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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미츠하의 문단속 2화앱에서 작성

청잎사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13 18:03:11
조회 421 추천 16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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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네가 토지시라 이 말이냐?"

할머니가 돋보기를 고쳐쓰면서 말했다.

소타와 나, 요츠하, 할머니, 아버지, 소타의 아버지가 서로 대면하면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 속 캠프파이어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곳은 이토모리 고등학교 앞 운동장이다. 모래벌판 위에 피난민들로 북적대는 텐트들이 쳐져있었고, 빛을 은은하게 비추는 전구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잠깐 토지시가 뭐라고?"

"재앙의 문을 닫는 역할을 합니다. 일본열도 아래에 꿈틀대고 있는 재앙의 힘인 미미즈를 퇴치하거나 미미즈가 들어오는 뒷문을 닫아야만 사람들이 살거든요. 저희 무나카타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숙명입니다."

"미미즈는 어떻게 생겼지?"

"거대한 지렁이 같이 생겼죠. 지렁이가 땅에 내려놓아지면 지진이 일어나서 사람이 많이 죽습니다. 그전에 문을 닫아야만 해요."

'이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초현실적인 현상들이 분명히 있구나'라고 새삼스레 느꼈다.

"전국의 문을 닫으려면 이래저래 돌아다니느라 고생이 많겠구먼. 여기는 무슨 일로 왔지?"

"답사를 하러 왔죠. 이토모리에 운석이 떨어진 이상 이곳에도 뒷문이 생기리라 봤습니다. 제 토지시 스승이신 할아버지께서 뒷문이 이곳에 생긴다면 바로 저 고등학교 교문 아니면 체육관 문이 되리라고 예측하셨습니다. 이 곳 지형을 직접 눈으로 파악하고 알아야만 나중에 문단속을 하는데 뒤탈이 없을테니까요."

"호오..."

"이곳은 미야미즈 가문이 관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문단속을 이곳에 할 일이 생기면 미야미즈 가문에 양해를 구하는게 낫겠다고 봤습니다. 이런 종교적인 분위기가 있는 곳에서는 특히 그렇죠."

소타는 초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늠름해보인다. 아마 엄격하게 자랐을거라고 짐작이 될 정도다.

아버지가 되물었다.

"네 할아버지는 어디 계시지?"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계셔서요. 그래서 아버지가 이곳으로 데려다주셨어요."

이걸 믿고 있는 가족들의 분위기를 봐서 내가 현실에 살고 있는건가 싶었다. 괜히 내 옆 머리칼을 매만져봤다.

그렇구나. 이 얘의 아버지는 무나카타 하루토 씨고, 토지시가 아닌 일반인이라고 한다. 지금 봐서는 약간 얼빠진 얼굴이었고 소타를 그저 이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집으로 되돌아가게 해줄 사람에 불과한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보호자인데 그래도 되는 것일까.

내 생각을 어떻게 읽었는지 소타가 말을 꺼냈다.

"괜찮아요. 편찮으신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아버지가 데려다주셨을 뿐이니까요."

요츠하가 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소타 오빠는 어디 살아요?"

"도쿄에 삽니다. 아버지. 그렇죠?"

"응? 어어! 맞아."

나를 포함한 미야미즈 가족 모두의 눈이 커졌다.

정말 사야 말대로 운명의 남자인걸까? 너무 어리지만 잘생겨서 맞을수는 있지만 내심 꺼림칙했다. 그때 무언가가 내 머리를 스치는 것 같았다.

환각일까. 갈색의 고슴도치 마냥 삐죽삐죽한 머리카락이 보이는 것 같았다. 뭐지? 0.5초간 그게 보였지만 환각이었는지 이내 흩어져서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때 요츠하가 말을 이어나갔다.

"너무 어른스럽잖아!"

내가 거들었다.

"소타는 귀엽고 다 좋은데 그런 어휘력은 누구한테 배웠니?"

고고한 인상에 요츠하는 살짝 반한듯이 얼굴이 빨개졌다. 요츠하랑 같은 초등학생인데 차이가 심하다. 그리고 귀여워서 소타를 쓰다듬고 싶어질 정도다. 이성으로서는 그닥이지만.

"할아버지한테요. 할아버지가 문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고고학 서적들을 다 뒤져보고 저도 할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웠어요."

"그렇구나."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일단 네 이야기는 잘 알아들었다. 하지만 폐허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해줄수 없다. 초등학생이 들어가기엔 너무 위험한 곳이야. 아범은 생각이 어떤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보호자란 사람도 너무 나서지 않아서 믿을수 없는 판이고요."

"아쉽네요."

