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리, 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해요?”

“죄송합니다, 과장님. 빨리 고쳐서 내겠습니다!”

“어휴, 진짜…, 오늘 내로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퇴근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도 바쁜 하루였다. 회사 내에서 업무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야근까지 하고 나서야 간신히 집에 와서 조금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설렁설렁 외투를 테이블 위로 벗어던지자 언제나 그랬듯이 인공지능 비서가 옷을 정리한다.

“시리야, 냉장고에 먹을 거 조금 있을까?”

- 네, 주인님. 금일 16시로 예정사항이었던 물품 구매를 완료하였습니다. 어떤 메뉴를 원하십니까?

“음, 오늘은 초밥이 끌리네. 시원한 맥주하고 말이야.”

-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예상 작업 완료 시간은 04분 25초입니다. 허가해주시겠습니까?

나는 항상 그렇듯이 푹신한 소파에 누워서 귀찮은 듯 말한다.

“어 그래. 맥주는 먼저 가져다줄래? 약간 살얼음 끼게 해서 말이야.”

-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소파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들이마시며 유튜브 인기 동영상을 보길 몇 분, 시리가 주문했던 모듬 초밥을 가져왔다. 기대했던 그대로의 최고의 맛이다. 오늘도 몇 분 되지 않아 식사를 다 비운다.

“우리 시리는 날이 갈수록 요리 실력이 늘어나네, 이제 시집가도 되겠는걸?”

-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김지훈 님의 소속 비서 겸 가사 AI로 사전적 정의에 속하는 ‘시집’을 시행할 수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쯧, 메마른 녀석. 농담이야 농담.”

미묘하게 삭막한, 시리의 기계적인 반응은 항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녀와 다르게 덤벙대지 않는 점도, 요리를 못하던 그녀와 다르게 항상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도, 이렇게 매일 이질감을 느끼는 점도.

“시리야, 가상현실 NPC처럼 사람다운 성격으로 바꿀 순 없는 거야? 걔들 진짜 사람이랑 똑같잖아.”

- 죄송합니다. AI 제작법 3조 1항에 의거, 가상 인격을 제외한 2급 이하의 공무 및 사무 AI, 로봇은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감정’을 인스톨 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유감입니다.

“생긴 건 이렇게 귀엽게 생겼는데, 예전이랑 다를 바 없이 똑같은데.”

하얗고 말랑말랑한 시리의 볼을 꼬집는다. 정말 사람과 똑같지만,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조각처럼 오똑한 코를 지나 핑크빛이 감도는 탐스러운 입술에 손이 다다랐을 즈음엔,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린 그녀와 입술을 맞추기를 반복한다. 여린 손을 가볍게 당겨 그녀를 껴안았다. 슬프게도 그녀의 몸은 차가웠다. 시리의 공허한 눈을 쳐다보았다. 안쓰럽다. 괜히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흑, 흐윽….”

시리가 기계적인 동작으로 나의 등을 토닥인다. 어색하게, 그리고 천천히.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을 찰나, 다시금 그 공허한 눈빛을 마주하고는 바보같이 아이처럼 울먹인다.

“지은아…, 이지은….”

- 저는 이지은이 아니라 CODE:75562, 시리입니다.

“그 목소리도, 얼굴도 지은이와 똑같은데….”

- ….

“기억 속에 있던 지은이랑 똑같은데…, 너무 달라. 무서워, 지은아.”

- 주인님이 말씀하신 이지은 님은.

잠시 시리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하지 마. 그 얘기는 괜찮으니까, 제발. 나는 아이처럼 이 말을 내뱉지는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 약 한 달 전 테러 사고로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제 이름은 시리, 이지은 님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멍하니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시리, 이지은, 시리…. 항상 늘 똑같았다. 나는 매일 사실을 부정하고, 시리는 그걸 정정하고. 다람쥐가 쳇바퀴를 굴리듯 똑같은 행동 속에 시리는 날 얼마나 바보처럼 볼까? 감정이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으려나, 의미 없는 생각만 겉돌았다. 지은이를 놓아줄 때가 되었나.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시리야.”

- 네, 주인님. 말씀하십시오.

“너에게서 감정을 찾아 줄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따듯한 마음 말이야.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볼게.”

- 해당 내용은 AI 제작법 3조…

“그 대신, 네가…, 네가 감정을 갖는다면 말이야….”

- ….

“하루만…. 아니,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까…, 지은이처럼 행동해 줄 수 있을까…? 부탁이야.”

시리는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 찰나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시리는 대답했다.

-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고마워.”

언젠가 3번지 뒷골목에 AI 불법 개조를 해주는 공방이 있다고 들었다. 감정 패치 정도야, 얼마라도 해줄 수 있다. 불법이고 위법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내일 회사에서 연차를 내야겠는걸.

“시리야, 좀 피곤해서 자고 싶거든.”

- 세팅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주인님.

잠깐 사이에 잘 정돈된 침대 시트 위에 누웠다. 이불을 덮는다. 당연하게도 잠은 오지 않는다. 다시금 시리의 팔을 잡는다.

“내가 잠이 오지 않아서 그러는데.”

- 말씀하십시오.

“내가 잠들 때까지만 옆에서 같이 누워줄 수 있을까?”

- 수행하겠습니다.

시리의 등을 맞대고 이불을 덮었다. 그때처럼 따듯한 온기는 전해지지 않지만 그래도 외로운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게 지은이가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오랜 시간 시리의 등을 빌려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