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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8장 72화 - 태양희앱에서 작성

케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0 16:00:00
조회 1046 추천 19 댓글 11
														

“――너를 써먹을 용도가 있다.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너는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 남자가 한 첫 마디였고, 마지막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자신과 남자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남자와는 수십 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동안에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채, 연결된 지하실에서 감금되어 있었던 것과 별다를 게 없었다. 자신이 죽지 않도록 간병인은 있었으나, 그 신중한 남자는 정기적으로 그들의 입을 막고 교체해왔기 때문에, 수십 년 간, 접점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남자 뿐이었다.

――라이프 바리에르.

친룡왕국 루그니카의 귀족으로, 말 그대로, 추악한 야심에 지배당한 인물이다.

바리에르 가문은 아인 전쟁 때에는 자작으로 징용됐었으나, 패배의 책임을 묻는 형식으로 작위를 몰수당하고, 남작으로 지위도 강등됐다.

그 굴욕과 분노가 라이프의 행동의 원동력일 터인데, 그렇다면 인간의 분노와 증오라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

라이프는 항상 어제 있던 일처럼 수십 년 전의 굴욕을 되새기고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네 놈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네 놈은 나한테 있는 한, 살아있어야 한다. 절대로 잊지 마라.”

알고 있는 지식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정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결코 좋아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상대라도 10년, 20년을 같이 지내면 관계는 물러지고, 표독스러움도 서서히 사그라든다고 한다.

하지만 라이프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늘 새로운 적개심만이 느껴졌다.

따뜻한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라이프의 신상이라든가, 가족이라든가, 바리에르 가의 사정도 일절 모른다. 매일마다 포로가 된 상태로, 길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때때로 찾아오는 라이프의 입에서 지금의 왕국의 정세와, 변화 없는 암약의 나날의 이야기를 들을 뿐.

딱 한 번, 라이프와 다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네 놈은 아인들과 결탁해 내전을 주도했다. 목적이 뭐였나?”

이미 [아인 전쟁]으로부터 20년 이상이 지나, 이제 와서는 뒤늦은 물음이라고 볼 수 있다. 함께 싸운 발가나 리브레도 이미 숨이 끊어졌고, 당시 아인 연합의 주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자들도 모두 사라졌을 무렵에 받은 질문이었다.

왜 그것을 알려고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되물었다가는 라이프의 역린을 건드려 이 화제 자체가 중단될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고, 목적을 숨길 필요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했다.

[아인 전쟁]에 협력한 것은 자신이 만들어진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고.

“――별 거 아니군.”

[아인 전쟁]이 자신이 수백 년 넘게 추구하는 창조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시행착오 중 하나였다는 말을 듣고 라이프는 매우 시원하게 이렇게 내뱉었다.

라이프의 반응에 분노나 슬픔 같은 것을 느꼈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자신은 그런 존재였고, 라이프의 반응도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 추악한 야심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망 이외의 모든 소망은 별 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네 놈은 네 놈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일부러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은 거군. 자신의 이름을 죽이고,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삶의 방식을 흉내내면서.”

한 마디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된 대화는 계속되었다.

진심으로 경멸스럽다는 듯이, 라이프는 그 어느 때보다 조바심을 보이면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흐려진 눈동자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네 목적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역시 네 놈은 나한테 이용이나 당해라. 어차피 이뤄진다고 해도 조금의 가치도 없는 거니까. 그런 걸로 낭비할 바에는 나에게 넘겨라.”

“당신은――”

“네 조물주의 목적 따위 관심 없다. 누군가에게 지시받지 않고는 살 수 없다면 내 야망을 위해 이용되기나 해라.”

그 말을 내뱉은 라이프의 눈동자에는 불의에 대한 분노도, 배려도 없었다.

라이프의 탁한 두 눈에 깃들어 있던 것은, 잊지 못할 굴욕을 가져온 것들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나 세계에 대한 분노와 증오, 그리고 자신을 반드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다시 되돌리겠다는 검은 불꽃 같은 야망이었다.

몹시 난폭하게, 마치 짓밟는 것처럼, 오물을 끼얹는 것 처럼 거칠고, 자신이라는 존재에게 칼날을 들이대며, 찢어버리며, 차가운 피를 흘리게 했다.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창조된 목적을 완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의 의미이고,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강한 열의를 품은 적이 있었나. 없었다. 한 번도 열의를 품은 적은 없다. 목적이 주어졌으니 해야 한다는 열의 없는 타성과 타협이 자신을 움직였다.

