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프리 정주행이 거의 끝나가던 즈음에, ‘다음은 어떤 시리즈를 정주행할까?’하고 고민하다가, 우연히 ‘하트캐치 프리큐어(하캐프리)’가 한국에서 방영된 지 10주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서 정주행을 하게 되었어. 사실, 개인적으로 하캐프리가 손이 잘 안 가게 되었어.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더빙판에 대한 악명(?)이 제일 컸던 거 같기도 해. 그래도 이 때가 아니면 언제 정주행하나 싶어서, 결국 정주행을 하게 됐지.

하캐프리를 처음 봤을 때, (다른 시리즈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어. 일단 작화부터가 ‘꼬마마법사 레미’가 안 떠오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비슷했어(이건 ‘꼬마마법사 레미’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던 사람이 캐릭터 디자인을 했으니 당연한 거긴 하지만).

그래서 초반에는 작화만 비슷한가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는(정확히는 14화 보면서부터) ‘작화 뿐만 아니라 스토리 및 연출 부분에서도 ‘꼬마마법사 레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14화(눈물의 어버이 날! 가족의 미소를 지켜라!)는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에피소드이기도 했지만, 보면서 한편으로는 '꼬마마법사 레미 샵(#)'에서 봤었던 에피소드(15화(더빙 기준으로는 11화) 어버이날에 그리는 엄마 얼굴)가 많이 생각났었어. 소재도 비슷하기도 하고.

하캐프리를 보면서, 단순히 잘했다는 걸 넘어서 훌륭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악역의 개성화'였어. 보통, 개성적인 악역이라고 하면, 최종보스나 악역 멤버들이 얼마나 개성적인 지(or 입체적인 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하캐프리는 이 개성을 악역 멤버들에게만 부여한 게 아니라 소환수(데저트리안)에게도 부여했어. 예를 들어, 5화(외면 당한 라면! 멀어진 아빠와 아들!)의 데저트리안을 보면, 희준이(아키라)의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으로 인해서 데저트리안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꿈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라면 가게를 부수는 걸 주저하게 되.

어떻게 보면, 자의식이 없고, 명령을 따르는 소환수로 남겨둘 수도 있었는데, 하캐프리는 그런 걸 넘어서, 소환수에게 개성을 부여했지. 이걸 표현하는 방법도 보면, 단순히 '사막의 사도가 사람들의 시들어버린 마음의 꽃으로 만든 소환수가 데저트리안이고, 그래서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하캐프리는 그걸 데저트리안의 대사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지. 사람들의 마음의 꽃도 사람들의 서사와 관련 있는 꽃들로 한 건 덤.

데저트리안의 설정은 단순히 악역에게 개성을 부여한 걸 넘어서서, 작품 전체의 서사를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줬어. 사람들의 시들어버린 마음의 꽃이 변한 게 데저트리안이다보니, 사람들의 서사가 데저트리안에서 묻어나는데, 결과적으로, 매화마다 저마다 다른 서사를 가진 데저트리안이 등장하고, 매화가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게 되. 큰 틀에서 프리큐어 멤버들의 서사가 진행되면서, 그 과정에서 데저트리안으로 변해버린 사람들의 서사가 매화마다 더해지면서, 결과적으로 작품 전체의 서사가 다양하고 풍부해졌지.

개인적으로, 역대 시리즈의 소환수 가운데, 가장 잘 만든 소환수라고 생각해. 이 이후에도 사람들이 소환수로 변하는 시리즈가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소환수에게 개성이나 서사를 부여한 건 못 본 것 같아(적어도 내가 본 시리즈 가운데서는).

또 다른 하나는 '프리큐어 멤버들의 서사'였어. 이 작품은 '사상 최약체 프리큐어가 동료를 만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잃은 아픔을 가진 프리큐어가 동료를 만나면서 아픔을 이겨나가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어. 어떻게 보면 이 둘의 서사는 별개로 진행될 수도 있었지만, 하캐프리는 이걸 '누군가를 잃은 아픔을 가진 프리큐어를 보고, 프리큐어가 되어 같이 동료로 지내면서, 같이 아픔을 이겨나가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로 만들었지. 큐어 문라이트의 서사를 바탕으로 큐어 블로섬, 큐어 마린, 큐어 선샤인의 서사를 만들어나가고, 다시 이 셋을 바탕으로 큐어 문라이트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아쉬웠던 부분을 이야기하자면(사실 옥의 티에 가깝긴 하지만), 마음의 씨앗의 연출이 여전히 아쉬웠고(왜 그게 거기서 나오는 방식으로 연출했는지 아직도 의문인데ㅋㅋㅋ), 듄과의 최종전이 뭔가 조금 급하게 끝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듦. 뭐랄까, 후반부에 큐어 문라이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어서 '어어어'하다가 끝난 느낌?

총평하자면, 다채로운 서사가 폭발하는 훌륭한 시리즈이다.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살린 몇 안되는 시리즈.

+더빙판에 대한 이야기

개인적으로, 하캐프리 정주행과 리뷰가 늦어지게 된 데에는 더빙판에 대한 악명(?)도 한 몫 했는데, 처음에는 더빙 퀄리티가 안 좋아서 그런가 하고,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정주행을 시작했는데, 정주행을 하면서, 생각 외로 성우분들이 연기를 잘하셔서 놀랐어(좋은 의미로).

달래(츠보미)도 생각 외로 괜찮았고, 바다(에리카)는 정말 캐릭터를 잘 살렸고, 해라(이츠키)도 변신하고 나서도 목소리가 그대로였지만, 연기 자체는 괜찮았고. 그나마 조금 아쉬웠던 게 채희(유리)였고.

초반에는 '생각 외로 더빙을 잘했는데?'라고 생각을 했는데, 계속 정주행을 하면서 깨달았지. '아, 이건 전적으로 PD가 잘못한 게 크다.'

특히 24화에서 삽입곡을 원곡 그대로 자막과 같이 내보내는 걸 보고, '이 사람(PD) 이거 시청대상이 누군지는 제대로 알고는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할 말이 없었어ㅋㅋㅋㅋㅋ 나중에 41화 삽입곡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내가ㅋㅋㅋㅋㅋ

그래도 참자, 참자 하면서 계속 정주행을 했는데(그래도 한 곡은 번안을 하긴 했는데, 그것도 전개상 어쩔 수 없이 한 거 같은 느낌), 결국에 듄의 연기를 듣고 나서 패배를 선언하게 됐지.

지금 생각해보면, 조연을 심하게 중복으로 돌린 것도 문제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이해할 수라도 있는데, 삽입곡을 원곡 그대로 자막과 같이 내보내는 건 도대체 무슨 발상으로 그렇게 한 건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가긴 해.

더빙판에 대해 총평하면, 'PD가 어떻게 하면 명작을 망칠 수가 있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

개인적으로 PD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를 깨달을 수 있는 반면교사라고 생각해.

(여담으로 이 PD는 다른 니치아사 시리즈(가면라이더 오즈)에 가서도 똑같은 짓을 저지름)

그래도 성우분들의 연기가 괜찮아서 나름 재미있게 보긴 했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프리큐어 영상들 가운데서도 조회 수가 높게 나온 걸 보면(1화가 20만회 정도), 나쁘지 않을 수도...??

P.S. 다음으로 정주행 할 작품은 아직 고민이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