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계획」 37~38페이지에서

-----------------------------------------

  ... 그리고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여보세요, 타츠히코? 요전에 신문에서 광고하던 머리에 뿌리는 까만 가루를 사봤는데, 택배로 보내줄게. 사람들 앞에 나갈 때는 꼭 뿌리고 나가렴?"

  "....."

  그렇다. 이제 이 이상 숨길 수는 없을 듯 했다.

  아니, 전국에 약 스무 명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나의 팬이라면, 이미 한참 전부터 알고 계신 사실이다.

  즉 - '현존하는 모든 인터뷰 사진에서, 타키모토 타츠히코는 모자를 깊숙히 눌러쓰고 있다'라는 사실을,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께서는 진즉 알고 계실 터이다.

  이미 삼 년 전부터, 내 머리카락은 꽤 위험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에로게임 시나리오 집필을 하며 겪은 부족한 영양섭취가 최초의 트리거였다. 약 반 년만에 인상이

변할 정도로 머리가 빠졌다. 헤어스타일로 무마하지 못할 건 없었으나, 당장이라도 맨 피부가 드러나보일 정도였다.

  이런저런 와중에 첫 소설이 출판되어버렸다. 몇 번인가 잡지 인터뷰를 했다. 나는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 모든 사진촬영을 모자를 쓴 채로 보냈다. 여성 팬으로부터의 구애 메일이 와야만 한다. 비쥬얼은 중요한 것이다.

  물론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뒤에 숨어 꾸준히 발모에 힘을 기울이면, 언젠가 모자를 벗을 날이 틀림없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의약품도 많이 개발되어 있다. 탈모의 원인인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미녹시질, 피나스테라이드, 이런 약물들을 처벅처벅 바르고, 복용하고, 항상 두피를 청결하게 유지하면서 하루 세 끼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한다면 1년도 안 지나서 풍성한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겠지, 라며 낙관적인 예측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울을 보기는 싫었다. 자신의 머리를 똑바로 직시한 순간, 뱃속이 아파져서, 죽고싶어져서, 그래서 결국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여, 머리가 빠진다 - 그래서 결코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됐다. 자기가 대머리인 것을 망각하지 않으면 안 됐다. 어차피 히키코모리 인간은 그다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아파트 속에 틀어박혀있는 한, 나는 대머리라도 대머리가 아니다. 일 년에 몇 번 하는 사진촬영은 모자를 써서 감추면 된다-

  하지만 지금, 다시금 인간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해 몇 개월만에 거울을 들여다보니, 오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언제부터 이정도까지...

  오오... 지금 거울 너머에 존재하는 스물네살 남자의 머리는, 보기좋게, 치명적으로, 수복 불가능할 정도로... 오오, 오오, 신도 부처도 존재하지 않는 거냐... 이, 이건, 심하다... 그런, 설마... 이런, 이런...

 *

  "이, 이런 건 말도 안 돼! 여자친구 없는 히키코모리 대머리 따위, 헬렌 켈러급 삼중고 아냐! 이런 머리로는 평생동안 여자친구도 안 생기잖아!" 나는 분해서 바닥을 걷어차며, 세면대에서 절규했다.

  "진정해 타키모토씨. 대머리에게도 인권은 있는 거야!"

  "야, 얄팍한 위로는 그만해! 이제부터 모두가 날 바보로 여길거야. 대머리 히키코모리, 여자친구 없는 대머리, 편의점 점원한테 우물쭈물거리는 대머리, 이 나이 먹고 인터넷에서 에로사진 수집하는 대머리, 해외에서 개인수입한 약을 써 봐도 아무 효과 못 본 대머리, 친구 적은 대머리, 비참한 대머리, 달리기 느린 대머리, 음치 대머리, 하찮은 에세이나 쓰는 대머리, 부끄러운줄 모르는 대머리, 잘도 그런 꼴로 뻔뻔하게 사람들 앞에 나가는 대머리, 넌 이제 죽을 때까지 방에 틀어박혀있어 이 대머리야, 넌 이제 끝이야 이 대머리, 지금 당장 죽어 대머리 등등, 다들 나를 바보취급-" ...

-----------------------------------------

이 다음엔 뇌내애인 레이가 위로해주고 어쩌고 해서

아싸리 머리 밀어버리기로 마음먹고,

밀어버린 셀카 나오고 마무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