그런데 본래 소원이라는 것이나, 소망이라는 것은 저런 것이 아니었나.

무언가를 강하게 바란다는 것은, 이루고 싶은 소원을 이루려고 한다는 것은 저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라이프 바리에르의 자세야말로, 소망을 이루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었던가.

“――――”

또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에도 라이프와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말을 많이 주고받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용한다든가, 도움이 될 것이라든가, 자신이 일을 할 차례가 오는 것도 아닌 채,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리고 변화가 생겼다.

“드디어, 기회가 생긴 것 같다.”

광기로 눈을 빛내고 있는 라이프는 시들지 않는 그의 야망과 달리, 얼굴도, 육체도 거스를 수 없는 노화에 갉아먹히며 앙상해졌다.

그럼에도 때가 됐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는 눈 앞에 드리운 실오라기 하나라도 붙잡으려 하는 환희가 보였다

들어보, 라이프는 이 수십년 동안, 루그니카 왕국이 [신룡]으로부터 하사받은 용력석이라고 하는 예언판의 관리를 맡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예언판에 조만간 루그니카 왕국을 덮치게 될 액운―― 왕족 사이에 퍼질 병――이 적혀 있었으나, 라이프는 이를 묵살하고 이후로 다가올 다음 세대의 왕위 쟁탈전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더 빨리 후보자를 찾겠다. 그 후보를 아내로 맞이해 왕선에 내보내고… 반드시 왕위를 손에 넣겠다. 네 놈도 나를 도와라.”

뼈와 가죽만 남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쥔 채, 그는 다짐했다.

도움이 되라고, 항상 말해왔던 그 말이 드디어 실현될 기미가 보이자, 수십년이나 묶여 있었음에도 소소하게 들떴다. ――기대를 하고 있었다.

다음에 왔을 때는, 라이프는 발견한 후보자와 같이 올 테니 그녀의 마음을 부술 술법을 준비하라고 시켰다. 그렇게 해서 후보자를 꼭두각시로 내보내고, 자신이 왕국을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책략을 당당히 계획하고, 범상치 않은 집념으로 실현할 계획이고, 그 계획이 실현되기 직전인 라이프의 야심은 어둡고, 눈부셨다.

이뤘으면 좋겠다.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 열정 그대로.

누구나 외면하고 싶어질 추악한 야심을 토대로, 왕국을 자기 욕망대로 이용하며, [마녀]마저 자기 소망을 위해 발판 삼아 망집을 이뤄냈으면 싶다.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은 그것이라고, 그렇게 스핑크스에게 가르쳐 줬으면 싶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계속 기다렸다.

라이프가 왕선에 내보낼 후보자를, 이용하기 위해 결혼할 아내를 데리고 와서, 그 여자의 마음을 무너뜨릴 수 있기를 기대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라이프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알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매듭을 스스로 풀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라이프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알고 나서 알게 됐다.

“――하아.”

――이것이,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하는 [열의]라고


△▼△▼△▼△


“요·대책——아니, 막을 수 있다면 막아봐.”

그렇게 내뱉은 스핑크스의 비장의 한 수가, 숨기고 있던 패가, 숨기고 있던 함정이 열린다.

출렁이는 물의 거울에는 마녀가 준비한 책모를 차례차례 넘어서서 다가오는 제국의 멸망을 막으려는 자들의 분전이 보인다.

“————”

사슬에 묶인 채, 붉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프리실라는 거울의 면과 스핑크스의 흰 얼굴을 본다.

초조해하고, 탐닉하며, 스핑크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끝까지 채찍질하고 있다. 그건 제국에게 있어서, 빈센트에게 있어서도 꺼림칙하겠지만, 프리실라에게는 아니었다.

제국과 세계의 멸망이라든가, 오라버니인 빈센트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걸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쓰고, 이에 열중하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비록 그것이 자신에게 배은망덕에 가까운 증오를 불러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것에는 분수가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그릇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 이상을 원하는 이들은 대부분 파멸한다. 하지만 프리실라는 영리하게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고, 그릇을 채우는 것으로 자신을 채웠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그릇에 맞지 않는 것을 찾아 파멸에 이를 수도 있는 길을 걸으며, 태양을 향해 날개가 타들어가는 어리석은 자의 삶을, 그 도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에 개의치 않고 사랑하고 싶다.

