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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그리스의 재건과 군사적 발전 (2)

Basilio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04 15: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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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검약적인 생활과 막대한 공물의 면제, 행정능력의 복구에 힘입어 그리스 지방의 인구는 다시 빠르게 증가했다. 특히 이는 펠로폰네소스에서 두드러졌는데, 각지에 다시금 정기시를 중심으로 한 도회지들이 들어섰고 매일같이 베네치아와 제노바에서 온 상인들이 치즈, 무화과, 올리브, 포도, 오렌지 등등 먹음직스러운 식료품을 비싼 값을 치르고 사갔다. 견직물 외에도 목공예품, 양초, 비누, 면직물 같은 교역품들도 서서히 생산량이 늘어났고 특히나 비누는 청결을 극도로 선호하던 황제에 의해 생산이 크게 장려되었다. 1425년경의 펠로폰네소스 인구는 10년 전보다 15퍼센트가량이 늘어나 35만 명에 달했고, 중심도시인 미스트라는 어느덧 5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대도시가 되어 이전까지의 그리스 최대도시였던 아테네의 규모를 뛰어넘고 빈, 뤼벡, 안트베르펜, 노브고로드 같은 중세 주요 무역도시들보다도 거대해졌다.


군사력 면에서도 많은 변혁이 일어났다. 종전 이후 모레아의 군사력은 완전히 재건되었을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그리고 질적으로도 이전의 수준을 훨씬 능가해, 군제개혁을 통해 당시 서유럽에서 흥기하던 중무장 흉갑기병과 고도로 정예화된 맨앳암즈 장창병의 절묘한 조합으로 이뤄진 8천 명의 완편된 규모가 되었다. 이는 안드로니코스 시절 제국 중앙군의 규모인 4천 명을 2배나 상회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새로운 군사력 집단의 등장으로 모레아의 군대는 이보다도 더 증가할 기회를 얻었으니, 이는 바로 친제국 성향의 무슬림 집단, 바로 '무르타티'였다.


현대에 들어와선 제국 내 무슬림 인구 전체를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된 무르타티는, 원래 페르시아 동북부에 거주하던 튀르크멘 부족들이 사용하던 '배신자'라는 뜻의 '무르타트'에서 온 말이었다. 이들의 초기 지도자는 이름과 같이 할리드 '무르타트'라는 인물로, 그는 원래 유럽 내 오스만의 신화적 수준의 팽창을 담당했던 프루사 출신의, 바로 그 에브레노스 베이의 막내아들이었으나 투라한 베이와 함께하다 죽은 알리를 비롯한 다른 형들과는 달리 자신의 원래 정체성을 찾아 다시 제국으로 귀순한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훗날 카스토리아 출신의 그리스계 귀족 여성과 결혼해 아나톨리아 내륙 개척지대로 떠나 또다른 제국의 군부 명가인 무르타토스 가문을 창건하게 될 그는 이 시기 이미 약관의 나이에 2천의 추종자를 이끌고 황제의 궁정에 합류, 아나톨리아 야전군으로 그 명맥이 이어질 무르타티 부대를 구성해 제국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모레아가 첫 번째 전간기의 호황을 톡톡히 누리는 동안, 그 대척점에 있던 오스만은 내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마그네시아에서 3천의 병력을 이끌고 자신의 영지를 지키던 이스하크 파샤를 제외한다면, 오스만군은 이오니아 지방에서 어떠한 군사적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소 무스타파의 반란군을 토벌해야 했다. 다행히 휴전조약의 내용에 따라 제노바가 지원해준 함대의 도움으로 다르다넬스 해협을 무사히 넘어가긴 했지만, 반란군이 너무나도 넓은 영역에 점조직 형태로 흩어져있어 무라트의 군세는 이들을 하나하나 격파하는 데에 1년을 훌쩍 넘긴 시간을 소비했다. 그사이 수도의 요안니스 황제는 어쩌면 무라트가 반영구적으로 토후들을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1년에 지불해야 하는 공물의 액수를 금화 3만 개까지 줄인 뒤 삼중성벽을 튼튼하게 보수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제국의 파격적인 행보에 무라트 2세는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도 별 수가 없었다. 술탄이 아나톨리아로 원정을 떠나기 전, 새로 고용해 재상의 자리에 앉혀놓은 찬다를르 할릴 파샤는 당시 유럽에서 대부분의 가용 병력을 긁어모은 술탄의 원정군 때문에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유럽 방면 군세였던 2천의 에디르네 수비군을 급파해 무력시위를 시도했지만, 1천의 모레아 병력이 세르비아 방면으로 전진배치되고 나머지 9천의 병력 중 대부분이 북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테살로니키 인근의 베네치아 함대가 수상한 낌새를 보인다는 급보가 들어오자마자 군을 물리고 수도로 밀사를 보냈다. 협상의 결과 공물은 금화 3만 개에서 다시 5만 개로 인상되었고(그래봤자 이전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액수였다), 삼중성벽의 재건은 허용되었지만 대신 셀림브리아나 메디아 등지에 위치한 황폐화된 요새들을 재건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스만이 유리한 조건을 얻어낸 것으로 보이겠지만, 제국 입장에선 도박에 가까운 강수가 뜻밖의 소득을 얻어낸 것이었고 술탄과 그 중신들은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떨어져가는 나라의 위신을 살리기 위해 젊은 술탄이 취한 방법은, 황제와 마찬가지로 도박에 가까운 강수였다. 찬다르와 카라만의 봉기로 내륙 영토 및 흑해와 킬리키아로 나가는 통로를 대부분 잃은 무라트 2세는 자신이 거느린 군사의 대부분인 1만의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안퀴라로 이어지는 회랑지대를 통과해 그대로 이코니온이 위치한 이사우리아 고원지대로 치고 들어갔다. 이에 1만 5천에 달하는 토후들의 연합군이 그를 요격해 이참에 오스만을 완전히 꺾어놓기 위해 나섰지만 이는 정확히 술탄이 노리던 수순이었고, 그대로 1427년 3월 5일 이코니온 평원 전투에서 1만 5천의 연합군이 술탄의 압도적 전술적 능력으로 그대로 괴멸하면서 내전은 끝을 고했다.


