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넬의 마지막 공작, 제로드는 그의 안장에 몸을 숙인 채로 로렌 숲의 다가오는 고요함에 맞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렸을 때부터 제로드는 퀘넬의 남동쪽 경계에 붙어있는 숲을 두려워했다. 숲은 수년 간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친구들과 봉신들의 죽음과 실종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젊은 영주로써 제로드가 실종된 농노 아이를 찾기 위해 숲의 가장자리까지 달리고,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되찾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숲은 창백한 형상들이 자리잡은 곳이자 악몽의 장소였다. 그리고, 세상 그 자체가 악몽으로 변해버렸다.

제로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에게 넘겨진 짐들을 계승받지 않았으면 했다. 그의 사촌 안셀름이 알트도르프에서 역병이 들러붙은 칼날에 죽지만 않았더라면. 안셀름의 후계자, 탕크레드가 크렐의 검은 도끼에 죽지 않았더라면. 제로드가 퀘넬의 마지막 후예가 아니었더라면. 하지만 그의 소망의 대부분은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의 민족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들 곁에서 싸우기 보단, 차라리 짐승의 아가리 속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제로드는 지금도 솔방울들을 지나 포위된 동지들을 구하러 가는 동안 지평선 너머로 짙게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한때 그의 고향이라 불렸던 화장터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제로드는 그 정도의 연기라면 온 브레토니아가 불타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와 퀘넬의 동지들이 루엥 레옹쿠르의 성전에 합류하여 제국의 심장부로 진군하고, 가장 오래된 라이벌들, 대적들, 흔치 않는 아군들을 구하기 위해 랜스를 내려놓아야 했던 지난 몇 달 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 시대에 브레토니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는 눈을 뜬 다음 손을 뻗어 그의 뺨과 턱에서 일주일 동안 면도되지 않는 털을 긁었다. 볼겐 전투에서 그의 종복이 죽어버렸기에, 그의 상태를 관리해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브레토니아에서 벌어지는 일이 제국에서 벌어지는 일과 동일한 것이라면, 그는 그 사실을 알아보기가 두려웠다. 제로드에게 제국은 정복할 수 없는 괴물과도 같았다. 머리 여러 개를 가진 용으로, 불을 내뿜고 적들을 파괴하는 존재. 그러한 용과 대적한다는 것은 수많은 기사들의 꿈이기도 했고, 제로드도 그 중 한 명에 포함됐었다. 하지만 이제 용은 쓰러졌다. 수많은 상처 끝에 죽임을 당하였다. 상처들은 늘어날 때마다 훨씬 심각해졌다. 그리고 적들이 역병, 폭풍, 화염을 마치 농노가 곤봉을 휘두르는 것과 같이 손쉽게 사용한다면, 전투의 첫 희생자는 바로 명예일 수 밖에 없었다. 제로드와 그의 동지들은 대가를 치룬 뒤에야 그 사실을 배우게 됐다.

이제 그의 곁에는 원래의 3할 밖에 안되는 병력만이 남아 있었다. 처음엔 말로부드의 버러지들과의 내전이 있었고, 라매종타알 수도원 전투가 있었으며, 마지막엔 알트도르프에서 사자심왕의 지휘를 받았고, 현재까지도 살아남았다. 안글라론의 죠프리는 라매종타알 수도원에서 크렐의 도끼에 전사했다. 그의 사촌들인 레이노르와 헤르날드는 알트도르프에서 앤설름과 함께 전사했다. 늙은 기사 가라몬트의 칼라르는 애버하임의 성벽 위에서 손에 검을 쥔 채 저주를 퍼부으며 전사했다. 하지만 남은 자들은 브레토니아의 토대 그 자체를 이루는 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의무와 여인에 대한 맹세로 그들은 마주하는 모든 악과 맞서 싸우기로 했다. 그리고 제국에는 사악한 자들로 가득했다.