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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번역] 프랑코 프레다 - 시스템의 붕괴 (1)

ㅇㅇ(218.147) 2020.04.17 17:30:59
조회 546 추천 1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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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anco "Giorgio" Freda - The Disintegration of the System (1969)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의 세상에서, 궁극적으로 경제적 고려가 가미되지 않은 그 어떠한 것도 위대함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하다. 우리는 두 종류의 상반된 인간상, 예술적 인간과 도덕적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의 고유함을 나타내는 원천을 대단히 능숙하게 인지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또한 경제 투쟁의 주역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진보의 과정과 동류에 속한다. 그들은 모든 이에게 현재 명시된 모든 권리를 향한 투쟁에 성공할 때 적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줌으로써 만인이 사회 번영의 진정한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근본적인 구실에서 접점을 이룬다.”


이와 같은 회합을 형성하도록 이끄는 근본적인 사유는 심오한 신념 – 나의 신념과 당신의 신념 – 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순간은 삶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전의 중심적인 동기와 세상을 에워싼 “결속(closing ranks)”의 요구가 우리의 조직에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리의 정치적 존재를 이끌어내어, 이상적인 방향으로 상정할 만한 것을 구별해내게 하는 진정한 핵심과 계율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의 요구였다. 그 다음에는 – 그보다는, 그에 대한 귀결이자 동시에 – 복잡하지 않고 우리의 소명(vocation), 우리의 정치적 투쟁의 의지를 향한 억압이 없는 – 한마디로, 편견이 없는 - 유동적인 집단을 기민한 방식으로 명료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요구였다.


이 순간 우리가 저지른 과거의 오류들의 해명, 그것들을 저지르게 된 심원한 사유의 이해의 필요성이, 우리의 정치적 신조의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우리의 근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 – “우리의” 근원이란, 심중 유보(mental reservation), 불분명한 목적, 쁘띠 부르주아의 변명에 의한 정치적 맹세가 아니며, 반드시 완수해내야 하기에 자신의 의무를 성취하는 자의 초개인적인 혼(soul)을 품은 정치적 맹세를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 그리고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본질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깨닫고 있다. 본질에 대한 분명한 고수는 지금이 당장이 아니더라도 실용성과 수단성을 견지한 채 기민함과 유연함을 보여주는 우리의 수용성을 공고히 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중심부에 더더욱 뿌리를 내릴수록, 중심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 중요한 것으로부터, 그리고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서 - 비로소 우리는 경계 너머로 더욱 쉽게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데 새로운 내용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처음에 유연한 정치 조직의 탄생을 이끌어내기 위해 결속(close rank)을 이야기했다. 이에 좀 더 덧붙이고자 한다: 정복과 권력을 향할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는 정치 조직의 소유를 추구하는 결속.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이 길을 따라오고 있다. 우리는 자유와 장엄함을 겸비했을 때 뒤따르는 자아비판의 결과들을 두려워해선 안되며 우리는 이와 같이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몰락했다! 우리는 “타자”, 그리고 “타자”의 정략적인 책략, “타자”의 거짓된 문제, “타자”의 사상적 주장에 수동적으로 묶인 채 남아있다: 그는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를 – 그것들은 적어도 모호한 형태를 띄고 있지만 – “타자”와 묶어 억압해왔다. 이 모든 처신들은 – 지도자들의 처신, 그 다음에는 파르티잔들의 처신 – 좋게 표현하면 순진했고, 나쁘게 말하면 아둔한 것이었다.