"대신에 네 할아버지가 지목한 고등학교 문과 체육관 문은 얼마든지 확인해봐도 좋다. 아범이 공무원을 불러서 가이드 역할을 부탁하면 더 꼼꼼하게 둘러볼수 있을거다."

"알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소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내 아버지의 인솔을 따라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캠핑용 침대에 드러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봤다. 칠흑같은 어둠이지만 화려한 은하수와 별들이 빛내고 있었다. 마치 검은 도화지에 보라색과 남색 스프레이가 뿌려져있고 가지각색의 소금들이 흩뿌려져 있는 광경이었다.

요츠하도 덩달아 옆의 캠핑용 침대에 드러누우면서 내게 말했다.

"소타 오빠는 좋겠네. 우리랑 비슷하게 운명을 지고 있으면서도 여기저기 돌아다닐수 있어서."

"우리는 계속 여기 살아야 하긴 해."

마음 속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도 도쿄에 가고 싶어..."

처음으로 요츠하에게서 도쿄 살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주위 사람들이 자꾸 도쿄도쿄거리니까 너도 그런 생각이 드는가보구나."

"나 검색해봤어. 히다 시는 아무것도 아니더라."

참고로 요츠하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현장체험학습으로 히다 시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지하철 지도부터가 엄청 빽빽하더라고."

"그렇구나."

이 순간도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타랑 달리 이곳에 붙박여살다가 할머니가 되버리고 나 역시 딸이나 손녀에게 무녀 역할을 물려주게 되리라. 그건 끔찍했다. 문득 할머니도 한때 그런적이 있진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가 요츠하에게 초를 쳤다.

"쓸데없는 말하지 말거라."

"죄송합니다."

나는 할머니가 몹시 원망스러웠다.

"이곳에도 미미즈가 나와서 지진이 난적이 있을까?

"우리 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일어난적이 있다고 쓰여있단다. 1891년 노비 지진이라고."

요츠하가 스마트폰을 켜더니 노비 지진을 검색했다. 한참 위키백과의 노비 지진 문서를 읽어보고 신음을 흘렸다.

"히에엑. 사람들 많이 죽었대."

"그만 알아보자.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야. 신사 일을 계속해야 하는 운명만으로도 우린 벅차다고."

그래도 부러웠다. 소타가 일본 전국의 문들을 찾아다닌다면 새로운 것들을 평생 보고 자극도 받고 다닌다는 이야기다. 가능하면 내가 맡은 무녀 일을 토지시 일과 맞바꾸고 싶었다.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평생 여행을 하고 사는 자라. 뭔가 모르게 동경이 가기도 했다.

눈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오늘 하루 동안 나보고 미츠하님 미츠하님 이러는 소리를 듣고 숭배받느라 이미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속으로 빌었다.

신이시여, 이곳에서 자유를 찾게 해주세요. 이런 갑갑한 곳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만일 운명을 져야할 수밖에 없으면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숙명이길 빌어요.

계속 되뇌었다.

제발 부탁드려요 신님. 드려요. 부탁. 드려요드려...

그리고 마침내 눈이 온전히 감겼다.


*
꿈이다.

눈을 떠보니 온세상이 하얗다. 캠핑용 침대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만이 나를 받치고 있었다. 거기서 일어나 침대를 걸쳐앉았다.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면 추락할까봐 두려웠다. 다행히 침대를 받치는 바닥이 있다는 것은 직접 발을 닿아보고서야 알수 있었으며 때문에 안도했다.

그때 잘생긴 가르마 펌을 한 청년이 흰 와이셔츠와 검정 청바지, 그리고 목에 낡은 열쇠를 내건 채로 내 눈앞에 생긴 문을 열고 들어와 함께 침대에 걸터앉았다.

"잘 잤나요?"

"당신은 누구죠?"

"신이죠. 그쪽이 빌었던 그 신입니다."

"대박이네..."

가만 보니까 청년은 소다수가 담겼으며, 한국어로 뭐라 쓰인 캔을 들고 있었다. 한잔할거냐며 내게 권유했지만, 난 거절했다.

"저는 여러 세계를 관리하고 생명의 순환을 관장하는 존재인 시공의 관리자라고 합니다. 당신의 기도를 잘 들었습니다. 내심 토지시 일을 하고 싶다고 속으로 빌었죠?"

"빌긴 했지만 갑자기 이렇게 될줄 몰랐네요."

"당신이 만난 그 소타라는 아이는 장차 도쿄에 재앙이 닥치는걸 막을겁니다. 그리고 한 여고생을 만나 함께 모험을 할테고요. 당신은 그게 부러운가요?"

