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가라고 말하지 말아 줘 - 1

Y9YA · 2022.07.29 22: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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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네, 오랜만의 사내 회식이라 나도 즐거운 건 마찬가지다만, 문자며 전화며 계속 오는데. 괜찮은건가."

한참을 울려대던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 놓고선 방석 밑에 숨겨놓았는데도, 그 직감적인 쎄함을 사장님은 취기가 오른 와중에도 먼저 눈치채셨다.

"너는 뭐랄까, 일에 관련해서는 완벽하지만 가정에서는.. 어떨지 모르겠군.

한 가지 조언을 주지. 자신의 아내마저 프로듀스하려고는 하지 말게. 약속을 깨트린다던가, 하는거 말일세.

남자라면 휘둘러질 줄도 알아야 한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프로듀서님께선 이제 유부남이셨죠~

놀랐어요, 처음엔. 저희한테도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으니.."

"아하하.. 곤란한 점이랄까.. 사정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서."

사정, 그래. 곤란한 점이 있었다.

지금도 계속 울리지 않을 휴대폰에 자신의 불안을 알려오는 나의 아내. 이카루가 루카.

그녀의 불신 또는 불안이, 또는 그녀 그 자체로.

나의 애정하는 곤란함이 되어있었다.

/

그런 곤란한 감정으로는 도저히 회식을 즐길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마음 속 얕은 곳에선 루카를 탓하면서도.

어느새 손에는 루카가 전에 예쁘다고 말했던 고양이 모양 무드등을 사 들고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집의 철문은 역시나 열려 있고, 불은 모두 꺼져서,

온통 어두운 채로.

익숙하게 나와 루카의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들춰내면 온 몸을 말고선 눈이 팅팅 부은, 루카가 있다.

"루카, 말했잖아. 사내 회식이야. 중요하단 거 알고 있잖아."

루카를 조심스레 안고선 머리를 쓰다듬으면, 물기 젖은 눈이 이쪽을 지긋이 응시한다.

양 볼이 뜨거운 것 치곤 너무도 차가운 이마에 나의 이마를 맞대자, 다시 울음을 터뜨릴 듯 바들대는 두 눈가.

"나는?"

"..또 이런 식이야?"

루카는 서로의 이마를 맞댄 채 나의 뒷머리를 잡고 몸을 일으킨다.

갸냘픈 손마저도 두 눈과 같이 물기가 젖고 떨려와, 감각으로마저 전해져 온다. 나머지 한 손이 향하는 곳은-

나의 입가와 볼.

코끼리를 처음 만져 보는 맹인처럼 이 감각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쉴 새 없이 이쪽을 어루만져온다.

그 손에 묻어 나를 서늘하게 하는 것은 그녀의 눈물인가, 불안의 식은땀인가, 자기위로의 흔적인가.

"나는, 너가 제일 중요해. 소중해. 미코토라든가, 엄마가 해 준 나폴리탄.

그런 것들보다도 더.

그래서 짜증이 나. 너가, 짜증나.

짜증이 나서.. 버틸 수가 없어..

....떨어지지 말아줘.. 무섭단 말이야... 혼자선.. 무서워셔..."

그것의 출처가 어찌되었든, 다시 눈물을 제 손에 흘리우고 만다.

혀를 깨물어 새버린 발음으로 연약한 자신을 고백하며.

이렇게 나의 옷가지를 붙잡은 적이 지금껏 몇 번인지-

어찌되었든 나는 루카의 눈물마저 사랑했기에.

"루카. 나를 봐. 똑바로 봐봐.

나는 여기에 있어.

네 곁에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엔.

그러니까, 뚝. 뚝 하자. 앞으론 회식도 줄일게."

루카는 그제야 안심했는지, 눈물이며 콧물이며 범벅인 얼굴로 배시시 웃는다. 그 얼굴은 새끼 고양이라든가, 아기라든가.

작고 연약한 것의 귀여움을 닮았다.

나도 모르게 루카를 따라 웃어버린 것을 보면, 이런 점을 가장 사랑한 것이겠지, 나는.

"..짜증난다는 말은 미안해. 너 안 짜증나. 좋아해."

좋아해-라는 말의 끝음절. 그 입모양은 옅은 미소를 닮았다.

난 연애할 때도 그 말을 좋아해서. 루카에게 화가 날 때도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에 다시 기분이 풀렸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도 참 어떤 면에선, 연약하구나.

/

"하즈키, 문자 보낸 사람. 하즈키.

..오늘 부탁드린 서류 확인해주세요, 라.

싫어. 싫어.싫어.싫어. 싫어.

분명 서류를 핑계로 연락하려고. 루카같은 건, 언제든 제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다신. 연락하지. 마."

아직 이른 새벽.

루카를 재운 뒤 나도 술김에 일찍 잠에 들었건만. 쉴 새 없이 부스럭대는 소리-기분 나쁜 파열음을 닮은-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잠에서 깨 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떠진 나의 두 눈이 가장 먼저 목격한 것은-

나의 휴대폰의 화면을 마구잡이로 만져대는, 루카.

"루카, 지금 뭐하는거야!"

"이, 녹색 꼬맹이 언니쪽이. 너한테 꼬리를 자꾸 치잖아. 너가 요즘 멀어지는 것 같았는데, 다 이 년 때문이었어. 그랬던거야..

그래서 한 마디 해줬지. 이젠 다 괜찮아. 다, 괜찮아졌어.

다시 예전처럼.. 계속 우리 둘만 사랑할 수 있어."

그때, 문득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루카의 사랑은 정말로 잘못되어버렸다.

나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마저 사랑했다고. 생각하려 했는데.

하즈키에게마저 피해가 간다면.

그만둬야 할 때다.

".....

야, 이카루가."

"이카루가가 아니야. 그런 성 따위.."

"장난하자는 거 아냐.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단 말야. 지금,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한테 니가 한 짓이 뭔진 알기나 해?"

"..화내지 마. 제발."

"화가 안 나게 생겼어? 몇 번째야? 이런 일로 얼굴 붉히는 게.

야, 이카루ㄱ.."

"이카루가가 아니야."

"이젠 지쳤어. 내 성도 이젠.. 그만 둬."

"그런 말 하지 마."

"말 끊지 마.

나, 너무 지쳤어. 정말로.

어쩌면 이제 이카루가로, 나는 나대로. 가야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어."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제발, 무서운 얼굴로 말하지 말아줘. 제발... 앞으론 네 폰 안 만질테니까. 나 열심히 노력해 볼 테니까. 제발.."

"..그만하자."

그렇게 나는, 이별을 말하고 말았고.

루카는-점점 심해지는 타박 때문이었는지.

자신이 울고 있는지도 모르는 눈치로 내 팔을 끌어안고선-

"봐, 나 웃는거.

좋아했잖아.

나 그 말 들었을 때, 정말 좋았다?

그러니까 나 이제 울지도 않고, 많이 웃을게. 그러니까..

..다시 예쁘다고 말해 줘.

이카루가가 아니라고, 말해 줘.. 예쁘다고.. 말해 줘.."

눈물 자국으로 범벅이 된 입가를 억지로 올려가며, 내가 좋아하던 그 미소를 다시 보여주며.

나를 억지로 붙잡으려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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