우리의 정치 담론은 처음에 유럽을 향해 초점을 맞췄고, 그리고 우리는 유럽이 진정으로 신화의 세계이자 진정한 관념력(idea-forece)의 표상이라고 믿어오곤 했다: 나중에 우리가 스스로 납득한 것은 이러한 단어는 담배 가게, 세탁소, 스낵 바, 그리고 스파 리조트 호텔 이 모든 것이 자기들 스스로 “유럽이다!”라고 외치는 시대의 세상에서 더 이상 고유의 프로파간다적 가치를 지닐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단순한 지리적 정의만을 반영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여타 다른 민족주의자들의 쁘띠 애국적인 신념과는 상반되는 유럽의 정치적 신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러나 우리는 쁘띠 부르주아적인 민족주의 우파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아니면 그것을 자각하길 바라지 않는 것일수도?) 특히 우리와 함께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동일설주의적”[?] 논쟁의 닳고닳은 모든 표현들에게도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이 또한 신 파시스트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유럽, 파시즘, 그리고 혁명을 외친 이후로 과거의 한정된 의미를 초월했다) 우리는 이 표현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도, 그것에 대한 검증도없이 “유럽 문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문제에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부대가 스페인 속국의 성직자와 미국보다 우리의 세계적인 비전에 더 부합하는 세계의 역사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과연 실제로 동질적인 유럽 문명이 존재하고 그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계수(coefficient)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북 베트남의 전사들이 보여준 스파르타적 기상, 진실함, 영웅적인 스타일은 서방의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인의 소화관(消化管)보다 우리의 신념에 훨씬 더 가까우며,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스트가 유대인 또는 유대인화된 영국인 (그들을 유럽인이라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보다 복수를 향한 우리의 꿈에 훨씬 더 근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유럽이 미국과 소련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음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화되고 소련화된 이후의 유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유럽의 헤게모니를 향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유럽 국가와 국민들이 미국과 소련에서 수출된 이데올로기에 – 군사적인 패퇴에 뒤따른 것이지만, 그 패배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은 아니다 –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긴장상태[냉전]를 종식시키고자 정치, 경제, 문화적 붕괴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려 없이는, 이러한 투쟁은 일부 유럽인들 중에서의 몇몇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일련의 역사적 시대에서 발생한 (오로지 몇몇의 결연한 역사적 시대에서의 몇몇 사람들 사이에게서 나타나는!) 지원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유럽의 책임으로 애써 돌리는 문명의 상급 차원들을 붕괴시킬 것이다.


우리 스스로 꼭두각시 “유럽”의 역할에 즐거움을 느끼고, 그 이름을 연호한 채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계몽주의의 유럽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는 상인의 유럽, 금권정치의 식민지인 유럽에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이상과] 공유할 수 없다. 우린 오로지 유대인, 유대정신의 유럽에 항의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럽 문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한다: 우리가 이에 대해 또한(also) 이야기한 것을 나에게 말하지 말라: 불행히도, 우리는 오로지 이것에 대해서만(only) 이야기하고 있다! 아니면 아마도, 우리가 또 다른 것들을 보고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 밖의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현재까지 이어져온 이 “다른” 것에서부터, 우리는 진정으로 완벽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이 “다른” 것을 숙고하고 이해했더라면, 우린 아마 이러한 내용들을 어떠한 용기(container) 혹은, 좀 더 격식있고 여전히 더 나은 표현으로 말하자면, “EUROPE”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브랜드 명”으로 나타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잡다한 불순 성분들이 점차 [유럽을] 밀쳐내고, 파묻음으로써; (감히 말하건대, 너무도 많은) 요인들에 개입하여 이 유럽인의 액체를 바꾸고 타락시켜 결국 거름으로 만드는데 이르게 함으로써, 유럽은 여전히 분리의 과정을 분명하게 겪고 있다. 유럽은 이제 온갖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늙은 창녀에 불과하며 온갖 이데올로기의 질병에 걸린 것과 다를바 없다 – 중세 공동체의 반란에서 비롯되어 반제국주의적 국가 군주제에 이르기까지; 계몽주의에서부터 자코뱅주의, 프리메이슨, 유대정신, 시오니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 창녀는 자신의 자궁에 부르주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봉기를 품고 잉태한다: 자신의 혼을 상인의 폭력과 노예의 반란에 팔아버린 채로.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마법의 단어를 속삭이며 이것을 구원하고자 한다: 예컨대, 우리는 브레스트에서 부쿠레슈티에 이르는… “유럽인”들을 위한 무언가를 건네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독자적이고 공통적인 의미를 대변하지 않은 채 유럽의 깃발을 치켜세웠다: 유럽이라는 찢겨버린 휴지를 구성하는 유럽의 자손들과 유대감을 헤아리지 않고 그 휴지의 뒷면에 얼마나 많은 배설물이 묻혀 있는지 헤아리지 않은 채로!


