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의 고향 ‘와서튼’에서 와서는 독일어로 물을 뜻한다네.
영화 내내 물의 강박에 시달리는 보가
물 위에서의 사랑과 물 안에서의 트라우마/죽음을 보고
물이 없는 두려움과 물이 있는 생기로 나아가는데
물은 곧 어머니이자 자유가 아닐까.
자유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억울한 아이를 보는 듯 했음.
그리고 페인트도,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다 믿었기에 죽은 오빠의 공간(민트색)을 자신의 색(핑크)으로 칠해보지만 그 조차 거부되기에, 토니는 오빠의 색을 마시고 질식을 택한 거지.
버림받은 토니는 죽었지만, 그보다도 버림받았던 모나는 살아남았고 자기 자식을 제 어미와는 달리 진심어린 사랑으로 보살폈으나 되려 그것이 아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이 되어 아들을 두려움과 나태에 익사하도록 만든 것. 홀로 기업을 세우고 아들을 보살폈던 모나는 보에 의해 자기 삶을 잃은 채 위축되는데. 이후 그것은 현저히 자신의 선택이었음에도 - 심지어 작중 내내 보에게 현명한 선택을 하라고 조언하면서 - 본인의 잘못이 아닌 보의 나태가 곧 죄라며 억까를 시전하고 물 위에서의 심판을 받게 함. 모순인 건가.
보가 사랑했던 모나가 증오한다고 하자 그녀의 목을 조를 때 그 대립구조 뒤로 보이는 성모마리아 조각상.
보의 기일 선물이었던, 허나 주지 못 했던 것, ‘실천적’ 사랑의 상징.
보는 엄마를 사랑했으나, 그 사랑, 자신의 삶을 파괴해버릴 그 파도가 두려워 보다 실천적으로 다가가지 못 했던 게 아닐까.
그는 사랑을 몰랐던 게 아니라,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게 아닐까.
오인된 모자의 사랑, 너무 애처로운 최후였다.
두고두고 회자될 영화임.
다시 올려 봄)
+ 추가로 지브스도 생각이 나는데, 그레이스와 로저의 아들 '네이든'과 전우였던 군인이잖아.
정글에서 미친 상태로 동료들을 쏴죽이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럼으로써 돌아왔을 때는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댔지.
그는 트라우마(전쟁) 때문에 스스로 외로움을 택한 거야.
그리고 그레이스, 그레이스는 유일하게 다정한 엄마처럼 보를 보살펴 줬는데
그 이유가 이후에 나온 그레이스 대사 "내 아들이 되려하다니, 이 악마야!"처럼 그를 아들(트라우마)를 잊게할 인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음.
공교롭게도, 그녀의 트라우마인 아들을 대신했다는 대사처럼,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된 것이겠지만. 이 또한 언어의 차이임.
중반부 연극에서 나왔듯이 폭풍으로 아이들을 잃은 보가 외딴 나라에 가지만 그곳 사람들은 자기들과 다른 언어를 쓰는 보를 범죄자 취급한다.
마치 그레이스처럼. 그나마 언어가 맞진 않지만 노력했던 그레이스는 보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했기에,
자기 남편이 모나의 직원인 것을 알려주려고 '채널 78번'을 틀라고 한 것이었고
어서 도망치라고, 운명에서 벗어나라고 한 것이었을 텐데. 갑자기 딸이 죽으니 정신 못 차리고 미쳐버린 것임.
이 영화는 심리적(토니)으로나 역사적(지브스)으로나 가정적(모나)으로나
어느 식으로 해석을 해도 그 해석이 맞아 떨어지는 신기한 영화인 것 같다.
괜히 보가 유대인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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