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고졸 공돌이 아저씨야.
어제 덧글 너무 고마워. 격붕이 친구들이 이렇게 마음씨 착한 핵강묵들인줄 몰랐네.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더라. 순간 포기했던 공부나 대학이 가고 싶다는 주제에 맞지 않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할 정도로 오늘은 일하는 내내 즐겁더라.
즐거워서 그런지 시간이 존나 안 갔어 이현걸 이새끼는 지가 뭐라고 망각이 불행하다는 개소리를 지껄인거지? 망각을 돌려줘 제발 시간아 흘러라
또 잡소리는 그만할게.
격붕,네웹 친구들이 가장 기대하는건 다름아닌 2학기 지태의 모습이야. ex): 천수는 뒤졌다 이제 or 여기서 주지태가 나타나서 전부 패버리면 ㄹㅈㄷ
지금 주지태 모습으로 학교에 가서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그래서 격기3반을 다시 정주행하니 더 보이는게 있더라. 많이 봤다 생각했는데 대충 봤나 싶어서 반성하게되었어.
지태의 흉터를 모아봤어.
내가 보고 느낀점을 적는 것 뿐이니. 틀린점이 있거나 불편한점은 지적해줘. 죽어버릴꺼야요ㅜㅜ..
지옥
[너를 죽이려고 지옥에서 놀다 왔지롱]
주지태가 말한 지옥은 어디일까?
내가 1회차 정주행을 했을 때 지태에게 지옥은 어디? 라는 생각에 내린 답은 "굴다리"였음.
상식적으로 흉터의 출처를 물었으면, 그 질문에 답은 당연히 장소지 않겠음?
라는 단편적 결론에서 좀만 더 생각해봤음.
예를 들어 우리가 지내는 직장,학교,모임등 에서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가 몰려오면 그곳을 지옥이라고 부르곤 해.
그렇다면 내가 괴롭고 상처받았던 장소에서만 멀어져도 지옥이 끝이 날까?
서울에서 괴로운일을 겪었다면 내인생에서 서울이 지옥일까?
내생각에는
주지태가 말한 지옥은"장소"가 아닌 임형철을 만난 후의 "시간". 즉 round.29 위기 부터 주지태에게 지옥이 시작되었다고 난 생각함.
이 지옥을 설명하려면 완전히 지태가 어렸을 때 부터 시작하는게 편할 것 같아.
가독성이 구리지만 좋게 봐줘.
흉터
[주지태의 얼굴의 흉터는 주지태의 나약함을 표현하는 메타포임.]
주지태의 얼굴이 굴다리 전후로 점점 상처가 많아지기 시작해. 내 관점으로 설중매화편 부터 지태 얼굴에 생기는 흉터는 지태가 스스로의 나약함에 좌절할때마다 생기는 낙인 이라고 생각함.
말그대로 지울 수 없는 낙인. 거울을 볼때마다 혐오스럽던 나약하던 그때의 나를 망각 하지 않을 수 있는 낙인.
흉터가 생기던 시점을 찾아보자.
자성
[ 역시 넌 쓸모가 없어.]
격기3반의 라운드 초반. 장례식장 그 사건 이후로 지태의 악몽에서는 그 사건이 다시 재현되며 "역시 넌 쓸모가 없어" 라며 스스로를 조롱하는 컷이 있음.
그 사건에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성 에피소드의 보육원 지태가 나와. 지태는 그 사건 이후로 마음의 문을 닫고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는 걸 극도로 거부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는 PTSD의 지태와 현재 굴다리에서 지내고 있는 지태를 같은 PTSD에 시달리고 있으며, 일부로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라고 생각함.
아마도 밑에 시간대별 정리는 설명이 많을거 같지는 않네.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주변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성격]
지은이의 도움으로 다시 지태는 용기를 내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
지태 나름의 방법(동생의 전단지를 붙인다든가)으로 동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어떻게든 덜어내고자 노력함.
[마리아는 너무나 잔인하게도 지태의 간절함을 볼모로 삼아 지태가 가장 혐오하는 짓을 스스로 할 수 밖에 없게 만듬 ]
나름의 방법으로 트라우마를 가라앉히며 살던 주지태의 삶에 마리아가 개입하면서, 지태의 죄책감은 날이 갈 수록 커져만 가게 됨.