요약하면,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진정하고 참된 것인지 선택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함 그리고 유럽의 전통에 있어서 존재하는 (이 경우 역사적으로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순하고 모호한 것을 거부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능함을 공식으로의 의존, “유럽”이라는 단어로의 의존을 통해 이러한 공허에 환상을 채워 놓으면서 애써 숨기고자 한다;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민주주의 부르주아의 유럽인지, 민주주의 사회주의의 유럽인지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어제에 존재했던 파시즘의 나치 유럽인지; 그 전날에 존재했던 자코뱅과 반 혁명의 유럽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ECC의 테크노크라트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유럽의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층에는 이탈리아 노동자를 향한 “합리적인” 착취가 이뤄지고 정상에는 국제 자본의 투자가 이뤄지는 피라미드에 부여된 불결한 위계질서에 유럽은 토대를 두고 있다.


이와 같은 모호한 공식을 대체하고자 (이것은 단지 마찬가지로 그저 모호할 뿐인 다른 공식들 – 민족주의의 공식 – 로부터 우리를 구별하도록 만들 뿐이다) 유럽인이 “초국가적(supernational) 유기 정치 단결”에 참여하게 할 최선의 방법,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아우르는 유효한 방향성이 무엇인지에 따른 원칙들의 이름을 명명 짓는 것이 필요했다. 이것은 “늙은 유럽”, 수백 년의 모호함으로 둘러싸인 유럽 (늙은 광대에 의해 알려진 문장의 의미를 역전시킨 것으로서), 반제국주의 공동체의 유럽, 로마 교회의 유럽, 프로테스탄트의 유럽, 중상주의, 계몽주의,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유럽, 유대인과 프리메이슨의 유럽이라는, 이 기괴한 유령이 [앞에서 정의한 유럽과는] 너무도 상이한 종족의 [유럽] 인간들을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여전히 “유럽”이라는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은 또다른 현실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그 이상의 내용을 다루지 않고 이 자리에] 멈춰 서 있는데, 이는 우리가 저지른 오류가 가지고 있는 대단히 명확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유럽의 모티브는 우리 조직의 수년간의 정치 행위에서 축적되어 온, 우리의 정치적 관점의 흐름을 향한 초점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우리 계획의 다른 요소들 또한 분명한 계획 하에서도 앞에서 이미 언급한 모호함의 결과를 내포한 순간으로부터, 그 기타 요소들을 분명히 숙고하고자 무용한(useless) 상태에서 멈춘 것이다.


우리의 근시안적 시각과 오류들을 인식한 지금부터,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가정과 분석의 방향성의 검증 그리고 타자에 뒤따르는 작전상의 기준에 대한 검증에 앞서, 좀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계속해서 “타자”(the others)이라는 말을 정확히 사용할 것인데 – 상대방(adversary) 혹은 적(enemy)이 아닌 – 그 이유는 단어 혹은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대단히 극단적인 묘사로 주장하거나 명료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우리와 타자의 간극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은 (그리고 존재하게 될 수많은 것들은) 단순히 사고방식의 차이, 행동 양식의 차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차이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위에 전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의 행동에 적합한 인상을 부여하며, 우리 시대의 서로 다른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형상과 공통어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서로 다른 혼, 또다른 인종이다.


우리가 남겨놓은 고찰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오늘날 가장 비참하고 가장 치욕적인 독재정의 지배 하에 위엄을 부여받은 부르주아 시대의 대표자, 타자에게 둘러싸인, 타자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부르주아의 독재는, 곧 상인의 독재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부르주아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가정, 사회적 구태, 종교 선언.


