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추리물에서 초능력 나오는거에 대해선 거부감 없음

엄밀히 말해서 초능력이 등장하지 않는 추리물에서도 트릭이 등장할 때 보면 항상 상식 이상의 지식이나 능력이 등장하기 마련이니까

어떻게 보면 그런 것들도 우리같은 범재들 입장에서는 초월적인 능력이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물에서 초능력이나 마법이 일반적으로 터부시되는 건 규칙의 문제임

우리가 알고있는 물리법칙을 포함한 세상의 규칙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과

작가가 임의로 만들어낸 설정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은 기본적으로 수용자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임

A가 B를 죽였는데 B의 버릇을 이용한 정교한 기계장치와 교묘한 심리트릭으로 죽인거랑

A가 즉사치트 써서 B를 반으로 갈라 죽인거랑 뭐가 더 전개상으로 재미있을진 분명한 거지 추리/미스터리라는 장르의 틀 안에서

그래서 일반적인 규칙이 아닌 다른 규칙을 적용할거면 조금 신중해야 함

다행히 스태퍼 케이스는 그 부분을 완화하기 위해 보고서를 통해 스태퍼들의 스킬들을 어떤 것이라 정의하고 규격화해서 제시해주고 있음

이렇게 해서 수용자의 흥미를 끌 수 있게끔 제작진들이 만들어난 세계의 규칙과 수용자들의 규칙을 이어주는 거지

근데 그럴거면 이 스킬에 대한 규칙 자체를 건드릴땐 아주 신중해야 하는 거임

A의 능력 A'를 설명했는데 나중가서 사실 이런 능력도 있음 저런 능력도 있음 이렇게 덧붙이면 신뢰를 잃게 된다는 거임

근데 1챕터부터 이런 일을 벌이더라.

물론 하면 안된다는건 아님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신중하게, 잘 써야지.

그 광대친구의 능력이 다른 종류의 것임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증거는 후반부 이벤트를 통해서 제시되잖아. 여기에 대해 복선이랄게 있었음?

그 네모난 자국? 그걸 보고 능력 사기친다고 유추한 사람이 있을까?

그 자국 자체가 뭔가 트릭에 쓰였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 말했다시피 이 게임의 서사는 우리가 아는 규칙 아래에서 진행되는게 아님

스태퍼와 스킬에 관한 규칙을 이제 막 학습하기 시작한 유저들에게 시작부터 그 규칙을 깨는 트릭을 반전요소랍시고 던져준다....

이렇게 나오면 앞으로의 전개에 대해서도 플레이어들은 이미 불신하고 수수께끼를 풀려고 하는 의욕이 떨어지게 되는거임

그럼 이 게임의 판은 플레이어들이 주도하는게 아니라 그냥 제작진들이 짜둔 스토리라인에 따라서

선택지나 좀 딸깍하고 애들 떠드는걸 즐기는 종류의 게임이라는 거임.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크게 흥한게 있긴 하지 역전재판. 영매 나오고 사이코록 나오고 난리도 아니지

하지만 역전재판 시리즈는 한 챕터의 분량부터가 크게 차이나고

그 거대한 분량 안에서 탐문과 재판 파트를 번갈아가며 서사를 확장시켜서

말 그대로 '이게 이렇게 진행된다고?' 소리가 나올 만큼의 반전과 재미를 줘

거기에 더해 영매 사이코록 이런거 버리고 새로 시작한 대역전재판은 진짜 시리즈 최고였고

더 나아가 추리게임중에서 제일 만족스럽게 했었음

개인적인 만족감은 오브라 딘이랑 동급

좀 오버테크놀로지스럽지만 똑같이 기본적으로 과학수사의 틀 안에서 진행되는 역전검사도 개재밌었고

하지만 이 게임은 아니지.....

