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더 트릭컬 소설의 설정을 각색한 한 2차 창작입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는 제게 세상을 보게 해주었고, 이 세상이 따뜻함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가르쳤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듯이, 저와 자매들을 보듬어주셨습니다.
그대야말로 이 세상의 빛이자 소금이며.
자라나는 새싹들을 감싸는 거대한 나무이리라.
…
그렇게 착각을 했었사와요.
**
“어디로 가셨습니까….”
뿔이 없는 은빛 머리카락의 소녀는 큰 소리로 외쳐본다.
조금 전만 해도 자매들과 함께했던 자리가 텅 비어버리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황무지.
“안 돼요! 안 돼!”
목구멍이 터지라 절규하며 손을 뻗어 본다.
소녀의 손은 다급하게 한 자매의 손을 잡는다.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해서 자신의 것을 다른 동생들에게 양보하는 자매.
죽음의 권능을 가졌지만, 절대 그 권능을 쓰지 않는 상냥한 자매의 손을.
“떨어지지 마!”
그 손을 잡자마자 손이 뚝 떨어진다.
자매와 소녀의 손. 둘 다 어이없게 툭 하고 떨어진다.
하나둘씩 몸이 조각조각 나며 사라진 소녀의 자매들.
소녀의 몸 역시 투둑투둑 떨어지고 있다.
“대체… 왜?”
머리만 남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 세상마저 사라지고 있다.
소녀는 다시 불러본다.
“어머니! 지금 세상이 무너지고 있사와요! 당신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상이!”
어머니를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자매들이 다 사라지고 혼자 외치는 외침은 곧 거대한 고요 속에 파묻히고 만다.
세상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어머니! 어머니!”
동굴에 울리는 목소리처럼 비비가 내지르는 절규는 계속 남으며 무너진 세상의 법칙이 된다.
끊임없는 절망감이 비어버린 세상을 다시 채우기 시작한다.
“이, 이게 무슨 일이죠? 무섭사와요!”
비비가 가진 불안감이 계속 남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가 낳은 부정한 감정이 계속 남아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박히고 있다.
어떻게 감정 같은 형체가 없는 게 세상에 나오면서 남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감정들이 계속 세상을 채우면서 비비를 압도되게 만든다.
다급함. 절망감. 불안감으로 가득한 세상.
엄청난 압박감에 비비는 몸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잊고 있을 정도다.
완전히 사라진 세계에서 비비의 의식만이 남게 된다.
“어머니? 어머니!”
소녀는 새롭게 쌓여가는 세상의 저 끝에서 한 존재가 보인다.
긴 초록색 머리카락에 나뭇가지가 머리에 듬성듬성 난 존재.
소녀가 제일 사랑하는 분.
이 세상의 창조주이자 거대한 나무.
“왜 보고만 계시와요?”
“….”
어머니는 대답이 없다.
“왜 아무 말도 없으시와요!”
못 본 채, 아니 정확히는 소녀의 목소리가 이제 가치가 없다는 듯이 들은 척을 하지 않는다.
멀뚱하게 서서 다른 것을 바라보며 서 있다.
소녀가 남긴 부정한 감정들이 세상에 채워진 것을 마음에 드는 듯이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다.
“소녀의 몸과 자매들이 사라졌습니다. 세상도 망가졌고요. 어머니의 힘으로 다시….”
“아니. 이 세상은 망해야 해.”
“…네?”
“에린이 지구로 돌아가면서 내게 가르쳐줬어.”
어머니는 세상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자 세상이 응답했는지, 부정한 감정들이 그녀의 손에 구의 형태로 뭉쳐지고 있다.
“내가 만든 세상은 너무나도 밝고 착하고 순수했다고. 자기가 살던 세상과 다르다고 가르쳐줬어.”
“어머니?”
“세상은 뭘 해도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험준함이 있어야 하고, 지쳐서 쓰러지는 절망도 있어야 하며, 둘 중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비정함도 있어야 한대.”
어머니는 부정한 감정들을 모으고 또 모아서 하나의 형태를 만들고 있다.
그건 크레파스다.
