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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2자
“선생님, 이쪽 서류 정리가 끝났어요!”
“고생했어, 잠시 쉬었다 할까?”
네~ 하는 사랑스러운 대답을 들은 뒤, 나는 작게 기지개를 켠다.
오늘의 샬레 당번은 아지타니 히후미다. 트리니티의 자칭 평범한 아이지만 실상은 전차를 빌리더니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 수영복 복면단의 리더 파우스트가 되거나, 학교 학생회의 나기사에게 편애를 받는 등 평범함이란 것의 정의를 재확인하고 싶어지는 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엽다. 앞서 편애를 받는다고 설명했는데, 왜 그렇게 사랑받는지는 이렇게 같이 활동하다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무리 사소한 부탁이라도 사랑스럽게 웃는 얼굴로 응해 주고, 내가 커피를 다시 내리러 가기 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 커피를 가져다 주고, 무엇보다도 저렇게 소파에 앉아서 과자를 먹는 저런 모습이 가장 귀엽다.
“저기, 히후미!”
“...? 네! 이 초콜릿 맛있어요!”
이렇게 히후미가 당번인 날에는 즐겁게 일하고 있지만 내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히후미가 너무 착한 아이라서 문제’였다.
히후미는 성실하고, 애교가 넘치고, 머리도 결코 나쁘다고는 할 수 없고, 분명 그녀가 자칭하는 것처럼 평범에 가까운 존재일지도 모른다(하는 행동을 제외하면).
…하지만 이 성격이라고 할까, 뭐라고 해야 되나. 너무나도 착한 아지타니 히후미의 뭔가 음흉한 모습을 하나라도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게 선생으로서 실격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평소에 갈색 피부 메이드 캐서린에게 밟히고, 게헨나의 행정관을 애완동물 삼아 산책시키는 나로서는 이렇게 히후미와 같이 일하는 정도로는 자극을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로나한테 요즘 날씨도 추운데 선생님 머리는 아직도 여름이네요! 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머리를 싸매고 있는 문제인데, 좋은 아이디어가 도통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선생님, 아까 전부터 멍하니 왜 그러고 계세요? 선생님도 같이 쉬어요. 여기 비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옆 자리를 툭툭 두드리는 히후미. 저렇게 순진하게 부탁을 하는 이상 나도 거절할 수는 없다. 나는 업무용 책상을 박차고 나와 히후미 옆에 앉았다.
왠지 옆에 있는 히후미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
…그런 번뇌로 가득찬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과자 접시에 담긴 쿠키를 한입 베어 물었다.
“선생님, 쿠키 같은 거 말고 이쪽 초콜릿을 추천합니다~.”
“...자꾸 그걸 권하네.”
히후미는 왜인지 나한테 찰싹 달라붙어서는 초콜릿을 들이민다. 힐끗 쓰레기통을 보니 버려진 포장지가 쌓여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어, 이거 혼자 다 먹어버렸어!?”
“아하하… 맛있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혀를 낼름 내미는 히후미. 귀엽다. 저쪽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혀를 내밀어서 페로로 님 인형을 심판으로 두고 핥기 배틀이라도 해야 되는 게 아닐까, 그런 근거없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내 뇌의 또 다른 부분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히후미가 이렇게까지 텐션이 높은 아이였나?
아니, 그야 모모프렌즈 상품을 소개할 때는 이 정도 텐션이기는 한데 지금 히후미가 우적우적 위장 속에 집어넣고 있는 건 콜라보 상품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초콜릿이다. 일단 그녀가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또 방과 후 디저트부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잘 모르겠고…
“자~. 이거 맛있다니까요~?”
크윽, 그만해 히후미. 그런 달콤한 목소리로 내 팔뚝을 쓰다듬지 마. 선생님의 선생님이 Stand Up 해 버린다고.
…그러고 보니 방과 후 디저트부 애들은 잘 있나. 지난번에는 강제로 디저트 가게 순회를 했었는데 뭔가 은근히 재밌었지. 기념품도 받았고.
음, 뭐였더라... 술이 들어간 초콜릿이었던가.