거기다 탐문, 증거수색, 증거와 증거를 이어서 새 증거를 만드는 추론도 역전재판 시리즈의 재미였는데

이 게임은....있기는 한데 전부 서류작업에 더 가까웠음 탐문이나 수색보다는

어쨌든 1챕터의 전개는 오히려 나중에 나와서 한 번 통수치는 용도였어야 하지 않을까 싶음

우리가 이 게임의 규칙을 학습해서 익숙해진 다음에 나와야 우리가 불신하게 되기 보다는 아 이럴수도 있구나! 하면서 받아들이게 된다는 거임

그래서 2챕터는 훨씬 나았어 앞서 말했듯이 스태퍼와 스킬이라는 규칙을 충실하게 지켜줬으니까

다만 두 가지가 거슬렸는데 난 테나가 왜 급발진하는지 공감이 좀 안되더라

원래 이런 애입니다~ 니가 판단하지 마세요~ 그냥 받아들이세요~ 이렇게 나올거면 그냥 자캐커뮤를 해야지 게임 만들어서 파는게 아니라

근데 뭐 그냥 거슬린다 정도였음 애초에 얘한테 공감하려고 하는 게임이 아니니까 수수께끼가 풀고 싶었던거지

두 번째 거슬리는 점은 이런 역전재판류 게임에서

아니 그냥 추리게임에서 가장 신경써야 하는 부분인데

플레이어가 진상을 이미 알고 있더라도 제작진이 의도한 해결순서를 따라가야 한다는 점임

무슨 말이냐면 나는 2챕터 진행하면서 단면도에 굳이 지하실의 높이를 따로 표기해준 점, 그리고 접사다리에 사용흔적이 있다는 점에서

이 높이나 사다리가 트릭에 쓰일걸 알았음

근데 이걸 2챕 진엔딩 가기 위해 증거와 증거를 연결해야 할 때 약간 헤매었단 말임

그러니까 2챕 분기점 직전 대화가 아마 '우리가 진범이 포유류관에 있었다고 생각한 이유...' 이런 식으로 나왔을 거임

그래서 나는 헷갈린거지. '진범의 모순점을 바로 지적해야 하나? 아니면 여기 적힌대로 먼저 우리가 진범이 포유류관에 있었다고 생각했던 근거를 먼저 제시해야 하나?'

'먼저 우리가 생각한 근거를 제시하고 다시 그걸 무너뜨리는 전개로 진범의 모순을 드러내는 전개인가본데?' 

라고 생각하고 헛발질을 했었음

근데 뭐 오래 헤매이진 않았어서 거슬리는 정도

다만 이 문제는 3챕에서 크게 터짐

3챕터도 규칙을 충실히 지켜준 덕분에 분기점까진 불만족스러운거 없었음

오히려 대사 치는 센스도 맘에 들었고 다 괜찮았음

근데 문제는 이 분기점인데...처음엔 시키는대로 스테프 상인의 위치를 알만한 증거품을 조합했지. 그러니까 배드엔딩인지 노말엔딩 뜨더라고

그리고 그 엔딩에서 마지막에 '그래서 도대체 그 상인은 어떻게  사라진걸까?' 라고 하더라. 이건 힌트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잖아?

그래서 아 진엔딩 가려면 이거 상인 위치 추리해야 하네 한 거지

여기서 시작임 상인이 남긴 유일한 흔적은 창틀의 손자국

분기점에서 제시된 유일한 새 증거가 이것밖에 없으니 추론을 여기에서 시작해야 하는건 분명한 사실임

근데 이 손자국을 남긴 사람은 한명 더 있음 피해자의 아내 엘

그러니 난 당연히 이 공통점은 괜히 제시된게 아니구나 여기에 뭔가 있구나라고 생각했고

더 나아가 창문에 손을 대는 것이 스테프의 트리거라면 엘이 이 행동을 한 것은 피해자가 사망하기 전이었고

그렇다면 이게 공간에 관련된 스킬이라서 시체가 반갈죽 순간이동 된 건가?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상인은 안전하게 공간이동 한 거고? 하고 생각했었음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손자국에서 파생되는 증거 조합을 눌러봐도 안 먹히는 거임