그 누구도 동생의 납치의 지태의 잘못이 없다는 걸 알지만, 잔인하지만 현실적인, 피해자인 지태가 스스로를 책망하고 죄인 취급하게 될 수밖에 없음.
아버지를 혐오하기에 폭력 또한 혐오하던 지태한테, 여동생을 만나려면 너가 혐오하는 수단으로 상대를 짓밟고 높이 올라가야만 단서를 얻을 수 있다함.
내키지않고 두렵지만. 오빠로서, 죄인으로서 책임을 지고 여동생을 지키기로 마음먹게 되고. 마리아의 도움으로 격기반에 들어감.
낙하산이기에 받는 조롱과 일반인이 버티지 못하는 고강도의 훈련을 억지로 버텨가며 강해지려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동생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격기반에 다가가는 만큼, 친구들(씹동,지은)에게 자연스럽게 멀어졌음.
[지은과 지태가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일치한다.]
[너희는 항상 내 일도 자기 일처럼 생각해 줬는데.]
슬프게도, 지태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지현이라는 죄책감을 업고 살아가던 지태에게 친구를 지키지 못한 나약함이라는 죄책감까지 얹어지면서
지옥이 시작된다고 생각함.
그리고 지태는 더이상 "격투기"만큼에서는 망설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은 강해지게됨.
[곁을 지켜주는 마리아에게서 어머니를 느끼게 되는 지태]
마리아에게 격투기를 배우고, 상대에게 주먹을 뻗는 것에 망설임이 없어진 지태는
자신의 삶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고 느끼게 되며 격기반에 들어온 게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까지 하게됨.
하지만..
싸움
[과연 격기3반에 가는 것만이 너를 찾는 방법일까?]
격투기와 싸움이 다르다는걸 깨닫은 지태는 과연 혐오하는 폭력을 휘둘러야만 동생을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빠져.
스스로가 혐오하던 인간과 자신이 다른 점을 찾지 못하고 또다시 죄책감에 삼켜지게 되고 결국 어머니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마리아에게
배신을 당함.
[당신에게 필요한 건 동료가 아니라 그저 사냥개가 필요했던건가요?]
[대체 얼마나 더 간절해야 이 나약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격기반에 들어갔을 때 보다 더 폭력이 혐오하게 되었지만 이제 동생을 찾는 방법이 이것 밖에 없기에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하면서 옳고 그름만 따지는 나약한 자신을 더 혐오하는걸 택함.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을 혐오하는 고해 에피소드가 끝난후 콧등에 흉터가 남음.
불광불급(不狂不及)
[이제 좀 내 간절함이 보이냐 이년아]
더이상 마리아는 지태에게 선배도,동료도 아님.
지태가 여동생을 찾기전까지 서로를 이용할 뿐.
더 이상 타인의 행동을 믿지 못하게 되었음.
자신이 제일 혐오하는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서 , 자기를 배신한 사람과, 자신이 제일 혐오하는 행동을 하러 지태는 굴다리에 왔음.
지금 이 시간도, 지금 이 공간도, 그리고 나 자신도 폭력으로 물든 지태가 할 수 있는건 동생을 구한다는 결과에 도달 하기위해 스스로 미친척 하는 수밖에 없음.
[스스로 신념을 포기한 이상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죽는게 낫다는 지태]
[경험을 통해 만만하게 보여봐야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걸 배우고 나선 더더욱 괴팍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주지태]
이때까지 지태는 자신의 모습을 연기했다고 생각함. 지은이 말했듯 폭력을 휘두르며 잃어버린 자존감이나 되찾는 쓰레기들의 모습을 느낀대로 따라하며
현재 폭력을 휘두르는 자신을 부정하는 단계였다 생각함.
[단순한 쓰레기를 연기하는 것으로는 진짜 쓰레기들을 당해낼 수 없다.]
시체굴과 눈앞에 있는 상태가 꼬롬한 영웅을 보며 다시는 나약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또 괴로워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본능적으로 공포에 잡아먹혀
다시 나약한 자신으로 돌아가는걸 느끼게 됨.
불광불급. 미치지않고서야 미치지 못한다는 제목처럼 자신을 부정하고 혐오해오면서 도착한 길 앞에는 정말로 불광불급에 도달한 영웅이 서 있었음.
[스스로에게 몇번이나 그렇게 다짐하고 맹세했는데도, 공포에 무너져버린 지태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한번 더 혐오하게 되고 스스로에게 처음보다 더 큰 낙인을 새긴다.]
