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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핫산) 마법이 풀려도 - 쿠로사키 코유키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27 23:50:02
조회 4453 추천 73 댓글 30
														

번역기


9130자


원본


상담




예년과 달리 특이하게도 키보토스 전역을 폭설이 뒤덮은 밤이었다.

쿠로사키 코유키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곧바로 밀레니엄의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코유키, 괜찮아!?"


초조한 마음으로 병실 문을 열자 침대 위에는 환자복 차림을 한 소녀.

다만 그 머리에는 애처롭게도 붕대가 감겨 있고, 반짝이며 빛나는 눈동자도 힘없이 닫혀 있다. 뇌리에 무심코 최악)의 예상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것을 가로막듯이 침대 옆의 학생이 말을 걸어 주었다.


"선생님, 와주셨군요."

"......유우카. 코유키의 용태는?"


코유키의 선배에 해당하는 세미나의 하야세 유우카다.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묻게 됐지만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해 준다.


"안심하세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정말 다행이야...... 꽤나 급하게 와버렸는데, 이야기 좀 들려줄 수 있을까?"


일단은 안도하며 나는 먼저 와 있었던 그녀의 설명을 듣는다.

듣자하니 코유키는 몇 시간 전 자동차 사고를 당한 것 같다. 그것도 신호 무시나 위험 운전 같은 게 아니라 노면 동결에 따른 미끄러짐이 원인으로.

.......무심히 바라보고 있던 눈을 이렇게까지 밉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겠지.


"하지만 저쪽도 바로 응급처치 후 구급차를 불러준 모양이에요. 큰 외상은 없고 위자료도 차질 없이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알았어. 나도 가능한 한 도와줄게."


확실히 잠든 코유키의 몸에는 다행히도 눈에 띄는 상처는 보이지 않지만.......

유우카는 일변해 가라앉은 음색으로, 붕대가 감긴 코유키의 머리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다만, 머리를 강하게 부딪힌 모양이라 뭔가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 고마워. 유우카도 수고했어."


그녀의 옆 의자에 앉아 잠든 코유키를 바라본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작은 호흡이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도 무서웠지만.


"괜찮을까요, 코유키......"

"......지금은 그저, 기도할 수 밖에 없어."

"그렇, 겠죠."


우리는 가만히, 어느 때보다도 조용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코유키는 사고 후 며칠만에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몸도 문제없이 움직이고, 겉모습이나 기억에 뚜렷한 후유증이 남은 것도 아니다. 옆에서 보기엔 지금까지의 그녀와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다만, 단 한가지만.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린 게 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잠깐 그,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그렇게 목적도 없이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일까.

나는 컴퓨터 앞에서 어리석게도 그런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아, 그러면――"


황급히 정정하는 것보다도 빨리, 코유키는 반사적으로 내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그리고 기운차게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고 있었다.

꽤나 당돌하다고도 느껴지지만, 이전까지는 이상하지 않은 행동이었을 것이다. 쿠로사키 코유키는 밀레니엄 내에서도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대상이 암호라면 어떤 형태로든 직감적으로 풀어버렸을 터, 였다.


"그러, 면......."


이런 고작 13자리의 패스워드 따위, 본래라면 몇 초도 걸리지 않았겠지.

하지만 윈도우를 앞에 두고 그녀가 아무리 고민해도, 손가락을 떨어도. 그 손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멈춘 채.


"코유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코유키는 스르륵 떨어져 나간다.

켜진 모니터에는 스페이스 하나도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사고가 앗아간 단 한가지.

그것은 그녀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암호 해석 능력이었다.

키보드를 앞에 두면 어떤 암호라도 뚫던 천재성은, 뇌에 가해진 충격으로 어딘가 빠져나가 버린 것 같다.

원래부터 밀레니엄의 기술을 결집해도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이었던 것도 있고, 치료도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배상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가혹한 얘기일 거라며 미루고 있다.


".......니하, 하. 역시 안 되는 거 같네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요."


마치 마법이 풀려버린 것처럼, 소녀의 손끝은 춤추지 않는다.