"부럽죠! SNS만 봐도 도쿄 사람들은 늘 맛있는거 먹고 멋있게 잘 사는 것 같고, 소타라는 그 애도 도쿄 사람이더라고요. 전 이 세상이 싫어요. 이런 가혹한 운명을 왜 내가 져야 하냐고 싶었어요."

속으로 울컥한 나머지 눈물이 나왔다. 잠시 눈물을 훔쳤다.

"전 당신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당신의 소원을 들어드리고자 합니다."

"진짜요?!"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눈물이고 콧물이고 다 나온 채로 그를 그만 껴안고 말았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서 떨어졌다.

"근데 절 좋아한다고요? 왜?"

"당신의 삶 궤적을 계속 지켜봤는데 묵묵히 일을 잘 수행하는 것도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잘 크신 것도 있고, 무엇보다 그런 당신이 한 남자와 함께 꿈을 통해 운명의 붉은 실이 엮여서 한 마을을 구했는데 이대로 마을에 계속 갇혀살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근데 아..."

내 콧물이 그의 흰 와이셔츠에 흠뻑 묻어서 더러워져버렸다.

"괜찮아요."

그가 생긋 웃으며 핑거스냅하자 더러웠던 셔츠가 말끔해졌다.

"일단 당신의 원래 운명은 이렇습니다."

그가 홀로그램 기기를 만들어보이면서 영상으로써 내 미래를 보여줬다.

평생 도쿄에 가지는 못한다. 이 마을은 어떤식으로든 재건되고 나의 학창시절 친구들은 모두 나를 숭배한다. 내게서 아우라가 뿜어져나오는 것마냥. 특히 노인들은 더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망설이거나 고민되는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왔으며 내 의견이 늘 먼저다.

고민의 종류는 다양했다. 인간관계라거나 살 의욕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병원을 어디로 갈지 등. 자기 미래를 궁금해해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 예언은 늘 맞았다. 그러다가 나는 무녀로서 모든 미래를 볼수 있게 되었다. 내 엄마인 미야미즈 후타바가 다시 현신으로 돌아온 것마냥 여겨졌다.

나는 불행할 것이다. 모든 미래를 본다는 것은 내 자유의지를 완전히 박탈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정확한 미래를 보는 것은 그 미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108살에 죽을 것이다. 그것도 고통스럽게. 나의 손녀들이 신사의 엄격하고 지긋지긋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나를 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손녀들이 불쌍해서라도 날 죽이는 것을 냅둘 것이다.

그후에 나는 신이 될것이다. 그리고 티아마트 혜성이 광대한 태양계를 도는 궤도를 돌아 다시 지구 인근으로 올 때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이 걸릴 것이다. 그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숭배될 것이다. 텟시나 사야 등 나와 알고 웃고 울었던 이들은 모두 세월을 못버티고 죽음을 맞은 반면 나 혼자만 살아남으며 고독을 맞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외로움의 침잠에 빠져들 것이다. 마침내는 미쳐버리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미래를 보면서 슬픈 나머지 눈물이 나왔다. 그 눈물은 뚝 그쳤다. 하지만 슬픔이 멈춘건 아니었다. 차마 나오지 못하는 눈물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응어리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해요!"라고 외치며 홀로그램 기기를 뺏어 바닥으로 내팽개쳐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가다간 수십억 년도 모자라 수백조 년, 수천경 년 등 억겁의 미래까지도 알아버릴까 두려웠다.

시공의 관리자를 자처하는 청년이 내 손을 얹으며 말했다.

"당신 마음 이해합니다."

청년이 다시 내게 달라진 운명이라고 다른 홀로그램 기기를 소환해보였지만 나는 거절했다.

"전처럼 잔인하고 가혹한 운명이면 안보고 말거에요. 그냥 잊고 사는게 속편하겠어요."

나는 숨이 거칠어졌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거대한 미미즈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어요. 미미즈로 인한 대재난이 앞으로 몇년 내로 간토 전역을 강타하게 될 것이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게 될겁니다."

내 얼굴이 굳는 것 같았다.

그가 홀로그램으로 뭔가를 다시 보여줬다.

크고 작은 빌딩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인 가운데 멀리서 자동차들이 질서정연하게 흘러가고 나무와 풀이 드넓게 펼쳐진 공원도 있고 그것들이 모조리 굉음과 함께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은 일제히 멈췄다. 거기서 뿜어져나온 사람들이 혼란스럽게 뿔뿔이 흩어졌다. 빌딩들은 흔들리더니 결국 뭉게뭉게 뿜어져나오는 폭풍과 함께 폭삭 주저앉아 쓰러지기 일쑤였다.