“어라? 왠지 이 포장지도 반짝거리네요~?”
아, 맞다. 마침 히후미가 들고 있는 저거랑 똑 닮았던 것 같은데.
…아니, 저거잖아!!!!
“잠깐만 히후미, 그거 지금까지 얼마나 먹었어!?”
“응~? 후후후~. 이게 마지막 한 알이에요.”
“있어 봐! …그건 내가 먹을래.”
아~ 하고 맥 빠지는 소리를 내는 히후미에게서 초콜릿을 빼앗아 내 입에 던져 넣는다. 역시나 씹는 순간 향긋한 브랜디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왜 가져가여!”
“가져가고 뭐고, 이건 히후미 네가 먹으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말투가 이상한데.”
“...그런 걸 여기다 두지 마시라구요.”
“그건… 그렇지. 미안해.”
다시 한번 히후미의 얼굴을 보니 뺨에 살짝 주홍빛이 돌고 눈빛은 이미 풀어졌다. 즉, 이 아이는 지금 온몸이 술이 들어간 초콜릿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선생니임, 더워요오.”
“어, 더워? 냉방 틀어줄까?”
“그게 아니라요!!”
“귀 아파라.”
“...먼가, 몸 속이 따끈따끈해져서어~. 아무튼 더워요오! 벗어도 돼여?”
벗어도 돼여? 하고 물어봐 놓고서는 이미 교복에 손이 가기 시작한 모습을 보고 급히 히후미의 팔을 붙잡는다.
“아하하… 선생니임, 성격도 참 급하셔라아~. 그래두 괜차나여! 오늘 전 수영복 입고 왔거든요오…!”
“그, 그래? 그럼 뭐… 상관없나.”
…사실 상관이 있다. 오히려 달아오른 히후미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수영복 차림을 보면 내 이성이 천국의 저편으로 날아갈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좀처럼 보기 힘든 히후미의 음흉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엄, 사양하지 않고오… 영차아.”
힘차게 감겨 올라가는 히후미의 교복. 그리고…
드러나는 ‘평범한’ 브래지어.
“히후미, 스토오오오옵!!”
…역시나 선생님으로서의 긍지가 욕망을 이겨내서 어떻게든 히후미의 탈의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샬레의 형광등 불빛이 비춰지던 그 브래지어만이 내 뇌리에 깊숙하게 박혔다.
그 뒤, 히후미에게 모든 사정을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했지만 휴식을 좀 취하자고 제안하니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때? 술은 좀 깼어?”
“...네.”
왠지 언짢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히후미. 아직 술이 덜 깼나. 물을 새로 가져다주려고 소파에서 일어나려는데 상의 소매를 잡혔다.
“...히후미?”
“선… 선생님은 제가 싫으세요?”
“에.”
“아니, 선생님은 제 초콜릿을 먹어버리질 않나, 벗어도 된다더니 벗지 말라 그러시지를 않나… 괴롭히기만 하잖아요!”
그건 히후미 네가… 라고 말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흑, 훌쩍…”
“히, 히후미!?”
“저, 엄청 평범한 학생이라서… 그래서 항상 고민이었어요…! 그래도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점점 자신감이 생겨서…! 이런 평범한 저도 누군가에게 필요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은 분명 선생님이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차가워지셔서 저는 너무 슬펐어요.”
…나는 선생 실격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 때문에 학생이 슬퍼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학생… 그것도 이렇게 씩씩하고 귀여운 아이를 슬프게 만들다니 교사 이전에 사람으로서 실격이 아닌가.
소파 쪽으로 허리를 다시 굽혀 히후미를 마주본다. 그리고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내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히후미.”
“네.”
“그게… 미안해. 히후미를 슬프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이래 봤자 변명밖에 안 되겠지. 그러면… 히후미의 부탁을 딱 하나 들어줄게.”
“제, 부탁이요…?”
“그래, 히후미의 부탁. 죄책감 때문은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 그리고 히후미는 열심히 샬레 일을 도와줬잖아. 그 보답도 할 겸해서.”