“서구” 민주주의에서, 우리에게 구경거리로 다가오는 것은 부르주아적 삶의 이해에 너무나도 충실한 역겨울 정도의 일관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 하에서, 국가는 자신의 모든 억압적 수단인, 인민 계급의 헤게모니적 관계의 – 부르주아지의 계급, 그리고 특히 금권 과두정을 구성하는 부분에서 – 중재자에 의해 안정을 유지하는 데 이용된다. 이에 기반하여 배타적인 자리에 있는 계급주의자들의 지지는 경제적 현실 그리고 경제적 가치 이외의 현실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독재정은 프랑스 혁명 이래 보강과 헤게모니 강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등장한 이래 승승장구하고있으며, 이제 향후 약 100년간 부르주아적 인간관계 – 주인과 노예의 관계,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의 관계 – 이외의 대체는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일반적인 후견주의를 운운하며 도움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든 감언이설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체제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1849년에 이미 공산당 선언에서 당당히 기술한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현대 국가의 정치 권력은 오로지 전체 부르주아 계급의 공통 사업의 행정을 도맡는 군사 정부(junta)나 다름없다… 지배의 손길이 닿은 모든 곳에서,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이고, 목가적인 삶의 조건들을 파멸시킨다. 이것은 봉건제에서 인간을 자신들의 타고난 우수함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들어준 다채로운 관계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자신과 타인 사이에 남겨진 유일한 관계는 즉각적인 자기 이익의 실현 그리고 무자비한 대금 지불 뿐이다… 이것은 개인의 존엄을 단순한 교환 가치로 바꿔버렸다; 그리고 문서에 충실히 기록되고 축성되어진 수많은 다양한 자유들은, 가혹하고 냉혹한 양심으로 채워진 유일무이한 상업의 자유로 대체되었다.”


만일 부르주아 사회가 식물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조건들을 개선할 권리를 (정신적 영역의 범주까지 포함해서!) 피지배자들에게 부여한다면 (피정복자들에게!), 이것은 부르주아 사회가 기반으로 두는 – 사람들은 금세 망각하게 될 – 특권층의 이기적인 경제적 전제(premise)라고 할 수 없다. 그는 종종 “악마”는 존경의 대상이 되어갈수록 그 무엇보다도 위험한 존재가 된다고 정확히 말한다! 그리고, 사실상 가장 위대한 복지는 결과적으로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적 발전상에서, “권력의 남용”이라는 정치적으로 유효한 이름으로 통합된 일부 부르주아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추세가, 앞선 지배 계급을 상정하기 보다는 단지 폭력의 다양한 방식을 상정하도록 만들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여기서의 일관성 있는 선언의 표현들은 모두 동일한 현실을 나타내고 있다: 정확히, 생산 – 소비의 긴장관계에 따른 계획으로 에워싸인 현실. [해석이 다소 난해하지만, 자본주의의 전제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봉급을 인상시키면, 그들은 자본가가 생산한 냉장고와 자동차를 구매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사장은 언제나 참신함을 – 그리고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이고, 인공적인 것을 – 요구하는 강박에 사로잡힌 채 일하는 자들을 매료시키고 이러한 것들의 집착으로 빠지게 만듦으로써, 노동자들을 완전히 일에 열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마치 소처럼 (소는, 주기적으로 월급 인상을 요구하기 위해 울음소리를 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때때로 자신이 야생의 황소라는 망상을 만들어주고 마구간을 부수기도 한다!) 온순하고 행복하며 평온한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의 헤게모니를 자신의 헤게모니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르주아의 “대의” 민주주의 국가는 오로지 부르주아의 정치 공론장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독특한 기능, 그리고 진정한 목적지는 부르주아 경제에 의해 결정되며, 부르주아 경제로의 승화로 이어진다. 부르주아 과학의 기술 적용이 제공하는 사회 침입의 도움을 받아, 부르주아지는, 인간을 노동자의 단계로 환원시킨 후, “개인”과 “사회”의 교차확인의 과정을 완수하고 각각의 영역에 자신의 존재를 채워 놓는데 성공했다. 상인은 자신의 기질에게 자신만의 열망을 부여했다: 부르주아지의 정치 공간에서는 그 어떠한 여지도 없지만, 오로지 “부르주아”인 개인에게 전적으로 속하는 다르고, 낯선 (우리는 우월한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다르다고 말한다) 소명의식이다.


