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밥 돌길래 유동이었을 때 글 복구
주의: 호감도 맥스가 아니면 따라하지마시오.
"어, 교주. 물어보고 싶단게 뭐야?"
내 방에 들어온 티그가 시원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 의심많은 티그답지 않다면, 그것도 맞다. 방에 둘만 남으면 기습공격을 할 거라느니 하며 이상한 음모론을 펼치는 쪽이 티그다우니까.
그러나 내가 티그에게만 물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며 꼬드기니, 생각보다 쉽게 넘어와 주었다.
그리고 그 것에 거짓은 없다. 나는 실제로 티그에게밖에 대답을 들을 수 없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으니까.
"뭐야, 심각한 얼굴로? 빨리 말하라고, 영웅한테 기다림 같은 건 안 어울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놀아주듯 어울리는 것이었다. 디아나의 부탁이었지 아마.
분명 철없는 말썽쟁이로 보였다.
분명 귀여운 구석은 찾아볼 수 없는 선머슴으로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한참 뛰어놀던 녀석이, 땀에 젖어 털이 잔뜩 헝클어진 채로 나에게 뛰어들었을 때,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묻어난 그, 아니, 그녀의 향이 매혹적인 이성의 내음으로 느껴졌을 때는...
"에이씨, 수인 말이 말로 안들려? 나 그냥 간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상대가 돌려말하는 걸 질색하는 티그이니만큼, 떠오른 것을 그대로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티그는, 우습게도.
"뭐야, 그게 끝이야? 좋아하긴 나도 교주 좋아하지."
역시 전혀 이해 못 하고 있구나.
"하하핫, 교주 자식. 잔뜩 긴장해서 쭈볏거리길래. 감히 티그님께 도전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역시나 허접한 녀석이였군!"
"내가 좋아한다는 건 정말 특별하게 좋아한다는 거야."
"나도 그래, 루포 녀석이 언젠가 말했었지. 모든 관계는 특별하다고 말이야. 그 때는 꿀밤이나 때려줬는데 이제 와서 도움이 되는군!"
"...너와 나의 관계가 서로 의지하는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는 거야. 살면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
이렇게 말하자 티그도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는지, 목소리를 잔뜩 깔고 말했다.
"서로 의지? 하나뿐인 존재? 마치 너와 내가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에게 특별 취급을 했으면 좋겠다는 거냐?"
대충은... 맞는 것 같다.
"그래."
"그렇다면 단 칼에 거절이다."
역시, 무리였네.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멍청하긴, 난 두목이잖아. 차기 왕이 될 자가 아랫 사람 하나를 편애할 수는 없다고. 루포나 베니, 교주 처럼 특별한 녀석이 몇 있긴하지만 역시 단 한명의 특별취급은 무리인게 당연하잖아!"
"...그리고 동등한 관계도 거슬려. 수인한테는 약육강식이 어울린다. 동등하다는 그런 낯간지럽고 사정좋은 이야기는 엘프끼리나 하는 이야기지."
"교주라면 같은 지도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았는데, 역시 허접이었나? 아니면 세상이 나를 따라오지 못 하는건가?"
핀트도 맞지않고, 이해도 못 한 반응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티그가 나를 훈계하는 모양새가 되자, 수치스러운 울분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울분과 티그에 대한 감정은 뒤섞여, 가학심을 만들어냈다.
어른스럽지 못하네.
티그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네 말이 맞아, 내가 잘못 생각했네."
"이해했나보네, 누구나 실수는 하는거지."
"...부탁이 있는데, 가슴 한 번만 만져봐도 될까?"
뭐하는걸까, 나는.
"뭐, 갑작스럽긴한데, 반성도 빨라서 마음에 들고, 그 정도 부탁은 아무 문제 없지. 마음대로 해."
역시 이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
내 고민도
내 고통도
내 갈증도
심지어, 자신의 매력조차.
"...응."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왼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쥐었다.
미친듯이 뛰는 맥박은 그녀의 것일까, 내것일까.
"으하핫! 간지러우니까 너무 주물거리지는 말라고!"
정말이지...
"너는 내가 어떤 감정인지 하나도 모르는구나."
"응, 뭐라고?"
대답 대신 움직이던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을 주었다.
강하면서도 세심하게. 손놀림이 빨라진다.
"잠깐, 너무 빨, 읏, 라. 열이 나는 것처럼... 으흣,이상한, 느낌이...흣..."
티그, 아니 그녀의 숨이 거칠어진다.
종종 옅은 신음이 새어나온다.
손으로 내 팔목을 잡아챘지만, 쳐내기는 커녕 겨우 매달리는 꼴이다.
"넌 내가 얼마나 널 좋아하는지 몰라.
친해지고 싶은 게 끝이 아니야.
너의 특별한 존재가 되고싶다고."
"하앗...교주우...너, 무슨 짓을...흐앗...알아흐니까 놔보라구우...흣..."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은 너를 알고싶어.
가끔씩은 나에게 어리광을 부렸으면 해.
너가 부끄러워 하면서도 사랑을 속삭였으면 해.
...너를 갖고싶어."
"미,미쳤나봐...흐으읏...교주우...지인짜!"
티그가 잡고있던 팔목에 힘이 느껴진다.
순식간이었다. 그 상태로 끌어당겨져 제압되는 건.
과연 호랑이다운, 압도적인 힘이었다.
한 쪽팔을 제압한 채로 티그가 눈물이 맺힌채로 나를 죽일듯이 쏘아봤다. 엘리아스에 죽음이 없어서 다행이다.
"하아, 하아. 너, 너 이자식... 까불면 베어버린다?! 갑자기 무슨 수작이야!"
"...미안. 내가 좀 많이 심했네."
엘리아스라서 진짜 다행이다. 딴 세상이었으면, 물리적으로 안 죽었어도 사회적으로 죽었다. 이건.
"동등한 관계? 웃기고 있네. 내가 맘만 먹으면 너가 백 명이 와도 이길 수 있다고. 허접주제에..."
"나는 강하단 말이야... 너 같은 허접은 조용히 내 뒤에 있어, 알겠어?"
확실히, 티그는 강하다. 나같은 평범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그런 녀석인거지.
"넵..."
"아무튼 너가 말한 건 무리야. 특별 취급이니, 동등한 관계니 해줄 수 없는 것 투성이라고."
최악이네, 평소에 잼민이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상황은 누가봐도 티그 쪽이 누나같잖아.
"그래도 너가 나를 진짜 좋아하는 건... 조금 느꼈으니까... 그, 그래도 똑같은 건 수인한테 안 어울리고... 쪽팔리기도 하고... 남들 없을 때 잠깐 너가 두목인걸로 해줄 수는 있는데..."
응?
"와,완전히 바꾼다는 게 아니라 진짜 잠깐만, 1시간 정도? 아니, 너무 길어. 30분 정도..."
"내가 그런 짓을 했는데, 거기까지 걱정해주는 거야?"
"나는 쫌생이가 아니라 영웅이라고! 그리고 넌 내 부하니까 내 책임도 있어. 딴 녀석한테 이러면 안 되니까... 내가 책임져야 돼."
"...그리고 솔직히 기분 좋아서 내가 안 막은 것도 있고..."
"응?"
"시, 시끄러! 방, 방금 느낀건데, 어리광 부리는 것도 조금 흥미가 생겼고. 아이씨... 너가 시작했으니까 너가 책임지라고!"
"...아니면, 책임지고 베어줄까?"
"아뇨,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비밀이다. 이거."
"...어."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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