이제 자정을 넘기려고 하는데도 컴퓨터에 붙은 그녀의 어깨를, 나는 천천히 두드렸다.


"코유키, 꽤 늦은 시간이야. 보내줄 테니 오늘은 돌아가렴."

"......네. 감사, 합니다."


그녀에게 보이던 세계는 누구도 모르는 것일 테니, 그 상실감도 분명 헤아릴 수 없다. 적어도 해결의 단서를 잡을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는 밤의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쿠로사키 코유키가 나를 따라다니게 된 것은.


"서, 선생님!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건 없나요?"


샬레의 당번날은 물론. 내가 밀레니엄에 갈 기회가 있으면 그녀는 바로 내 곁으로 오게 되었다.

아무리 사소한 허드렛일이라도 도와주려 하고, 설령 아무것도 볼일이 없더라도 계속 내 눈에 보이는 곳에 있고 싶어한다.


"앗, 선생님! 그거 가져다 드릴게요!"


분명 상실에 따른 불안감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겠지.

다만 퇴원한 직후 그렇게 돌아다니는 건 몸에 좋지 않고, 빈 구멍을 나만이 메우는 것도 뒤틀린 이야기다.


"있지, 코유키. 나는 딱히, 괜찮으니까......"


그렇게 생각해 거절하려고 딱 한 번 입을 연 적이 있었지만.


"......선생님?"


내 어두운 표정에서 짐작했는지, 그녀는 숨을 삼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황한 듯 만들어낸 미소 속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고마워."

"에헤헤, 다행이에요! 도움이 된 거네요!"


결국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끝내버렸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좋은 선배도 친구도 있다. 시간을 거듭하면 변해버린 세계에도 적응할 수 있을 거다.

상태가 이상한 부분은 있지만, 그녀의 밝은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한 채로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후우, 꽤 늦어버렸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고, 또다시 눈이 내린 주말에 사건은 일어났다.

나는 어깨에 묻은 눈을 털며 샬레 빌딩으로 들어가려 한다. 한동안 트리니티에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쪽으로 돌아오는 건 오랜만이었다.


(열쇠는 .......어딨더라)


뒷문으로 돌아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는다.

하지만 난잡한 생활이 화가 됐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가방을 열려고 몸을 틀던 순간이었다.


"――코유키?"


시야의 구석에 들어온 것은 선명한 핑크색. 차가운 하늘 아래 저 멀리 보이는 건 아무래도 학생의 그림자 같았고.

사고가 차가워진다. 나는 자세히 보기보다도 먼저 순간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니길 바라면서 눈길에 난잡하게 난 발자국을 새기며 가지만.


"......아, 선생님. 니하하, 오랜만이네요."


최악의 예상은, 이번엔 맞아버린 것 같다.

작은 몸에 차가운 눈을 뒤집어쓴 채, 쿠로사키 코유키는 현관문에 혼자 서있었다.


"코유키, 여기서 뭘...... 아니, 일단 들어가자."


막힌 말문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고 나는 코유키의 손을 잡는다.

그 손끝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보이는 피부는 어두운 와중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새파랬다.


"서, 선생님? 그 짐, 무겁지 않아요? 드, 들까요?"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너는――"


그럼에도 그녀는 내 가방으로 손을 뻗으려 한다.

순간 돌아보지만 농담도 착란도 아닌듯 하다. 창백한 얼굴 속에서 그 눈동자만이...... 일그러진 반짝임과 함께 빤히 이쪽을 보고 있다.


"......지금은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네. 얼른 따뜻한 곳으로 가자. 저체온증 위험이 있어."

"......그, 그런가요?"


손을 끌고 빌딩으로 들어가 1초도 아쉽다는 듯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필요한 것은 갈아입을 옷과 담요다. 수면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는 풍경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진다.


"코유키, 어디 아픈 곳은 없어? 졸음이 느껴지면 말해줘."

"괘, 괜찮다구요? 아무 일도, 없으니까요."


