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종군화가 바실리 베레샤긴의 그림, '공격을 앞두고')

크림 전쟁은 각국에 충격을 줬다

영프는 어마어마한 전비와 사상자에

러시아는 전쟁 패배 및 자국 군사력의 후진성에

마지막으로 오스만은

더는 기존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체스판의 말들 중 하나로 전락함을 깨닫고 충격을 먹었다

당장 크림 전쟁 초반인 시노페 해전에서 오스만의 거의 유일했던 근대 전투함들이 모조리 개털렸을 때

러시아 해군은 단 1척도 잃지 않았으니 말 다했다

결국 크림 전쟁 내내 오스만은 영프에게 저자세를 유지했고 되려 이집트 내부의 불온적 움직임조차

자력으로 어찌 못하며 길팡잘팡하는 등, 유럽의 환자 꼬라지였다

물론, 크림 전쟁 자체는 오스트리아의 무언의 협박 및 영프 덕분에 승리로 마무리 됐지만

더는 나라 꼬라지 이대로 냅두면 좆됨을 오스만 상층부는 확실히 느꼈고

이후 오스만은 군대를 대대적으로 손보기 시작한다


1) 무기 구매

일단 닥치는대로 무기를 구매했다

크림 전쟁 당시 영국군 수요로 대량 생산되었다가

떨이로 판매된 스나이더-엔필드 소총 30만정을 필두로
(당시 떨이 판매되던 스나이더-엔필드는 조선군 또한 구매했다)

영국제 마티니-헨리 개량품인 피바디-마티니 라이센스를 구매 후, 대량 생산함은 물론

마찬가지로 미제 연발소총인 윈체스터 1866을 사들이는 등, 구식 병기를 완전히 몰아내고자 했다

포병 또한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제 곡사포 Canon obusier de 12를 필두로

대규모 물량을 구매하여 각 요새에 배치했다

당연히 이는 비용 부담이 장난아니었지만, 크림 전쟁을 기점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를 느낀 상황이었기에

정말 더럽게 비싸고 훈련도 오래 걸리는 해군 제외하면, 군수물자 구입에 열정적으로 나섰다

한편 위 구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주류 열강들과 달리, 오스만은 유독 연발소총(레버액션)을 상당히 선호했는데

이는 후일 전투에서 엄청난 나비효과로 작용한다


2) 전쟁

1877년, 약 3년간 진행된 발칸 위기와

집안 기둥까지 싹다 불타버린 프랑스를 비롯해서

이번엔 영프가 개입할 여지가 적었기에

킬각 재던 러시아는 발칸 민족 독립 + 정교회 문명 수호 명분으로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을 터뜨린다

위 문단에서 오스만이 나름 노력했다만 솔직히

이번엔 영프 없이 홀로서기 수준이었고

오스트리아 같은 억제기도 없어 러시아가 풀파워로 후리는데다

전장이 크림으로 한정된 전과 달리, 발칸 반도 사방천지에서 온갖 군소 세력들이 날뛰었기에

전쟁 초반, 니코폴리스 요새 전투에서 손쉽게 러시아군이 오스만 수비병을 포위 섬멸하는 등

세계 각국은 러시아의 낙승을 점쳤다


3) 플레벤 공방전

플레벤(혹은 플레베나), 불가리아 북서부 지역으로

여기 뚫리면 발칸 산맥을 그대로 통과, 콘스탄티노플까지 곧바로 직통이었기에

당연히 매우 중요한 요충지라 여러 차례 증축된 요새 및 수비병력 또한 상시 1만 수준을 유지했다

이점은 러시아 및 발칸 동맹국들 또한 충분히 알았기에 루마니아 병력과 함께 곧장 요새 공략을 준비했고

차르가 직접 시찰하며 친정하는 등, 전투의 중요성을 알렸다

다만, 실질적인 총사령관인 니콜라이 대공은 꽤 안일하게 여겼다. 일단 오스만군 자체를 참피 새끼들로 봤고

포위 후 포격으로 박살낸 후, 보병으로 점령한다.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때문에 1877년 7월 20일, 108문의 포를 중심으로 플레벤 요새를 두들긴 다음

보병을 진격시키며 첫 번째 전투가 발발했지만

곧 엄청난 재난으로 끝난다


4) 연발소총

앞서 말했듯 오스만군은 연발소총에 매우 호의적이었다

덕분에 정예부대는 전병력이 레버액션 연발소총으로 무장했고

특히 요충지인 플레벤 요새 수비병력은 피바디-마티니 소총과

윈체스터 1866으로 무장한 상황이었다

반면에 러시아군은 베르단 단발소총이 주력이었고

요새 전투 특성상, 근접전이 강요되었기에

러시아군은 훨씬 빠르게 쏘고 장전하는 오스만군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며 후퇴한다

이후 7월 30일에 진행된 두 번째 공세 또한 거의 똑같은 패턴으로 러시아군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했고

플레벤 요새의 오스만군은 정예병 답게, 비교적 사거리가 긴 편인 피바디-마티니 소총을 주력으로 삼고

러시아군이 요새 공략을 위해 가까이 근접하면, 사거리가 짧지만 연사속도가 발군인 윈체스터 1866으로 교체하여 갈기는 등

여러모로 러시아군 입장에선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5) 이어지는 병림픽과 공방전의 끝

더군다나 러시아군 진영은 개판이었다

사령관 니콜라이 대공은 친정한 황제 땜에 지휘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고

거기에 동맹국인 루마니아 또한 제각각 목소리를 내는 등

지휘체계가 개판이었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2차 전투는 1차보다 더 큰 손실로 끝났고

좀 쳐맞으니 뭘 배웠는지 러시아군은 각성한다

일단 혼란한 지휘권 문제를 해결하고

짜피 플레벤 요새를 제외하면 다른 각지의 오스만군은 참패의 참패를 거듭했기에

9월 3일, 플레벤 요새의 주변 보급로와 소규모 요새들을 공략하여 보급을 완전히 끊어버린다

물론, 플레벤 요새 오스만군은 이런 악조건에서도 끈질기게 저항했지만, 총알부터 식량까지 바닥을 보이는 상황에선

버틸 재간이 없었기에 12월 10일, 145일의 혈투 끝에 항복한다


6) 결과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러시아&루마니아군: 전사 5만

오스만군: 전사 1만 5천

당장 비교해도 교환비가 거의 1:4 수준으로 압도적인데

오스만군 전사자 절반이 요새 구원한답시고 돌격하다 러시아군의 포위에 휘말려 허무히 날아갔을 때 발생한 걸 감안하면

오스만군의 분전과 연발소총의 위력이 돋보였다

전쟁 자체는 러시아의 낙승으로 끝났지만

플레벤 요새 전투의 경험 탓에, 러시아는 연발소총의 위력을 인정하고 신형소총 개발에 착수했으며

오스만은 이후로도 레버액션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가

이후 숱한 분쟁에서 결국 한계를 느끼고, 볼트액션으로 갈아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