“사랑스럽구나.”

목숨을 걸고 전장에 임하는 모든 것들이 프리실라의 말에 귀를 의심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한 치의 꾸밈도 없이, 프리실라의 본심이다. 애초에 프리실라는 타인을 속이는 언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심이 담긴 칭찬이다.

이 전장에서 무기를 들고, 타인을 받혀 주며, 피를 흘리며, 영혼을 태우는 모든 것들이 살아있든, 죽어 있든 사랑스럽다.

이뤄진다면——,

“——소녀답지도 않은 감상이군.”

아름다운 얼굴(체면)에, 보기 드문 쓴 웃음을 지으면서 프리실라는 한쪽 눈을 감았다.

어릴 때부터, 생각에 빠질 때마다 이랬던 오라버니의 흉내다.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의 무게를 지나치게 이해하고 있는 빈센트는 잠잘 때 조차 두 눈을 감지 않는다.

그 자세는 훌륭하지만, 지나치다. ——때로는 눈을 감고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이들도 있다.

“오라버니도, 함께 있으면서 두 눈을 감고 있어도 될 상대를 찾는 게 좋겠지.”

[양검]을 들고 [대재앙]을 이끄는 마녀의 계획을 한 번 뒤집은 빈센트, 그의 자세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말했다.
그러면서 프리실라는 수경 속에서 유달리 눈길을 끄는 것들을 보았다.

——알데바란과 나츠키 스바루.

프리실라의 기특한 어릿광대와, 밉살스럽게도, 왕선의 후보로 올라온 반마의 기사.

스핑크스가 위협으로 인식한 것처럼 프리실라의 눈에도 그들의 분전이 범상치 않은 어떤 숙명을 비틀어 놓았다고 보인다.

“네 녀석들은 [마녀]의… 아니, 하늘의 뭐를 속이고 있는 거지?”

대재앙을 불러온 스핑크스, 그녀가 깔아놓은 온갖 술수와 책략은 어설프지 않았다.

불사왕의 비적으로 만들어낸 시체들의 군세도, 그 군세를 만들기 위해 [석괴] 무스펠을 이용한 것도, 양검의 화염을 한 번쯤은 피할 [탐욕의 마녀]로의 재림도, 제국의 대지와 운명공동체가 된 아라키아에게 보이는 살의도, 떨어지는 별과 마정포도, 마핵의 폭주와, 마정석을 이용하기 위한 마법진을 전개하는 것도, 성채도시에 닥쳐오는 궁지를 연출하는 것도——.

이 정도의 주도면밀한 계획을 모조리 무너뜨릴 줄 누가 예상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현제] 빈센트 볼라키아도, 그 오른팔인 [흰거미] 치샤 골드도, 다른 누구도 아닌 프리실라 바리에르도 불가능했을 일이다.

볼라키아 제국의 멸망은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그 운명의 막다른 길을 말도 안 되는 힘으로 뚫은 자들이 없었더라면.

그러므로——,

“——앞으로 하나만 더.”

수면에 떠오른 광경을 보면서 프리실라가 그렇게 말했다.

제도 상공에 생긴 거대한 물의 거울은 멀리 떨어진 성채도시의 난관을 비추며, 제도에 있는 이들의 전의를 꺾으려 했다. 분전하는 자들을 비웃듯이, 성채도시에 별들이 내려오며 이들을 멸망시키려 한다. ——그 별들과, 이전에 한 번, 허공으로 사라진 파멸의 불이 부딪혔다.

별들은 제도의 자랑인 마정포에게 지워지며 수경은 부서져 흩어졌다.

드디어 마녀가 준비한 계책이 모두 깨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직이다.”

성채도시의 별들은 지워졌으나, 마녀의 책략은 끝나지 않았다.
마녀는 자신이 준비한 [대재앙], 그 대재앙이 막히는 것을 보면서 그 대재앙이 막히는 것을 포석으로 함정을 팠다.

——천공의 수경이 부서지면서 그 물은 빗방울처럼 제도 전체에 쏟아졌다.

소나기처럼 제도 전체를 적시고, 물이 산 자도, 죽은 자도 모두 적신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비처럼 보이기만 하는 물의 칼날이다.

천천히,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물은 피부 위를 미끄러지다가 떨기 시작하면서, 칼날로 변한다. 건물 안에 있었거나, 본능적인 직감으로 비를 피한 초월적인 이들 외의 전원에게 닥칠 위기다.