젖은 외투를 걷어내고 옷 사이에 들어간 눈을 떨어뜨린다.

전해지는 체온은 오싹할 정도로 낮은데, 그 미소만은 얼어붙은 듯 달라붙어 있다.


"......선생님이야말로, 추, 춥지 않아요? 저, 이런 거 갖고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멈출 새도 없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자판기에서 살 수 있는 콘포타주.

이런 계절에는 따뜻해야 할 그 캔은,


"자, 잠깐!"


끔찍할 정도로 차가웠다.

이 눈 속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내야 이렇게 될까.


"그러니까, 보세요, 저도, 도움이――"


지은 표정은 농담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도 분명....... 지금의 그녀에게는 따뜻하게 느껴지고 있을 거다.

그런 두려운 사실을 알게 되어 무심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지만.


"......"


지금은 더 늦기 전에 대처해야 한다.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코유키를 안고 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선, 생, 님? 저는, 괜찮――"


선택을 잘못해 버렸다.

어깨 너머로 들리는 가느다란 목소리에 강한 후회를 품으며 나는 걷어차듯 문을 열었다.



떨리는 몸에서 아직 체온이 전해지는 사이에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고 담요를 덮는다.

따뜻한 음료를 꺼내고 있으면, 다행히 늦지는 않은 것 같다.


"코유키, 괜찮아?"


시계의 긴 바늘이 몇 칸 움직일 무렵에는, 그녀의 체온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침대등을 켜고 옆 책상에 코코아가 든 머그잔을 놓아둔다.


"......네, 아무렇지도 않아요. 니하, 하. 또, 폐를 끼친 거 같네요."

"그럴 리가 있나.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상체를 일으키며 그렇게 대답하는 그녀의 피부에는 어떻게든 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진정됐을 즈음을 가늠해 나는 조용히 입을 연다.


"얘기할 수 있다면 대답해줘. 너는, 왜 여기에?"

"......용무가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뭔가 도와드릴 수 없나 해서."


코유키는 김이 피어오르는 코코아를 입에 대며 시선을 떨구고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누군가가 필요로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그녀의 언동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었다.


"....... 그 장소엔 얼마나 있었어?"

"기억은 잘 안나지만,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라구요?"


그렇게 대답해도 내가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풀지 않아서인지, 나보다 먼저 코유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딱히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구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더 할 말이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 목소리를 끊어버린다.

코유키는 사람을 잘 따르는 것처럼 보여도,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벽을 만드는 아이다. 그녀와의 사이에는 이 어두컴컴한 방 이상의 거리가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우카도 노아도, 상담하면 네게 힘이 되어 줄 거야."


쉽사리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였다.

유우카, 노아. 내가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복숭아빛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린다.


"......저, 정말로......"


최근 며칠 만에 처음으로 , 옅게 얼어붙어 있던 미소가 사라진다.

표정이 일그러지고 계속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던, 외로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듯한 감정을 드러내며......


"......정말로, 그런가요?"


코유키는 내 팔을 꽉 잡았다. 메마른 피부에 손톱이 파고든다.

피가 엷게 묻어나지만 그것을 신경쓸 겨를은 없다.


"그치만, 그치만......! 저를 불완전하게나마 세미나에서 필요로 했던 건, 그 힘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대신, 쏟아지는 시선에 응할 수 있게.

눈사태처럼 넘쳐흐르는 말 하나하나를 가만히 들어주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걸 알고,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유우카 선배도 노아 선배도, 나를 내버려두지 않았어요."


그것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미나라는 조직에서, 코유키의 능력은 대단히 유용했다. 그래서 그 두 사람도 적극적으로 코유키를 데려오려 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그런 단순한 논리는 아니지만, 그 두 사람은 그다지 감정을 능숙하게 전달할 수 있는 타입은 아니다.


"다, 다른 일도, 분명 그럴 거예요!"


가느다란 손가락에 부러질 듯한 정도의 힘을 주고, 매달리듯 나를 응시하면서.

한밤중의 샬레에 비명 같은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마법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갈 수 없는 곳에도 갈 수 있고, 어떤 것이든 손에 넣을 수 있고......."