예술은 그 자체로, 부르주아가 예술에 기여하고자 사려 깊게 여기는 [예술의 독자적인] 자율 체계의 위선적인 정당화 (혹은 존엄화?)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부르주아의 쾌락 (차라리, 지적 자위행위라고 표현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에 쓰이고 있다. “자유” 과학은 부르주아 문명의 진보를 연구하는 또다른 것에 불과하며, 즉 부르주아 사회의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부르주아 문명의 “정복”에 봉사하는 효과적인 테크놀로지에 불과하다.


정의는 그 자체로 부르주아 사회를 지배하는 신념, “오만한” 계급, 즉 부르주아 계급의 신념이 투영된 법전에 담긴 또다른 결정체일 뿐이다. 시스템의 모든 부적절한 언동, 시스템의 모든 역기능은 시스템의 적들이 저지른 사보타주, 이 질서가 단지 숭배해야 할 우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 법으로의 순종은 그저 대단히 모욕적인 부조리를 대변할 뿐이라고 여기는 극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다.


최종적으로, 우연히 평등의 이러한 모든 계수들이 충분치 않게 된다면, 부르주아 사회는 자신의 원칙적이고 결정적인 안전 밸브를 작동시킬 것인데, 이는 스포츠라는, 대중 전이의 현상이자, 일탈의 현상을 통해 여전히 흥분상태에 놓인 대중들에게 잔존하는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사악한 목적에 근사한다.


이 외에도, 만일 경제가 부르주아지의 숙명이라면,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가난한 자의 숙명이기도 하며, 달리 말하면 피착취자를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숙명이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의 식당에서부터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또다른 현실도, 전혀 다른 집착도 아니다. 이것은 더 이상 부르주아지에 봉사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부를 배불리고 싶지도 않다는 격렬한 의식의 발현이며, 프롤레타리아의 반란을 유발한다.


부르주아지가 평등의 “라이트모티브”(leitmotif)를 법률적, 문화적 감수성의 개념으로서 낭송한다 한들 프롤레타리아는 “좋은 의도”에 스스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며, 확실한 행동 수단을 이끌어내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혹은 더 소유한 자와 덜 소유한 자의 구분을 제거할 공식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이고 정량적인(quantitative) 전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것은 언제나 경제적 현실의 이름 하에, 이것은 언제나 프롤레타리아가 경제적 관계에 대한 자신의 표현, 정의를 구현할 자신의 조직, 예술적 산물의 – 결과적으로 – 자신만의 사고 양식, 시민간의 관계 등등… 의 것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경제의 신비한 망상의 영향 하에 존재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socialist democracy) 간의 분명한 대립은 생산과 소비라는 이 특유의 지배에 직면하여 – 마치 빙벽과도 같이 – 하나로 녹아버린다.


경제 권력 그리고, 그에 따른 정치적 권력 (명령권을 가진)을 가진 자에 의해 대표되어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의 우선순위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자, 그리고 그에 따른 자신의 처분에 따라 구성되며 – 자신의 정치적인 명령 기능의 유일한 특권으로서 – 이러한 것은 소위 “적대” 진영에서, 부르주아지의 재산을 형성하는 생산 수단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나타낸다.


