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디올 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한 지 11일 만에 김 여사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지휘 라인이 모두 교체된 것을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용산 대통령실 주도로 김 여사 관련 수사를 막기 위해 단행한 방탄용 인사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반면, “이원석 검찰이 지금껏 시간만 끌며 정치적 논란만 키우고 있어, 제대로 수사를 해보려고 인사를 낸 것”이라는 반응이 엇갈린다.
김 여사 수사, 어떻게 되나
이 총장은 14일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어느 검사장이 오더라도 수사팀과 뜻을 모아서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며 “우리 검사들을, 수사팀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로 김 여사 관련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단호하게 수사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디올 백 수수 의혹’ 수사팀은 지난 13일 재미 교포 최재영 목사를 소환 조사한 데 이어 오는 20일 유튜브 ‘서울의소리’ 관계자 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선 우려가 더 큰 분위기다. 법무부는 이날 대검 참모로 신규 보임된 검사장들에게 차장·부장검사 추천을 받고, 검찰 내부망에 ‘2024년 고검 검사급 검사 인사 관련 공모 직위 및 파견 검사 공모’ 게시글을 올렸다. 검사장 인사 하루 만에 차장·부장검사에 대한 후속 인사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후속 인사에서 김 여사 관련 수사팀이 얼마만큼 교체되는지에 따라 이번 인사에 대한 평가가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총장과 신임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마찰 가능성도 제기된다. 검찰 한 관계자는 “지금 수사팀이 상당 부분 바뀔 것으로 보인다”며 “윤 대통령이 총장 때 이성윤 중앙지검장과 갈등을 빚었던 모습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 제대로 하려는 인사”
이번 인사에서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사장으로 승진해 수원고검 차장으로 발령 난 고형곤 4차장검사는 작년 인사 때 한 차례 유임된 만큼 시기상으로도 “바꿀 때가 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검사장은 “때가 돼서 한 인사로 보인다”며 “정치적으로 보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할 만한 인사였다”고 했다.
용산 대통령실 주변에서는 “김 여사 방탄용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용 인사”라는 말도 나왔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이나 문재인 전 대통령 사위의 특혜 취업 의혹 등에 대해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며 ”진용을 새로 짜서 여러 논란 사건들을 제대로 수사해 보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 총장 지휘로 진행돼 온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측면도 없진 않다. 이재명 대표 부부의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私的) 사용과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은 총선 전 이 대표의 아내 김혜경씨가 국회의원 부인들에게 식사비로 쓴 10만4000원만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을 뿐이다. 또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경기도 부지사였던 이화영씨가 기소되고 1년 6개월이 넘도록 이 대표 수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 수사도 마찬가지다. 한 전직 검사장은 “검찰은 (김 여사 사건에 대해) 기소를 하든, 불기소를 하든 빨리 결정했어야 한다. 질질 끌다가 논란만 키운 꼴”이라고 말했다.
총장 패싱? 뒤숭숭한 검찰
인사 직후 검찰 내부에선 “총장과 협의도 없이 인사를 발표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른바 ‘총장 패싱설’이었다. 지난 11일 이 총장이 박성재 법무장관을 만나 인사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시기를 늦춰달라”는 이 총장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장관이 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의사를 물어, 이 총장은 “조금 더 이따가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갑자기 인사가 났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인사 직후 법무부 참모들과 만나 “이번 인사는 검찰총장과 협의하에 내가 주도해서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민정수석실 등 용산 대통령실의 개입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는 뒤숭숭했다. 한 부장검사는 “결국 일방적으로 총장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인사를 내버린 것 아니냐”며 “지난 정부 때 추미애 전 장관이 당시 총장이던 윤 대통령을 패싱한 채 수사팀을 와해시킨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재경 지검 한 부장검사는 “김 여사 수사가 시작되는 시점에 수사 라인을 전부 교체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러면 원칙대로 수사를 해서 결과가 나와도 오해를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김 여사를 아무리 수사해도 처벌 규정이 없어서 처벌도 못 할 텐데 왜 이런 분란을 일으키면서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이창수 전주지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된 것을 두고는 ‘윤가근 한가원’(尹可近 韓可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 차장검사는 “‘윤 대통령과는 가깝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는 먼 사람’을 발탁한 것이 이번 인사의 특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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