무너지듯 내 두 손을 잡고,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몸을 내밀며.


"......저는, 저로 있을 수 있었어요."


굵은 눈물을 흘리며 코유키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난폭하게 눈을 닦은 후, 완전히 바뀌어 시선을 떨어뜨린다.


"그렇지 않은 저 따위, 아무 가치도 없어요. 그 두 사람과 얼굴을 마주친다 해도 어차피......"


사그라드는 말의 끝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두렵다, 슬프다, 외롭다. 그런 감정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은 괴로울 정도로 알게 된다.


".......최근 제가 겉도는 건 알고 있어요. 이게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요."


코유키는 눈을 피한 채 조금씩 말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어진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면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어딘가 눈치를 살피듯.....

붉게 부은 눈으로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치만, 적어도 선생님에게 미움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돌려주고 싶은 말이 여러 개 있지만, 대신 심호흡을 한번 한다.


"......니하, 하. 그렇죠?"


그리고, 가능한 한 전력으로......

꼭 끌어안아주고 싶은 마음 대신 나는 그렇게 단언했다.


"아니야."


떨리는 손을 다시 잡고, 그 눈동자를 확실히 응시한다.


"......선생님?"

"거짓말도 얼버무리는 것도 아니고, 절대로 그렇지 않아."


코유키라는 학생을 제대로 떠올리며, 나는 말을 이어간다.


"......그 배 위에서 처음 만난 후 날이 지나고, 너를 제대로 알게 됐을 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놀라고 있었어."


만남의 형태야말로 실로 최악이었지만, 접해본 바로는 그렇게까지 나쁜 아이 같지도 않았다.

하고 있는 건 윤리관이 파탄된 행동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아무래도 기분 나쁜 부분이나 어두운 부분이 보이지 않았고.


"딱히 그 특이한 해석 능력이 아니야. 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유폐에서 풀려난 후, 그녀와 매일을 보내면서......

나는 조금씩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내가 놀란 건 코유키. 네가 결코 오만하지 않았던 거야."


그런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그녀는 의아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별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저, 꽤나 까불어댔고."

"아아. 확실히 넌 경망스러웠을지도 몰라.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었고, 여기면 안 되는 규칙들을 수없이 어기고 있었으니까."


경망과 오만.

말장난일지도 모르지만, 그 둘은 치명적으로 다르기에. 고개를 저으며 나는 그렇게 계속한다.


"하지만 코유키. 너는 다른 사람을 근간부터 깔보지는 않았을 거야."


뛰어난 재능은 때때로 인격에 일그러짐을 초래한다.

공부, 스포츠, 외모, 심지어는 사회적 지위. 사소한 자신감은 쉽게 자만심으로 이어지고, 언젠가는 분명히 열등한 자를 깔보기도 한다. 정도나 주위의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러한 예는 몇 개나 있는 와중에도......


"......훨씬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도 너는 그 모습 그대로 선배들을 대했어. 이것도 못하느냐고 동급생을 비웃지 않았어."


능력을 이용하는 일은 있지만, 코유키는 그것을 이유로 자신을 특별시 하는 일은 없었다.

모든 암호의 해제 방법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틀림없이 이 전자사회에선 만능이라고 할 수 있는 압도적인 재주인데도.


"......그 정도의 일이라고는,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평범한 아이라면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거야."


떨어질 함정은 얼마든지 있었을 거다.

「너는 특별해」, 「너는 다른 사람과 달라」, 「너는 초인이야」. 그런 문구를 사용해 학생을 이용하려는 어른따위, 밀레니엄 밖에 나가면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면, 그렇지...... 다른 학생을 반면으로 삼는 건 좋지 않지만 총학생회의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고 할까."


그 IF가 얼마 전 쿠데타를 일으킨 방위실장이나, 백귀야행에서 만난 그 아이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능력이나 사상에 심취해 그 이외의 것을 경시하고 그 결과 치명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에 이르게 되었다.

