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빈폴 엄청 재밌게 봤음

개인적으로 빈폴 보고 쓴 글이 있는데 누벨바그갤을 이제야 알게 돼서 여기에도 올려봄

비참함과 비참함과 비참함.

영화는 정말로 수많은 감정과 개념을 다룬다. 의존, 소유, 집착, 우정, 사랑, 책임감, 죄책감, 유대감, 절망, 체념, 공허감, 상실, 슬픔, 흥, 충동, 구원, 헌신, 희생, 트라우마, 의무감, 질투, 부러움, 희망, 광기, 그리고 비참함. 영화는 비참함을 묘사하는 데에 정말 심혈을 기울인 것 같았다. 주인공 이야는 헌신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지만 가장 깊은 내면엔 집착과 소유욕을 가진 인물이다. 영화는 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했는데 결국 비참해지는 상황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비참함의 시작은 전쟁이라는 점에서 나는 영화를 보며 반전에 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의 친구 마샤는 '아이를 키우는 일'에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다른 모든 것은 결국엔 안중에 없고 중요한 것은 아이다. 그 두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

'가장 깊은 비참함 속에서 발버둥치는 것은 마치 춤을 주는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 아주 잠시나마 비참함을 잊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그 잠시는 더 깊고 어두운 비참함으로의 추락을 위한 준비가 된다.' 내가 영화를 보며 생각한 것이다. 영화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춤을 추며 끝난다. 어쩌면 아야와 마샤는 다시 비참해지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마치 정말로 그럴 것처럼 영화는 끝난다. 그러나 영화 이후에도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생각을 하자면 그들이 비참함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 힘들 것 같다. 

영화 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관엔 나를 포함해서 6명쯤 있었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본 것은 2명의 친구들이었는데 둘 다 영화를 전혀 즐기지 못한 것 같았다. 한명은 지루했는지 초반에 나가선 영화가 중후반에 도달하고 나서야 돌아왔고 다른 한명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 "도대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빌런을 무찌르는 영화는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이런 건 모르겠다. 15금인데 이렇게 노출이 심해서 놀랐다." 라고 했다. 이 영화를 함께 보자고 했던 것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감정 묘사를 바라보는 것이 즐거운 나는 재밌게 봤지만 이런 취향을 가지지 않은 친구들에게 영화를 보자고 제안하는 상황이었으니 다른 영화를 제안하는 게 맞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난 영화를 재밌게 보았으므로 시간을 낭비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친구들은 더 즐거울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았는데 확실히 즐거웠다. 

​

여기 갤에 빈폴 관련 글 찾아보니까 다들 별로라고 하더라. 난 비참함을 그려내는 것에 집중해서 봐서 재밌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갤러들 말처럼 색감이 보기에 좋았다는 생각은 나도 했고 동성애나 페미니즘적인 메세지를 담은 영화라는 생각은 안들었는데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