히후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페로로를 본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모래시계?”
“네. 이건 나기사 님이 주신 건데 위에 제 이름도 작게 새겨져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조금 쑥스러운 듯이 웃는 히후미. 나는 선물로 시계를 고른 의미가 뭘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손바닥을 감싸는 따뜻한 느낌에 깜짝 놀랐다.
“선생님께서는 이 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눈을 감아주세요.”
“...그게 다야?”
“네, 그게 다예요!”
나는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히후미가 모래시계를 거꾸로 뒤집는 모습을 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히후미는 이렇게 말했다.
“근데 말이에요, 저는 아직 술이 덜 깼거든요. 어쩌면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몰라요.”
“에?”
순간… 히후미의 숨소리가 거칠게 내 귓가에 닿았다.
“음…”
처음에는 새가 쪼듯이, 그리고는 점차 격렬하게 탐하려는 듯이. 히후미와 나의 입술이 맞닿았다.
“하읍… 음.”
히후미의 부드러운 혀가 내 입 안을 범한다. 그에 맞춰 찰박거리는 음란한 소리가 조용한 샬레 안에 울려 퍼진다.
…히후미의 음흉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게 내 소망이었지만, 막상 내 마음 속에 퍼지는 것은 약간의 흥분감과, 그걸 짓누를 만큼 커다란 죄책감이었다.
“음… 으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히후미의 범람은 이어진다. 그리고 그녀의 혀와 내 혀가 맞닿는 순간, 초콜릿의 은은한 단맛을 느낄 수 있었다.
“움… 츄웁…”
“...윽!”
갑자기 입 안에 미지근한 액체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이 히후미에게서 내 입으로 옮겨진 침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아차리기까지는 적잖이 시간이 걸렸다.
“푸핫… 선생님… 으음…”
이따금씩 히후미가 내는, 녹아내리는 듯 요염한 목소리는 내 이성마저도 폭력적으로 파괴하려 한다. 물론 선생님으로서 손을 댈 수는 없지만 어느새 내 두 팔은 히후미의 등에 둘러져 있었다.
“선, 생니임… 기뻐요… 음…”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히후미의 신호에 눈을 떠 보니 모래가 다 떨어진 모래시계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히후미는 옆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새빨갛게 물든 귀는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여전히 얼굴은 빨갛게 물들어 있지만, 힘찬 발걸음으로 히후미가 뒤를 돌아보았다.
“...오늘 상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남에게 떠벌릴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요, 저한테도 그… 성욕 정도는 있어요. 평범한 여자아이니까요.”
“그래도 선생님께는 그런 일면을 굳이 보여드리지 않았어요… 겨우 저만이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아내 주셨는데, 다시 평범한 저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제가 숨겨왔던 부분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솔직히 마음이 놓이기도 해요… 왜냐면 제가 너무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또 하나의 제 자신에 대해 깊이 알려드릴 수 있었던 것 같으니까요..”
“히후미…”
“그래서 선생님이… 이런 제 못난 점도 포함해서 아지타니 히후미라는 학생과 사귀어 주셨으면 좋겠거든요. 아하하… 역시, 너무 이기적이죠.”
“...그렇지 않아.”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 왔어. 하지만 모두가 다 자기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어. 그런 점에서 히후미는 술의 힘도 있었겠지만, 숨겨왔던 내면을 내게 보여줬어. 그건 아마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거야.”
“그러니까… 고마워.”
“고맙…다구요?”
“그래, 고마워. 덕분에 나는 히후미 너에 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었어. 학생 한 명 한 명을 사랑하는 선생님으로서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어.”
“선생님…!”
…이렇게 해서 히후미는 샬레를 떠났다. 이 선택이 정말 옳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그때 히후미를 거부했다면 한 명의 소중한 학생을 진정한 의미로 배신한다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사랑해야 하는’ 선생으로서는 잘못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학생 하나하나를 지켜야 하는’ 선생으로서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려운 문제네…”
산소가 모자라서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다시 샬레 업무를 재개하기로 했다.
…밤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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