이제 더 이상 막을 도리가 없는 치명적인 일격이다.

“————”

그래서 프리실라는 눈을 감았다. 빈센트의 습관과 똑같이 행동한다. ——슐트, 하인켈, 에밀리아, 크루쉬, 펠트, 아나스타시아, 세레나, 아라키아, 눈을 감으면서 생기는 어둠 속에서 프리실라는 몇 개의 얼굴을, 몇 개의 영혼을 보았다.

거기에는 빈센트도, 라미아도, 렘도, 알데바란의 모습도 있다.

이들 모두, 딱 한 수가 부족하다.

“——세상은 소녀에게 편리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프리실라가 중얼거리자, 빗방울의 칼날을 순간 번뜩이려던 스핑크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녀는 검은 눈동자를 부릅뜬 채, 수경 너머로 프리실라를 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프리실라를 가둬놓기 위해 만들어진 아공간이 무너진다. ——그 속에 갇힌 태양희가 불러 오는 붉은 화염을 억누르지 못해 태워지면서.


△▼△▼△▼△


성채도시에 있던 자들의 머리 위에 별빛이 반짝이던 순간, 하늘을 올려다본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

때마침 직전에 습격한 사룡을 격파했다는 것, 즉 강적을 물리쳤다는 사실이 농성전에 참가한 모든 군사들의 사기가 최대한 복돋은 직후였다.
시체의 군세 중에서 최대전력이 죽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지기 전에 그 아름다운 멸망의 빛이 머리 위까지 다가왔고, 많은 이들은 심장이 뛰는 소리조차 잊을 정도였다.

물론, 그 상황에 놓인 이들 중에서도 자신의 전력을 다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극광을 휘감은 정령기사나, 투쟁심을 잃지 않는 여전사들이나, 자신의 몸 속에 벌레를 잉태한 병사나, 황금으로 된 갑옷을 입은 거구나, 자신들의 별빛에게 모인 전단도 그렇다.

싸울 힘이 없는 지혜를 품은 이들도 찰나의 사이 동안, 무수한 생각을 거치면서 절체절명의 궁지를 무찌르려고 했다.

그러나 개미들이 모인다 한들, 거인들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짓밟히고 모든 것이 쓰러지고 끝날 터였다.

——저편의 하늘에서 날아온 파멸의 불이 별과 충돌해 세상을 하얗게 물들기 전까지는.

“————”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 순간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눈을 돌리지 않은 자들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새하얘졌다가 다시 보이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즉 쏟아져 내려오던 멸망의 빛이 내려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앗.”

별의 흰색과 불의 붉은 색, 두 색채의 빛이 뒤섞이며 충격파가 성채 도시의 하늘을 뒤덮었다.

뒤늦게 들이닥친 폭풍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며 건장한 도시의 방벽도 뒤흔들고, 산 자도, 죽은 자도 다 돌풍으로 날아갔다.

더군다나 강렬한 바람은 도시의 뒤에 있는 큰 산에 균열을 일으켰고, 그 산에 금이 가면서 거대한 바위가 떨어져 나가, 거대한 낙석이 대요새의 한 쪽 부분을 굉음과 함께 무너뜨렸다.

하필이면 그 장소는 부상자가 운반되는 구호소가 있던 지점으로——.

“——렘! 잠깐, 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렘은 몇 번 눈을 깜빡였다.

한 순간 세상이 새하얗게 변하는 게 마지막 기억이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파악하는 데 잠깐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얼마 후, 카츄아가 자신을 필사적으로 부르고 있으며, 구호소가 낙석에 의한 붕괴에 휘말린 것이라는 걸 알아냈다.

벽과 천장에 금이 간 것을 보고, 렘은 순간적으로 카츄아를 밀어냈고, 그 순간 돌들이 렘 위에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내가 살아있어…?”

“당연히 살아있어야지! 너 정말 왜 그러는데! 네가 나를 감싸고 죽는 건, 그러면 정말로 내 마음이 죽을 거라고…”

잔해에 파묻혔다가 파헤치고 나와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렘을 보면서 카츄아가 울먹거리다가 말을 멈췄다.

놀랐을 것이다. 렘 위에 무너져 내린 잔해는 무게가 상당히 나갔으니, 아무리 오니족이라고 해도 렘의 힘으로도 쉽게 치울 수 있는 무게는 아니었으니.