아이가 세상이 이렇다고 처음으로 표현하는 도구.
가장 순수한 존재가 그림을 그리는 도구.
“에린이 살던 세상은 그런 곳이래. 그래서 나는 세상을 다시 만들 거야. 잘못 만든 세상을 지우고 말이야.”
“그래서 그냥 지우신 것이와요? 저와 자매들은 그저 어머니의 마음대로 허무하게 지워져야 하나요?”
“응. 힘들고 고난도 있고, 세상을 파괴하려는 괴물도 그릴 거야. 아 그리는 김에 괴물을 좀 귀엽게 그려야겠다. 헤헤.”
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번에는 어떤 세상을 그릴지 순수하게 기대한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겨우 그런 이유로 저와 자매들이 사라져야 한다니요?”
“겨우 그런 일이라니. 세상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야. 내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했던 일인걸? 반드시 완성하고 싶다고!”
방학 숙제를 끝내고 싶은 초등학생처럼 눈을 반짝반짝 빛낸 어머니는 부정한 감정으로 만든 크레파스로 괴물을 그리기 시작한다.
빨간 드론, 릴1리, 뉴루링 등등.
“그나저나 고마워 내 딸아. 에린이 말한 절망 같은 부정적인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몰라서.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는데. 알아서 만들어주다니.”
“어머니!”
“와! 또 부정적인 감정이 나온다. 고마워. 잘 쓸게.”
“…어머니에게 저희의 존재는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었사와요?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요?”
“응. 소중한 존재가 맞아.”
어머니는 상냥하게 웃으며 다시 허공에 손을 뻗는다.
그러자 또다시 구 형태로 뭉쳐지는 무언가.
그걸 보자마자 소녀는 눈이 확 돌어간다.
거센 분노가 불처럼 활활 타오른다.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거사와요!”
“뭘 하긴, 크레파스 만들지.”
어머니의 손에는 또 다른 크레파스가 만들어졌다.
“소중한 존재로…”
“어머니!”
“아 소중한 재료를 하나 깜박했다.”
“어머니는 저희가 사라지시는 게 좋나 보네요! 저는 어머니를 사랑했는데. 정말로… 사랑했는데.”
“나도 사랑한단다.”
어머니는 남아있는 소녀의 의식마저 크레파스의 재료로 쓰기 위해 힘을 쓴다.
저항을 해보지만 눈앞의 창조주는 말 그대로 절대자다.
망가진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부리는 존재를 이길 수가 없다.
소녀의 의식은 결국 크레파스에 흡수되어 재료가 된다.
“그래서 예쁜 너희들을 재료로 세상을 다시 그릴 거야.”
콧노래를 부르며 어머니는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만든 부정한 크레파스와 사랑하는 딸을 재료로 만든 애호의 크레파스.
“영원살이. 말 그대로 영원히 세상에 남게 될 거야. 너희들이 그린 세상에서 말이야.”
어머니는 엎드려서 몸을 뒹굴거리며 그림을 그린다.
두 종류의 크레파스로 만들어진 세계.
엘리아스를.
**
“…저는 아직도 어머니가 하셨던 행동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뭐. 이해할 필요도 없지만요.”
어두운 용의 동굴. 그 동굴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
비비는 꼬리로 머그컵을 들어 올린다. 수은이 가득 담겨 있는 컵을.
“망가진 세계에서도 의식이 남아있었던 소녀는 영원살이로 부활할 수 있었사와요. 기억도 그대로 가진 채로요.”
-치 이익!
용의 동굴 바닥에 삐쭉 솟아 나온 세계수의 줄기.
녹색 줄기가 수은에 고통스러워하면서 부들부들 떤다.
“어머니. 당신이 그린 세계에서 크레파스 조각이 다시 뭉쳐질 줄은 아마 모르셨을 테지요. 오호호호호!”
한 손으로 턱을 올리며 품위 있게 웃은 비비가 검지를 위로 까닥거린다.
수은으로 된 은빛 창이 그대로 줄기의 중앙에 구멍을 뚫어버린다.
“이런 소녀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바로 복수인 것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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