능력과 나이의 불균형을 생각하면 코유키도 같은 방향으로 자신의 힘을 이용해 성격이 왜곡돼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너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는 않았어."


타인을 야유했을지도 모른다. 법을 어겼을지도 모른다. 다수의 타인에게 폐를 끼쳤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소란스러운 나날을 보내면서도....... 그녀는 결국, 그저 쿠로사키 코유키로 계속 있었다.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


내리는 눈 속, 어두운 방에는 초침 소리만 울려퍼지고 있다.

따뜻한 빛의 침대등에 녹아내리는 듯한 복숭아색 눈동자를, 나는 확실히 응시했다.


"네가 그 능력에 의지해 그저 휘두르기만 하면서 살았다면. 그 사고는 어쩌면 네 인생의 기로가 되었을지도 몰라."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꾸며도 상실은 상실이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것은 얼버무릴 수 없을 정도로 역행하는 일이라는 걸 이해한 후, 나는 말을 계속한다.


"하지만 코유키. 너는 결코 그렇지 않아."


그날 밤에 흘러내린 것을 건져 올리듯이, 그녀가 자신을 잃지 않고 있어 주듯이.


"네 좋은 점은 호기심과 행동력. 거기에 타인을 놀리지만 멸시하지 않는 상냥함이야."


한 호흡 후, 나는 강하게, 강하게 단언했다.


"맹세해도 좋아. 네 본질은, 그 마법이 아니야."


실로 한순간, 숨이 멎은 듯한 정적이 흐른다.

우는 듯하면서도 웃는 듯한. 살피는 듯한 표정으로 코유키는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제 해킹은 할 수 없는 걸요?"

"그렇다면 그것대로 다른 수단이 있지. 조금 어려워질지도 모르지만. 나도 도울 테니 같이 배워가자."


그 사고로 잃어버린 건 그 특이한 능력뿐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녀에게는 아직 성장의 여지가 있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도 있어. 너는 아까 그렇게 말했지만 유우카도 노아도 너를 걱정하고 있어. 귀여운 후배로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렇, 네요. 피하고 있었으니까 아마 제쪽에서 상처를 줬을 테고."


유우카도 「냉혹하다」같은 말을 듣기는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그날도 가장 먼저 병원에 가지는 않았을 거다.

노아 또한, 혼내는 와중에 뒤에서는 코유키를 대단히 귀여워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베리타스의 모두도 분명 네 좋은 동료가 될 거야. C&C 선배들도 뛰어들면 반겨줄걸?"

"니하하. 그 선배들은 조금 사양하고 싶은데요."


해커로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고, 그 메이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하긴, 후자는 코유키에겐 위가 아플 거 같지만.

하나둘씩 말을 이어가다보면 팽팽하던 분위기도 조금씩 녹아가는 듯 했다.


"......비관하는 건 어쩔 수 없어. 너의 당연한 권리야.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결코 없어."


벽시계의 긴 바늘이 한 바퀴 돌았을 무렵에는, 그녀의 떨림도 멈춰 있었다.

이제 괜찮겠지. 살며시 손을 놓고 나서 재차 코유키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뭐가 돼도 좋고, 뭘 포기해도 좋아. 나도 주변 모두도, 너를 응원하고 있어."


깊게 심호흡한 후,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렇게 맺었다.


"――네 미래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까."


말의 잔향이 창밖으로 빨려들어가고, 코유키는 멍하니 나를 보고 있다.

그리고 담요를 어깨까지 끌어당긴 후. 살며시 내 쪽을 살피듯 천천히 입을 연다.


"......믿어도, 괜찮을까요?"

"응, 믿어줘. 정확히 말하자면...... 네가, 너 자신을."


불안해 하는 시선에 응하듯, 확실히 말에 답해간다.


"......만약. 정말로 만약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저를 싫어하거나 하지 않나요?"

"안 그래. 물론 잘못된 길로 갈 거 같으면 주의를 주겠지만."


눈치채고보면 그녀의 눈물 자국은 말라가고 있었다.