[더욱 더 미쳐야만 지현이에게 닿을 수 있다.]
미치광이 ~ 후유증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다시 그런 날이 돌아 올 수 있을거라 희망을가져보는 지태]
[미치지않아서 닿지못한 영웅의 환영에, 자신의 희망은 완전히 무너지게된다.]
[누군가의 호의를 받을만큼 나약하고 싶지 않은걸까]
조금 전 아무말 없이 미소를 짓던 지태는 영웅의 환영을 본 이후로 다시 굴다리에서 자기가 혐오하는 쓰레기들을 대하던 것 처럼 매사에 껄렁하고 폭력적으로
일관 하게됨. 내 생각이지만 지태는 이때 환영을 본 이후로 평상시에도 미치광이의 모습을 유지하려 한거같아.
미치광이 연기를 할 수록 후유증은 붙잡을 수 없이 강해지니까.
[다시 쓰레기장으로]
다시는 가고싶지 않지만 현실적인 문제. 마리아가 깨어나지않으면 격기3반으로 가는 길도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다시 굴다리로 발을 옮김
위기(1)~후유증 까지는 임형철과 주지태가 다시만난게 단순히 사이다가 아님을 강조하기위해 다시한번 복기하는 차원에서 주지태 시점에서 정리해봤음.
지옥
[이게 그 수미상관인가 뭔가 그건가]
[주지태는 단 한번도 본인의 폭력을 정당화 한 적이 없다.]
작가는 주지태의 이러한 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말이 하고싶은걸까?
[다혜가 우리가 뭔짓을 했길래 이지랄을 떠냐는 질문에]
주지태는 임형철이 정의구현이나 참교육이냐는 질문을 비웃으며 말도안되는 이유를 댔음.
그것도 형철과 다혜한테 두번이나 자신이 하는 폭력에는 의미가 깃들어 있지 않음을 표방함.
여기서는 잠시. 이학이 주지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역광편 영웅을 참고해보도록 하자.
[자신의 행위는 저항과 투쟁의 방식일뿐 절대 폭력이 아니라 하는 영웅. 자신의 폭력은 단순한 폭력일뿐 참교육이나 정의구현같은게 아니라 하는 주지태]
누군가는 주지태의 안티테제는 심하민이라고 함.
하지만 내생각에 주지태의 안티테제는 영웅이라고 생각함.
이상하게도 굴다리편의 영웅과 지태는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정반대의 길을 걷는 안티테제의 모습을 보여줌.
[영웅의 애인인 혜리]
영웅은 죽기전에 혜리를 생각하며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죽었음.
[과연 저 눈물은 기쁨의 눈물일까? 아니면 자신의 동생을 죽였던 가해자처럼 폭력의 물들어가는 영웅이 너무나 슬퍼서 흘리는 눈물일까?]
[만약 혜리가 죄를 같이 들어주지않았더라면 영웅의 마지막은 과연 달랐을까?]
돌아와서.
[이거 원본 아닌거 같은데 눈동자가 이렇게 작았나?]
분명히 다혜에게 안전한 관중석에 숨어서 폭력을 즐기지 말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건만
바로 경고를 무시하고 또 뒤에 숨어버린 다혜에게 분노를 느끼게됨.
[그렇게나 역겹고 혐오스러웠던 임형철의 모습과 지금 자신의 모습이 일치하는 것을 깨닫게된 지태]
그때의 나약한 모습과 폭력에 물들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게됨.
[폭력에 선이 어디있냐며, 이미 휘두른 순간부터 선은 넘은거라 주장하는 지태는 다혜의 가증스러움과. 약자의 부탁을 무시하고 폭력을 행사한 자신에게 자괴감이 몰려온다.]
[어떤마음으로 누구한테 하는 말일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지태는 지금도 폭력을 혐오스러워하고 있고 임형철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봄.
왜 임형철에게 죄책감을 느낄까 생각해보니 이 시점의 지태한테 임형철과 다혜는 더 이상 강자가 아닌 약자였고, 일방적인 폭행에 죄책감을 느낀거라 생각함.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까짓 것에 죄책감 느낄거였으면 시작도 하지말고 그냥 얌전히 도망쳤어야지 이제 와서 대체 왜 죄책감을 느끼냐고
소리를 지르며 멈추고 싶은 폭력을 더 행사함.