그래서 다시 생각을 가다듬었지. 사실 이상했던 점은 더 있으니까

스테프 4개 샀다고 한 점

문에 빨간 문양 그려진 점

엘이 문을 쾅 닫았다는 묘사와 문에 남은 엘의 손자국

상인도 문 닫아달라고 요청했었고 들어줬었지

아 이게 트리거가 2개구나 해서 또 신나게 문짝-창문 가지고 증거를 조합했음

근데 안 열리더라

알고 보니 중간거래상이었던 그 녹색머리 말고 원 주인들 전화번호로 거기서부터 수사해 나가는 거였음

2챕터때 내가 했던

'진범의 모순점을 바로 지적해야 하나? 아니면 여기 적힌대로 먼저 우리가 진범이 포유류관에 있었다고 생각했던 근거를 먼저 제시해야 하나?'

'먼저 우리가 생각한 근거를 제시하고 다시 그걸 무너뜨리는 전개로 진범의 모순을 드러내는 전개인가본데?' 

이 때의 문제가 극심하게 터져나온거임

추리게임은 필연적으로 이따구로 될 수 밖에 없기는 한데 그렇기 때문에 유도를 섬세하게 잘 해주어야 하는 거임

우리가 추리게임 하면서 쓱쓱쓱 풀어나가는게 제작진이 저능아라서 트릭을 이렇게 쉽게 짰을수도 있지만

이렇게 안 하면 플레이어가 하다가 속 터져 죽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단계를 하나 하나 밟아나가면 결국 하나의 진상에 다다르게 길을 터둔거라고

물론 너무 퍼먹여주면 쉬워서 흥미가 떨어지긴 하지만

이렇게 유저들이 미리 알아챘기 떄문에 헷갈릴 수 있는 부분에서는 좀 유도를 더 강하게 해줘야 하는 거라고 생각함

솔직히 그렇게 어려운 추론도 아니었잖아

배드엔딩 마지막 대사때문에 진짜 이게 맞는 길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었음

뭐 앞서 말했듯이 이 게임만의 문제는 아니고 추리게임이 맞이해야 할 숙명같은거긴 해

역전재판에도 같은 단점이 있었지 특히 오도로키가 주인공일때 하나 있었지 그거

몇편인지 기억 안 나는데 그 꿰뚫어보기로 겨땀 지적했어야 할 때 개억까라고 악명 자자했잖아

제작진이 깔아놓은 흐름대로 유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플레이어는 아니! 시발! 범인! 저기! 있는데! 하고 속만 터지는 거임

이건 섬세하지 못한건지 아니면 플레이어를 지나친 저능아로 상정한건지 모르겠다....

그 지랄을 하고 3챕 엔딩 봤는데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었고 문짝이 아니라 창고 그 자체이긴 했지만 결국 방향은 맞았고

이러니 게임을 좀 불신하게 되는 거지

내가 알고있는 진실이 아니라 이 시점에서 제작진이 유도하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찾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과연 이 게임을 하면서 내가 만족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내가 추리게임을 이것저것 다 들쑤셔봐서 그런걸까?

근데 이 게임 추리게임 뉴비들한테만 팔 건 아니잖아....

4챕이랑 5챕은 좀 다르길 빌지만 이대로라면 그냥 가격이 만오천원이라서 좋은거지 

뭔가 게임 자체가 좋아서 갓겜소리 듣는건 아닐거 같음

그리고 가격도 오브라 딘이랑 페인스크릭 킬링스도 2만원인가 그랬지만 엄청 잘 만들었다구....

다들 게임뽕차서 설레여하는데 찬 물 끼얹는게 미안하긴 한데 난 실망이 크다 아직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