무라트는 이참에 토후들을 철저히 복종시키고, 본보기로 찬다르와 카라만 두 토후국을 징치할 것을 원했다. 그 이전에 자신의 후계자인 아흐메트 황자를 토후들에게 소개해 후계구도를 확실히 하고, 튀르크의 전통적인 맹약 의식을 맺어 토후들에게서 충성 맹세를 얻어내려던 무라트 2세는 그대로 4월경 마그네시아에 2만 명의 군세를 이끌고 주둔해 성대한 연회를 열었지만, 갑작스레 소 무스타파의 목을 보내온 아쉬라프 바르스바이 치하의 맘루크가 개입하며 축제 분위기는 완전히 가라앉았다. 실지를 되찾으면서 토후들의 충성심도 증가시킬 자신의 절묘한 계획이 한순간에 어그러진 무라트는 제 화를 못 이기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그가 압도적 국력의 맘루크를 앞에 두고 택할 수 있는 것은 훗날을 기약하는 것밖에 없었다.


연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에디르네로 귀환한 술탄은, 마치 모레아의 그것을 본받기라도 한듯 전면적 군제개혁에 착수했다. 우선 지난 번 전쟁에서 하마기사들에게 예니체리들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던 것에 대한 교훈으로, 오스만은 모레아 기사대에 대응할 카프쿨루 시파히를 만들었다. 토지 대신 급료를 지급받는 근세 유럽 최초의 상비병 중 하나인 카프쿨루 시파히는 서양 기사들처럼 사슬갑옷이나 심지어 노획한 판금갑옷을 껴입고, 랜스를 쥔 채 기마돌격하는 것을 주 전술로 삼았다. 이들은 에디르네/부르사(푸르사)/이즈미르(스뮈르나) 3대 도시에 주둔했고, 이 3대 도시의 주둔군을 중심으로 3대 오작(보병대)와 그들을 보조하는 포병대(톱추/훔바라즈), 공병대(라음즈)가 "마치 구름과 같이" 집결했다. 거기에 더해, 기존의 시파히들이 '티마르 시파히'로 재편되면서 이들을 보조하는 종자기사에 해당하는 제벨루 부대 또한 따로 구성됐을뿐만 아니라, 아킨지를 비롯한 토후들의 군대 또한 재탄생했다.


이러한 1427년의 군제개혁으로, 오스만은 이전과는 비교될 수 없는 막대한 규모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나톨리아 양쪽 방향으로 언제든지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군사 편제를 갖췄다. 기독교도 영주들까지 포함했을 때, 1428년의 오스만군은 어느새 중앙 군적에만 해도 3만 명 이상이 올라가있는 막강한 대군이 되었다. 이렇게 거대해진 군사력을 써먹기 위해, 술탄은 카라만 대신 징벌할 맛좋은 먹잇감을 머지 않아 찾아냈으니, 바로 그의 아버지가 순순히 넘겨주었고 이제 대부분의 방어력을 상실한 제국령 트라키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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