[대가를 치를 시간이야]
지태는 죄책감을 느낄정도로 나약한 자신에게 다시한번 나약한 자신에게 내리는 낙인을 내렸음. 이번에는
자신에게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인 다혜를 통해 대가를 치렀음.
[더큰 대가를 치르고 싶었던걸까?]
이렇게 얼굴에 총 세번의 흉터가 남게되었음 (이마를 제외하고)
이학은 이번 지태의 모습을 통해 더이상 주지태 스스로 폭력을 멈출 수 없는 수준까지 왔음을 표현했다고 생각함.
그렇다고 완전히 흑화한것이냐? 라고 묻기에는
[고해편에서]
지태는 아직까지도 폭력을 혐오함.
어쩌면 지태는 이제 남에게 고통을 준 죄책감을 스스로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벌을 받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생각함.
위에서 뜬금없이 영웅을 언급했던 이유는.
추측상 지태는 영웅과 다르게 미치광이의 모습을 그만둘거라고 예상하기 때문임.
영웅이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
[마리아,양기훈,영웅은 작중에서 살인을 했다. (양기훈은 뉘앙스만)]
양기훈의 대사를 따르면 혜리의 노력끝에도 영웅은 스스로의 폭력과 살인이 정당한 투쟁이라고 생각하다가 죽기전에 자신의 사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가지고 사망했음.
영웅은 결국 폭력이라는 수단이 저항과 투쟁의 행위로서 당위성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폭력은 결백함을 주장했고.
양기훈은 이런 영웅을 보며 흑백논리와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점철된 폐급쓰레기 라 평했음.
양기훈의 말처럼, 영웅은 혜리가 떠난걸 본인의 왜곡된 신념때문이 아닌, 자신의 투쟁보다 강한 마리아의 폭력에 굴복했기때문이라 생각했고.
결국 미치지않고서야 하지않을 실험을 받으면서 불광불급의 괴물이 되어버렸음.
하지만 지태는 현재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한 시점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생각하고 있지만, 최후의 마지노선인 살인만큼은 안하고 있음.
불협화음 이후에서도 이창을 죽이라는 굴다리 사람들을 보며 미친건 너네들이라고 소리지르는 장면이, 지태가 행동은 더 과격하더라도.
본인의 잘못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지태와 모르는 굴다리 쓰레기들을 비교한 장면이라고 생각함.
이학은 작중에서 주지태가 원래대로 돌아갈거라고 독자들이 기대할 만한 장치를 여럿 마련해놓았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혜리가 영웅을 떠나면서 영웅의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었음
오히려 지태의 사상은 아직까지도 폭력이 잘못됐다는걸 인지하고 있음으로 보아
굴다리에피소드가 끝나고 혜리가 영웅을 조금이나마 구원했듯
고해 에피소드를 이어서 지은이 지태를 말리지 못한걸 후회하는 장면이 나온걸로 보아. 지태가 구원받는 전개가 될 거라 생각함.
시체굴에서 영웅과 지태의 사상이 대립했듯.
제목 그대로 불협화음편에서는 지태와 현걸의 사상이 대립했음.
[둘다 폭력에 환멸을 느끼는 두 사람이지만 폭력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게 하게됨]
[환경탓 하며 스스로의 폭력을 합리화시키는건 아니고?]
현걸은 원인론적인 방향에서 굴다리의 환경을 지적하였고, 주지태는 이현걸의 원인론을 부정했음.
지태가 하는말은 "너네가 밖이였으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였을 것처럼 말하지마"임.
이현걸의 원인론적 주장을 단순히 목적을 정당화하기위해 원인을 끌어다 쓰는 목적론을 제시하며 비판해.
본인포함 인간이 폭력을 휘두르는것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음.
쓰다보니 너무 졸리네. 미안하다.
다음에 시간나면 지태가 왜 이현걸을 위선가득한 쓰레기 취급하는지 풀어보려고해.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이학은 흑지태의 독백은 최대한 숨겼지만 흑지태의 말에서 아직까지도 폭력은 정당화 할수 없고 본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걸 몇번이나 강조하고 있어. 주지태가 흑화하던 불광불급부터 현재까지 지태는 스스로 미치기를 바라고 있고, 미쳐가고 있지만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 만큼은 못하고 있다는거야.
영웅,마리아,양기훈과 달리 주지태는 정신이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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