 이었다. 노트북 충전을 안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어. 충전기가 아에 없거나, 충전기를 집에 두고 왔거나, 자리에 콘센트가 없거나.

일단 저 자리엔 콘센트가 분명 있어. 그리고 노트북을 챙기면서 충전기는 빼먹다니 그게 말이 될까. 가방도 큰데 말이지. A군이 빨대로 커피를 쪽 빨아 올리며 턱짓으로 남자의 의자 옆에 놓인, 납작하지만 큰 천 가방을 가리켰다. 충전기를 집에 두고 온 것도 자리에 콘센트가 없는 것도 아냐. 그렇다면 답은 하나. 저 남자는 노트북의 충전기가 없어. A가 계속 말했다. 그런데 충전기는 노트북을 살 때 같이 주는 거잖아. 그러니까 저 남자는 노트북을 산 사람이 아니란 뜻이 돼. 즉 주인이 아니란 뜻이지.

빌렸을 수도 있잖아. B양이 간신히 끼어들었다. 노트북을 빌려줄 땐 충전기까지 같이 주는게 보통이야. 본체만 주는 사람이 어딨냐? A군이 바로 반박했다. 어쩌면 저 가방 안에 충전기가 있을 수도 있잖아. 배터리가 많이 떨어지면 꺼낼 생각일 수도 있지. 일단 꽂고 본다는 건 니 생각이고. B양도 반박했다.

저 가방에 충전기가 없다는덴 백억 원도 걸 수 있어. A군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노트북을 꺼낼 때 충전기도 같이 꺼내지, 뭐 하러 노트북 먼저 꺼내고 나중에 충전기를 꺼내? 배터리가 많이 떨어졌을 때 충전하겠다 생각하더라도 충전기 자체는 노트북을 꺼낼 때 같이 꺼낼거란 말야. 그런데 지금 저 사람 자리 어디에도 충전기가 없잖아.

B양이 한참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인정. A군은 그 모습을 보고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충전기 없이 아직 동작한다는 건 훔친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이겠지. 집이 아니라 카페에서 노트북을 본다는 건....글쎄, 저 남자가 저 노트북을 갖고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누군가가 집에 있다는 뜻 아닐까. 집 안의 누군가는 저 남자가 노트북의 진짜 주인이 아니란 걸 아는거지.

결론적으로. A군이 엣헴하고 뻐기듯 목을 가다듬고 결론을 말했다. 저 사람은 가족 또는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서 방금 막 노트북을 훔쳤어. 그게 결론이야. B양은 뭔가 불만이라는듯 물었다. 그게 결론이라고? 진실이 확실해? 그러자 A군이 갑자기 표정을 심드렁하게 바꾸며 말했다. 글쎄. 진실인지 아닌지 나야 모르지. 물을 수도 없고.

오늘 여자친구랑 카페 갔다가, 충전기 없이 노트북 하는 남자를 보며 문득 머리속으로 떠올린 가설을 단편 소설로 써본 것

그냥 잊기엔 재밌는 가설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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