그럼에도 렘이 그렇게 할 수 있던 건.

“어, 렘, 네… 네 눈이!”

렘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카츄아는 비명을 질렀다.

카츄아는 렘의 왼쪽 눈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아마 거기에도 불꽃이 켜져 있을 것이라고 짐작이 갔다. 왜냐하면 카츄아의 눈에도 불길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렘과 카츄아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구호소에 있다가 붕괴에 휘말린 사람들이 모두 찰과상 정도로 가벼운 상처만을 입은 채 일어섰다. 이들 전원의 한쪽 눈에 불꽃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게 보였다.

그 불꽃의 솟아오르는 힘이 렘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 불길은——,

“——프리실라 님.”

자신의 눈에 깃들어 있는 아프지 않은 불꽃의 열기를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확신한 근거는 없다. 그저, 그 불길이 누가 불러온 것인지 렘의 마음이 아는 대로 확신하고 있을 뿐이다.

“카츄아 씨.”

“뭐, 아?! 물… 물 맞지?! 빨리, 빨리 물로 꺼야 하니까…!”

“아니요, 이건 꺼지면 안 되는 불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리고?”

렘은 용케 부서지지 않고, 뒤집히기만 한 휠체어를 발견하자 몸을 일으켜 세우고, 부랴부랴 물을 찾으려던 카츄아를 거기에 앉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일어서는 구호소 안의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주는 것 같아요. ——이제 한 번만 더 버티라고.”


△▼△▼△▼△


——수경이 갈라지고, 물보라가 흩뿌려지는 하늘에서 붉은 여자가 떨어진다.

누구나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시선을 빼앗겨 석양에 그을리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당연히 [마녀]도 마찬가지다.

“——프리실라 바리에르!”

이 순간, 발동중인 불완전한 마법진에 의한 마정석의 해체, 방대한 마나의 일부를 끌어들여 현현하고 있는 [마녀] 스핑크스는 44명.

이들 전원이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고, 떨어지는 프리실라의 주위에 빛이 쏘아졌다.

그러나——,

“한 눈 파시면 안 되죠! 무희 씨에게는 손을 못 댑니다!”
“글치글치, 그건 진짜 안 좋은 수였데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초월자가 방해해 스핑크스의 수가 마흔넷에서 단번에 서른여섯으로 줄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위협적인 빛의 구슬들이 한 번에 프리실라를 향해 날아간다. 사방팔방에서 치사에 이르게 될 공격, 포로 신세에서 벗어난 태양을 앗아가려 날아가지만,

“보내지 않겠사와요!!”

자애의 색이 강하게 담긴 외침에 호응해 제도의 도로가 꿈틀 움직였다가 투창처럼 날아간다. 공중에 있는 프리실라를 향해 날아가는 빛의 공격을 막아내고, 연이어 생겨난 폭발과 폭풍이 하늘을 수놓으며 그녀를 지켰다.

“맞춰봐 봐, 베아트리스!”
“네가 말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일까!”

빛의 폭풍을 뚫고, 여전히 떨어지는 프리실라의 주위에 보라색 빛이 나타났다. 정령과 마법사의 초월적인 연계가 원반 모양의 결정체가 큰 방패가 되어 임박한 광구를 막아내어 프리실라를 지키고, 지키고, 또 지켜냈다.

그럼에도——,

“아직이다!”

마녀는 감정을 실어 피를 토하듯이 외쳤다.

그 직후, 격렬한 공격을 맞은 원반에 금이 가다가, 균열이 커지면서 한 번에 부서졌다.

마녀는 흰 머리를 휘날리며 하늘로 올라가 무방비 상태로 떨어지고 있는 프리실라의 목숨을 앗아갈 빛을 퍼부으려 했다.

“우으아우!!”
“안 됩니다!!”

지상에서 전이한 금발의 소녀와 수정궁을 부술 듯한 기세로 땅을 박차고 뛴 사슴 소녀가 프리실라 말고는 안중에 두고 있지 않던 마녀의 몸을 동시에 내리치면서, 마녀가 쏘아올린 열선은 빗나갔다.

“요·유인입니다.”

찌그러진 마녀가 흙 파편들로 부서지면서도 그것도 자신의 계획 내였다고 말했다. 그 수순간, 지상에 있는 여러 명의 [마녀]들이 각자가 같은 존재라 가능한 완전한 싱크로율로 술식의 구축을 단축해, 대폭풍을 일으킨다.