한 쪽에서는, 자유, 정의, 질서의 이름을 내세우며 정치 권력을 소유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달리 표현하면 자기들의 자본을 늘리고자 정치 권력을 증대하려는 자본의 소유자들이 있다; 다른 쪽에서는, 이와 다른 브랜드 명을 내세우며 동일한 상품을 광고하는 자본의 유일한 소유자가 있다. 생산-소비의 비정상적 과정의 경제 구조는 따라서 현재 두 가지의 경우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시스템의 제국주의적 결과를 – 간략하게나마 – 분석할 시기는 지났으며, 그것의 논리에서 독특하고 치명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의 방어의 수단으로서 나타나는 제국주의자의 공격에 대한 해결책을 반드시 정확하게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것처럼,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권력의 기능이 부의 관점에서 오로지 검증되고 발현될 수 있다고 한들 전혀 놀라울 게 없다; 우리가 국가에게 부의 반대(counter of wealth)라는 유일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은 그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이외에도, 부르주아와 사회주의자들 중 더 나은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쪽은 어디일까?): 국가의 기능이 부에 의해 정의되어, 부를 장악하고 식물 같은 실존상태에서의 육체적 요구에 대한 충족을 오로지 제기하게 됐을 때를 생각해보자. (또한 앞으로 우리는 불가피하게 “육체적”이라는 용어를 반복할 것인데, 부르주아지가 “정신적” 욕구를 스스로 충족한다는 혼동을 피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이 두 모델에서, 하나씩 소거해 나가면 이 동일한 현상은 오로지 “흐릿한 상”을 받아들인다. 한 쪽에서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장력, 다른 한쪽에서는 피통치자(the governed)와 관료 (테크노크라트 공무원) 간의 장력이 존재한다.


한 쪽에서는, 사유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국가의 조직 계수 중 하나를 대표하는 데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사유 재산은 국가 그 자체이며, 국가는 “유산자의 자산”이 된다; 다른 한쪽에서는, 국가의 재산이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의 재산으로 변형되고, 국가와 추상적 평등은 관료주의와 테크노크라시적 변명으로 환원된다.