기분이 나빴다. 내 우상이자 동경하는 곳이 이렇게 멸망하다니.

"이런걸 보여주는 이유가 대체 뭐에요? 아니 무녀 역할도 있는데 문단속도 해야 하면 제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걸요."

"당신 소원대로 해드리는 것뿐인데 뭐 문제라도?"

"토지시 일은 가혹하구나..."

"도쿄 라이프도 할수 있는데?"

"솔깃한데요."

그에게는 내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것으로 보일것이다. 그가 말했다.

"확실히 무녀 일까지 겸하려면 몸이 고되죠. 당신은 도쿄에 갈것이고 무사시노미술대학 공예공업디자인부 패션디자인과에 진학하게 될 것입니다. 패션디자이너 쪽으로 일하게 될거고요. 무녀 일은 안해도 됩니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은..."

"나약한 사람들일뿐이에요. 종교에만 매달려서 위안을 얻으려는 자들은 그래봐야 낙원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아봐야 해요."

나는 망설였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아까 본 미래에서 내가 손녀들에게 죽임당할 것이란게 떠올라 할말이 없어졌다.

손녀들도 모두 나와 같았다. 지옥같은 이 마을에서 탈출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저런 삶은 살기 싫다. 모두 다 내팽개치고 도쿄 라이프를 즐기고 싶다.

무녀 일은 요츠하에게 맡겨버리자.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외동이 아니란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저 혼자 도쿄로 가버리면 누가 저를 도와줄까요?"

"당신의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될것입니다. 무나카타 가문의 힘을 빌려도 좋고, 제가 뭐 이끌어줄수도 있는거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믿을게요. 신님 말씀을 한번 믿어볼게요. 토지시 일할게요."

그가 목에 걸고 있던 낡은 열쇠를 꺼내더니 내게 줬다.

"받으세요. 이것이 당신을 인도해줄 것입니다.

그걸 받아들자마자 갑자기 내 눈앞이 아득해졌다.


*
눈을 뜨고 보니 새파란 하늘과 구름들이 보였다. 상반신을 일으켜보니 이미 아침이고 할머니와 요츠하는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때 폐허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 못챘는지 각자 자기 할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한 마을사람을 붙잡아보고 연기를 가리키면서 따져봐도 "응? 아무것도 안보이는데?"라고 할뿐이다. 다른 사람을 붙잡아도 똑같았다.

"어째서 저 연기를 아무도 못보는거야?"

침을 뒤삼킨 나는 그때 내 목에 그 신이 준 열쇠 목걸이가 걸려있다는걸 눈치챘다. 낡은 열쇠를 꽉 쥐어보이면서 나는 연기를 향해 걸어가보였다. 순전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때 뒤에 누군가가 오는 것이 느껴졌다.

소타랑 소타의 아버지인 하루토 씨였다. 둘이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지나쳤다. "위험하니까 저 멀리 가있으세요!"란 단말마만 외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목에 내걸린 열쇠를 꽉 쥐고 그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직감이지만 이 열쇠가 꼭 필요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나도 뒤따라 뛰어갔다. 그들도 폐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앞에 무너진 흙모래들이 있고 '토사 붕괴의 위험이 있어 전면 통행금지'란 대형 간판과 주황색 콘들이 어지러이 놓아져있었다. 무나카타 일행과 나는 그걸 지나쳐 폐허로 들어섰다.

안그래도 울퉁불퉁한 곳을 전력질주한다고 내 숨이 가빠졌다. 잡초와 무너진 집들, 어지러이 쌓인 자재들이 나를 지나쳐갔다. 그리고 연기는 가까워져왔다.

더 우거진 잡초들을 헤치고보니 식당이었던 한 폐가가 보였다. 이제 보니 식당의 정문에서 검붉은 탁류가 격렬하게 꿈틀대면서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토 씨와 소타가 문을 닫으려고 힘껏 애쓰고 있었다.

그때 폭발하듯 탁류가 들이닥쳐 소타와 하루토 씨가 내팽개쳐져버리고 말았다. 문이 활짝 열려 탁류가 더 격렬하게 하늘을 뒤덮으려고 있었다.

소타는 쇠로 된 무언가에 부딪혀버려서 뒤틀대고 있었다. 하루토 씨가 다시 일어나서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나도 그의 등 뒤를 달리며 다가가 전력으로 문을 닫으려 애썼다. 하루토 씨가 눈을 크게 떴다.

"미야미즈 씨가 여기 왜...!"

"묻지 마세요! 여길 닫으면 되는거죠?!"