동그란 눈동자에 조금은 빛을 되찾고, 코유키는 조용히 묻는다.


"......정말로, 정말로요?"

"거짓말도 과장도 없어. 진심이야. 손가락 걸고 약속해도 좋아."


그 말을 끝으로 방은 다시 조용했다.

방 한구석을 빤히 쳐다보며 가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민한 후, 코유키는 뻐끔 중얼거린다.


".......알겠습니다. 조금은, 노력해 볼게요."


그렇다 해도 잃은 게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 눈동자에는 아직 불안도 남아있지만, 망설임은 개인 것 같았다.

어느새 12시도 지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크게 기지개를 켜며 나는 모모톡 화면을 연다.


"아. 일단 내일 노아와 유우카를 만나러 가자. 연락도 왔었고."

"니하하, 그것도 조금 무섭긴 하지만요. 뭐랄까. 평범한 의미로."


그런 가벼운 미소를 입에 흘리고, 긴 밤도 이걸로 끝. 벌써 잠들 시간이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수면실을 뒤로 하려 했지만......


"자 그럼, 여기는 써도 돼. 나는 근처 방에서 자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아, 그, 잠깐만 기다려 주시면 안될까요?"


발길을 돌리려는 내 옷자락을 코유키가 조심스레 잡고 있다.


"......선생님? 잠들기 전까지,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그대로 비틀거리면서도 침대에서 일어나.

살짝 발돋움 하듯이 나를 올려다보며.


"저, 그게,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어색한 움직임으로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안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꼭."


유감이지만 즉답은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눈동자를 감고 나는 겨우 몇 초간 생각한다.

해러스먼트라고 하기 이전에, 코유키가 나만을 의지하게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눈동자를 열자 보이기 시작한 웃는 얼굴에...... 그녀라면 분명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려서.


"그래, 한 번뿐이야."

"......네!"


한 걸음 앞으로 내딛어 나도 살짝 손을 벌린다.

쏟아지는 눈에 가려지듯, 그녀를 껴안았다.


".......죄송, 해요."


흐느껴 우는 코유키의 등을 조용히 쓰다듬는다.

전해지는 체온은 이미 따뜻하지만, 그 눈은 얼어버릴 정도로 차가웠다.


"사실은....... 사실은 계속, 추웠어요."


그 눈물이 멈출 때까지, 나는 끌어안은 두 팔을 놓지 않고 있었다.




다음 날 점심 무렵에는 하늘이 이미 개어있었다.

조금 눈이 남은 길을 걷다 보면 금세 밀레니엄의 풍경이 보인다.


"그럼 선생님,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서 괜찮으니까요!"

"그렇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나도 따라갈까 제안했지만 코유키는 거절했다. 교문 조금 앞에서 멈추더니 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인다.


"여러가지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이쪽이야말로. 거기에, 눈치채지 못한 내 잘못이야."


다시 한번 나도 사과했지만, 코유키는 활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래도 이제 괜찮다....... 라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저도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

"그래. 말한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와줄게."


거기서 단언하지 않는 것도 그녀답지만, 그래도 걱정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딱 한번, 아쉬운 듯 나를 돌아본 후.......


"니하하, 그럼 다음에 또!"


그녀는 폴짝이듯 밀레니엄의 혼잡함 너머로 사라졌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나도 다시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혼자 걸으며 무심히 생각했다.


(......세미나로 향한 후, 그녀는 어디로 가려나)


그대로 유우카나 노아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베리타스나 엔지니어부의 문을 두드려볼 것인가.

생각해보면 코유키도 아직 1학년이니까 게임개발부와도 이야기가 통하겠지. 어쩌면 학원 밖으로 나갈지도 모르고...... 혼자서 원하는대로 걸어가는 것도, 훌륭한 선택지 중 하나다.


(......분명 할 수 있을 거야)


또 뭔가 저지를 것 같은 날에는 멈출 필요가 있지만.

역시 잘 안된다 해도, 이번에야말로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어젯밤의 잔재 같은 서릿발을 딛고, 나는 샬레로 가는 길을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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