이 지점에서, 두 유형의 조직 – 부르주아와 사회주의자 – 간의 결과들의 형태를 고려한 정체성이 “원칙” 상의 본질적인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다는 사실에 따르면 이 미묘한 “구분”과 위의 분석을 대치시키는 것은 우스운 일일 것이다. 착취-피착취 관계가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귀결이 되는 한편, 부르주아 자본주의 체제의 전제에서 반드시 유래한다는 것에 따르면, 사회주의자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부의 지배를 받는 자들을 향한 착취는 동일 체제의 본질이라고 탓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역기능 그리고 퇴보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와 정 반대로, 진실은 이 두 현상의 본질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인데, 원칙이 같기 때문이다: 경제는 인간의 숙명이자, 유일무이한 근본적인 – 본질적인 – 현실이며, 인간의 유일한 실존 차원이다. 그리고 이 “태고의 현실”은, 자신의 중심에 소화관(消化管)의 영구적인 이미지를 두어, 소명의식에 관한 두 개의 서로 다른 해석을 받아들인다: 하나는, 모든 소화관들은 똑같다; 또 다른 하나는, 모든 소화관들은 똑같지 않으며, 몇몇은 비대하고 다른 것들은 협소하다. (그리고 이것은 정의, 질서, 기타 등등… 의 것이 위험하고 파괴적인 “팽창”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게 왜 불가피한 일인지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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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8 운영 의문의 유동들이 동일한 말투로 1분에 한번씩 추천박히는 사태 민족주의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4 144 11
18885 자료& 의지에 관한 율리우스 에볼라의 견해. [2] 반자유주의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4 408 12
18883 일반 이미 내전이 일어나서 망하고있는 미국을 적대하는사이에 중공이 전세계 지배 [10] 백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3 352 12
18881 생각의 의대 증원, 자칫 다문화 인재 유입으로? 보수와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2 195 12
18880 일반 사상 이해할려고 역사부터 다시 읽고 있는데 [2] 보수와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2 141 5
18879 자료& 서구식 물질문명이 가져온 폐해 장태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2 345 16
18878 질답 너희는 헤겔 공부하냐 [11] ㅇㅇ(223.39) 02.12 248 3
18877 자료& 신라의 유신과 한국의 유신 장태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2 152 9
18876 일반 나치가 슬라브족을 절멸대상으로 생각한게 맞음? 맞다면 이유는? ㅇㅇ(14.39) 02.12 116 3
18875 일반 총통이 아리아인을 추구한 이유가 뭐임 [1] ㅇㅇ(14.56) 02.12 159 0
18874 생각의 기술발전과 자본주의의 모순, 그리고 사회주의 [3] 슐레지엔1776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2 154 7
18873 일반 주딱 교체됐네? [2] 슐레지엔1776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2 104 0
18870 일반 유럽도 이민자 혜택 정책 있음? [1] ㅇㅇ(223.39) 02.10 161 0
18869 생각의 다양한 민족이 다양한 언어로 서로 같은 이상향을 공유하는 나갤러(223.39) 02.10 130 0
18868 일반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파시즘 [4] 오헝오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0 232 8
18866 휴지통 민족혁명이 하고싶은 기분이다 오헝오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8 260 11
18865 생각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상대주의를 향해서》 Autumn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8 606 19
18862 일반 민문회 가입은 어디서 하는지요 [2] 나갤러(124.54) 02.06 302 1
18858 자료& <여러분에게 드리는 조공> [2] 김갑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6 351 12
18859 일반 내가 정치를 잘모르는데 [1] 나갤러(58.122) 02.06 164 0
18857 생각의 <주딱 그만둔 리유> [2] 김갑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6 471 19
18856 일반 김갑식 어쩌다 갤주사임함? ㅇㅇ(106.102) 02.06 111 0
18854 자료&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책" 영어판 PDF 스탈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5 198 6
18853 생각의 군대에서 부조리 당할 때마다 독뽕 참 [1] PzKu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5 273 8
18852 일반 갤주님과 함께 PzKu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5 138 1
2422 일반 한국 파시즘의 역사 김갑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8.19 1922 23
14548 컨텐츠 대학생 아니어도 무료로 논문 다운로드 받는 방법 [5] TTP(122.44) 22.07.16 814 26
18847 일반 북아일랜드도 있는 민족주의자, 우리나라엔? [1] 보수와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5 237 11
18846 일반 이자스민 당선, 민족에겐 독이다 자유와정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5 125 11
18845 질답 민문회 가입 조건 있음? 자유와정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5 92 4
18844 생각의 만약 파쇼들이 많이 모아져서 자유와정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5 115 3
18843 일반 여기가 한국이 나아가야 하는 길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집단이네 [3] 나갤러(58.126) 02.04 328 17
18842 일반 나치와 유 대인의 구별에 대한 모호성 ㅇㅇ(211.105) 02.04 68 1
18837 자료& 4.19주도세력의 10월 유신에 대한 좌담회 나갤러(218.239) 02.04 116 4
18806 질답 이런 식의 주장은 친구라고 생각하냐 적이라고 생각하냐 [1] ㅇㅇ(106.101) 02.03 161 0
18805 분탕 민족주의보다 계급투쟁이 먼저다 [4] 케말파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2 535 20
18802 일반 민문회 신년모임때 있었던 일 [2] 나갤러(222.113) 02.02 251 19
18800 질답 파쇼나 네오나치중에서 트럼프 지지하는 애들은 뭐하는 애들임? [4] 나갤러(220.86) 02.02 237 3
18798 자료&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1] 민족주의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1 788 22
18797 일반 밑에꺼 칼라필터만 조금 바꿔봄 나갤러(222.113) 02.01 145 7
18794 컨텐츠 나치 마이너 갤러리 프로파간다 포스터 제작완료 [6] 민족주의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1 595 21
18792 일반 김갑식 어디감? 무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1 125 0
18791 휴지통 나거한 [1] ㅇㅇ(120.142) 01.31 134 0
18789 건의 나치 갤러리 대문 수정안 [5] 나갤러(210.100) 01.31 220 2
18787 운영 나치 갤러리 새로운 대문 [1] 민족주의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1 194 7
18785 일반 숨어라 도망가라 공포에 떨어라 김갑식 [1] ㅇㅇ(223.38) 01.31 211 0
18781 생각의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3] 민족주의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0 556 22
18778 운영 주딱이 괜찮다면 여러가지 좀 고치려함 [4] 민족주의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0 270 8
18777 일반 혹시 부매 임명 다시해주실 수 있나요 [2] 오헝오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0 13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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