하루토 씨와 함께 문을 힘껏 밀어 끼익끼익하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닫혀져가고 있었다. 어느새 소타도 뒤따라와 문을 나란히 밀고 있었다. 하루토 씨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차! 열쇠를 두고 왔구나!"

일그러진 표정의 하루토 씨였다. 그런데 그가 나를 보더니 하는 말.

"그걸 어떻게 갖고 있는거지!"

"네?"

내 목에 걸린 열쇠를 말하는 것이었다. 소타가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그거 얼른 꽂아요! 열쇠구멍이 곧 생길거에요!"

내가 열쇠를 꽉 쥐면서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일가족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겁게 떠드는 소리였다. 이외 식당에 온 다른 어른들과 점원들도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이거 소바라멘 주문할게요.'
'나 이번에야말로 금연하고 말겠어. 진짜라니까.'
'이 마을도 정들었어. 휴우.'
'엄마 여기 집이 맛있더라고요.'
'이 집 또 와야겠다.'
'요새 관절이 아파서 그런데 히다 시로 병원 갔다와야겠어.'

탕! 덜커덕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소타의 노래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뢰옵기도 송구한 히미즈의 신이시여. 머나먼 선조의 고향 땅이여, 오래도록 배령받은 산과 하천이여, 경외하고 경외하오며 삼가..."

열쇠에서 파란 빛이 나왔다. 온기가 느껴졌고 열쇠를 감싸는 파란 빛이 따로 일어나더니 문의 한구석에 있는 빛이 나는 열쇠구멍이 생겼다. 하루토 씨가 외쳤다.

"지금 잠가요!"

"돌려드리옵나이다!"

소타의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열쇠를 빛나는 열쇠구멍에 꽂아 돌렸다. 찰카닥.

이제까지 뿜어져나왔던 검붉은 탁류가 부풀어오르더니 펑 터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흩어졌고 기압도 동시에 가벼웠다. 반짝반짝 무지개색 빛을 내는 비가 가늘게 내려졌다.

우리 셋 모두 힘이 빠진채 주저앉아버렸다. 거친 숨을 내쉰 채로. 하루토 씨가 얼빠진 얼굴로 말했다.

"이런 경우 없는데..."

소타와 하루토 씨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는거에요?"

"아니 신기하다 싶어서. 열쇠를 두고 와서 이대로 미미즈를 못막겠구나 싶었거든."

소타가 물었다.

"미야미즈 누나가 지진을 막았어요."

"잠깐 내가? 지진을 막았다고? 방금 그 탁류는?"

"미미즈에요. 그것보다 열쇠는 누가 줬어요?"

"음..."

내가 말을 흐리자 둘의 얼굴이 약간 굳어보였다.

"말하자면 좀 긴데요."

"그렇구나. 내 아버지한테 이야기해봐야겠구나. 다른 가문의 여자가 지진을 막았다고."

내가 용기내서 말했다.

"그, 저도 토지시가 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엥? 갑자기?"

"할아버지 말이 맞았어요."

"그러게 말이다."

둘이 갑자기 나만 모르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나를 본 소타가 말했다.

"실은 저희 할아버지가 미야미즈 가문에서 토지시를 하고 싶어하는 자가 나올 것이라 했거든요. 그리고 자기 가문에서 뛰쳐나오고 싶지만 누군가를 버리는 것을 성격상 못하고 있을거라고 했어요. 사실 그것도 겸해서 저희가 여기로 온 것이기도 하고요."

"차마 우리 마을 사람들을 버리기 어렵긴 하지만..."

100년후 가까이 되는 미래에 손녀들에게 살해당할 것을 생각하니 마을에 계속 남는 짓은 못해먹겠다. 너무 잔인해서 마음 속 깊은곳에 불안감이 가득차있었고 그것 때문에 도망치고 싶었다.

"결심했어. 이 마을에만 있지 않을거야."

"저희 할아버지는 토지시 관해서 제 스승님이에요. 그리고 굉장히 엄격한 분이세요. 아빠도 그 엄격에 질려서 토지시 일을 포기하셨고요. 비록 지금은 불가피하게 문닫는걸 동행하셨지만... 미야미즈 누나는 그래도 토지시가 하고 싶어요?"

"무녀 일도 엄청나게 엄격해..."

신위 외우는 것부터 시작해 행동도 세세하게 하나하나 다 맞춰야 하고 거기다 공부도 신사의 체면 생각하면 상위권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엄격하단 말에 나는 시큰둥할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저희 할아버지가 계신 도쿄로 나중에 오세요. 괜찮죠?"

도쿄란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귀를 쫑긋 띄우는 상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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