사나운 물과 바람과 빛이 되어 하늘에 있는 프리실라를 삼키려고 달려갔다. 그 다음 순간에는, 갈기갈기 찢어져 있을 프리실라의 끔찍한 모습이——,

“아이시클 라인——!

파괴의 폭풍이 안쪽에서 터지면서 나타난 것은 프리실라의 찢어진 모습이 아니라, 프리실라를 지키듯이, 수를 놓은 듯이 천상에 만개한 얼음꽃이다.

아름다운 큰 꽃송이가 빛을 막으면서 프리실라에게 닿지 않도록 막았다.

그리고 다가오는 무수한 죽음이, 파괴가, 종말이 다가오지 못했던 프리실라를 향해 지상에서 한 그림자가 맹렬하게 다가왔다.

그건 바로——

“——공주!!”

그 발밑에서 제도의 땅을 솟아올려, 일그러지고 볼품없는 돌과 흙의 기둥을 만들어 하늘로 쭉 뻗어, 프리실라를 향해 알데바란이 다가갔다.

기둥은 쭉쭉쭉 뻗어나가고, 떨어지는 프리실라와 솟아오르는 알데바란과의 거리도 좁아져 간다.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어느새—— 제로가 됐다.

“——헉!”

균형이 맞지 않는 기둥 위에서, 뻗은 오른팔이 떨어지는 프리실라를 강제로 껴안았다. 그대로 함께 떨어질 수도 있는 기둥 꼭대기에서, 알데바란은 자신의 두 다리를 발판 위에 단단히 고정하고, 결사적으로 프리실라가 굴러떨어지는 걸 막았다.

알데바란의 결사적인 행동에 프리실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수고했다.”

짧게 말한 프리실라를 보는 알데바란은 만감이 교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공주, 공주, 나의 공주….! 이제야, 또… 아프잖아!!”

“허튼 소리를. 누가 너의 것이라는 것이냐.”

온갖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알데바란의 머리를 프리실라가 양검의 자루로 내리쳤다. 철모가 움푹 패일 기세에 알데바란은 엉겁결에 쪼그리고 앉았다. 하지만 한 팔로 프리실라를 부축 중이라 그는 맞은 부위를 짚지도 못했다.

이런 불쌍한 알데바란을 보고 프리실라는 “흥!”하고 작게 코웃음을 치며,

“그렇지만, 네녀석 치고는 열심히 했다. 칭찬해 주겠다.”

“그, 그거야 고맙고, 영광이고… 공주는? 아무렇지도 않아? 다친 곳은? 어디 다친 거 없어? 잡혀 있었으니까, 잡혀 있던 것 치고는 너무 예쁜 것 같은데?”

“허튼 소리를 거듭 말하지 마라. 애초에 소녀의 미모가 잠깐 동안 포로 신세였다고 사라지겠느냐. 입을 조심해라, 알.”

“————”

팔에 안긴 채, 어이 없다는 듯이 말한 프리실라의 말을 듣고 알데바란——알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눈 앞에 정말로 있는 프리실라를 확인하고,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의 반응을 본 채, 안긴 채로 있는 프리실라는 주위를 바라보고,

“하늘이여, 가장 중요한 마지막 주연1이 나왔으니, 네 녀석들도 많이 기대하는 게 좋다.”

그렇게 말하는 프리실라의 시야에는 흙기둥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비췄다.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건 수없이 많은 자들의 한쪽 눈에는, 모두 불길이 켜져 있다.

프리실라 바리에르가,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눈에 영혼의 불꽃이 켜져 있다.

그건 물론——,

“공주?”

바로 옆의 알, 그가 쓴 투구의 가리개를 손가락으로 들어 안을 들여다봤다. ——프리실라 이외의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맨얼굴의 오른쪽 눈에도, 마찬가지로 불꽃이 켜져 있다. 그걸 본 프리실라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별 거 아니다. ——역시 이 세상은 소녀에게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1. 원문: 真打ち.
1.寄席(=만담·야담 따위를 하는 흥행장)에서 맨 나중에 출연하는 인기 있는 출연자((지금은 만담가의 최고 계급)). (=しんとり, しん), (↔前座, 二つ目)
2. 비장(祕藏)해 두었던 최후의 출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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